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트럼프가 산 바이든을 이기고 있는 까닭은?

11월 5일 - FORECAST

바이든은 왜 지지율이 급락했을까? 트럼피즘이란 델타변이가 창궐할까?

11월 2일 치러진 미국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됐다. 같은 날 열린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선 필 머피 민주당 후보가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두 곳 모두 민주당의 표밭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취임 10개월 만에 20퍼센트 넘게 하락했다. 바이든의 위기엔 지지자를 다시 결집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바이든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WHY_ 지금 미국의 선거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백악관의 대전략은 국제 정치의 핵심 변수다. 한국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경제·군사·보건 등 모든 방면에서 미국과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 미국의 차기 정권에 따라 한국의 외교 전략은 바뀐다. 바이든의 다자주의는 한국이 어느 쪽에 설 것인지를 묻고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한국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드러난 표심은 미국 대외 정책 기조의 변화를 예고한다. 미중 갈등과 글로벌 공급망 대란, 기후 위기를 앞두고 패권의 향방을 알아야 대비할 수 있다.
DEFINITION_ 바로미터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엔 바이든 정부 10개월에 대한 평가가 반영됐다. 2022년에 있을 미국 중간 선거와 2024년에 치러질 차기 미국 대선까지도 읽을 바로미터로 여겨졌다. 버지니아는 수도인 워싱턴DC와 인접하고 인종과 계층 분포가 다양해 정치 여론으로서 대표성이 있다. 역대 대통령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2009년부터 민주당이 주지사 자리를 놓친 적이 없는 민주당 강세 지역이지만 바이든 정부는 취임 초부터 악재를 치렀다. 반면 공화당 후보 영킨은 정치 경험이 거의 없는 사모펀드 CEO 출신이다. 트럼프는 영킨과의 친분을 적당히 과시하며 지지층 결집을 유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까지 유세에 동참하게 된 이유이다.
KEYMAN_ 트럼프

트럼프 카드엔 조커가 두 장 있다. 영킨과 매컬리프는 각자 도널드 트럼프라는 조커를 들고 선거에 임했다. 영킨은 트럼프 패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트럼프가 영킨을 지원했다. 둘은 보이지 않는 협력 체제를 구축했다. 트럼프는 대선 패배 이후 정치권에 이렇다 할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는데 트럼프가 특정 후보를 지지하면 반 트럼프 여론이 강하게 결집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지지층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후보에게 트럼프는 이제껏 계륵이었다. 영킨의 전략은 거리 두기였다. 트럼프에 대한 언급을 피하며 세금과 교육 등 생활 이슈에서 전통 공화당 지지자에게 어필했다. 영킨과 트럼프를 묶어 네거티브에 집중한 매컬리프는 조커를 내고도 졌다. 트럼프는 성명을 통해 매컬리프가 오직 트럼프, 트럼프, 트럼프만 반복해서 졌다고 말했다.
NUMBER_ 8

내년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 선거에서는 하원의원 전원과 상원의원 100석 중 34석, 주지사 50석 중 39석을 새로 뽑는다. 상원은 현재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 50석씩 차지했다. 선출 대상은 민주당 14석과 공화당 20석이다. 지켜야 할 의석이 적으니 당장은 민주당의 부담이 적다. 2024년에도 상원 선거가 있는데 여기선 얘기가 다르다. 교체 대상이 민주당에 몰려 있다. 상원에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의석이 60석이라 민주당은 이번 상원 선거도 방심할 수 없다. 하원도 마찬가지다. 현재 재적 의원은 434명이고 민주당 221석, 공화당 213석이다. 여덟 석만 잃어도 민주당은 다수당 지위를 잃게 된다. 지지율 하락과 맞물려 국정 운영이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CONFLICT_ 악재악재악재

바이든 정부는 출범부터 갖은 악재와 싸워 왔다. 판데믹은 정치권에 공정하다. 트럼프조차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바이든의 지지율 하락 역시 코로나19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확진자는 백신의 빠른 보급으로 감소하다가 델타 변이와 함께 다시 폭증하고 있다. 백신 접종 의무화 논란까지 겹쳐 접종이 더뎌지다 보니 현재 미국의 백신 접종 완료 인구 비율은 58.1퍼센트다. 고용 감소와 인플레이션 역시 지지율 하락 요인이다. 글로벌 공급망까지 마비되어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 임기 초 60퍼센트였던 지지율을 50퍼센트 아래로 끌어내린 핵심은 아프간 철군이다. G7 회의에서 더 나은 세계를 재건하자는 B3W 구호를 외쳤지만 아프간은 탈레반에 넘어갔다. 트럼프와 싸우기도 전에 이미 그로기 상태였다.
MONEY_ 3조 5000억 달러

아군은 어떨까? 바이든은 큰 정부를 지향하지만 민주당은 이를 두고 내홍을 겪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역점을 둔 대규모 사회 복지 예산은 3조 5000억 달러다. 한화 4200조 원 규모로 보육·교육·보건 등 사회 안전망 확보와 기후 변화 대응이 목적이다. 재원 마련 방법이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이라 공화당 상원은 찬성할 리 없다. 상원 의장인 해리스 부통령을 포함해 51명으로 가결 시키려면 민주당 전원의 동의가 필요하다. 당 내에서 보편 복지와 선별 복지 논란이 벌어지며 바이든은 결국 사회 복지 예산을 반으로 줄여 1조 7500억 달러 규모로 절충안을 냈다. 통과 여부는 미지수다. 민주당 내 진보 의원들이 이미 상원을 통과해 하원 표결에 부쳐진 1조 2000억 달러 규모 물적 인프라 법안과 사회 복지 예산을 동시 통과하라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REFERENCE_ 루스벨트

바이든의 롤 모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다. 취임 후 바이든의 책상 맞은편엔 루스벨트의 초상화가 걸렸다. 루스벨트는 1933년 대공황에 빠진 미국을 뉴딜 정책으로 극복했다. 바이든이 마주한 상황도 유사한 면이 많다. 사회 복지 예산은 바이든의 표현대로 한 세대에 한 번 있는 투자다. 상원을 통과한 법안이 물적 인프라라면 사회 복지 예산은 인적 인프라다. 바이든은 큰 정부 로드맵으로 위기를 넘긴 루스벨트를 닮고자 한다. 문제는 루스벨트 시기엔 여당인 민주당이 상하원에서 안정적 다수를 차지하여 국정 운영에 차질이 적었던 반면 바이든 정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턱걸이로 얻은 다수당 지위는 당 내부의 갈등과 트럼프라는 조커에 흔들리고 있다.
RISK_ 트루스

카드를 쥔 건 공화당이 아니라 트럼프일지도 모른다. 페이스북이 편향과 혐오 방치로 논란이 되지만 2018년 8월에 서비스를 시작한 SNS 팔러(Parler)는 목적 자체가 표현의 자유다. 대중적 소셜 미디어와 다른 전략으로 극단주의자를 손쉽게 끌어모았다. 트럼프 낙선 이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폭동과 팔러가 연관된 정황이 드러나자 애플과 아마존은 팔러를 퇴출했다. 트럼프 역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 기존 SNS 계정이 차단당하자 지지층 결집을 위해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자체 출범했다. 기업 인수목적 회사인 DWAC와 트럼프 미디어 기술 그룹(TMTG)를 합병해 보수 성향 SNS 시장을 노렸다. 팔러나 게터에 파편화된 지지자를 결집하여 파이가 커질수록 공화당에게 트럼프는 전략적 카드가 된다. 중간 선거에서 바이든에게 큰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다.
RECIPE_ 무당파

바이든의 카드는 뭘까? 무당파는 지난 대선에서 바이든 당선의 숨은 주역이었다. 트럼프 당선만은 막자는 호소가 통했다. 무당파는 제 3후보가 아닌 바이든에게 표를 줬다. 문제는 무당파의 표는 지지가 아닌 반대표였다는 점이다. 반 트럼피즘 무당파에 대한 호소는 더 이상 버지니아주에서 통하지 않았다. 〈악시오스〉는 다양한 기관의 여론 조사를 소개하며 무당층이 바이든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NBC 여론 조사는 미국 국민의 71퍼센트가 현재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통계를 냈다. 여기엔 70퍼센트의 무당파와 48퍼센트의 민주당 지지자가 포함돼있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망령과 싸우고 있지만 바이든의 진짜 조커는 무당파다.
INSIGHT_ 부족주의

바이든 정부의 가시적 위기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이라도 예외 없이 나타났을 것이다. 오히려 더 까다로운 문제는 정치적 부족주의다. 에이미 추아의 저서 《정치적 부족주의》는 집단 본능을 소속과 배제의 매커니즘으로 설명한다. 트럼프 당선은 과거 민주당이 해온 정체성 정치의 한계로 인한 역풍이었다. 부족주의의 원인인 경제 양극화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큰 정부를 구상한 바이든은 자신을 예외적으로 지지해준 무당파를 안일하게 판단했다. 막대한 복지 예산에 대한 부담과 오히려 공고해지는 트럼프 지지층은 바이든 지지율을 낮췄다. 아프간 철수와 잇따른 정책의 실패는 바이든의 전통적 지지층마저 등 돌리게 했다. 영킨이 비판적 인종 이론을 파고들며 전통적 보수의 가치로 승기를 잡을 동안 민주당은 트럼프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여전히 미국 선거를 움직이는 논리는 부족주의다.
FORESIGHT_ 백투더퓨처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트럼프는 벌써 정계 복귀를 위해 1억 200만 달러의 정치 자금을 모았다.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바이든이 맞닥뜨릴 적은 공화당의 다른 누군가가 아닌 트럼프일 수도 있다. 《더힐》은 공화당과 무당파 유권자 중 47퍼센트가 트럼프를 차기 공화당 경선 후보로 지지한다는 여론 조사를 발표하기도 했다. 공화당 후보 중 압도적 1위다. 트럼프가 곧바로 공화당의 프런트맨이 될 가능성은 아직 낮다. 공화당은 트럼프 낙선 이후 트럼프 지우기에 몰두해 왔다. 의원 120여 명이 당의 극우화를 경계해 신당 창당을 논의하기도 했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는 전환점인 셈이다. 트럼프를 비난한 미치 매코널 공화당 원내대표보다 영킨의 역발상이 더 효율적이었다. 극우 지지층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이 당분간 공화당의 승리 공식이 될 것이다. 트럼프가 외연 확장에 나설 경우 공화당은 언제든 트럼프를 다시 내세울 수 있다. 바이든에겐 정책적 성과가 절실하다. 그렇지 못한다면, 2024년 대선은 2021년 대선의 백투더퓨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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