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작업일지
1화

프롤로그; 미대 언니들에서 쓰레기 언니들이 되기까지

미대 언니들에서 쓰레기 언니들이 되기까지


2020년은 코로나19로 전 세계 사람들의 일상이 송두리째 바뀐 한 해였다. 사람들 간의 접촉을 차단하자 자연이 정화되고 있다는 징후도 있었지만, 코로나로 달라진 소비는 곧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 음식 배달이 늘자 각종 플라스틱 용기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고, 각종 일회용품이며 마스크 폐기물이 자연으로 흘러 들어가 동식물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 곳곳에서 기후 위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기이한 일들이 벌어졌다. 아프리카를 강타했던 하늘을 뒤덮는 규모의 메뚜기 떼, 가장 추워야 할 시베리아에서는 온도가 38도까지 치솟아 비키니를 입은 사람들이 선탠하는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으며, 호주에서는 몇 달간 대규모 산불이 꺼질 줄을 몰랐다. 마치 미래 재난 상황을 그리는 영화에나 나올법한 생경한 풍경이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자연환경파괴가 심각하다고 뉴스에서 간접적으로 보는 정도였다면 이제는 누구나 일상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제 환경문제는 심각함을 넘어서서 지구 전체의 생존을 고민해야 할 수준에 이르렀다. 개인으로서는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백년 전의 사람들처럼 살 순 없겠지만 지구에 피해를 덜 끼치며 살아갈 순 없을까.

환경에 대한 고민은 본업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미 지구에 많은 상품이 차고 넘치는데 또 다른 과잉상품을 만들어내는 데 시간을 쓰고 있음에 회의감이 밀려왔다. 돈을 벌지 않는 시간에는 친환경을 지향해 왔음에도 돈을 버는 시간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조력자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불편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자 밥벌이는 당장 그만두지 못하더라도 생활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부터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플라스틱 용기에 든 것을 덜 사기, 소비 줄이기, 쓰는 물건의 품목을 줄이기 등 생각해보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것은 의외로 많았다. SNS에는 삶의 모습을 조금씩 친환경적인 방식으로 바꿔나가는 흔적이 배어들었다. 피스모아 팀원들은 그렇게 생각을 나누다가 모였다. 쓰레기를 만들어내기만 하던 우리가 이제는 남들이 쓸모없다고 버린 쓰레기를 모아다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미대 언니들에서 쓰레기 언니들이 되어버린 우리들의 이야기로 친환경적인 영감을 퍼뜨릴 수 있다면 좋겠다.

 

김나은 ; 신중하게 구매하고 오래 입고 싶어요


디자인을 전공한 만큼 옷은 나를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새로운 디자인의 옷과 비싼 브랜드,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신상품 같은 것에 집착했었어요. 지금도 내가 입는 옷이 나를 보여주는 방법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옷이 진짜 나의 모습을 덮을 만큼 꾸밈이 강한 것보다는 기능적으로 편안하면서도 나를 자연스럽게 표현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의 시선보다 나의 내면에 집중하다 보면 필요한 옷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옷에 관한 저의 신념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좋은 디자인의 옷을 신중하게 구매하고 그 옷을 잘 관리해서 오래 입고 싶다는 것이에요.

피스모아의 작업을 하며 생각보다 훨씬 많은 양의 옷들이 쉽게 구매되고 버려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헌 옷 도매 의류업체에 갔다가 본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던 옷의 무덤을 잊을 수가 없어요. 심지어 가격표가 떼어지지 않은 새 옷도 많았어요. 싼 가격에 쉽게 구매한 옷은 버리기도 쉬운듯해요. 실제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SPA 브랜드의 옷들이 많았고 심지어는 같은 상품이 두세 개씩 있는 경우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옷을 구매할 때 소비를 하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보다는 옷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소비되는 자원들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행동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패브릭 작업을 이어가면서 이런 저의 생각들을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앞으로의 작은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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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인영 ;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물 만드는 일을 하면서


20대 내내 광고디자이너로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것에 익숙해졌었던 것 같아요. 이유 모를 공허함을 달래려고 필요 없는 것들을 사들이기 시작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집착했던 물건이 있었는데, 바로 ‘검정 머리끈’ 이에요. 당시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머리끈을 적어도 백 개 넘게 구매했어요. 사회초년생 때 샀던 머리끈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얼마 쓰지 못하고 남아있어요. 머리끈뿐 아니라 양말, 매니큐어, 에코백 등 정말 수십 가지의 물건들을 사들이면서 공허한 저 자신을 채우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뿐만 아니라 일로서도 끝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물들을 하루에 수십 개 만들곤 했어요. 신상품 소개, 각종 할인, 판촉 이벤트 등 메시지의 내용은 조금씩 달랐지만, 소비를 유도하는 것들이었죠.

어느 날 현장에 설치된 광고물을 확인하러 갔는데 누가 봐도 잘 보이도록 광고물을 덕지덕지 붙였는데도 불구하고 광고를 보는 고객은 없었어요. 그 후에 제가 만들었던 광고물이 폐기되는 현장을 보게 되었어요. 현장 철거 당시 쌓여있는 광고폐기물을 본 순간부터 조금씩 마음이 불편해졌어요. 그 불편한 마음을 시작으로 환경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상에서 작은 것부터 실천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비누를 대신할 수 있는 친환경 열매인 소프넛 애호가가 되었어요. 피스모아 작업을 통해 제로웨이스트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것 같아 스스로 대견하고 기쁜 마음이 듭니다.

 

홍글 ; 소비로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던 ‘나’로부터


30대 초반에 아무리 노력해도 더 나아지지 않는 기분이 들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시기가 있었어요. 무료한 일상을 보내다가 로드바이크라는 취미를 만났어요.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소득에 과분한 고급자전거 용품을 마구 사들이며 여행도 자주 다녔어요. 성공한 사람 코스프레라도 하듯이 SNS에 ‘멋진 나’ 멋진 내가 가진 ‘멋진 물건’을 전시하기 바빴어요. 내가 가진 물건과 남들이 하기 힘든 경험을 한 모습이 나를 상징한다고 여겼었나 봐요. “이걸 갖는다면 너는 좀 더 멋질 거야.”, “이건 모두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야. 너는 그럴 자격이 있어.” 달콤한 마케팅의 속삭임에 보기 좋게 걸려들었죠. 뒤돌아보자면 본래의 ‘나’가 엉망이 되자 ‘다른 멋진 나’가 간절하게 필요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깨달음이 왔을 때 취미생활과 갖고 있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겨났어요.

이제는 물건을 사서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보다는 나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어요. 유독 저 자신이 초라해 보이는 날에도 값비싼 옷을 걸치지 않아도, 특별한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말하곤 해요. 스트레스에는 소비보다 정서적 안정과 휴식이 제일이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물론 제 안에 고급 브랜드를 갖고 싶은 욕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해요. 생활 전반에 있어서 절제하는 법, 만족하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에요. 피스모아 활동을 하게 되면서 저 자신을 좀 더 돌아볼 수 있게 되었어요. 번지르르한 새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이던 우리의 재능을 버려진 것을 줍고 엮어 만드는 곳에 써보고자 해요. 이 책이 영감이 깨어나고 변화가 일어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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