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의 밤

11월 19일 - FORECAST

한국 전쟁 종전 선언이 한미일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다. 정말 전쟁이 끝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미일 외교 차관 협의회 직후인 지난 11월 17일에 한국 전쟁 종전 성명 관련 논의가 만족스러웠다고 밝혔다. 앞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은 종전 선언과 관련해 한미 간의 이견을 에둘러 언급했다. 분단 76년, 종전 선언은 이뤄질까?
WHY_ 지금 종전 선언을 읽어야 하는 이유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성과는 역대 한국 정부를 통틀어 손에 꼽는다. 2018년에 남북 정상 회담이 세 차례 열렸고 판문점 선언과 9.19 군사 합의로 불리는 평양 공동 선언이 이뤄졌다. 차기 대선 후보 중에는 문 대통령 수준의 외교적 인프라를 가진 사람이 없다. 중국과 미국도 종전 선언과 관련해 확답은 없지만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종전 선언을 한다면 지금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감이 완화되면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고 남북 경협 역시 활발해질 수 있다.
DEFINITION_ 마지막 불꽃

종전 선언은 문 정부의 주요 국정 목표이자 마지막 불꽃이다.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선언에서 연내 종전 선언 목표가 최초 선포된 이후 남북 관계는 하노이에서 열린 두 번째 북미 정상 회담이 결렬되며 미진했다. 지난 9월 21일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 문 대통령은 다시 종전 선언을 제안했다. 논의 주체는 한국 전쟁 당사국인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다. 미중일 3국은 한반도에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다. 종전 선언을 위해서는 미중 양국의 지지와 북한의 동의가 순차적으로 필요하다. 국민적 기대감이 낮지만 종전 선언 논의 과정이 미국 고위급 관료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중국 역시 우호적 스탠스다. 실무진 차원에서 논의가 급물살을 타는 것은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한다. 우리에게 종전 선언은 평화 협정, 항구적 평화 체제로 가기 위한 첫 단추다. 
NUMBER_ 40

임기 말 이와 같은 행보는 레임덕 탈피와 쉽게 연결된다. 레임덕의 심리적 마지노선은 30퍼센트대다. 한국갤럽의 역대 대통령 지지율 조사에서 대부분은 임기 4~5년차에 30퍼센트 이하로 지지율 하락을 경험했다. 레임덕은 대통령제의 숙명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임기 초 국정 수행 지지율 81퍼센트로 시작해 현재 40퍼센트를 유지하고 있다. 역대 대통령보다 평균 15퍼센트 이상 높다. 각 행정 부처에 대한 장악력이 남아 있다는 의미다. 이는 종전 선언에 큰 동력으로 작용한다. 일련의 행보가 레임덕 탈피를 위한 의미 없는 무리수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지난 5년간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 문 정부는 필사적이다.
RECIPE_ 타이밍

지금껏 미국은 CVID[1] 방식의 비핵화와 유엔 안보리 결의안 2270호[2]와 같은 제재를 빅딜로 맞바꾸려 해왔고 한국 정부 입장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북핵 방치의 결과를 낳자 트럼프는 일괄 타결에 어울리는 톱다운 방식을 꺼냈다. 북한은 점진적 타결을 원했고 풍계리 핵 실험장을 폐쇄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빅딜은 실패했고 이후 사실상 남북 성명은 사문화됐다. 그러나 판데믹 이후 북한이 처한 어려움과 미중 갈등의 장기화로 인해 이해 당사국 모두가 반전을 만들 모멘텀이 필요해졌다. COP26에서의 미중 공동 성명과 화상으로 진행된 미중 정상 회담 역시 같은 맥락이다. 비핵화와 평화 체제 수립이라는 목표에 비하면 종전 선언은 미약하지만, 이전 성명들과는 비교 불가한 가시적인 합의다. 문 정부는 이 타이밍을 노린다.
KEYMAN_ 이수혁

미국의 지지는 종전 선언의 첫걸음이다. 이수혁 주미 대사는 성김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 대표와 같이 한미 동맹의 핵심 가교 역할을 한다. 이 대사는 지난 11월 10일 특파원단 감담회에서 종전 선언 문안을 미국이 법·안보 측면에서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종전 선언의 방향성과 목적 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법률적 해석과 여파를 두고 협의 중이라는 것이다. 이 시점에 주미 대사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는 생각 외로 신중한 미국의 태도에 있다. 제이크 설리번 국가 안보 보좌관과 마크 램버트 미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 전직 주한 미군 사령관인 버웰 벨 등은 종전 선언과 관련해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가 있음을 시사하거나 북에 단호한 조치가 선결되어야 함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 대사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바이든 정부의 지지율 때문이다. 아프간 사태로 지지율에 직격탄을 맞은 만큼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모습을 통해 바이든 독트린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종전 선언은 바이든에게도 게임 체인저다.
RISK_ 일본

일본은 숨은 변수다. 트럼프 정부의 백악관 국가 안보 보좌관이던 볼턴의 회고록에서 하노이 회담이 열리기 전 아베 전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 위협론을 꺼냈다는 일화가 나온다. 과거 중국 위협론과도 상통한다. 일본이 종전 선언에 민감한 표면적 이유는 일본인 납치 문제고 속내는 현상 타파(Anti-Status Quo)에 대한 두려움이다. 일본은 남북 관계에 직접적인 이해 당사국은 아니지만 동북아 정세에 민감하다. 국제 정치에서 힘의 균형(BOP)은 현실주의를 대표하는 논리다. 균형이 깨지면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가 일어난다. 안보 딜레마의 원리다. 한미일은 군사·안보 분야에서 공조 체제이지만 한국과 일본은 동맹이 아니다. 종전 선언으로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으면 세력에 급격한 변화가 생긴다. 자위대도 신 미일 안전 보장 조약 내에서 제한적 운용만 가능하므로 일본에 종전 선언은 불안 요소다. 기시다 내각의 후나코시 다케히로 일본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국장은 한미일 북핵 수석 대표 회동에서 종전 선언이 시기상조라며 난색을 보인 바 있다.
MONEY_ 100조 원

중국이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들인 예산은 100조 원이 넘는다. 시진핑 국가 주석의 3연임이 확정됐고, 역사 결의를 통해 그 위상이 마오쩌둥이나 덩샤오핑에 근접한 이 시점에 차기 올림픽이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미중 회담 이후 《워싱턴포스트》는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한다고 보도 했으나 중국 외교부는 추측성 보도라며 일축했다.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미국이 불참할 경우 냉전 시기의 모스크바나 LA 올림픽처럼 반쪽 올림픽이 될 수 있으므로 논란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중국은 큰 이벤트를 앞두고 한반도에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핵은 반대하지만 북한에 제재 완화와 체제 유지를 원한다. 앞서 중국 외교부의 류사오밍 중국 정부 한반도 사무 특별 대표는 노규덕 외교부 평화 교섭 본부장과의 통화에서 중국이 한반도 종전 선언 발표에서 건설적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당 일부 인사는 종전 선언이 베이징에서 이뤄질 가능성도 점치고 있는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등은 이에 부정적이다.
CONFLICT_ 유엔사

본격적인 문제는 한미 간 종전 선언에 대한 합의 이후이다. 북한이 종전 선언에 대한 반대급부로 무엇을 요구할지 모른다. 벌써 목소리가 나오는 건 유엔사 해체다. 지난 11월 16일 한 북한 매체는 유엔군 사령부 때문에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좌절되었다며 유엔사 해체 주장을 펴기도 했다. 애초에 설립 목적이 한국 전쟁 당시 한국의 방어 목적으로 구성된 다국적 연합군이다 보니 종전 선언은 북한이 유엔사 해체와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유엔사가 유엔을 등에 업었다면 연합사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다. 전작권 환수가 미뤄졌지만 2021 한미 정상 회담에서 미사일 사거리 지침이 해제되었기 때문에 북한은 한국의 자주 국방력을 근거로 미군 철수 및 한미 연합 훈련 반대를 언제든 주장할 수 있다. 사드 배치에 민감한 중국 역시 주한 미군 철수를 적극 지지할 것이다. 이는 종전 선언을 부정적으로 보는 국내 여론의 주요 주장이기도 하다.
REFERENCE_ 닉슨

닉슨 전 미국 대통령 방중은 역사적 사건이다. ‘Nixon goes to China’라는 말은 데탕트를 관통한다. 당시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의 노력으로 성사된 이 회담은 그 유명한 평화 5원칙을 남겼다. 미중소의 전략적 삼각 관계에서 중국은 이를 기점으로 연미반소(聯美反蘇)[3] 전략을 취했고 국제적 고립을 탈피하여 유엔 상임 이사국이 되었다. 미국 입장에선 베트남 전쟁의 종결과 소련 견제를 얻었지만 당시 합의된 양안 관계가 아직도 문제로 남아 있다. 무엇보다 중국이 사회주의 강국이 될 초석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방중이 실패로 여겨지기도 한다. 북한과의 종전 선언에서 체제 유지 및 제재 완화를 정확히 짚지 않으면 한국과 미국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당시 닉슨이 중국과 연대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양안 관계는 뒤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INSIGHT_ 설국열차

종전 선언은 문 대통령이 먼저 꺼냈지만 도화선은 북에 있다. 북한과 중국의 미사일 개발이 MD[4]를 무력화할 수 있는 극초음속 기술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핵 동결을 위한 평화 협정은 종전 선언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비단 정치적 선언에 불과해도 큰 의미가 있다. 이를 둘러싸고 문 대통령은 이제까지의 대북 정책 성과의 방점을, 바이든은 지지율 회복과 미중 갈등 완화를, 중국은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성공을, 북한은 경제와 보건 위기 극복을 위한 수 싸움 중이다. 동북아 정세에 영향력이 큰 미중 양국이 종전 선언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다는 점에서 이번 논의는 나름의 가능성이 있다. 물론 아직 미국은 선을 긋고 있다. 셔먼 부장관이 종전 선언(declaration)이 아닌 성명(statement)이라고 발표한 것[5] 역시 의견이 분분하다. 거기에 한일 양국이 대북 제재 결의안을 계속 준수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한일 의견 차이 등 협의 속 난항이 읽힌다. 무엇보다 비핵화 없이 종전 선언 후 제재 완화를 하면 북핵에 대한 비공식적 인정이 될 수 있다. 미국의 자체적 세컨드리 보이콧과 안보리 제재의 신중한 조율이 필요한 이유이다. 76년 동안 쳇바퀴를 돈 남북 관계는 설국열차의 바깥처럼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고 한다.
FORESIGHT_ 새로운 전장

한반도는 냉전의 화약고였다. 기나긴 역사적 대립을 끝내더라도 열강은 새로운 전장을 찾을 것이다. 중동이 숱한 대리전으로 얼룩질 동안 중국의 부상은 태평양과 남중국해의 긴장감을 높였다. 한반도는 이번 종전 선언이 이뤄지면 오히려 신냉전의 완충 지대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번 미중 정상 회담에서 미국과 중국이 큰 견해 차이를 보인 것은 대만 문제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은 바로 대만 통일이다. 중국의 대일통 사상은 중국몽과 결합해 하나의 중국 원칙의 군사적 발현이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애초에 종전 선언 논의는 미중 양국이 대만을 중심으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질 것을 예측하여 한반도에서의 불필요한 충돌을 매듭지으려는 것일 수 있다. 미중 정상 회담 며칠 전에도 중국은 대만 상공에 전투기를 띄웠다. 대만 총통 차이잉원 역시 지난 10월 미군 주둔을 인정했고 이는 앞으로의 군사 충돌을 암시한다. 양안 갈등에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종전 이후라도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전 참전을 요구 받았던 것과 같은 상황이 올 수 있다. 한국 전쟁은 종료되어도 신냉전은 끝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 전략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면 《문재인 데탕트》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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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VID는 2002년 10월 3일 2차 북핵위기가 발생한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정의한 비핵화 개념이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ing)를 말한다.
위키백과
[2]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2270호는 2016년 3월 2일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북한의 2016년 1월 6일 4차 핵실험과 2016년 2월 7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만장일치로 채택한 조치이다. 이 결의는 유엔 7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비군사적 조치로, 북조선의 광물 및 원유 거래 제재, 무기 거래 전방위 봉쇄, 금융 제재 및 운송 봉쇄, 핵무기 자금 조달에 관여한 기관 및 개인의 해외 활동 제재 등이 포함됐다.
위키백과
[3]
미국과 연대하고 소련에 맞선다는 당시 중국의 전략이다. 흐루쇼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지자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의 롤 모델로 삼던 마오쩌둥이 흐루쇼프를 수정주의자로 비난하며 중소 분쟁이 일어났다. 소련의 팽창으로 중국은 반패권주의를 내세워 베트남 전쟁에서 패색이 짙던 미국과 연대하게 되었다.
[4]
Missle Defense. 유도탄을 감지하여 무력화할 수 있는 미사일 방어 체계를 의미한다. THAAD도 일종의 MD이며, 핵 탄두를 장착한 ICBM을 방어할 수 있다.
[5]
우려와 다르게 《한겨레》의 한 기사를 인용하면 공동 성명이 공동 선언보다 위상이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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