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절과 함께 사라지다
 

11월 24일 - FORECAST

온라인 명품 거래 플랫폼이 인기다. 비결은? 우리는 왜 명품에 열광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명품을 왜 백화점에서 사?” 최근 TV나 버스에서 많이 봤던 카피다. 이 카피를 증명이라도 하듯, 온라인 명품 거래 시장이 무섭게 성장 중이다. 코로나로 인해 실외 활동이 어려워진 상황을 유일한 요인으로 꼽긴 어렵다. 온라인 명품 시장 성장의 이면에는 MZ세대의 명품 소비 증가, 명품 시장의 한정된 공급으로 인해 발생하는 희소성 등 복잡한 역학이 자리 잡고 있다.
WHY_ 지금 온라인 명품 시장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온라인 명품 시장은 엄청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 막 10년 차에 접어든 온라인 명품 플랫폼 ‘머스트잇’은 지난 10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신사옥으로 확장 이전했다. 지하 3층에서 지상 6층에 이르는 대규모 사옥이다. 럭셔리 쇼핑 플랫폼 ‘발란’은 톱스타 김혜수를 광고 모델로 기용하면서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업계 1위인 머스트잇 뒤를 ‘트렌비’, ‘캐치패션’, 발란이 맹렬히 쫓고 있다. 20년 전까지만 해도 명품은 장소를 기반으로 한 시장이었다. 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백화점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심지어 국내에 수입되지 않는 제품을 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이도 적지 않았다. 온라인 거래 플랫폼 이전에도 개인이 개인에게 명품을 판매하는 시장은 형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영리하게 이용해 온 사람들도 존재했다. 그러나 온라인 거래가 플랫폼으로 모습을 갖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럭셔리 시장은 한정된 공급을 기반으로 유통망을 넓힌다. 외려 희소성을 강화하는 형태로 진화했다.
DEFINITION_ 온라인 명품관 

지금은 백화점에 굳이 갈 필요가 없다. 제품에 대한 설명, 코디, 가격, 구입처까지 집 안에서 해결할 수 있다. 유튜브 혹은 온라인 패션 매체 등에서 신상품, 가격대, 추천하는 스타일까지 원하는 대로 골라 볼 수 있다. 대도시나 번화가에만 위치하는 백화점에서 굳이 실물을 보고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또한 영업 시간이 정해진 백화점과 달리 온라인 쇼핑은 제약이 없다. 자신이 원하는 때 언제든지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 시간적 제약만 희미해진 것이 아니다.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제품이나 한국에서 품절된 제품 등을 해외 유통자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하늘길이 막힌 상황에서 명품의 온라인 구매가 크게 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일례로 작년 머스트잇에서 가장 구매가 많았던 브랜드 ‘구찌(Gucci)’의 경우를 들 수 있겠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매장 앞에서 직접 줄을 서는 것이 두려운 상황에서 터치만으로 구입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은 솔깃한 제안임에 틀림없었다.
MONEY_ 1조

22일 발표에 따르면 머스트잇의 연간 누적 매출액이 9000억 원을 상회했다. 올해 안에 누적 거래액이 1조 원을 가볍게 돌파할 것이라 내다봤다. 최근에는 온라인 명품 업계 최초로 오프라인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 성장한 것은 머스트잇 뿐만이 아니다. 발란은 10월 거래액이 461억 원을 달성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트렌비는 명품 쇼핑 거점 도시에 해외 지사를 마련하는 등 몸집을 불렸다.
NUMBER_ 23퍼센트

명품 거래 전체에서 온라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23퍼센트로 나타났다. 10명 중 2명은 명품을 백화점이나 편집숍 등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으로 구매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유튜브를 통해 관심이 가는 제품의 후기를 찾아보고 명품을 주문해 택배로 받아본다. 때로는 백화점에서 실제 제품을 만져본 다음 온라인으로 제품을 구매한다. 더 이상 온라인 명품 거래는 오프라인 구매가 불가능할 때나 선택하는 옵션이 아니다. 오프라인 시장을 위협하기까지 하는 경쟁자로 올라섰다.
CONFLICT_ 해외여행 

수직 상승하는 온라인 명품 시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작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구매나 면세점 이용이 어려워지면서 발생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한 성장세에 맞춰 경쟁사가 대거 유입되었기 때문에 시장점유율 확보를 위한 과잉 경쟁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모델 유치비나 마케팅 비용을 수수료에 녹이는 형태로 소비자의 부담이 증대될 것이라는 논지다. 이에 더해 가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B2B 모델이 아닌 B2C, C2C 모델이 더해지면서 파생된 문제다. 이들이 직면한 여러 문제는 결국 럭셔리를 온라인으로 판매한다는 격차에서 발생한다.
KEYMAN_ 김혜수 

온라인과 럭셔리 사이에 존재하는 격차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기용한 것은 그 자체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톱스타다. 머스트잇의 경우 주지훈을 광고 모델로 발탁하면서 안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이미지를 강조했다. 또 다른 플랫폼인 ‘트렌비’는 배우 김희애를 통해 카리스마와 리더십 부각을 선택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발란은 김혜수를 간판으로 세우면서 인지도 향상에 힘썼다. 덕분에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발란의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00퍼센트 증가했다. 톱스타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온라인 명품 플랫폼이 누리고자 하는 효과는 단순히 인지도 향상에만 치우쳐져 있지 않다. 명품이 온라인으로 판매되면서 상대적으로 희미해진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덧씌우고자 하는 의도도 다분하다.
RISK_ 번호표 

럭셔리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세련된 디자인 혹은 비싼 가격이 럭셔리의 전부가 아니다. 제한된 인원만이 들어와 쾌적한 명품관에서 쇼핑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건 부족하다. 명품을 명품, 럭셔리를 럭셔리로 만들어 주는 것은 번호표를 든 채 명품관 바깥에 길게 늘어선 줄이다. 그 기다림이 명품의 가치를 올려 준다. 사고자 하는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철저히 통제된다. ‘에르메스(Hermès)’가 면세점 재고를 가차 없이 불태운 사례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온라인 명품 거래는 번호표를 들고 애타게 입장을 기다리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다. 대신 이들이 내세운 것은 오프라인에서 더는 구할 수 없는 상품이다. 공식 수입뿐 아니라 해외 직배송, 구매 대행, 중고 거래 등으로 판매 유형을 다양화하고 그를 통해 잠재적 고객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했다. 명품이 제공하는 경험 가치가 구매에서 사용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오프라인 매장이 희소성을 구매자의 애타는 기다림으로 소화했다면, 온라인 매장은 희소성을 그레이마켓과 상품의 다양화로 돌파했다.
REFERENCE_ 홈쇼핑 

홈쇼핑 역시 이런 희소성에 이끌리는 심리를 이용한다. 판매 제품 중 일부는 의도적으로 수량을 적게 가져오고, 금방 품절 임박 딱지를 붙인다. 2시간 남짓 진행되는 편성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다. 이 기간을 1년 이상으로 길게 설정하는 브랜드도 있다. 명품 시계의 대명사 ‘롤렉스(Rolex)’가 대표적인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터무니없이 적다. 그 때문에 롤렉스 리셀 시 붙는 프리미엄은 천만 원이 넘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시계 구입을 위해 예약을 해도 실제로 제품을 받아보기까지 1년에서 길게는 2년까지도 걸렸다. 또 다른 명품 시계 브랜드 ‘오메가(Omega)’가 쉴 새 없이 리미티드 에디션을 찍어내는 것과는 다른 행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가격이라도 오메가보다는 롤렉스를 선택한다.
RECIPE_ 리셀 마켓 

이제 럭셔리 시장에서 제품을 구매할 만한 구매력이 있다는 것은 충분조건이 아닌 필요조건에 가깝다. 중요한 것은 득템력이다. 제품을 구매할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는데 제품을 가질 수 없다면 웃돈이 붙는다. 쉽게 말해 프리미엄이다. 프리미엄에 해당하는 돈을 지불할 수 있다고 해도 희귀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온라인 명품 플랫폼은 이를 영리하게 이용한다. 래플[1] 방식 판매가 대표적이다. 그레이마켓을 겨냥하는 것은 질 좋은 판매자를 유입시키기에도 더없이 좋은 방식이므로 온라인 시장에서는 이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일례로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의 카드지갑이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59만 원인 반면, 머스트잇에서는 90만 원을 웃돈다. 물론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 지갑은 ‘coming soon' 상태다. 품절 상태라는 뜻이다.
INSIGHT_ Z플렉스  

혹자는 Z세대의 소비 경향이 과시를 중점에 두는 플렉스(Flex)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막상 Z세대는 자신들의 소비는 그렇지 않다며 적극적으로 항변한다. 오히려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것, 흔하지 않은 것을 더욱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최근 지드래곤이 자신의 브랜드 ‘피스마이너스원’과 ‘나이키’의 협업을 통해 발매 예정인 운동화를 지인 101명에게 전달할 것임을 SNS에 알렸다. 지드래곤의 지인이 아니라면 추첨이나 개인 거래를 통해서만 그 신발을 신을 수 있게 된다. 101명과 나머지로 분류되는 세상에서 이제 명품은 대접받기 위해서나 매장에서 으스대고 싶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다. 희귀한 제품을 구입하는 것은 능력이 되었고, 제품을 가진 이와 가지지 못한 이 사이를 손쉽게 구별 지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었다.
FORESIGHT_ 가격상승x2 

희소성은 명품 시장이 독점하는 특성이 아니다. 디자이너 브랜드나 신생 브랜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하나의 전략이 되었다. 그러나 명품 시장이 이 전략을 이용하는 방법은 보다 복잡하다. 같은 물량을 생산하고 문어발식으로 유통망을 다양화하면서 더 많은 수요를 끌어들인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구하기 힘들어 난리니, 해당 브랜드나 제품에 더 끌릴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백화점에서 길게 늘어선 줄이나 온라인의 프리미엄, 해외 배송 등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모두 럭셔리 브랜드의 장사 수완에 지나지 않는다. 유통망이 다양해지는 것은 가격을 낮추는 방안 중 하나였다. 소비자는 다양한 유통망 중에서 가장 저렴한 곳을 택해 제품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품의 공급을 거대 럭셔리 기업이 독점하고 있는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희소가치가 있는 상품은 수요가 끊이지 않아 가격이 올라가고, 소비자는 이미 높게 형성된 가격에서 경쟁력을 찾는다. 언젠가 소비자는 희귀한 제품과 한정된 공급이 만들어 낸 연극 안에서 성실히 더 비싸고 더 희귀한 것을 찾아 나서는 트루먼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과 플랫폼의 지향점에 대해 더 깊이 읽고 싶다면 〈백화점으로 도망치는 아마존〉을 추천합니다.
온라인의 제왕 ‘아마존’이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전략을 택하며 얻고자 했던 것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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