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과 보테가는 왜 서로를 저버렸나?
 

11월 16일 - FORECAST

패션 산업의 갈등이 재현됐다. 천재와 브랜드 사이의 충돌은 숙명일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1월 10일 약 3년간 ‘보테가 베네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해 온 다니엘 리가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살롱 03’ 패션쇼가 끝난 지 채 20일도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기에 사람들의 충격은 더욱 컸다. 매출 저조로 경질된 토마스 마이어의 뒤를 이어 보테가 베네타를 이끈 다니엘 리는 부진했던 실적을 끌어올렸다. 그뿐 아니라 여러 파격적인 행보를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보테가 베네타를 각인시켰다. 천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왜 갑자기 보테가 베네타를 떠났을까?
WHY_ 지금 다니엘 리의 사퇴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패션은 어느 예술보다 상업화된 분야다. 패션은 예술과 상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다. 이런 상황에서 하이패션 브랜드는 창의력과 리더십을 가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창의성을 상업적 힘으로 옥죄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구찌의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가 브랜드 소유주와 겪은 갈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이처럼 갈등은 패션 시장에서 구조화되었다. 그렇다면 다니엘 리의 디렉터직 사퇴 역시 단순한 한 개인의 일탈이나 브랜드의 독단적 결정 때문이라고 볼 수만은 없을 일이다.
NUMBER_ 4개

2018년 7월, 다니엘 리가 보테가 베네타의 신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했다. 그리고 2019년 12월, 그는 영국패션어워즈에서 ‘올해의 브랜드’, ‘올해의 디자이너’ 부문을 비롯한 네 개의 상을 석권했다. 부임한 지 꼬박 18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전설적인 디자이너로 평가받는 알렉산더 맥퀸도 하룻밤 사이 네 개의 상을 가져가진 못했다. 패션에 대한 창의적인 접근을 중시하는 영국패션협회의 성격은 다니엘 리가 1년 6개월의 시간 동안 보테가 베네타에서 보인 도발적인 행보와 맞아떨어졌다.
MONEY_ 9.3

다니엘 리가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영국패션협회의 인정을 받는 사이 보테가 베네타의 성장세도 가팔랐다. 2017년 보테가 베네타의 매출 증가율은 0퍼센트대에 머물렀다. 그러나 다니엘 리의 부임 이후 보테가 베네타는 성장세를 크게 끌어올렸다. 2021년 3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9.3 퍼센트 올랐다. 같은 케어링(Kering)[1] 소속 브랜드인 구찌가 코로나의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해 4.5 퍼센트의 성장률을 보인 것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확연하다. 패션 업계에서 한 개인이 평가받는 요소는 더욱 복잡하다. 패션 업계는 다른 예술 분야와는 다르다. 패션 업계에는 정량적 지표인 매출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정량적 지표에는 정성적 차원이 결합돼 있다.
DEFINITION_ 무명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직함에서도 알 수 있듯, 이 자리는 단순히 컬렉션의 옷만 디자인하는 자리가 아니다. 브랜드의 정체성과 방향성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다. 하이패션의 세계에서 정체성과 방향성은 매출과 직결된다. 이 둘 모두를 잡아야 천재 디자이너라는 칭호가 주어진다. 다니엘 리는 영국의 명문 예술대학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졸업했다. 그리고 셀린(Celine)의 피비 파일로 밑에서 디자이너 경력을 이어갔다. 피비 파일로에 가려진 다니엘 리는 무명 디자이너에 불과했다. 그런 그를 알아본 이는 다름 아닌 패션 기업 케어링의 수장 프랑수아 앙리 피노였다.
KEYMAN_ 피노와 아르노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명품 브랜드들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 산하의 브랜드다. 특히 케어링과 LVMH[2]가 대중에게 알려진 많은 명품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브랜드의 입장에서 기업의 산하 브랜드가 되는 것은 정글을 함께 헤쳐나갈 무기를 찾는 것과 같다. 기업의 갑옷을 입고 혼자서는 진입하기 어려운 네트워크 속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에서 오는 강점도 확실하다. 하나의 가방을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패턴을 짜고, 부자재 시장에서 가죽을 사와 박음질을 튼튼히 하는 것. 어쩌면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혼자서 납품을 위한 1000개의 가방을 만들어야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아무리 좋은 패턴을 갖고 있어도, 아무리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이 있어도 혼자서 1000개의 가방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깝다. 비싼 가죽을 저렴한 가격에 가져올 수 있어야 하며, 가방 제작을 도울 숙련된 장인들이 있어야 한다. 이미 자리 잡은 거대 명품 브랜드와 이들을 관리하는 다국적 기업은 가방을 만들고 납품시키기 위한 최선의 경로를 안다. 이에 더해 그 기업에는 가방만 수십 년을 만들어온 장인들이 쉴 새 없이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공한 명품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면 케어링과 LVMH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가 된다. 세계화된 지금의 패션 시장은 티에리 에르메스와 코코 샤넬이 출현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현재의 패션 시장은 두 명의 키맨인 프랑수아 앙리 피노와 베르나르 아르노의 손바닥 안에서 구조화되고 있다.
RECIPE_ 천재X자본

베르나르 아르노는 1995년, 존 갈리아노를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타 디자이너의 시대를 열었다. 존 갈리아노의 뒤를 알렉산더 맥퀸이 이었다. 이 둘 모두 영국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대학 출신이다. 다니엘 리와 마찬가지로 지방시의 부름을 받기 전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들이었다. 아르노는 이들을 거대한 파리 패션계에 편입시킴으로써 새로운 흐름을 꾀했다. 오트 쿠튀르의 진지한 분위기를 깨고, 30대의 젊은 영국 디자이너들을 부각했다. 그리고 역사와 전통이 있는 브랜드의 이미지와 혁신을 좇는 젊은 감각을 결합했다. 이는 과시 소비와 가치 소비 사이를 오가는 명품 시장 수요자의 필요와 감미로운 하모니를 이뤘다. 아르노의 실험이 성공하자 영국 출신의 천재 디자이너들이 유럽 명품 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본래의 명품 시장이 도제식 시스템 안에서 성골 디자이너를 길러왔던 것과는 분명 다른 시도였다.
CONFLICT_ 조직

천재가 들어왔으니 브랜드가 승승장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적은 별로 없었다. 다니엘 리를 비롯한 존 갈리아노와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맥카트니 등의 세인트 마틴스 출신의 디자이너들은 예상대로 브랜드의 가치를 한껏 올려놨다. 그러나 이들이 5년 남짓의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이끌어왔던 브랜드에서 이탈하는 것 역시 반복되는 일이었다. 다니엘 리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르지 못했다. 패션지 《WWD》의 보도에 따르면, 다니엘 리는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겪고 있었다. 그의 창의성과 영향력은 차치하더라도, 회사 내의 많은 이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 패션 하우스의 힘은 장인과 디자이너의 동등한 관계로부터 나온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이 반복되는 갈등은 무엇 때문일까? 이태리, 프랑스인과 영국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통의 문제일까? 혹은 거대 기업과 패션 브랜드 사이에서 발생하는 소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장인과 디자이너 사이에서 발생하는 뿌리 깊은 의견 충돌 때문일까?
RISK_ 개인 

개인은 무력하다. 특히나 전 세계적인 유통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패션 시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보테가 베네타에서 뛰쳐나온 다니엘 리에게는 어떤 선택지가 남아 있을까? 존 갈리아노처럼 다른 빅하우스를 찾을 수도, 혹은 알렉산더 맥퀸처럼 자신만의 브랜드를 론칭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항간에는 새로운 브랜드를 준비하고 있는 피비 파일로 밑에서 일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선택지에는 위험 요소가 숨어 있다. 다른 빅하우스를 찾는다면 다시금 자신의 디자인 정체성과 브랜드 정체성 사이의 조율 작업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천재적인 기질로 이 난관을 뚫는다고 해도 보테가 베네타에서의 갈등이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확신은 없다. 그렇다면 몸집을 충분히 키운 다니엘 리가 자신의 브랜드를 내면 해결되지 않을까? 이 길도 쉽지는 않다. 다른 브랜드들이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 동안 쌓아 온 브랜드 가치를 처음부터 건설해 나가야 한다. 게다가 값비싼 재료들을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 공급처도 필요하다. 천재 디자이너가 이미 갖춰진 유통망 안에 들어가는 것은 간단하지만, 유통망을 처음부터 건설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REFERENCE_ 피비 파일로

빅하우스의 장점은 무한한 재료 수급이다. 이는 제작 공정 간략화의 열쇠임과 동시에 다양한 디자인을 시도할 수 있는 동력이기도 하다. 반대로 빅하우스가 아니라면 무한정 원하는 재료를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10년간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피비 파일로는 론칭을 앞두고 있는 새로운 브랜드의 정체성을 친환경으로 설정했다. 이는 시대의 흐름 및 패션계의 새로운 동향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빅하우스에서 10년간 활약해 왔던 유명 디자이너마저도 고급 재료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친환경을 택한 피비 파일로의 선택은 영리했다.
INSIGHT_ 기업

패션은 의복과 유행을 모두 가리키는 단어다. 패션이 패션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입고, 즐기고, 확산시켜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패션의 운명은 확산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패션은 그 어떤 예술보다 상업적이며, 다른 모든 상업보다 예술적이어야 한다. 이 둘 중 하나를 놓치면 브랜드의 가치가 올라갈 수 없다. 거대 기업들의 선택은 철저히 이 논리에 기반한다. 창의적인 개인과 갖춰진 시스템이 결합할 때 가장 예술적이고 상업적인 무언가가 태어난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필연적인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이때 거대 브랜드가 선택하는 길은 꽤 명확하다. 매년 배출되는 천재와 오랜 시간 구성된 견고한 네트워크 사이에서 기업은 후자를 선택한다.
FORESIGHT_ 종말

잠시 고개를 돌려 샤넬의 전략을 보자. 현재 샤넬을 이끌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버지니 비아르다. 그녀는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와 오랜 시간 일해온 디자이너로, 본래 칼 라거펠트의 디자인 스케치를 옷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해왔다. 라거펠트의 죽음 이후 샤넬의 선택은 하우스를 완전히 장악할 수 있는 버지니 비아르였다. 샤넬은 천재와의 모험을 택하지 않았다. 새로운 인물을 들이기보다는 안정적인 비아르를 택했다. 대신 버지니 비아르라는 아이콘 자체를 브랜딩하고 부가적인 캠페인을 통해 샤넬 하우스를 새로이 보이도록 했다. 11월 15일, 보테가 베네타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매튜 블레이지가 선임되었다. 2010년대 초반에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활동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디자이너다. 2020년 중반부터는 보테가 베네타의 2인자로서 다니엘 리를 보조했다. 다니엘 리를 통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실히 각인시킨 보테가 베네타는 이제 다니엘 리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던, 본래 하우스 내부에 있었던 인사를 디렉터로 기용했다. 결국 포장만 바뀌었을 뿐이다. 기업화된 패션 하우스의 목적은 많이 파는 것이다. 세계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되면 패션의 진정한 혁신은 종말을 맞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다니엘 리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디자이너, 그리고 이 구조 안에서 과감히 하나의 길을 선택한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에 대해 알고 싶다면 〈왕의 귀환〉을 추천합니다.
피비 파일로의 디자인 철학과 행보가 다니엘 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1]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다국적 패션 기업. 구찌, 이브 생 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이 소속돼 있다.
[2]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펜디 등이 소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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