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가 산으로 간 까닭은?

11월 11일 - FORECAST

지리산은 왜 산으로 갔는가? 콘텐츠를 산으로 가게 만드는 한국 콘텐츠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적 문제는 무엇인가?

올 하반기 최고 기대작인 드라마 〈지리산〉이 모호한 이야기 전개, 조악한 CG, 지나친 PPL 노출 등으로 논란이다. 대중의 평가도, 시청률도 기대치 이하다.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만큼 제작에 관여한 기업의 주가도 휘청이고 있다. 〈지리산〉의 논란과 부진은 국내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를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뼈아프다.
WHY_ 지금 콘텐츠 산업의 구조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우리는 더 나은 콘텐츠를 원한다. 작품 속 배우가 맥락도 없이 컵라면을 먹고, 오디션 경연자가 결승 무대를 앞두고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치킨을 먹는 모습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양질의 콘텐츠를 원한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주가는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데도 우리 문화 산업의 고질적인 병폐들, 해묵은 문제들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더 좋은 콘텐츠를 생산하고, 함께 누리기 위해 지금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이 논의에는 소비자로서 우리의 책임도 포함된다.
MONEY_ 320억

〈지리산〉은 머니 게임이다. 무려 32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됐다. 〈오징어게임〉의 총제작비인 253억 원보다도 많다. CJ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을 포함해 국내 굴지의 제작사 3곳이 함께 제작했다. 〈시그널〉, 〈킹덤〉의 김은희 작가,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이응복 PD가 참여했다. 한마디로 드라마 판의 에이스가 총출동한 국가대표급 작품이다. 하지만 완성도도, PPL을 활용하는 솜씨도 기대 이하다. 저조한 시청률에 제작에 관여한 기업의 주가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방송에 대한 기대감으로 10월 중순에 96600원까지 올랐던 스튜디오드래곤의 주가는 11월 8일 기준 89000원까지 하락했다. 가장 울상을 짓는 곳은 태평양물산일 것이다. 태평양물산은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를 OEM 방식으로 생산하는 기업이다.
CONFLICT_ PPL

〈지리산〉에서 전지현은 시종일관 네파 브랜드 옷을 입고 출연한다. 드라마 PPL 비용은 적게는 1000만 원부터 많게는 수억 원까지 다양하다. 똑같은 음식도 주인공이 먹으면 단가가 몇 배로 오르고, 제품이 배경에만 나오는 경우, 배우가 직접 제품을 사용했을 때, 또는 직접 대사로 언급할 때 각각 가격이 천지 차이다. 이번에 네파가 적지 않은 금액을 베팅했을 거라는 추측이 나오는 이유다. 과도한 PPL로 인한 몰입 방해와 불편은 온전히 시청자의 몫이다. 제작사들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PPL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오히려 없어서 못 하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기업들은 PPL 효과가 예전만큼 크지 않다며 제작 지원을 줄이고 있다. 그래서 확실한 효과를 볼 수 있는 화제작에 협찬이 몰린다. 대중이 몰입해서 즐기고 싶은 화제작일수록 더 많은 PPL에 노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인 셈이다.
KEYMAN_ 톱스타

대작 드라마에는 톱스타가 꼭 필요하다. 스타의 존재는 작품의 흥행을 일정 부분 보장하고, 무엇보다 해외 판권 판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스타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출연료도 높아진다. 최근 한국 콘텐츠의 몸값이 높아지면서 인기 배우들의 출연료도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쿠팡플레이의 오리지널 콘텐츠인 〈그날 밤〉에서 김수현의 회당 출연료는 5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관계자들은 〈지리산〉에서 전지현의 출연료가 3~4억 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배우 한 명의 인건비가 총제작비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것이다. 톱스타는 콘텐츠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핵심 요소지만, 한편으로 제작 과정에서 적자 구조를 만드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DEFINITION_ 수익 모델

2000년대 초반까지 국내 제작사는 방송사의 절대적인 ‘을’이었다. 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콘텐츠를 생산하는 대행사에 불과했다. 작품의 IP는 전적으로 방송국의 소유였고, 1차 한류 때 발생한 막대한 수익은 대부분 방송국에서 가져갔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방송국과 제작사의 헤게모니 싸움은 IP 판권을 둘러싸고 벌어졌다. 제작사들은 국내 시장의 열악한 수익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판권 판매와 PPL에 집착했다. PPL은 작품에 넣는 만큼 수익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포기할 수 없는 수익 모델이었다. 문제는 OTT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콘텐츠 시장의 수익 구조가 많은 부분 달라졌음에도 제작사들의 인식은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RISK_ 광고형 콘텐츠

〈지리산〉은 티빙에 독점 공개하는 조건으로 tvN에 208억 원에 판매됐고, 중국의 OTT 플랫폼인 ‘아이치이(iQiyi)’에 판매돼 200억 원대의 수익을 올렸다. 방송이 시작하기도 전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것이다. 그런데도 과도하게 PPL을 삽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더욱 실망하고 있다. 제작사들이 콘텐츠의 완성도를 해치면서까지 PPL을 넣는 것은 관성을 넘어 수익에 대한 집착으로 보인다. 콘텐츠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때문에 내용이 훼손되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불편을 안겨 주더라도 감당할 만한 것으로 여긴다. 콘텐츠를 광고 플랫폼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드라마뿐만 아니라, 음악, 스포츠, 도서 등 국내 콘텐츠 비즈니스 산업 전반의 리스크다.
REFERENCE_ 넷플릭스

한 유튜버가 만든 〈오징어게임〉 관련 영상이 화제다. 영상에서는 〈오징어게임〉이 공중파에서 제작되었다면 PPL로 도배가 되고 스토리도 지금과 달랐을 거라며, 넷플릭스에서 제작된 게 신의 한 수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넷플릭스의 콘텐츠에는 스토리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없다. 이것은 콘텐츠의 비즈니스 모델이 다르기 때문이다. 국내 제작사가 콘텐츠를 일종의 광고 플랫폼처럼 활용한다면, 넷플릭스는 콘텐츠의 몰입도를 극대화해서 소비자를 유인한다. 콘텐츠에 대한 그들의 기본적인 인식이 ‘좋은 콘텐츠는 수익이 난다’라면, 우리나라는 ‘콘텐츠로 수익을 내야 한다.’에 가깝다. 어떤 접근 방식이 우월한지는 아이러니하게도 〈오징어게임〉으로 결판이 났다. 넷플릭스는 한국 제작사에 253억 원을 투자해서 1조 원의 수익을 독차지했다.
RECIPE_ 콘텐츠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은 열악한 수익 구조 속에서 일종의 기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 PPL이 대표적이고, 대중가요와 영상을 결합한 드라마 OST도 마찬가지다. 문화 콘텐츠 비즈니스의 중요한 원칙 중 하나는 고위험, 고수익이다.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은 콘텐츠의 완성도, 재미를 위해 위험을 감수한다. 수익성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콘텐츠를 훼손하는 부가적인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다. 콘텐츠에 집중하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의 재정립이다.
NUMBER_ 0

0은 공짜를 의미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지만 텔레비전을 틀면 공짜 콘텐츠가 넘쳐난다. 물론 IPTV나 케이블TV 사용료를 내고 있다고, 공중파 수신료도 꼬박꼬박 내고 있다고 항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금액은 수많은 채널 속 콘텐츠의 제작료를 충당하기에 너무도 부족하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콘텐츠를 공짜로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겨왔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콘텐츠의 가치가 상승함에 따라 공짜로 즐기던 콘텐츠들이 속속 유료화하는 것이다. 스포츠 중계가 대표적이다. 포털에서 제공하던 공짜 콘텐츠가 유로 플랫폼으로 속속 이동하고 있다. 이제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콘텐츠는 어디서나 쉽게 얻을 수 있는 공짜 상품이 아니라 합당한 비용을 제공해야만 누릴 수 있는 타인의 지적 재산이라는 인식 말이다. 그것이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될 수 있는 기본 토양이다.
INSIGHT_ Next Level

넷플릭스는 대중이 콘텐츠를 소비하고 즐기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사람들은 더 능동적으로 콘텐츠를 향유하고 있고, 그만큼 더 까다로워졌다. 〈지리산〉이 PPL 때문에 이처럼 비난받은 건 워낙 기대가 컸던 작품인 탓도 있고, 또 넷플릭스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온전히 스토리, 콘텐츠에 몰입하는 즐거움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조건 속에서 콘텐츠를 단순히 수익 모델로 보고, 더 많은 이윤을 내고자 하는 욕심에 콘텐츠를 훼손하면 결국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다. 달라진 소비자와 비즈니스 환경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러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콘텐츠 질의 저하와 더불어 한국 콘텐츠의 경쟁력 약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바뀌어야 산다.
FORESIGHT_ 겨울연가

기성 제작사에게 넷플릭스에서 제작비를 전액 지원받는 방식과, 일정 부분 자체 제작비를 투입해 제작하는 방식, 두 가지를 놓고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 후자를 택할 것이다. 전자의 방식은 IP가 넷플릭스에 전적으로 귀속되기 때문에 콘텐츠를 통한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오징어게임〉의 사례는 2000년대 초반 〈겨울연가〉의 히트 이후를 연상케 한다. 그때 제작사들이 방송국과 힘겨루기를 하며 판권의 지분을 확보해나간 것처럼 이제 넷플릭스에 작품을 공급하는 제작사들은 수익 분배에 있어서 전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수익성이 개선되면 해외 플랫폼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국내 제작사도 지금보다 늘어날 수 있다. 국내 콘텐츠 제작사들은 달라진 제작 환경과 소비자의 니즈를 하루 빨리 제작 시스템에 반영해야 한다. 이미 세계적인 OTT 기업들이 국내 시장에 진입하며, K-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앞으로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고민하고 개선하지 않는다면 국내 콘텐츠 산업은 결국 경쟁력 약화로 해외 거대 콘텐츠 기업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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