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택
1화

조력사 관련 법률은 지금껏 지나치게 제약이 많았다.

조력사가 널리 환영받고 있다. 너무 많은 이들이 이 기본적 자유를 거부당한다

1995년, 오스트레일리아 노던 테리토리에서는 세계 최초로 조력사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에 따르면 불치병을 앓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충분한 능력을 지닌 성인이 죽기를 원할 경우 의사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치명적인 약물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법은 분노를 촉발시켰다. 몇 달 뒤 연방정부는 이 법을 부결시켰다. 하지만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섯 개 주 중에서 다섯 곳이 법적으로 조력 자살을 허용한다.

《이코노미스트》는 2015년에 처음으로 조력사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한 바 있다. 우리는 자신이 죽을 방식과 시기를 선택하는 권리도 자유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제도의 남용을 피하기 위해 이에 대한 시행이 신중하게 관찰되고 규제되어야 한다는 점 또한 경고했다. 그 이후 조력사는 보다 더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현재 조력사는 약 12개국에서 어떤 형태로건 합법이며,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듯하다. 지난 주 뉴질랜드는 국민투표에서 65퍼센트의 지지를 얻은, 불치병 환자에 대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했다. 같은 주에 포르투갈 의회는 적용 범위가 더 넓은 법을 통과시켰다. 아직 영국에서는 조력사가 불법이지만, 상원이 이를 허용하는 법안을 토론에 부친 상황이다.

이런 방법으로 죽는 사람의 수는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수다. 네덜란드에서는 2003년에 조력사로 사망한 사람이 대략 1800명이었으며 2020년에는 거의 7000명까지 증가했는데, 이는 전체 사망자의 4퍼센트다. 더 많은 나라에서 조력사를 자유화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적 총계는 더 올라갈 것이다.

많은 이들이 종교적 이유로 조력사를 반대한다. 어떤 종교는 자살을 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들은 법안에 대한 안전장치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점을 걱정하거나 조력사에 대한 자유화가 너무 빨리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우려한다. 비판자들은 늙고 병든 친지를 힘들여 돌보는데 지친 가족들이 그들에게 삶을 끝내라고 과도한 압력을 가하거나, 현금에 쪼들리는 주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잡아먹는 불치병 환자들에게 얼른 죽으라며 종용할 것이라고 오랫동안 예측해왔다.

이러한 공포는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은 듯하다. 조력사가 가장 오랫동안 시행된 곳에서도 노인이나 장애인을 대변하는 자선단체가 이 제도의 악용을 보고한 사례는 한 건도 없다. 그런 일이 남들 눈에 안 띄게 일부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조력사는 정말로 철저한 검토를 받아 왔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죽는 행위를 허가하는 국가 대부분에서 아주 약간만 강압의 기미가 보여도 허가가 철회된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삶을 끝내라고 재촉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역시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미국, 네덜란드, 스위스에서 조력사를 선택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육받은 중산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

조력사 관련 법률은 느슨하기는커녕 지금껏 지나치게 제약이 많았다. 이를테면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주는 의사가 자기 환자에게 조력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금지한다. 이는 강제성을 피하겠다는 목적이나, 그 결과 고통 받는 많은 환자들이 그런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일부 사법권에서는 6개월 이하 시한부 환자에게만 조력사가 허용된다. 그러다보니 환자들이 질병 말기에 엄청난 고통을 겪어도 의사가 환자의 삶이 거의 다했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을 경우 이들은 자기 손으로 고통을 끝낼 수조차 없다.

진단이 너무 늦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2021년 상반기 빅토리아 주에서는 환자가 절차를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이유로 조력사가 철회된 경우는 한 건도 없었지만, 90건의 경우 환자가 안식을 얻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스페인과 콜롬비아 같은 나라는 이론상으로는 자유주의적 법률을 적용하나, 실질적으로는 보건 당국이 환자에게 그 법을 적용하길 꺼린다. 지난 주 스페인에서는 절망에 사로잡힌 83세 여성이 안락사 신청을 거듭 거부당하던 끝에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캐나다는 선택을 내리는 데 있어 개인에게 많은 재량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더 나은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누구든 조력사를 선택할 수 있다. 반드시 말기 환자일 필요도 없다. 특이한 점은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해당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환자의 정신 상태가 건전한 한에서 본인이 직접 결정한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죽음을 합리적으로 내다보기 어려운 환자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도록 90일의 철회 기간이 주어진다. 많은 경우 조력사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사람들이 안도감과 통제력을 얻는다. 오리건 주에서는 치명적 약물을 처방받은 사람들 중 3분의 1이 결국 그 약물을 복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점점 더 많은 사회에서 조력사라는 원칙을 받아들이고는 있으나, 어려운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떤 이들은 조력사가 가용한 것이 되었다는 사실이 보건 기구로 하여금 완화 치료에 드는 비용을 아끼도록 유도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이는 공식적으로는 정해진 바 없다. 다만 캐나다의 조력사 법안은 완화 치료와 장기 요양에 드는 재정이 증가했다는 점과 분명히 관련이 있었다.

조력사가 보편화되면 24시간 간호가 필요한 노인들이 죽음을 선택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더 많이 느끼게 될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자녀나 간병인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한다. 어떤 이들은 삶을 지속하는 것이 운명에 의해 맹목적으로 굴러가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될 경우 죄책감까지 더하여 느낄지 모른다. 이는 진지하게 고려할 문제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이 자기가 죽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 선택의 자유가 거부당할 경우 그 외의 사람들이 겪게 될 견딜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확실성을 능가해서는 안 된다.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정보에 입각하여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의문시될 때 제기된다.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살 충동이 오락가락한다. 그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기준이 무척 높아야 한다. 의사들은 일시적인 정신건강의 위기와 지속적으로 충분히 숙고한 죽음에 대한 소망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혹여 의심스러울 경우에는 환자가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법을 제공해야 한다.



마지막까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치매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이 질환을 진단받은 사람이 유언장을 작성하면서 증세가 심각해졌을 때 조력사를 하겠다고 요청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런 문서가 본인의 뜻에 반하여 당사자를 죽이는 데 사용될 수는 없다. 당사자의 소망을 정확히 알 수 없다면 계속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조력사는 약물을 복용할 때 정보에 입각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시행되어야 한다.

이 영역에서는 어떤 규정도 완벽하지 않다. 모든 규정은 조력사가 실제로 어떻게 시행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증거에 비추어, 혹은 의학적 진보를 고려하여 개정되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조력사의 일반적 원칙, 즉 개인에게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끝낼지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만큼은 타당하다고 믿는다. 조력사를 허용하고 있는 국가에서 나오는 증거에 따르면 이 제도에 대한 악용은 대체로 가설의 수준에서 머무는 반면 이 제도로 얻는 이익은 실제로 상당하다. 조력사는 고통을 덜어 주며, 삶의 마지막에서 사람들에게 존엄성을 지킬 수단을 되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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