예정된 전쟁
 

10월 둘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북저널리즘과 더밀크가 빅테크와 관련한 웨비나를 열었던 날이었습니다. 북저널리즘과 더밀크는 뉴미디어를 대표하는 매체들입니다. 서로 성격도 내용도 다릅니다. 북저널리즘이 뉴요커라면 더밀크는 비즈니스위크랄까요. 이렇게 서로 달라서 함께하면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 작은 시작이 빅테크 웨비나였죠. 북저널리즘은 서울이 준거 도시고 더밀크는 샌프란시스코가 준거 도시라서 오프라인 세미나는 쉽지 않았거든요. 물론 코로나 영향도 있었습니다. 

주제는 실리콘벨리 빅테크의 미래였습니다. 아마존과 테슬라, 구글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이 소재였죠. 당연히 미국 정부의 빅테크 규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 정부의 초국적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는 북저널리즘에서도 꾸준히 다루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현구 에디터가 〈공동부유의 경영학〉에서 중국의 빅테크 규제를 다뤘습니다. 미국의 빅테크 규제는 《테크 비즈니스, 게임의 법칙》에서 조망했습니다. 한국의 빅테크 규제는 프라임 레터 〈30원의 혁신〉에서 분석했습니다. 웨비나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이어졌습니다. 리나 칸의 별명이 아마존 킬러입니다. 그런데 웨비나에 패널로 참석한 더밀크의 손재권 대표도 저도 연방거래위원장으로서 리나 칸이 맨 먼저 노리는 게 아마존일까에 대한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아마존보단 페이스북을 노릴 거라고 전망했기 때문이죠. 결론적으로 리나 칸을 앞세운 바이든 정부가 페이스북을 쪼개버릴 거라는 게, 포사이트였죠.

정말 북저널리즘과 더밀크의 전망이 맞아 떨어지는 분위기입니다. 무엇보다 페이스북의 치명적인 내부고발자가 등장했습니다. 내부고발자 프란시스 호건이 증언한 페이스북의 민낯은 추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사익을 위해 기꺼이 공익을 희생시키는 독점 기업 그 자체죠.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깊이 짚을 계획입니다. 분명한 건 호건의 증언이 페이스북한텐 매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안 그래도 페이스북 킬러 리나 칸과 샅바싸움을 벌이던 참이었으니까요. 이건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엔드 게임입니다.
이건 예정된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장은 바이든 행정부가 아마존이나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한테 겨눈 칼끝 그 자체였습니다. 아마존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 기업은 사실상 시장 지배적인 독점 사업자죠.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시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은 소셜미디어 광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죠. 아마존에 의한 경쟁사의 연쇄 도산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아마존겟돈입니다.

페이스북과 경쟁할 만한 SNS광고 플랫폼은 인스타그램뿐입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의 주인은 페이스북입니다. 맹점은 1890년에 제정된 독점금지법인 셔먼법에 따르면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독점 기업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셔먼법은 소비자 후생의 과점에서 독점을 정의합니다. 독점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높여서 소비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끼치는 걸 독점의 폐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아마존은 독점 기업이 아니죠. 아마존은 오히려 제품의 가격을 떨어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한때 오히려 아마존 효과를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아마존 효과란 아마존 때문에 시장의 제품 가격이 내려가서 디플레이션이 유발되는 경제 현상을 말합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입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이용료는 무료입니다. 페이스북이 소셜미디어 광고 시장을 독점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정작 소비자한텐 아무런 피해도 없습니다. 오히려 정반대죠. 소비자는 인스타그램 덕분에 공짜로 SNS를 이용하고 아마존 덕택에 최저가로 제품을 구매합니다. 페이팔 마피아의 보스 피터 티엘은 《제로 투 원》에서 이렇게 말했죠. “독점은 좋은 것이다.” 독점이 경쟁의 비용을 최소화시켜서 소비자한테 전가될 마케팅 비용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소비자 후생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제까진 이런 좋은 독점 논리를 깰 수가 없었습니다. 130년 전에 정의된 독점의 기준에 따르면 아마존과 페이스북은 독점이지만 좋은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 내부고발자의 증언이 치명적인건 바로 이 지점에 결정적 균열을 냈기 때문입니다. 페이스북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서 소비자 후생을 악화시켰다는 증거가 나온 거죠.

리나 칸은 2017년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라는 논문을 통해 130년 독점 논리를 깼습니다. 리나 칸은 이 논문을 예일대 로스쿨 재학 시절에 썼죠.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는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도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를 돌려 읽고 연구했을 정도였죠. 이때 리나 칸은 아마존 킬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는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 민주당한테도 강한 인상을 줬습니다. 결국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올해 서른두 살의 리나 칸을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죠.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는 비유하자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입니다. 리나 칸은 “이해충돌을 감시하는 것보다 이해충돌을 만드는 산업구조를 방지하는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독점 기업이 등장한 이후에 규제하는 것보다 독점 기업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데 규제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단 논리죠. 톰 크루즈가 주연한 SF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미래 사회에선 범죄자가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범죄를 예측해서 미리 체포합니다. 리나 칸은 플랫폼 기업이 독점 기업화되기 전에 규제하는 것이 사실상 규제가 불가능해진 독점 기업과 맞서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얘기합니다.

리나 칸은 셔먼법의 비좁은 독점 개념도 재정의합니다. 독점에 의한 가격 인상 여부에만 초점을 맞추는 시카고학파식 독점론은 경쟁제한성을 과소 평가하게 만든다는 설명입니다. 아마존은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경쟁자들을 고사시켰죠. 결국 시장 지배력을 활용해서 인접한 사업 영업으로 진출했고 시장 지배력을 전이시켰던 겁니다. 경쟁자를 말살하고 주변 시장을 통폐합하는 것이 독점이 아니면 무엇이 독점이냐는 논리인 것이죠.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는 사실상 130년 묵은 반독점법을 현대화하자는 주장입니다. 디지털 시대엔 디지털 시대에 맞는 현대적 반독점법이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정부가 빅테크 규제를 위해 리나 칸을 앞세웠다는 건, 이번 싸움이 치열한 논리 싸움이 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페이스북의 내부고발 사건은 페이스북의 논리에 균열을 냈죠. 리나 칸이 이걸 놓칠 리 없겠죠.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해당하는 연방거래위원회의 수장이 되면서 리나 칸은 논리와 권력을 양손에 쥐게 됐습니다.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는 리나 칸이라는 잔다르크를 통해 그 동안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서 진도를 나가지 못했던 빅테크 기업들에 대한 규제를 실현할 계획입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빅테크 기업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면서도 세금은 많이 내지 않고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손쉽게 유지해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경쟁을 동력으로 하는 시장의 건전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합니다. 리나 칸이 주장은 설사 소비자 가격이 낮아지더라도 시장의 경쟁원리를 원천봉쇄할 정도라면 독점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빅테크 기업들 모두 리나 칸의 독점 재정의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리나 칸은 공격 목표는 GAFA라고 불리는 빅테크4였습니다. 구글과 애플과 페이스북과 아마존이죠. 이 중에서도 리나 칸 위원장은 페이스북과 아마존에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이젠 페이스북이 최우선 목표입니다.

예정된 전쟁은 반드시 예정에 따라 발발하기 마련입니다. 지난 6월 미 법원이 페이스북과 연방거래위원회 사이의 소송에서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건 페이스북의 무리수였습니다. 리나 칸과 연방거래위원회를 자극만 했죠. 연방거래위원회는 지난해인 2020년 12월에 페이스북을 상대로 2012년 인스타그램 인수와 2014년 왓츠앱 인수에 관해 소송을 걸었습니다. 잠재적 경쟁자를 인수합병해서 독점적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행위였다는 논리였습니다. 사실 연방거래위원회는 당시 두 인수를 모두 승인했던 당사자입니다. 말하자면 결제해지 소송이었던 셈입니다.

법원은 페이스북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셔먼법에 따른 결과였죠.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가 소비자 후생에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리나 칸 위원장의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논리였습니다. 또한 등장한 페이스북 내부고발자가 문제입니다. 시장의 경쟁원리를 망친 것만이 아니라 소비자한테 직접적인 피해를 끼쳤던 게 사실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리나 칸은 연방거래위원장으로 임명되자마자 즉시 제소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페이스북은 리나 칸 위원장에 대한 기피 신청까지 냈죠.

이건 페이스북이 리나 칸을 정말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지난 법원 판결에선 페이스북이 이겼을지 모릅니다. 정작 페북이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에선 졌습니다. 페북은 연방거래위원회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의 기업 분할을 추구할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21세기 스탠다드 오일이 될 가능성을 막고 싶었던 겁니다. 법원은 오히려 연방거래위원회가 페이스북의 기업 분할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줬습니다. 이게 결정타였죠.

만일 리나 칸이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의 논리로 법원을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면 페이스북은 기업분할을 요구하는 연방거래위원회와 맞서 싸워야만 합니다. 리나 칸 뒤에는 바이든이 있습니다. 사실 다급하긴 아마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리나 칸은 아마존의 MGM 인수 케이스도 들여다보고 있거든요. 리나 칸은 아마존이 선수와 심판 역할을 모두 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마존도 페이스북처럼 리나 칸에 대한 기피 신청을 냈죠.

리나 칸과 페이스북의 예정된 전쟁은 결과적으로 글로벌 플랫폼 사업체 모두한테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가 리나 칸의 논문을 돌려보는 이유입니다. 한국에도 카카오와 쿠팡 같은 플랫폼 사업자들이 있습니다. 지금 국감에서 “죄송합니다”를 반복하고 있는 회사들입니다. 두 회사 모두 페이스북과 아마존처럼 압도적 지배력으로 경쟁 없는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예정된 전쟁》은  패권국가들이 결국 최종 전쟁을 벌일 수 없다는 그레이엄 엘리슨의 저서 제목입니다. 미중 갈등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주로 쓰였습니다. 이젠 경영학 용어가 됐습니다. 새롭게 등장한 플랫폼 기업과 새로운 규제 논리로 무장한 정부당국 간의 전쟁도 예정된 전쟁이니까요. 착한 독점이 있다는 세계관과 착한 독점이란 있을 수 없다는 세계관 사이의 필연적 충돌입니다. 역대 최연소 연방거래위원장 리나 칸이 예정된 전쟁의 중심에 서 있습니다.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되는 전쟁입니다. 페이스북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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