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포캐스트
 

10월 셋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개조식은 신조어입니다. 한 개 두 개 할 때 쓰이는 한자어 낱말 개(個)자에다가 조목조목 따지다 할 때 쓰이는 가지 조(條)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지다 정도의 뜻이 됩니다. 예전엔 없던 말이죠. 개조식이란 신조어까지 탄생한 건 개조식이 지금 글로벌 저널리즘의 최신 유행이기 때문입니다. 〈악시오스〉 덕분이죠.

뉴미디어 〈악시오스〉는 2017년 1월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정치 전문 뉴미디어 〈폴리티코〉의 공동 창업자인 짐 밴더하이가 창업했습니다. 〈악시오스〉는 개조식의 원조집입니다. 〈악시오스〉는 특정 이슈의 관련된 핵심 정보들만 맥락에 맞춰 효율적으로 나열합니다. 군더더기는 없습니다. 미사여구도 없죠. 접속사도 없습니다. 사족도 없습니다. 대신 없는 것 빼곤 다 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커다란 맥락은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보기 같은 내용들이죠.

독자들은 필요 없는 건 없고 필요 있는 것만 있는 〈악시오스〉의 효율성에 열광했습니다. 누구보다 간결하게 정보의 디테일과 큰 그림을 모조리 파악해서 똑똑한 지식인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아닌 게 아니라 〈악시오스〉는 똑똑한 간결함을 표방합니다. 〈악시오스〉는 똑똑한 간결함으로 독자를 간결하게 똑똑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자신들의 가치를 독자에게서 실현한 것이죠. 〈악시오스〉는 저널리즘의 문법을 독자의 관점에서 혁신한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악시오스〉이후 무수한 미디어들이 〈악시오스〉 문법은 벤치마크했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와 뉴미디어를 막론했죠. 지식정보유통업에서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는 방법으론 개조식만 한 게 없었으니까요. 문제는 본편만 한 속편이 없고 원조집만 한 맛집이 없다는 진리였죠. 모두가 〈악시오스〉를 벤치마크했지만 모두가 〈악시오스〉처럼 될 수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분명히 레시피대로 그대로 따라 했는데 원조집 맛이 도무지 안 나는 패스트 팔로워의 다들 함정에 빠졌던 겁니다.

사실 〈악시오스〉 문법의 핵심은 정보를 독자의 관점에서 재배열한 것입니다. 정보 공급자인 미디어의 관점에서 정보를 배열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이른바 스트레이트 문법입니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했는지라는 6하원칙에 따라 정보를 배열하는 것입니다. 문자로 종이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신문 산업이 태동한 100년 전에 개발된 문법입니다. 솔직히 20세기 초반에 개발된 스트레이트 문법은 21세기 초반에 개발된 〈악시오스〉 문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정말 똑똑하고 간결하죠.

문제는 스트레이트가 일방적으로 정보 공급자의 관점에서 개발된 문법이란 한계입니다. 정보 수용자 입장에서 해당 정보가 왜 필요한지는 드러나지 않죠. 〈악시오스〉 문법이 Why it matters로 시작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려면 독자가 해당 정보가 자신에게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부터 판단할 수 있게 해줘야 하니까요. 독자는 ‘Why it matter’를 읽고 ‘it doesn't matter to me’라면 읽기를 중단하면 됩니다. 〈악시오스〉는 무료 뉴스 미디어입니다. 돈은 브랜디드 콘텐츠로 법니다. 독자 기반이 아니라 전형적인 광고주 기반 미디어란 얘기죠. 그래서 〈악시오스〉가 독자한테 바라는 건 돈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악시오스〉가 악착같이 독자의 시간을 아껴주려고 노력한 배경입니다. 독자가 〈악시오스〉에 더 시간을 쓰게 만들려면 독자의 시간을 아껴줘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 거죠. 〈악시오스〉의 문법은 그런 맥락에서 개발됐습니다.

무수한 미디어들이 〈악시오스〉를 벤치마크했지만 모두가 성공한 건 아니었던 이유입니다. 미디어마다 콘텐츠 색깔과 비즈니스 모델이 다른데 개조식이라는 외형만 모방하려고 했었던 겁니다. 북저널리즘은 〈악시오스〉의 니콜라스 존스턴 편집장과 직접 개조식 문법에 관해 의견을 주고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진짜 〈악시오스〉의 본질은 정보를 분해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타겟 독자의 요구에 맞는 문법을 개발하고 고수한 것입니다. 〈악시오스〉의 개조식 문법은 단순합니다. 배경 설명이나 세부 내용 같은 것들은 누구나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형식 자체가 경쟁력이 아니란 거죠. 대신 〈악시오스〉는 내용을 가치 있는 것들로 채웁니다. 〈악시오스〉는 정말 전문가들을 기자화시켰습니다. 기자들은 모두가 자기 분야의 전문성이 있습니다. 창업자인 짐 밴더하이부터가 〈폴리티코〉에서 날리던 정치 전문 기자죠. 밴더하이의 옆에는 워싱턴의 아침을 여는 정치 기자로 유명한 저명한 저널리스트 마이클 앨런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밴더하이와 앨런은 전문성을 갖춘 전문가들을 발탁해서 저널리스트로 훈련시켰습니다. 형식은 단순하지만 내용은 특별한 〈악시오스〉만의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악시오스〉의 단순한 개조식 문법은 차별화된 취재력과 분석력이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진짜 레시피는 개조식이 아니라 〈악시오스〉라는 이름에 있었던 겁니다. 〈악시오스〉는 그리스어로 가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독자에게 우리 미디어만이 제공할 수 있는 차별화된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느냐 여부가 독자에게 어떻게 정보를 전달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선결 과제입니다. 물과 컵처럼 콘텐츠와 형식은 상관관계입니다. 컵 모양에 따라 물의 형태가 달라지고 물의 색깔에 따라 컵의 종류가 달라집니다. 〈악시오스〉는 자신이 따를 물과 자신에게 필요한 컵의 상관관계를 정확하게 간파한 덕분에 성공했습니다.
데일리 북저널리즘에 대한 북저널리즘 내부 구성원들끼리의 끝장 토론이 있었습니다. 북저널리즘은 크게 구분하자면 디지털과 프린트로 지식 정보 콘텐츠를 생산하는 뉴미디어입니다. 프린트 콘텐츠의 대명사는 책이죠. 독자 여러분들이 애정해주시는 간결하고 똑똑한 북저널리즘 책 시리즈들입니다. 책의 깊이와 뉴스의 시의성을 결합한 결과물들이죠. 저자는 외부의 전문가들입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대명사는 현재까지는 데일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한 꼭지씩 주요 이슈에 관한 에디터들의 글이 독자 여러분께 뉴스레터의 형식으로 전달됩니다. 많은 독자 여러분들께서 데일리를 사랑해주셨습니다만 북저널리즘 내부적으론 이것이 독자를 위한 최선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북저널리즘에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가 끝장 토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또 〈악시오스〉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미디어의 콘텐츠 색깔과 비즈니스 모델에 더 잘 맞아떨어지는 문법을 탐구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습니다. 물과 컵을 일치시키는 미디어만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북저널리즘은 이미 뉴스라는 문법을 실험한 적이 있습니다. 〈악시오스〉의 개조식 문법을 탐구해본 셈이죠. 많은 독자 여러분들이 뉴스를 애정해주셨지만 결론을 내리진 못했습니다. 북저널리즘이라는 미디어 하우스의 콘텐츠 색깔과 비즈니스 모델과 뉴스가 충돌하는 측면도 없지 않았죠.

북저널리즘은 스토리텔링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미디어 하우스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이 애정해주시는 책 시리즈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전문 필자들이 전해주는 각 분야의 생생하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경쟁력입니다. 최신간인 《의사들은 왜 그래?》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현직 의사가 자신이 겪은 의료 현장의 스토리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에겐 정보가 충족되고 공감이 유발됩니다.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스토리야말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했습니다. 미디어 하우스 북저널리즘의 핵심 경쟁력도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스토리텔링 저널리즘을 디지털 콘텐츠까지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북저널리즘에 원하는 건 스토리니까요.

스토리하면 흔히 소설이나 드라마나 영화를 떠올립니다. 그것들은 픽션입니다. 저널리즘은 논픽션 장르입니다. 논픽션의 스토리는 소설보다 훨씬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소설처럼 드라마화돼서 돌아가진 않으니까요. 논픽션 장르에서 스토리의 핵심은 재미와 의미입니다. 우리는 책 한 권을 읽어도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걸 최악이라고 평가합니다. 재미가 있으면 의미가 없어도 킬링 타임으로 만족합니다. 재미는 없어도 의미가 있다면 최소한 시간 낭비는 아니라고 여기죠. 둘 다 없으면 분노하지만 둘 다 있으면 환호합니다.

저널리즘의 읽고 보는 재미는 똑똑한 간결함에서 나옵니다. 복잡한 정보를 빠르고 쉽게 설명하고 이해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저널리즘의 재미죠. 이건 〈악시오스〉가 이미 해결했습니다. 의미는 좀 다릅니다. 의미는 인사이트에서 나옵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적 지평을 넓혀주는 가치가 인사이트입니다. 인사이트는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닙니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분명 인사이트가 있는 전문가가 맞지만 대중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분들도 계시죠. 전문 기자들에게도 인사이트가 있습니다. 대중적인 저널리즘 언어도 구사할 줄 알죠. 그래서 인사이트가 있는 저널리스트는 희귀한 만큼 소중하죠. 북저널리즘은 독자 여러분들이 저널리즘 스토리에서 재미와 의미를 모두 원한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재미와 의미야 말로 북저널리즘이 독자에게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 가치인 것이겠죠. 당연히 북저널리즘이 생산하는 데일리, 라디오, 톡스, 전자책, 종이책을 관통하는 가치여야 할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가치가 더 있습니다. 끝장 토론에서 북저널리즘은 우리 독자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일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비로소 찾아낸 게 전망입니다. 포사이트입니다. 지식정보 콘텐츠의 소비자들이 절실히 원하는 건 역설적으로 지식도 정보도 아닙니다. 재미가 있으면 고맙고 의미가 있으면 감동이지만 진짜 원하는 건 재미만도 의미만도 아닙니다. 정말 원하는 건 미래에 대한 전망입니다. 내일을 알고 싶어서 오늘을 공부하는 것이죠.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는 것 말고는 세상의 내일을 엿볼 방법이 없어서 미디어를 필요로 하는 것이죠. 반면에 레거시 미디어들은 전망을 기피합니다. 내일의 뉴스란 모순이니까요. 의견과 사실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레거시 문법 속에 전망이 들어갈 자리는 비좁습니다. 뉴미디어 북저널리즘은 다릅니다. 기존 문법에서 자유로우니까요. 결론적으로 포사이트야말로 북저널리즘이 독자 여러분에게 제공해야 하는 핵심 가치라는 얘기입니다. 전문가란 결국 특정 분야에 대한 전망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전망력은 북저널리즘이 만들어낸 신조어입니다. “전망력을 가진 미디어만이 살아남는다. 독자 여러분이 그런 미디어만을 선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미디어는 이슈에 한 걸음 더 들어갈 뿐만 아니라 미래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게, 북저널리즘의 결론입니다.

10월 19일 화요일부터 북저널리즘 포캐스트 서비스를 시작합니다. 기존의 북저널리즘 데일리를 대신합니다. 뉴스에서 다져진 개조식 정보 전달의 재미와 데일리에서 구축한 통합식 정보 분석의 의미를 하나도 결합했습니다. 독자 여러분이 북저널리즘을 통해 세상을 더 빨리 이해하고 더 깊이 전망할 수 있도록 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북저널리즘 미디어 하우스의 문법을 내부적으론 버전 0.6 정도로 부르고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독자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적용해서 더 진화시켜나갈 계획입니다. 북저널리즘은 이번 포캐스트 런칭을 시작으로 뉴미디어로서 새로운 형식과 내용 실험을 계속해나갈 계획입니다. 미디어 혁신은 북저널리즘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결코 변하지 않을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매일 데일리를 한결같이 마무리하던 문장입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독자는 미디어의 시작이고 끝이며 전부입니다. 언제까지나 그렇습니다. 
프라임 레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프라임 멤버분들에게만 먼저 보내 드리는 레터입니다.
북저널리즘 웹사이트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업로드됩니다.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