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우파가 앞으로의 스트릿 댄스 문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길을 먼저 걸었던 쇼미더머니를 통해 방송사의 자본이 문화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앞서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이 발전한 과정과 쇼미더머니로 주류 문화가 되었다는 이야기 사이에는 생략된 내용이 있습니다. 바로 언더그라운드의 절멸입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힙합이 발전했던 과정에는 돈이 되는, 이른바 검증된 방법론의 답습이 아닌 실험과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위 영상에 소개한 ‘허클베리 피(Huckleberry P)’입니다. 〈분신(焚身)〉이라는 이름의 공연은 10년 가까운 세월을 이어온 단독 공연이자, 그의 무대를 설명하는 완벽한 단어입니다. 가장 빠르게 매진되는 힙합 공연 중 하나이지요. 아쉽게도 판데믹으로 ‘분신 10’은 아직 열리지 못했습니다.
다큐에서는 판데믹으로 열리지 못한 공연장을 비추고 있지만, 공연장의 몰락은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쇼미더머니가 방영된 이후 영상 속의 공연장에서 각축을 벌이던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죠. 시즌이 지나갈수록 쇼미더머니는 단단한 톤과 텅 트위스팅, 트랩 리듬과 보컬 피쳐링 등, 일종의 ‘성공 공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것을 추구하는 방송사와 대중의 입맛에 맞춘 방법론이었죠. 언더그라운드에서 이들을 변절자 취급하던 목소리는 사라져가고, 언더에서 실력이 검증된 래퍼들이 대거 출연하자, 힙합 문화는 쇼미더머니와의 공생을 택했습니다.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쇼미더머니를 등용문으로 삼아 데뷔를 준비했고, 랩의 방법론을 연구하는 이들은 고루한 사람 취급을 받았죠. 힙합 문화의 상징과 같은 ‘Show and Prove’를 공연장에서 하는 이들은 줄어가고, 쇼미더머니 출신의 라인업이 없는 공연은 열리지 않거나 심한 불황에 시달렸습니다. 자연스레 생태계에 변이가 일어난 것이죠.
검증된 루트가 아닌, 이 문화가 성장했던 방식을 고수하며 씬을 발전시키겠다는 허클베리 피의 포부는 누구에게는 멋지고, 누구에게는 바보같이 보일 것입니다. “쇼미더머니가 언더그라운드를 사장했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쇼미더머니는 숱한 스타를 배출했고, 진입장벽이 낮아지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 생겨나기도 했죠. 이는 쇼미더머니의 획일화된 방법론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인터넷 발달로 인해 외국 문화와의 접점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셀 수 없는 음악인들이 다른 길을 찾아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힙합은 파이가 커졌고, 대중들은 이제 힙합에 대해 꽤 많은 것을 압니다.
서브컬쳐는 서브컬쳐일 때 아름답지만 일정 수준의 자본이 없이는 문화의 명맥을 잇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현시점에서 펑크가 그렇죠. 자신을 알릴 기회,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자본의 유입에 적극적으로 호응한 문화의 구성원들도 탓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방송사가 서브컬쳐를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서브컬쳐는 그 특유의 독창성으로 거대 방송사에 큰돈을 벌어주지만, 방송사가 키워낸 서브컬쳐의 파이를 독식하는 것은 오로지 해당 방송에 출연한 사람들뿐입니다. 심사위원이었던 래퍼가 출연자로 다시 나오고, 이미 화제성이 검증된 래퍼들이 중복하여 나오는 것에 어떠한 제한도 없죠. 방송사는 그저 화제성에만 몰두합니다. 서브컬쳐를 ‘발굴’하는 듯 보였던 방송사는 결국 검증되고 반복 가능한 공식을 답습하고 씬은 고스란히 그 흐름을 따르죠.
다양성의 상실은 서브컬쳐에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제이블랙이 스우파를 논평한 것 중 지난 11일에 올라온 영상에서, 제이블랙은 스우파는 좋은 방송이며, 다만 방송이 끝난 후에도 여러분이 스트릿 댄스 문화에 관심을 이어가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공손한 그의 말투에서는 문화에 대한 사랑과 문화 밖 대중에 대한 진심 어린 호소가 느껴집니다. 방송사가 창의적인 서브컬쳐를 콘텐츠화한 뒤, 그 문화가 계속 창의적일 수 있게 사후 처리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요? 적어도 생물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는 그 생태에 최대한 영향을 주지 않도록 철저히 주의하는데 말이죠. 방송사가 서브컬쳐의 생태 교란자가 아닌, 존중을 담은 관찰자이기를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