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었노라 벌었노라 커졌노라
1화

벤처캐피털 산업이 초대형화되고 있다.

모험 자본주의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다. 좋은 일이다.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은 소수의 전위대가 의지력을 갖고 역사의 힘을 활용하여 세계 자본주의의 작동 방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가 옳았다. 그러나 혁명가들은 수염을 기른 볼셰비키들이 아니라, 대부분 실리콘 밸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전 세계 기관 자산의 2퍼센트 미만을 운용하고 있는 수천 명의 투자자들이다. 지난 50년 동안, 벤처캐피털(VC) 산업은 글로벌 비즈니스와 세계의 경제를 변화시켜왔던 진취적인 아이디어들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세계 10대 기업 중 일곱 군데는 VC의 지원을 받았다. VC들은 검색 엔진, 아이폰, 전기차, mRNA 백신을 만든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이제 자본주의의 드림 머신(dream machine)은 그 자체로 규모를 키우며 변화하고 있으며, 450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새로운 현금이 VC 업계에 흘러들고 있다. 벤처 업계에 불고 있는 이런 거대한 바람은 지독하게 자기중심적인 창업자들이 돈을 다 날려버리는 것에서부터 연금 자산을 과대평가된 스타트업들에게 허비해버리는 것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리스크를 동반하게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는 VC 산업을 더욱 글로벌하게 만들고, 리스크가 있는 자본을 더욱 다양한 산업들로 유입시키며, VC를 일반 투자자들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들 수 있다. 더욱 거대한 아이디어의 우주를 추구하는 더욱 풍부한 자본의 풀은 경쟁을 촉진할 것이고, 또한 혁신을 촉진해서 더욱 역동적인 형태의 자본주의를 만들 것이다.

VC 산업은 1960년대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금융계에서는 일종의 부적응자 취급을 받아왔다. 햄튼의 대저택에 살며 정장을 입고 세련미가 넘치는 월스트리트와는 대조적으로, 그들은 캘리포니아의 빌라에 살면서 스웨터를 입는 너드(nerd)였다. 주류 금융은 그간 더욱 덩치를 키우고, 더욱 계량화되고, 성숙한 기업의 현금흐름과 자산을 조각내고 분할하는데 더욱 몰두해 왔던 반면, VC는 그러한 추세에 거스르는 일종의 가내수공업 형태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 미숙하거나 특이해서 고리타분한 은행가들과 같은 방안에 앉아 있을 수 없는 기업가들을 찾았고, 너무 참신해서 MBA 출신들이 도무지 재무모델을 만들어낼 수 없는 아이디어를 발굴해서 자금을 지원해왔다.

결과는 놀라웠다. 수십 년 동안 비교적 적은 금액을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VC 펀드들은 오늘날의 증시 시가총액 기준으로 최소한 18조 달러의 가치를 지닌 기업들을 길러냈다. 이러한 기록에는 구글과 같은 거대 기술 플랫폼들의 눈부신 성장이 반영되어 있다. 좀 더 최근에는 VC의 지원을 받은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들이 증시에 상장을 하면서 리비안(Rivian)처럼 화려한 사례에서부터 슬랙(Slack)처럼 소소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대박을 터트리는 시대를 맞았다. 지난 10년의 황금기 동안, 미국 VC 펀드들은 연평균 17퍼센트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몇몇 펀드들은 그보다 훨씬 더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성공은 이제 금융 산업 전반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VC의 후원을 받은 기업들이 상장을 하면서 벌어들인 거액의 결실이 다시 새로운 펀드들로 재배치되고 있다. 한편, 금리가 계속해서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연기금과 국부펀드 운용사 및 기업들은 VC에 대한 부러움으로 잔뜩 달아올랐으며, 서로 앞 다투어 전용 펀드에 더욱 많은 자금을 할당하거나 자체적인 VC 계열사를 설립하고 있다. 올해 지금까지 이렇게 투입된 자금은 거의 600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10년 전에 비해 열 배 높은 수준이다.

돈이 흘러넘치면서 VC는 경제 전반에 더욱 깊숙이, 그리고 더욱 폭넓게 스며들고 있다. 2021년 현재 금액 기준으로 투자의 51퍼센트가 미국 밖에서 이루어질 만큼, 한 때는 미국적 현상이었던 것이 이제는 세계적인 추세가 되었다. 중국의 VC 업계는 최근 소비자 기술 산업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탄압으로 인해 그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나머지 지역에서는 호황을 맞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65개 도시에서 유니콘들을 유치하면서 수십 년 간 잠들어 있는 혁신의 기세가 깨어나고 있다.

VC의 호황은 지금까지 에어비앤비(Airbnb)나 딜리버루(Deliveroo)와 같은 소비자 기술 분야의 기업들로만 한정되어 있었다. 이제는 아직까지 파괴적 혁신이 덜 진행된 분야에도 더욱 많은 현금이 투입될 수 있다. 올해 청정에너지, 우주개발, 생명공학에 대한 투자는 2019년에 비해 두 배에 달한다. 그리고 이 산업은 더욱 개방적이 되고 있다. 한때는 업계의 최상위 펀드들이 초월적인 힘을 가졌던 데 비하여, 지금은 주류의 금융기업들도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으며, 일반 투자자들도 좀 더 저렴한 투자비용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많은 투자기구들이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온갖 VC들이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커리어를 추적하는 등 새로운 전략을 실험하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위험요소도 존재한다. 하나는 돈이 부패할 수 있다는 점이다. 치솟는 기업가치와 풍부한 자본은 기업과 후원자들을 제멋대로 행동하게 만들 수 있다. 2021년 현재 상위 100개의 상장기업들 가운데 54곳이 모두 710억 달러의 손실을 내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배구조는 최악일 수도 있다.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소프트뱅크(SoftBank)의 비전 펀드(Vision Fund)는 그동안 스타트업들에게 거액의 수표를 써주면서 그들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자극했는데, 이해의 충돌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다. 창업자들이 탈선하기도 한다. 위워크(WeWork)의 애덤 뉴먼(Adam Neumann)은 개인숭배 의식과도 같은 음주 파티에 심취해 있었다.

또 다른 위험요소는, 다른 어떤 종류의 자산과 마찬가지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면 수익률이 희석된다는 점이다. 주류의 펀드들은 VC의 악명 높은 경기 요동에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수익률이 기대했던 것보다 낮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는 재미가 없더라고, 경제 자체에는 좋은 것일 수 있다. 여유 있는 자금이 있다면, 그것은 비대해진 주택 시장이나 범람하는 채권 시장보다는 신생기업들에게 투입되는 것이 더 낫다. 스타트업들은 부채가 적기 때문에, 설령 금리가 인상되면서 VC에게 위기가 촉발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금융 시스템을 불안정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VC의 지원을 받는 기업들이 무모하게 돈을 날려버리더라도, 그러한 자금의 상당액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런 자금들이 흘러드는 곳은 결국 차량 호출이나 음식 배달 등의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적어도 이러한 호황은 경쟁을 활성화할 것이다. 올해 VC의 투자액은 5대 기술 기업들의 자본지출 총액 및 연구개발비 지출을 넘어 섰다. 참고로 기술 대기업들은 반독점 규제가 더욱 엄격해질 수 있다는 우려로 인하여 잠재적인 경쟁업체들에 대한 인수를 주저하고 있다.

가장 긍정적인 효과는 혁신을 더욱 촉진할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아무리 자금이 풍부해도 원석이 뿜어내는 광채를 만들어낼 수는 없으며, 기초과학의 혁신적인 발견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주체는 정부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창의적인 기업가들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여전히 발굴되지 않은 채로 남겨져 있다. 지금까지의 VC 호황으로 인하여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한계가 확장되었고, 덕분에 더욱 어렵고 모험적인 분야에까지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모험적인 투자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미국 이외의 기업가들도 이러한 분위기에 합류할 수 있는 더욱 좋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또한 클라우드 컴퓨팅과 원격 근무의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 벤처캐피털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선택해서 그것을 더욱 크고 훌륭하게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논리가 VC 산업 자체에 적용된다는 것은 당연히 옳은 것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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