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싸이

10월 21일 - FORECAST

싸이월드는 다시 뜰 수 있을까? 누가 왜 자꾸 띄울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0월 15일 싸이월드가 재오픈했다. 올봄부터 수차례 오픈 계획을 밝혔으나 매번 번복했다. 이번에도 정식 론칭이 아니다. 시범 운영이다. 메타버스에 싸이페이 그리고 페이스 채팅까지 투자자들의 구미가 당길 만한 최신 기술들은 모조리 접목하겠다고 밝혔다. 싸이월드의 부활은 얼마나 신빙성 있을까.
WHY_ 지금 싸이월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싸이월드는 왜 자꾸 부활한다 말만 할까? 본격적인 서비스 재개는 도대체 언제일까? 다시 열성 사용자가 되진 않더라도 흑역사는 숨기고 싶다. 싸이월드가 보유한 천문학적인 개인 정보는 잘 관리되고 있을까? 우리의 추억을 상업적으로 이용할 권리가 싸이월드한테 있는 걸까? 그나저나 싸이월드 관련주에 투자할 수는 없을까?
DEFINITION_ 좀비월드 

싸이월드는 2000년대 승승장구한 1세대 소셜 미디어 서비스다. 2003년 SK커뮤니케이션컴즈에 인수된 뒤 네이트온 채팅과도 연동되면서 도토리로만 연간 매출 1000억 원을 벌어들였다. 성공은 잠깐이었다.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모바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위기를 맞았다. 2013년 SK컴즈로부터 분사한 이후 무려 50억 원 규모 삼성벤처투자의 투자엔 성공했지만 불과 5억 원 규모 크라우드 펀딩에는 실패했다. 2019년 즈음 서버 유지 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하지 못하게 됐다. 그런데 갑자기 올초부터 수차례 서비스 재개를 밝혔다. 좀비처럼 추억이 무덤에서 되살아난 격이다. 
KEYMAN_ 박효신

지난 7월 23일 박효신의 ‘눈의 꽃’을 가수 에일리가 리메이크한 곡이 음원 사이트에 공개됐다. 《싸이월드 BGM 2021》의 열 번째 수록곡이다. 해당 앨범엔 이효리의 ‘10 Minutes’, 긱스의 ‘Officially Missing You’ 등 싸이월드 BGM으로 인기 있던 음악 100곡이 리메이크돼 담길 예정이다. 2005년 발매된 박효신의 ‘눈의 꽃’은 싸이월드와 한 시절을 함께한 음악이다. 2009년 싸이월드 디지털 뮤직 어워드에서 역대 최다 판매곡으로 뽑혔으며 싸이월드 BGM 최단기간 다운로드 70만 회를 기록했다. 과연 리메이크가 적합한 전략일까. 싸이월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건 지금 유명한 가수들의 목소리가 아닌 세월이 지나도 어김없이 과거를 불러일으키는 익숙한 목소리다. ‘눈의 꽃’은 그 누구도 아닌 박효신이 부를 때 진짜 ‘눈의 꽃’이다. 에일리가 아니다. 싸이월드도 이런 식으로 억지 리메이크되고 있다.

MONEY_ 1만 350원

불과 일주일 전인 10월 14일 5300원대에 거래되던 주가가 10월 20일 현재 1만 350원까지 올랐다. 두 배 가까운 상승세다. 언론에서 화제가 된 해당 주가는 싸이월드가 아니다. 싸이월드와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한 NHN벅스의 주가다. 싸이월드는 지금 증시에서 테마주처럼 인식되고 있다. 추억팔이가 투기 재료로 전락한 셈이다. 현재 싸이월드 서비스 재개를 추진하고 있는 싸이월드Z는 다섯 개의 기업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설립한 법인이다. 그중 이름을 밝힌 기업은 두 군데뿐이다. 인트로메딕스카이이앤엠이다. 각각 내시경 전문기업과 전자 화학 소재 기업이다. 싸이월드 서비스와의 관련성은 묘연하다. 둘 다 상장사지만 공시를 통해 싸이월드와 관련한 사업 계획을 밝힌 적은 없다.

NUMBER_ 872만 명 

싸이월드Z가 SK컴즈로부터 데이터베이스를 인수하는 ‘싸이월드 서비스 데이터 이관에 대한 합의서’를 체결한 시점이 지난 3월 18일이다. 이날 싸이월드가 인수한 사진은 170억 장, 동영상은 1억 5000만 개, 음원 파일은 5억 3000만 개로 밝혀졌다. 소중한 추억 여행을 하기 위해서일까, 흑역사를 사수하려는 조급함에서였을까. 지난 10월 15일 로그인 서비스 개시 4시간 만에 싸이월드 홈페이지 동시간 접속자 수는 최대 872만 명을 기록했다.

RECIPE_ #싸이갬성

‘나의 가장 아름다웠던 때를 기억나게 해줘서 고마워요’. 싸이월드가 다시 주목받은 이유다. 감성이 부담스럽다는 비판을 이젠 즐긴다. 싸이월드 공식 SNS 채널을 장식한 2000년대풍의 이미지들이 그 증거다. 현재 싸이월드는 출시 예정이라고 밝힌 싸이페이와 페이스 채팅은 아직 개발 단계다. 새로운 서비스 론칭은 커녕 MVP(Minimum Viable Product) 즉 일부 사용자가 로그인할 수 있는 기초 단계 수준이다. 그런데도 첫 게시물 업로드 4달 만에 1.6만 명의 팔로워를 불러 모은 비결은 그때 그 시절을 재현할지도 모른다는 옛 사용자들의 향수 탓이다. 깔깔 웃으며 ‘그땐 그랬지’ 할 수 있는 사진들이 현 싸이월드의 일차적인 생명력이다.

CONFLICT_ 인스타그램?!

그렇다면 싸이월드는 지금 소셜 미디어 최강자 인스타그램의 라이벌이 될 수 있을까? 턱도 없는 소리다. 현재 싸이월드 사이트는 로그인을 한다 해도 사진 한 장 외엔 볼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과거의 데이터를 어떻게 관리해 왔는지도 알 수 없다. 사용자들이 레트로 감성을 원한다 해서 시스템마저 레트로를 원하진 않는다. 현상태에선 아무리 섬세한 아바타를 만들어도 네이버 제페토를 따라갈 수 없다. 싸이페이에 심혈을 기울여도 카카오페이를 단숨에 이길 수 없다. 싸이월드는 어떤 부가 서비스를 곁들여야 소셜 미디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할 단계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수많은 데이터를 현 모바일 환경에 정착시킬 수 있을지부터 재고해야 한다. 자신들이 자랑하려는 서비스가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부터 제공해줘야 한다. 

RISK_ 유출

“싸이월드 사이트를 통한 공식적인 도토리 환불 가능 기간은 2021년 8월 31일로 종료되었습니다.” 싸이월드 홈페이지에 공지된 환불 관련 답변이다. 지난 7월 싸이월드Z가 밝힌 도토리의 총 현금 가치는 24억 원이었다. 그나마 총액 35억 원에서 ‘이벤트로 받은 도토리는 제외한’ 금액이다. 24억 원은 누구에게 어디로 갔는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환불 절차가 시작되고 끝났다. 사라진 건 도토리뿐만이 아니다. 개인 정보도 있다. 싸이월드는 지난 2011년 3천 500만여 명의 개인 정보 유출 논란에 휩싸였다. 2018년까지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법원은 싸이월드의 편을 들어줬다. 싸이월드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진 시점이었다. 싸이월드가 재오픈한다면 보안 문제는 다시 회자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 70퍼센트의 흑역사가 담긴 SNS이기 때문이다. 이건 국가 안보의 문제다.

INSIGHT_ 데드 데이터

170억 장. 싸이월드가 보유한 사진 수를 다시 들여다보자. 최근 몇 년간 한 번이라도 그 사진들을 살펴본 적 있었나? 남에게 유출되면 문제이지만 막상 본인이 이용할 곳은 없는 과거형 개인 정보다. 그 누구도 관리하지 못한 채 조용히 몸집만 불려온 것이 싸이월드의 데이터다. 그렇다면 싸이월드의 남은 가치는 데이터가 아닌 브랜드뿐일지 모른다. ‘우리 그때, 싸이월드’라는 프레이즈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아무리 싸이월드 측이 거대 데이터베이스로 블록체인 생태계를 구축할 거라고 주장해도 현시점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이미 죽은 데이터를 블록체인까지 끌어와 관리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시장은 싸이코인이 코인 투기 세력에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FORESIGHT_ 마이스페이스

하드웨어 기업이 회생에 성공한 경우는 있다. 인프라나 기술력을 살려 기존 사업을 재건하거나 다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이 새롭게 도약한 사례는 흔치 않다. 매달 신제품이 출시되고 시장 변화가 빠르기 때문이다. 싸이월드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은 더하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사용자들의 마음이 떠난다. 그렇게 사라진 대표적인 SNS 기업이 한때 페이스북과 경쟁했던 마이스페이스다. 만약 싸이월드가 부활을 꿈꾼다면 기존 SNS 서비스의 대체재나 보완재가 아닌 싸이월드의 아이템으로 승부해야 한다. 그게 코인이나 아바타일까. 지금 싸이월드는 역설적으로 사용자가 싸이월드의 개인 정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다. 아직 열어보지 못한 과거의 내가 보낸 선물상자인 것이다. 일단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싸이월드는 소멸된다. 추억 속에서조차 말이다. 첫사랑은 다시 만나면 후회만 남는다. 당해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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