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온다
 

10월 넷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Heroic American Shoppers Braved High Prices, Low Inventory.” 지난 10월 15일자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 제목입니다. 가격은 높기만 하고 물건은 없기만 한데도 어떻게든 소비를 할 방법을 찾아내는 미국의 소비자야 말로 미국 경제를 살려낼 영웅들이란 이야기입니다. 

요즘 미국에선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이 한창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물가는 오르는데 경제는 침체되는 거시경제적 늪입니다. 경제가 침체되면서 물가도 떨어지는 디플레이션과 비교됩니다. 디플레이션은 경제주체들이 욕망을 상실한 세상입니다. 사고 싶은 것도 먹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습니다. 샤넬 2.55백 가격이 오늘보다 내일 더 떨어질 것이라면 소비자들은 합리적으로 지출을 유예합니다. 결국엔 아무도 무엇도 사지 않게 됩니다. 

디플레이션은 시장의 죽음입니다. 소비가 줍니다. 재고가 쌓입니다. 생산이 줍니다. 고용이 줍니다. 다시 소비가 더 줍니다. 악순환입니다. 일본인들이 바로 디플레이션의 연옥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은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란 기대가 망각된 수동적인 세상입니다. 일본인들은 그저 오늘을 존재할 뿐입니다. 모두가 미래가 더 나빠질 거란 합리적 예상 아래 아무것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만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스태그플레이션은 탄탈로스의 지옥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탄탈로스는 영원한 갈증과 배고픔을 겪습니다. 아래 쪽 물은 가슴까지 차오릅니다. 머리 위 가지에선 과일이 열립니다. 정작 갈증으로 고개를 숙이면 물이 말라버립니다. 배고픔으로 고개를 들면 과일이 사라집니다. 욕망은 있지만 채워지지 않죠. 탄탈로스의 지옥 같은 스태그플레이션은 시장엔 욕망이 넘치지만 시장에 재화가 공급되지 않는 상태다. 

지금 글로벌 경제 상황은 탄탈로스의 지옥과 흡사합니다. 시장엔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에 대한 탐욕이 넘쳐납니다. 사고 싶은 것과 갖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의 공급이 결코 소비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공급부족과 소비과잉이 만나면 당연히 가격이 무한상승합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기업들이 증설을 통해 고용과 생산을 늘릴 수도 없습니다. 자동차 메이커가 당장 신입사원 천명을 고용한다고 해서 자동차 천 대를 바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비는 단선적입니다. 돈을 내면 당장 살 수 있습니다. 공급은 복합적입니다. 돈을 줘도 당장 만들 수 없습니다. 여기에 부품이나 원재료 공급망의 복잡성까지 더하면 생산은 더욱 고차방정식이 됩니다. 차량용 반도체 한 개만 없어도 자동차 한 대가 생산되지 못하죠. 지금은 이런 공급망 왜곡 현상이 자동차나 샤넬백을 넘어서 제조업 전체로 확대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그렇다면 가장 공급이 제한되는 원재료는 에너지가 됩니다. 모든 제품 생산엔 무조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대다수 제품 원가에는 에너지 가격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죠. 에너지가 부족하면 공급은 결단코 수요를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제품 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폭등합니다. 특히 에너지 가격이 폭등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세상은 돈이 있어도 아무 것도 살 수가 없는 자본주의의 지옥으로 변합니다. 2차례 오일쇼크로 휘청였던 1970년대가 그랬죠.  

지금은 돈이 넘치는 시대입니다. 코로나 덕분입니다. 미국만 해도 10조 달러 넘는 자금이 코로나 재난 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시장에 풀렸습니다. 한국도 10조 원 넘게 풀렸습니다. 원래가 돈은 욕망을 부추기기 마련입니다. 경제 주체가 사고 싶고 갖고 싶고 입고 싶고 먹고 싶게 만듭니다. 지름신이 강림하죠. 자본주의의 지름신은 바로 돈입니다. 

원래 각국 정부가 기대한 건 지름신을 숭배하는 소비자의 욕망이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시나리오였습니다. 정작 경제상황은 정부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좀 다르게 흘렀습니다. 시장에 돈을 흥건하게 풀었는데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이 매대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는 소비망이 아니라 공급망에 더 큰 충격을 줬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공장에 나와서 일하진 못했습니다. 소파에 누워서 쇼핑을 할 수는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반도체부터 자동차를 거쳐 샤넬백과 에너지까지 온갖 제화의 공급이 모자라는 세상이 돼 버렸습니다. 당연히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겠죠. 

돈을 풀었고 재화의 가격이 오르기 때문에 두 현상을 합쳐서 인플레이션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착시입니다. 돈이 너무 풀려서 물건 가격이 오른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건이 없어서 물건 가격이 더 올랐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돈풀기와 공급부족을 구분해서 분석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스태그플레이션을 의심하는 것이죠.

그렇지만 미국 경제만 놓고 봐도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미국 기업들은 지금 물건을 못 만들어내서 안달이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를 구해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미치겠죠. 월마트 매대에 물건만 올려놓으면 완판일테니까요. 시장의 탐욕이 성장의 욕망을 자극하고 있는 건 분명하다는 말입니다. 스테그플레이션은 시장의 탐욕과 성장의 욕망은 영원히 만나지 못합니다. 탄탈로스처럼요.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는 요점은 그 얘기입니다. 미국의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사과 한 쪽이라도 찾아내서 사고야 말 소비의 영웅들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떻게든 영웅들에게 상품만 공급할 방법만 찾으면 해결된다. 시장의 욕망이란 히어로가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드는 걸 막아줄 거란 뜻입니다.

북저널리즘이 지난주에 퍼블리싱한 전자책 〈스테그플레이션이라는 느낌적 느낌〉에서 《이코노미스트》도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에너지 문제에 있어선 좀 다른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가장 큰 원인인 급격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탈탄소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린 에너지는 아직은 생각만큼 큰 시장을 형성해주지 못했습니다. 대신 에너지 공급 부족은 너무 빠르게 확대시켰습니다. 하나의 경제현상은 이렇게 여러 개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발생합니다. 

미국이 겪고 있는 문제가 이렇게 복합적인 원인 탓이기 때문에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라 슬로우플레이션이라고 진단해야 합니다. 공급이 여러 가지 복합적 원인에 의해 소비를 느리게 따라잡는 걸 슬로우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처럼 가격은 오르고 성장은 정체되지만 원인도 결과도 전혀 다릅니다. 슬로우플레이션은 일종의 공급 병목 현상입니다. 시간이 약이죠. 

제롬 파월 미연준의장도 최근의 스태그플레이션 논쟁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물가상승은 일시적으로 장기적인 현상이다.” 일시적인데 장기적이란 말은 모순입니다. 그런데도 시장은 파월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덕분에 미국 주가는 다시 오르기 시작했죠. 《월스트리트저널》처럼 파월도 시장도 소비자라는 슈퍼히어로가 공급이 회복될 때까지 끈기있게 기다려줄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슬로우플레이션의 해법은 하나입니다. 시장의 인내다.
솔직히 진짜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다른 국가들입니다. 미국처럼 소비가 경제의 엔진이 아닌 나라들입니다. 생산과 수출이 경제의 주력인 국가들이죠. 사정이 좀 복잡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웅적 소비자들이 경제를 이끌어가기엔 충분히 영웅적이지 못하니까요. 미국처럼 기축통화국도 아니고 내수시장도 작기 때문입니다. 

적잖은 국내 경제 전문가들이 한국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해야 한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한국은 에너지 자급조차 안 되는 나라입니다. 지금처럼 배럴당 80달러 이상의 고유가를 오래 견디긴 어렵습니다. 자가운전을 안 한다고 고유가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아닙니다. 모든 물가엔 예외 없이 모두 에너지값이 포함돼 있거든요. 이미 추석 이후로 식탁 물가를 좌우하는 농산물 가격도 폭등한 상태입니다. 올겨울에 히팅과 이팅의 한파가 불어닥칠 거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등 따스한 것과 배 부른 것이 그리운 추운 겨울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나라 중국은 이미 겨울입니다. 중국에선 정전 사태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석탄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호주와 무역마찰을 빚다가 벌어진 일이죠. 자업자득입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스태그플레이션의 숨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호주역주의를 지적합니다. 중국한텐 딱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죠. 무역을 무기화한 대가는 이렇게 참혹합니다. 자국 국민들한테 피해가 돌아가죠. 중국은 부랴부랴 미국한테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기로 했습니다. 미중패권경쟁보다 인민이 얼어 죽는 게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이러니 중국의 3분기 경제 성장률이 하락한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락폭이 너무 큽니다. 4.9퍼센트까지 하락했죠. 중국이 5퍼센트 미만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건 충격적입니다. 중국은 고물가에 저성장이 겹치는 확연한 스태그플레이션 구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에너지를 비롯한 물가는 오르는데 중국의 제조업은 멈춰서고 있습니다. 

중국은 미국 같은 소비 대국이 아닙니다. 그저 인구 대국일 뿐입니다. 중국의 GDP는 본질적으로 인구에 기반한 시멘트 GDP입니다. 헝다 사태가 중국발 경제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는 건 그래서입니다. 헝다 사태는 부동산 위기처럼 보입니다. 사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온 금융과 IT까지 파장이 미칠 수 있는 복합 위기입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가 핀테크를 통한 부동산 대출로 돈을 벌어왔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중국발 경제 위기는 내년 베이징 동계 올림픽 이후에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으로 공급이 망가진 상태에서 부동산 위기로 소비까지 망가지면 중국은 등소평 이후 최대 경제 위기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은 독자 여러분에게 꾸준히 거시경제적 전망을 제공해드릴 계획입니다. 세계는 코로나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습니다만 세계경제는 포스트 코로나의 복합 경제 위기로 진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경제 위기를 개인이 막거나 회피할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대한 경제변화 속에서 자신의 좌표를 온전히 인식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무너져도 정신 똑바로 차리면 살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은 이럴 때를 가르키는 가르침일겁니다. 

난세를 살아내야 하는 우리 세대에게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단 한 가지 이유만 꼽자면 바로 이것입니다. 저널리즘이 존재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 폭풍 속에서 독자들에게 지도와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 말입니다. 전자책 〈코로나는 어떻게 신자유주의의 시대를 종식시켰나〉와 〈웰컴 투 위드 코로나 월드〉과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느낌적 느낌〉과 10월 25일 월요일자 북저널리즘 라디오는 그런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들입니다. 레전더리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는 이런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Winter is coming.” 언제나 위기를 대비했기에 끝내 최후의 승자가 되고야 마는 늑대 가문의 가언입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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