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유머는 왜 웃기다 말까?

11월 18일 - FORECAST

애써 웃음을 찾게 되는 애타는 세상이다. K유머는 왜 웃기느라 애쓸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1월 13일 KBS 2TV에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가 등장했다. 일명 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다. 김준호, 김원효, 변기수 등 출연진이 화려하다. 한때 국내 코미디 방송의 중심 개그콘서트를 이끈 사람들이다. 〈개승자〉는 지상파 코미디 프로그램의 마지막 부활이다. 급변한 코미디 시장에서 과연 개그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까?
WHY_ 지금 한국 코미디를 읽어야 하는 이유

웃음은 솔직하다. 재미없는 책도 읽고 재미없는 일도 곧잘 하지만 재미없는 것에 웃진 못한다. 대중이 무엇에 웃고 찌푸리는지는 사회의 가장 직설적인 화법이다. 한국 코미디의 현주소를 알면 한국 사회의 제스처를 읽을 수 있다.
DEFINITION_ 서바이벌

〈개승자〉는 13개 코미디 팀이 경쟁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개그 판정단 99인의 투표가 승패를 정한다. 상금은 1억 원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묘미는 신인의 발굴과 긴장감에 있다. 〈개승자〉는 우리에게 어떤 재미와 긴장을 안겨줄 수 있을까? 일단 〈개승자〉의 출연진은 모두 유명인이다.
CONFLICT_ 방심위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 〈개승자〉 출연진은 지상파 개그의 몰락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엄격한 규정 때문이라고 말한다. 제약이 많아 조심스럽고 위축된다는 주장이다. 못생긴 걸 못생겼다고 말할 때 개그가 재밌어진다는 발언에서 이번 출연진의 시대 감각을 읽을 수 있다. 개그콘서트가 폐지한 진짜 이유는 OTT 시장이 커지고 코미디 채널이 다양해져서가 아니다. 뒤처진 감각이다.
MONEY_ 6000억

KBS의 연간 수신료는 6000억 원이다. 모든 국민이 내는 준조세다. KBS가 수신료를 받는 이유는 공영방송이기 때문이다. 인기가 없고 시청률이 낮아도 사회에 필요한 콘텐츠들을 제작한다. 재난 방송, 교육 방송, 다큐멘터리 등이다. 여기 코미디 방송도 포함될 수 있을까? 세금의 목적을 다시 생각해 보자.
RISK_ 공영

SNL 코리아에서 개그맨 정성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빙의한 것이 한때 화제였다. 채널 tvN이라서 가능했다. 박 전 대통령이 CJ 그룹 이미경 부회장의 사퇴를 요구할 정도로 높은 수위였다. 이후 2017년 문재인 정부 초기에 폐지됐던 SNL코리아는 최근 쿠팡플레이에서 복귀했다. 이젠 지상파가 아닌 OTT 시장이다. 반면 KBS는 지상파 방송이다. 게다가 공영이다. 나라 지원을 받으니 나라 입김이 들어간다. KBS 방송에 등장해서 심의를 완화해달라는 코미디언은 채널부터 잘못 선택한 것인지 모른다.
KEYMAN_ 인턴 기자

지난 9월 5일 SNL 코리아가 4년 만에 부활했다. 주목받은 건 신규 코너 〈인턴 기자〉의 주현영 배우다. 인턴 기자가 울먹이며 자리를 뜨는 유튜브 영상은 조회 수는 617만을 기록했고 1만 2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눈치 없고 소심한 인턴의 이미지가 네티즌의 공감을 샀다. 최근엔 대선 후보를 찾아갔다. 당당함은 여전하다. 우리가 인턴 기자를 보며 웃는 건 강자에게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해주기 때문이다.
RECIPE_ 조지 칼린

SNL 코리아의 원형은 미국 NBC의 새러데이 나잇 라이브다. 첫 사회자는 조지 칼린이었다. 아직도 회자되는 스탠드업 코미디의 전설이다. 1972년 〈텔레비전에서 말하면 안 되는 7가지〉에서 방송 심의를 비판해 구속됐다. 1992년 제 1차 걸프전 당시엔 〈우리는 전쟁을 좋아해〉에서 조지 부시를 겁쟁이로 비유했다. 틈만 나면 기독 보수층을 비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지 칼린이 풍자하는 대상엔 공통점이 있다. 기득권이다.
NUMBER_ 50년

우리나라 코미디의 풍자는 범위가 좁고 수위가 낮다. 유행어 몇 개로 코너의 흥망성쇠가 결정된다. 그래서 개그콘서트 코너들은 1~2개월 단위로 수명이 짧았다. 최장수 코너 〈달인〉이 버틴 건 3년 11개월이다. 조지 칼린은 1959년 데뷔 후 2008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네 달 전까지 코미디 활동을 계속했다. 50년 장수 희극인의 비결은 20세기 미국 사회가 개방적이었어서가 아니다. 웃겨서다. 전술했듯 조지 칼린은 대놓고 방송 심의를 공격해 구속된 적도 있다.
REFERENCE_ 데이브 샤펠

지난 9월 29일 데이브 샤펠의 스탠드업 코미디 〈더 클로저〉가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데이브 샤펠은 동양인, LGBTQ 비하 발언으로 수십 년간 논란의 대상이었다. 〈더 클로저〉는 그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자 준비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트랜스포비아 발언으로 논란 종결은커녕 LGBTQ 커뮤니티의 더 큰 반발을 얻었다. 데이브 샤펠은 흑인이다. 퀴어는 아니다. 소수자성은 복합적이다. 블랙 코미디의 핵심은 이 복잡함을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다.
INSIGHT_ 공범

웃지 않으면 만들지 않는다. 한때 시청률 35퍼센트를 자랑하던 개그콘서트가 막을 내린 건 사람들이 더이상 웃지 않기 때문이다. SNL코리아가 2017년 잠시 폐지된 이유도 내용 없는 풍자에 대한 청중의 비판 때문이었다. 웃음 앞에서 우리 모두는 공범자다. 불편한 코미디가 나온다면, 가장 먼저 돌아볼 건 우리의 웃음이다.
FORESIGHT_ 질적 웃음

〈주기자가 간다〉에서 인턴 기자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SNL이 정치 풍자하는 것을 도와줄 것인가’라 묻는다. 윤 후보는 ‘그건 나한테 허락받을 게 아니라 SNL의 권리’라 답한다. 권리는 실력에서 나온다. 실력이 없을 때 폭력을 해학이라 우긴다. 웃기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갔다. 코미디의 미래는 질적 웃음이다.


급변하는 코미디 문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원 - 나의 불행은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는가〉를 추천합니다.
한국에 등장한 스탠드업 코미디팀의 사례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해학을 읽고 코미디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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