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의 해피엔딩은 꿈일까?
 

11월 12일 - FORECAST

왜 공익신고자에 대한 포상이 필요할까? 내부고발의 해피엔딩은 가능할까? 우리 회사의 범죄와 비리는 누가 밝혀야 할까? 어쩌면 바로 당신.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공익신고자 김광호 전 현대차 부장이 지난 11월 9일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으로부터 2430만 달러의 포상금을 받게 됐다. 미국에서도 자동차와 관련한 공익제보로선 역대 최대 포상금이다. 김광호 전 부장은 현대차 품질전략팀에서 근무하던 2016년 10월 세타2 엔진에 결함이 있다는 사실을 현대기아차가 조직적으로 은폐해 왔다는 진실을 폭로했다.
WHY_ 지금 공익제보자 포상의 의미를 알아야 하는 이유

기업 비리에 대한 내부고발은 소비자의 이익을 증진시킨다. 나아가 기업의 불법 행위를 억제해서 공공의 이익에도 기여한다. 기업 내부고발자가 공익신고자인 이유다. 정작 한국에서 기업의 내부고발자는 개인적 사회적 불이익을 장기간 홀로 감수해야만 한다. 회사로부턴 해고당하고 형사 고소당하고 민사 소송당하고 재취업길이 막힌다. 동료로부턴 따돌림 당하고 사회적으론 매장당한다. 보상도 포상도 받기 어렵다. 반칙을 보고 호루라기를 불면 퇴장당하는 사회에선 반칙을 안 하는 사람만 바보가 된다.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사회가 된다.
MONEY_ 285억 원 

적다. 김광호 전 부장이 받게 된 포상금 285억 원은 2020년 11월 현대차그룹이 미국 정부로부터 부과 받은 과징금 8100만 달러의 30퍼센트에 해당된다. 미국은 2011년 제정된 도드-프랭크법에 따라 고발자 보호 및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명 휘슬블로어 프로그램에 따라 2012년 있었던 도이체방크 리보금리 조작을 폭로한 공익제보자는 최근 2억 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 우리 돈으로 2357억 원이다. 파나소닉 미국 지사의 뇌물과 회계 부정을 폭로한 공익제보자도 2800만 달러의 포상금을 받았다. 우리 돈으로 330억 원이다. 김광호 전 부장이 우리나라 국민권익위원회로부터 받은 포상금은 2억 원이다. 김부장은 공익제보 직후 회사의 영업 비밀을 외부에 유출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소당했다. 각종 민사 소송을 당했다. 지난 5년 동안 내내 재판에 끌려다녀야 했다. 김부장은 25년 동안 현대차에서 일한 자동차 전문가다. 자동차업계 재취업은 원천 봉쇄됐다. 사실상 커리어가 끝장났다. 인생이 바뀌었다. 285억 원이 대박 보상일까.
NUMBER_ 3조 4000억 원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으로부터 과징금을 때려 맞은 직후인 2020년 3분기에 마련한 대손충당금의 총액은 3조 4000억 원이다. 리콜 대상 차량 469만 대에 대한 수리 비용과 평생 보증 프로그램 운용 비용 그리고 집단소송 배상비 등이 포함된 금액이다. 우리 돈으로 1조 원에 달하는 미국 과징금은 별도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2021년 3분기 영업이익을 다 더해도 3조 원이 안 된다. 1분기 영업이익을 날린 셈이다. 현대기아차는 2011년부터 세타2 엔진의 결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내부적으론 엔진 개선 TFT까지 꾸렸을 정도였다. 2015년부터 시중에 판매된 세타2 엔진을 장착한 현대차에서 화재가 잇따랐지만 묵살했다. 김광호 전 부장은 바로 이 시기인 2015년 품질전략팀에서 리콜 담당자로 근무했다. 현대차 감사팀에 제보했지만 다음 날 리콜 업무에서 배제됐다. 세타 엔진은 현대차가 미쓰비시한테 라이센싱해온 시리우스 엔진을 대체할 수 있게 해준 중대형차용 독자 엔진이다. 고출력 버전인 세타2 엔진 개발에 성공하면서 소나타와 그랜저 같은 고부가가치 중대형 차량의 해외 수출길이 열렸다. 한마디로 세타2 엔진은 현대차 기술력의 알파이자 현대차 수출길의 오메가였다. 현대차 안에선 세타2 엔진 결함을 문제제기하는 건 해사행위였다. 세타2 엔진의 문제를 은폐하는 게 애사 행위였다. 조직적 애사 행위로 인해 현대차그룹은 결과적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품질에 대한 불신 탓에 현대기아차를 흉기차로 부르는 소비자들만 늘어났다. 김광호 전 부장의 내부고발 덕분에 현대차는 세타2 엔진을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3세대 세타 엔진 개발을 서둘렀다. 해사행위가 결과적으로 엔진 품질 향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애사 행위는 해사 행위였고 해사 행위가 애사 행위가 아니었을까.
DEFINITION_ 내부 심판 

공익신고자는 흔히 내부고발자로 불린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FBI 내부고발자는 딥쓰로트라는 은어로 불렸다. 내부고발자라는 호칭엔 조직의 배신자나 고자질쟁이라는 뉘앙스가 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1970년대 미국 소비자 운동가 랄프 네이더는 휘슬블로워라는 호칭을 제안했다. 경기에서 반칙이 포착되면 호루라기를 부는 심판을 뜻한다. 사실 반칙을 한 선수가 아니라 호루라기를 분 심판이 퇴장을 당하는 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초의 기업 공익제보자로 불리는 스탠리 아담스는 1970년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의 불법 행위를 폭로했지만 산업 스파이로 몰렸다. 반년 동안 투옥됐다. 공익제보자로 인정받는 데 10년이란 긴 소송이 필요했다. 2000년대부터 시장 지배적 거대 기업들이 등장하면서 전통적인 심판이었던 각국 정부와 규제 당국도 기업 내부 심판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앞다퉈 공익제보자 보호와 포상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우 2002년 사반스-옥슬리법으로 공익제보자에 대한 보복을 못하게 규정헀다. 일본도 2004년 공익통보자보호법을 만들었다. 유럽 역시 2018년 관련법을 만들었다. 특히 미국은 2010년 도드-프랭크법으로 공익제보자에 대한 포상도 강화했다. 진실의 호루라기를 분 사회적 대가가 혹독하다는 현실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뒷거래는 외부 심판의 감시와 내부 심판의 신고라는 공조 통제로 밝혀진다. 이들이 왜 배신자일까.
KEYMAN_ 김광호 

휘슬블로어들은 신원이 밝혀지길 꺼린다. 내부고발 이후 조직의 역공과 대중의 역풍을 몸소 경험하기 때문이다. 김광호 전 부장이 스스로 신원을 밝힌 건 공익제보자에 대한 한국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김 부장은 공익제보자들을 위한 인권단체인 호루라기 재단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번에 받은 포상금으로 자동차제작결함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포부도 일부러 공개적으로 밝혔다. 처음부터 일확천금이 목적이었단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2011년 공익신고자 보호법을 제정했다. 내부 심판을 육성하는 국제적 변화를 따라잡았지만 결정적 맹점이 있다. 기업 범죄 고발은 보호 대상이 아니다. 2020년에도 기업 비리도 공익신고로 인정하자는 법 개정 논의가 있었지만 무산됐다. 대기업들과 법무부 그리고 국세청까지 나서서 반대한 탓이었다. 지난해엔 공익제보의 보상금 상한액을 폐지하자는 부패방지법 시행령 개정안도 정부입법으로 논의됐지만 국무회의에서 부결됐다. 한국에선 호루라기를 불면 불행해진다. 김 부장이 285억 원의 보상을 받은 건 미국 당국에도 공익제보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복할까.
RECIPE_ 베커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는 범죄를 편익과 비용으로 분석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범죄로 얻는 편익이 처벌에서 오는 비용보다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체포될 확률을 곱하면 이른바 베커룰이 된다. 개인 범죄의 경우 편익보다 비용이 크다. 잡힐 위험도 높다. 반면에 기업 범죄는 편익이 비용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다. 범죄 입증 가능성도 낮다. 공인신고자 보호와 포상 강화는 기업 범죄에서 비용과 입증 가능성을 모두 높여준다.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미국 기업 범죄 사례 200건을 분석한 결과, 검찰이나 국세청 같은 사법 당국이 밝혀낸 비리는 7퍼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진 사례는 17퍼센트였다. 특히 바이오 산업 분야는 41퍼센트에 달했다. 내부 심판을 육성하겠다는 신호를 시장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기업은 베커룰에 따라 스스로 컴필라이언스를 강화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기업을 움직이는 건 언제나 득실이니까.
REFERENCE_ 체육계


어느 체육 단체가 조직적으로 입장류 수익을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제보한 공익신고자가 있었다. 횡령 사실을 입증할 자료를 모두 확보했지만 내부 감사도 외부 수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해당 단체는 공익신고자의 법인 카드 내역을 뒤졌고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소했다. 끝내 해고당했다. 3년 동안 20건 이상의 재판이 이어졌고 변호사 비용으로만 사비 수천만 원을 지출했다. 재판에서 승소한 공익신고자는 복직했지만 다시 해고당했다. 그러기를 4번이나 반복했다. 체육 단체는 매년 수천만 원의 과태료를 내면서까지 노동위원회의 복직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본보기로 공익신고자를 희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업 조직에 대한 공익신고가 새드엔딩으로 끝나곤 하는 건 기업은 과태료를 부과받더라도 기업 내부는 바뀌지 않아서다. 1차로 비리를 저질렀던 책임자는 물러나도 2차로 공익신고자를 역공했던 관계자들은 남는다. 제2의 공익신고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1의 공익신고자를 철저하게 탄압한다. 애초에 비리를 저지른 기업이 스스로 바뀔 수 있을까.


CONFLICT_ 국세청 

국세청은 내부고발의 최대 수혜자지만 공익 포상엔 가장 인색한 조직이다. 지난 5년 동안 국세청이 내부 고발로 추징한 세금은 7조 원에 육박한다. 제보자에게 준 포상금은 670억 원으로 1퍼센트가 안 된다. 미국 국세청은 2020년 추징금의 18퍼센트를 제보자 포상금으로 지급했다. 국세청의 공익포상 총액이 적은 건 국세청이 내부고발자의 공을 잘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롯데칠성음료 내부고발이 대표적이다. 음료유통업엔 무자료 거래 관행이 여전하다. 이 과정에서 세금 탈루가 이뤄진다. 롯데칠성음료 직원이 이 사실을 국세청에 신고했지만 국세청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서 포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내부고발을 탄압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내부고발을 인정하지 않는 규제 당국도 공인신고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이런 게 숟가락 얻기가 아닐까.


RISK_ 사냥터 

공익신고에 대한 높은 포상을 제공하는 미국은 결국 양심의 영역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 셈이다. 내부고발자도 늘어났지만 그만큼 포상금 총액도 커졌고 포상금을 노린 허위 신고의 가능성도 높아졌다. 기업 범죄 신고가 시장화되면 기업 파파라치 사냥터로 변질될 위험성은 언제나 있다. 도이체방크 리보 금리 조작 사건의 내부고발자는 은행 중간 간부였다. 금리 조작 사건은 피해 규모가 전방위적인만큼 벌금 규모도 천문학적이다. 도이체방크는 이 사건으로 8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중간 간부는 2억 달러의 어마어마한 포상금을 받게 됐는데 지나치게 높아서 문제가 됐다. 규제 당국인 상품선물거래위원회는 포상금 지급을 거부했다. 내부고발자가 현상금 사냥꾼이라는 흑색선전도 난무했다. 이렇게 포상이 커지면 논란도 커진다. 공매도 투자자들 역시도 기업 비리로 돈을 번다. 공매도 투자자들은 주가에 타격을 줄만한 기업 비리를 밝혀내기 위해 탐정까지 고용한다. 공매도 리포트를 시장에 흘려서 주가를 떨어뜨린다. 고 김영애 씨와 이영돈 PD 사이에서 벌어졌던 2007년 황토팩 쇳가루 검출 논란도 리스크 사례다.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김영애 씨가 경영하는 회사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은 이후였다. 자칫 공익신고자와 현상금 사냥꾼이 혼재된 시장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업 내부고발을 계속 개인의 양심과 희생에만 맡겨야 할까.
INSIGHT_ 언론

기업 비리의 17퍼센트는 내부고발자에 의해 밝혀진다. 그런데 큰 기업 범죄의 24퍼센트는 언론에 의해서 밝혀진다. 작은 기업 비리 역시 13퍼센트는 언론이 밝혀낸 것이었다. 사실 언론이 밝혀낸 기업 비리도 따지고 보면 기업 내부의 취재원에 의존한 것이 대부분이다. 제보의 대상이 규제 당국이 아니라 언론이었을 뿐 결국 그들도 내부고발자들인 것이다. 언론의 주된 역할은 권력의 감시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결국 정권과 기업에 있다. 수사권이 없는 언론의 권력 감시가 가능해지는 건 해당 권력 내부에 내부고발자가 늘 존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언론은 내부고발자를 감출 순 있어도 지켜줄 순 없다는 사실이다. 취재원을 보호해줘도 내부 색출에서 드러나면 어쩔 수가 없다. 과거엔 양심 선언으로 내부 비리를 폭로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업 비리의 경우엔 개인의 경제적 손실이 워낙 커서 그런 양심 선언을 기대하기 어렵다. 내부 심판을 육성하는 공익신고제도가 진화하면서 언론과 내부고발자의 관계도 바뀌고 있다. 공익신고자가 언론과 규제 당국과 공조해서 비리 기업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것이다. 최근 페이스북의 내부고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익신고자 프란시스 호건은 《월스트리트 저널》과 특집 기사를 준비했다. CBS 〈60분〉과는 딥포커스 인터뷰를 했다. 이어서 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했다. 이런 공익신고 전략 덕분에 페이스북은 완패했다. 결국 이름을 메타로 바꿔야 했다. 이젠 공익신고엔 양심과 용기만 필요한 게 아니다. 철저한 전략도 필요하다. 그 중심엔 미디어 플레이가 있다.
FORESIGHT_ 인사이더

알 파치노와 러셀 크로가 주연한 1999년작 〈인사이더〉는 담배 회사의 불법을 폭로한 휘슬블로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거대 담배 회사 브라운앤윌리엄스의 내부고발자 제프리 와이건은 담배 회사들이 담배에 중독성을 높이는 암모니아 화합물을 첨가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담배 회사들은 흡연자들한테 집단 소송을 당했고 2460억 달러의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그런데 〈인사이더〉에는 제프리 와이건 말고 내부 고발자가 하나 더 있다. 당초 제프리 와이건의 제보를 받고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했던 CBS 〈60분〉의 PD 로웰 버그만이다. CBS는 거대 광고주인 담배 회사의 압력에 굴복한다. 〈60분〉의 방송을 보류한다. 로웰 버그만은 자신의 편집본과 와이건의 자료를 모두 《월스트리트 저널》에 넘긴다. 로웰 버그만 스스로 인사이더가 된 것이다. 결국 와이건의 명예는 회복된다. 담배 회사의 불법은 진실로 드러난다. 버그만은 해당 보도를 끝으로 언론 현장을 떠난다. 진실은 반드시 대가를 요구한다. 공익신고자에 대한 포상금이 아무리 높아져도 진실을 밝히는 데는 돈으로는 절대 보상받을 수 없는 대가가 따른다. 〈인사이더〉에서 알 파치노가 연기한 로웰 버그만은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제프리 와이건과 통화를 하기 위해 전파 신호를 잡으려다 허리까지 오는 물 속에 빠진다. 진실을 밝히려면 내부고발자가 아니라 그들의 조력자까지도 물 속에 몸을 던져야만 하는 것이다. 김광호 전 부장이 정의와 행복을 찾아 떠났어도, 인사이더는 쉽게 늘어나지 않을 것이다.


개방적이로 수평적인 기업 조직에 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수평조직의 구조》를 추천합니다.
내부고발이 필요 없는 컴필라이언스를 준수하는 생산적인 회사 구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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