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넘어서기
 

10월 다섯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귀를 의심했습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기 때문입니다. 전두환 씨가 아내 이순자 씨와 입장하고 있었습니다. 예술의 전당이었습니다. 오페라 공연장이었죠. 십여년 전 이야기입니다. 그날 전두환과 이순자 부부가 공연장을 찾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 관람객이 그랬을 겁니다. 부부를 발견한 관객 중 한 명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절반 가량의 관객들이 따라 쳤습니다. 전두환 씨는 손을 흔들었습니다.

눈을 의심했습니다. 1980년 8월 장충체육관에서 치러진 11대 대통령 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었습니다. 전두환 씨가 국민이 아닌 2524명의 거수기들에 의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뽑히던 그날 말입니다. 3개월 전인 1980년 5월 광주에선 민주항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민들은 광주사태로만 전해 들었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입니다.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제7공수여단을 투입해 시위대를 폭력 진압했습니다. 시민에 대한 계엄군의 발포는 1980년 5월 21일 정오경에 시작됐습니다. 피의 학살이었습니다. 무려 5200여명의 시민들이 전두환 계엄군에 의해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됐습니다.

전두환 씨가 용서받아선 안 될 역사의 죄인인 건 1979년 12.12 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했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차라리 그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 당하면서 주인을 잃은 권력을 우연히 줍줍한 것에 가까웠습니다.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전두환이 아니었어도 채워질 진공이었죠. 전두환의 중죄는 총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 것입니다. 전두환은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를 묵살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을 군화발로 짓밟았죠. 그저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서였습니다. 1980년 한국은 2021년 미얀마와 같았습니다. 전두환은 대한민국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습니다. 국민은 우리가 대통령으로 뽑은 적도 없는 전두환을 용서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80년 장충체육관이 21세기 예술의 전당에서 재현됐기 때문입니다. 의문은 지구 반대편에서 풀렸습니다. 우연히 칠레의 전 대통령 리카르도 라고스가 쓴 비망록 《피노체트 넘어서기》를 읽었습니다. 라고스는 칠레의 김대중입니다. 칠레 민주화의 상징이죠. 피노체트는 칠레의 전두환이었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로 민주 정부였던 아옌데 정권을 전복시키고 칠레 권력을 장악합니다. 쿠데타가 일어나면 여느 권력자들은 비겁하게 도망치거나 무기력하게 체포됩니다. 탈레반한테 권력을 빼앗긴 아프가니스탄의 가니 대통령이 그랬죠. 아옌데 대통령은 전혀 달랐습니다. 대통령궁을 참호 삼아서 군부에 항전했습니다. 피노체트한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죠. 국민들이 자신이 뽑은 대통령을 지키러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을 죽이는 건 아무리 피노체트여도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선택이었습니다. 피노체트는 비겁한 선택을 합니다. 전투기로 대통령궁에 폭격을 가합니다. 아옌데가 폭사하길 바랐던 거죠. 아옌데는 마지막 대국민 라디오 연설을 합니다. 권총 자살합니다. 피노체트 17년 철권 통치는 민주주의의 시체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피노체트 넘어서기》의 저자인 리카르도 라고스는 가혹한 피노체트 통치에서 살아남았고 민주화를 이뤘고 대통령이 됐습니다. 정작 《피노체트 넘어서기》에서 라고스 전 대통령은 칠레가 1991년 민주화로 권력에서 축출된 피노체트를 아직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믿기지 않지만 칠레엔 여전히 피의 독재자 피노체트를 지지하는 국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 때문입니다. 피노체트는 시카고 보이즈한테 칠레 경제를 맡겼습니다. 시카고 보이즈는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칠레 관료들을 말합니다. 시카고대는 밀턴 프리드먼의 성지입니다. 신자유주의 요람입니다.

피노체트 정권은 시카고 보이즈를 통해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직수입했습니다. 국영기업을 민영화했습니다. 부동산 규제를 철폐했습니다. 농산물 관세를 철폐하고 자유무역을 극대화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폐기 처분됐습니다. 지금이야 신자유주의 정책의 부작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절에 경험했던 문제들입니다. 정작 정책엔 피해자와 수혜자가 함께 있기 마련입니다. 수혜자들은 국영 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한몫 잡을 수 있었습니다. 부동산 규제 철폐 과정에서 땅투기와 집투기로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값싼 미국산 농산물로 채워진 풍성한 식탁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신 민영화로 노동자들이 실업자가 되고 부동산 개발로 원주민들이 쫓겨나고 수입 식품 탓에 농민들이 가난해지는 피해자들의 존재는 외면했습니다.

피노체트 정권은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으로 부당한 정치 권력의 인공적 지지 기반을 조성했습니다. 여전히 적잖은 칠레 국민들이 피노체트 시절이 살기 좋았단 향수를 젖어 삽니다. 민주주의인지 신자유주의인지 그딴 건 모르겠다. 어쨌든 나 하나 내 자식 내 가족은 잘 먹고 잘 살았으니 피노체트 시절이 호시절이었단 인공적 기억 때문입니다. 라고스 전 대통령이 〈피노체트 넘어서기〉라는 비망록까지 집필한 배경입니다. 절반의 칠레는 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조작된 경제적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1세기 예술의 전당에서 누군가 쳤던 박수 소리는 칠레 소리였습니다. 피노체트 독재처럼 전두환 독재도 광주라는 민주주의의 시체 위에서 시작됐습니다. 피노체트가 그랬던 것처럼 전두환 정권도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적 성과에 집착했습니다. 피노체트가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수혜자를 정권의 지지 기반으로 만든 것처럼 전두환도 다수의 피해자를 외면하고 소수자의 수혜자만 양산하는 양산산업정책과 부동산정책으로 경제적 수혜 계층을 조성했고 그들을 지지 기반으로 삼았습니다.

강남 개발은 박정희 정부에서 기획됐지만 전두환 정권에서 실행됐습니다. 주로 강남 개발 이익을 기반으로 중상류층으로 진입한 경제 계층에게 전두환은 한마디로 미워할래야 미워하기 싫은 통치자입니다. 그래서 집권 과정만 빼면 집권 기간은 나쁘지 않았다고 강변하고 싶어하는 겁니다.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오페라 공연장에 출몰한 전두환이 박수 갈채를 받는 역사적 맥락입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쿠데타와 5.18만 빼면 그야말로 정치를 잘 했다는 분들도 있다”는 서초구 서초4동 아크로비스타 주민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죠. 우리도 전두환 넘어서기를 아직 이루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피노체트 넘어서기는 피노체트의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피노체트 정권의 피해자들은 피노체트를 넘어설 필요가 없습니다. 피노체트를 인정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칠체에서 피노체트를 넘어서야 할 사람들은 피노체트를 인정하고 피노체트 체제에서 수혜를 입었던 사람들입니다. 피노체트가 자신에게 가져다준 경제적 혜택이 민주주의와 공동체의 희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팩트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적 소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적 시민으로서 사고하고 선택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전두환 넘어서기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5공 시대의 경제적 혜택을 누린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어떤 시대에도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엄혹한 독재 치하여도 말입니다. 전두환 넘어서기는 시장참여자로서 이익과 불익으로 정권을 판단하지 말고 유권자로서 국가 공동체 전체의 시각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가능해집니다. 무엇보다 전두환 정권이 국민의 손에 의해 직접 선출된 권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민은 전두환을 대통령으로 뽑은 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미사여구로도 전두환에게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 없습니다. 아닌 건 아닌 겁니다.
지난 10월 26일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을 결정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전두환 씨와 마찬가지로 내란의 수괴입니다. 역사적 범죄자에게 국가장을 치러주는 꼴입니다. 국가장은 헌정을 유리한 자에겐 과분한 국가적 예우입니다. 그렇지만 노태우 전 대통령과 전두환이 다르다는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달리 추징금을 완납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씨는 2019년부터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마지막 유언을 남겼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장 큰 과오가 무엇인지는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쿠데타 집권과 광주민주화운동 폭력 진압입니다. 70년 인연인 육사 동기 전두환 씨와 같은 죄목이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전두환과 다른 건 추징금을 완납해서도 국민적 용서를 구하는 마지막 유언을 남겨서도 아닙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이기 때문입니다. 1987년 12월 16일에 치러진 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대한민국 국민 828만명의 지지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득표율은 36.6퍼센트였습니다. 물론 64퍼센트 가까운 국민이 노태우 전 대통령을 반대했습니다. 630만 유권자는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613만 유권자는 김대중 평화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둘만 합쳐도 노태우 전 대통령을 지지한 유권자 숫자를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시민과 학생이 6월 항쟁으로 이룩한 대선이었습니다. 야당이 분열하면서 괴뢰 정권의 2인자한테 권력을 넘겨줬죠. 그렇다고 해도 13대 대선이 민주화 이후 최초로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은 선거란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800만명의 국민이 민주정의당 노태우 후보를 지지했다는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1987년 대선 이후 우리나라는 6번의 대선을 치뤄냈습니다. 여야 정권교체도 여러 번 경험했죠. 1987년 당시 민주화 세력은 군사 정권의 2인자한테 패배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를 전두환 정권과 동일시했죠.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정권이 경제 정책으로 조성해낸 지지층에서 잉태된 건 사실입니다. 정부의 핵심 인사도 전두환 정권을 거친 군출신들이 많았죠. 설령 그렇다손 치더라도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괴뢰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단정할 순 없습니다. 그렇게 단정하고 싶은 것 뿐이죠.

게다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전두환과 달리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렸습니다. 압도적인 국민이 노태우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고 있었으니까요. 보통 사람의 시대는 민주화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짚어낸 노태우 정부의 구호였습니다. 권력이 소수 특수 군인한테서 다수 보통 국민한테로 넘어가는 시대의 대세를 알고 있었단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주의 시대로 대한민국이 진보하기 위한 필연적인 징검다리가 됐습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은 이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아무리 인정하기 어렵고 우리편이 아니더라도 우리 국민이 지지한 리더를 존중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민주주의의 품격이야말로 국가의 국격을 좌우합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 국가장은 그가 존경스럽고 위대한 대통령이어서가 아니라 노태우를 당대의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당대의 위대한 국민들을 지금 우리가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국가장은 전두환 넘어서기의 하나입니다. 전두환 정권과 노태우 정부를 구별하는 것이야말로 전두환 넘어서기의 초석입니다. 전두환은 한국 역사에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적이 없는 유일무이한 독재자입니다.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대통령조차 직접 선거로 치러진 1963년 5대와 1967년 6대 대선에서 연거푸 당선됐습니다. 7대 대선이 관권 부정 선거였고 8대 대선이 유신 체제로 치러지면서 박정희 정부는 독재화됐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젠 전두환을 넘어설 때가 됐습니다. 진작에 전두환을 극복하고 승리한 민주화 세력과 시민들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전히 전두환을 온전하게 평가하지 못한 채 박수나 쳐주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한때 청와대에 살았다고 전부 전 대통령인 건 아닙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별세와 국가장은 대통령이 끝끝내 국민과 역사의 심판을 받는 백척간두의 자리라는 걸 웅변합니다. 국민의 권위에 기댄 민주주의의 품격이 얼마나 지엄한지도 말해줍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지금 한 시대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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