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인간은 가짜가 아니다

11월 4일 - FORECAST

가상인간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가상인간은 인간을 대체하게 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가상인간 로지의 뮤직비디오 유튜브 조회 수가 300만을 넘었다. ‘그’는 최근 톱배우를 대신해 기업 광고 모델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내년에 4인조 가상 아이돌 그룹을 런칭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의 확장을 목격하고 있다. 가상인간은 실제와 가상, 두 세계를 연결하는 고리다.
WHY_ 지금 가상인간을 알아야 하는 이유

오늘날 가상인간은 시간과 장소의 한계 없이 활동하며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디지털 세계가 현실 세계를 삼키고 있는 시대에 가상인간의 영역은 어디까지 확장될까? 결국 이것은 우리 시대의 화두가 된 메타버스와도 연결된다. 가상인간 기술은 어디까지 와 있는 것일까? 가상인간이 늘어나면, 내 일자리는 괜찮을까?
KEYMAN_ 오로지

로지는 스물두 살이다. 내년에도 스물두 살이다. MBTI 유형은 ENTP라고 한다. 재기발랄한 활동가다. 그의 인스타그램에는 사랑스럽고 유쾌한 20대 여성의 이미지가 가득하다. 팔로워는 10만을 넘겼다. 로지는 올해 광고에 출연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스타가 탄생하는 순간 많은 것이 바뀐다. 대중의 주목을 받고, 여론이 형성되고, 기업의 태도가 바뀌고, 자본이 투입된다. 로지는 국내 가상인간 시장의 새로운 출발점이자, 기폭제가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로지를 개발한 곳이 국내 굴지의 매니지먼트사 싸이더스의 자회사라는 점이다. 기획사로서는 완벽하게 관리가 가능하고, 계약 기간 등 분쟁이 없으면서도 수익이 창출되는 꿈의 아티스트를 찾은 것이다. 로지는 올해 10억 원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MONEY_ 3.6조 원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1년 세계 인플루언서 마케팅 시장의 규모는 14.6조 원이다. 그중 11조 원이 실제 인간, 3.6조 원이 가상인간 시장이다. 2025년이면 전체 시장 규모는 24조 원에 이르게 되는데, 그중 13조 원이 실제 인간, 14조 원이 가상인간 시장으로 예측된다. 인간과 가상인간의 시장 규모가 역전되는 것이다. 가상인간 시장의 성장은 기업 마케팅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가상인간 중에서 톱스타 격인 릴 미켈라(Lil Miquela)를 비롯해서 전 세계 가상인간의 인지도와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시장에서 이들의 확장성은 인간을 한참 뛰어넘는다. 이들은 《보그》패션 화보를 찍고, 노래를 발표하고, 광고를 찍고, 영화에 출연하고, 미디어 쇼에 참석한다. 이 모든 일이 비행기 한번 타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제작되어 전 세계에 동시에 뿌려진다.
DEFINITION_ 가짜가 아니다

로지에 쏟아진 폭발적인 관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이 아니었대!”이다.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짜’에 깜박 속았다는 것이다. Z세대에게는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에게 로지는 가짜 인간이라기보다 또 한 명의 인플루언서일 뿐이다. 캐릭터가 매력적이고 호감이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이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가상인간을 인간 인플루언서와 다를 바 없이 소비한다. 젊은 세대에게 가상인간은 이미 가짜가 아니다. 또한 가상인간은 인간의 아바타가 아니다. 가상인간은 인간과는 다른, 고유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탄생한 존재다. 우리와 대화를 나누고, 교감하며, 도움을 주는 존재로서 말이다. 그럼 점에서 가상인간은 진짜다.
RISK_ 기술력

로지에 투입된 기술은 업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는 3D 모델링과 모션 캡처 방식이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가상인간의 비주얼 구현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정교한 피부 표현, 순간적으로 변하는 다양한 표정들을 담아내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많은 데이터가 발생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으로 더 많은 용량을 감당할수록 기술력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아직 이런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기에, 로지는 조금만 클로즈업해도 인간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고, 표정도 단조롭다. 이것은 로지만이 아니라 다른 가상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세계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있는 난제다. 그래서 아직은 가상인간이 배우처럼 연기한다던가, 사람과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기대하긴 어렵다. 가상인간 기술은 개발자들, 그리고 기업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모습에 아직 50%도 도달하지 못했다.
RECIPE_ 인공지능

가상인간은 인간과 교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터랙티브한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으면 가상인간의 확장성은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 인간이 꿈꾸는 가상인간은 시각적으로 우리와 구별되지 않고, 친근하게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AI 기술은 인간과의 교감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이룰 대안이다. 인터랙티브가 이뤄지려면 가상인간이 어떤 순간에 적합한 표정을 짓고 또 그에 맞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딥러닝을 통한 학습이 필요하다. 딥러닝과 관련해서 ‘지니’와 같은 음성 AI 서비스가 상용화되었지만, 여전히 대화가 매끄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도 AI는 학습하고 있으며, 우리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만큼 기술이 개선되는 시점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REFERENCE_ NEON

삼성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0에서 ‘NEON’이란 이름의 인공지능 가상인간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친구처럼 소통할 수 있는 AI라는 점을 강조하며 시연 영상을 공개했는데, 영상 속 가상인간의 자연스러운 동작과 표정 덕분에 단연 화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현장에서 시연되었을 때 진행자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오작동하면서 많은 실망을 안겨줬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부족했어도 네온의 이미지 구현 능력은 혁신적이었다. 화면 속 인물들은 실제 모델을 촬영하고 얼굴만 그래픽으로 구현하거나, 모션 캡처를 통해 동작을 표현한 것이 아니었다. CoreR3라는 엔진으로 실시간으로 인물의 표정과 움직임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실제 인간의 이미지를 전혀 가져오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가상인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네온 프로젝트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2022년에 업그레이드된 서비스가 공개될 예정이다.
CONFLICT_ 직업

가상인간은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 이제 연예인, 인플루언서는 기업 광고를 두고 쏟아져 나오는 가상인간과 경쟁해야 한다. 기업 입장에서는 가상인간이 더 매력적이다. 기업이 원하는 비주얼과 캐릭터를 모델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고, 또 학폭이나 미투 등의 사회 문제로 인한 리스크도 없다. 기업들은 가상인간과 계약하는 것을 넘어서 직접 가상인간을 제작해 모델로 활용하려 한다. 내년부터 우리는 수많은 가상인간과 만나게 될 것이다. YTN은 간판 앵커 변상욱에 대한 데이터를 학습 시켜 뉴스에 AI 앵커로 등장시켰다. 위화감은 거의 없었다. 기술이 발전한다면 뉴스 앵커, 성우, 기상캐스터 등의 업무는 가상인간이 대체할 것이다. 삼성의 네온과 같은 서비스가 상용화되면 안내원, 요가 강사, 피트니스 강사, 큐레이터, 사서, 각종 상담원 등 수많은 직종이 가상인간으로 대체될 수 있다.
NUMBER_ 3

3년. 전문가들은 AI 기술이 인간과 교감할 수 있을 만큼 성숙하기까지 약 3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이것은 AI가 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딥러닝을 통한 학습과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치는 데 물리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이다. 다시 말해서 3년 후 쯤에는 인간이 가상인간과 어색함 없이 소통하고, 가벼운 말장난도 할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INSIGHT_ 황금알?

최근 불거진 인기 배우의 사생활 논란으로 가상인간의 상업적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가상인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자사의 가상모델이 인지도를 얻기만 한다면 기업에서는 IP를 항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확장성이 높은 만큼 여타 미디어와의 협업을 통해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진행할 수 있다. 이를 알기에, 수많은 기업이 가상인간 제작을 위해 개발사 앞에 줄을 서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가상인간에 대한 관심과 여기에 투입되는 자본 규모는 기술력에 비해서는 지나친 면이 있다. 가상인간 시장은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려운 기술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으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이러한 시간이 극적으로 단축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가상인간 시장은 활황을 이루겠지만 댄스, 음원 , 광고, sns 이미지 등으로 소비되는 형태의 유사 콘텐츠가 여기저기서 양산될 가능성이 크다.
FORESIGHT_ 메타버스

결국 가상인간이 있어야 할 곳은 디지털 세계이고, 메타버스의 세계다. 수년 안에 그래픽 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AI 기술로 인간과의 인터랙티브가 원활해진다면, 다시 말해서 인간과 똑같이 보이고 대화도 가능한 가상인간이 나온다면, 이들은 다름 아닌 메타버스 세계에서 맹활약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래픽으로 구현된 단순한 형태의 아바타와 NPC를 만나게 되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실사와 구분이 되지 않는 가상 공간과 인공지능 가상인간이 등장한다면, 우리는 메타버스 세계에서 온라인 상에서 보던 가상인간을 실제로 만나고, 그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상인간은 메타버스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디지털 세상이 다음 단계로 진화하는 데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그렇게, 메타버스는 우리 시대의 써로게이트가 된다. 


가상인간 관련 이슈에 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메타버스 2.0》을 추천합니다.
오늘날 디지털 세계가 현실 세계에 어떻게 구현되고,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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