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병은 산재고 화장실권은 인권인 세상

12월 2일 - FORECAST

일하느라 화장실에 못 가는 사람들이 질병에 걸리고 있다. 우리는 왜 직장에서 화장실 얘기를 쉬쉬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일명 ‘화장실병’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근무 시간 중 제때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근로자들이 방광염, 질염, 요도염 등 비뇨기 질환에 걸리는 것이다. 웃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왜 직장에서 화장실 얘기를 쉬쉬할까? 화장실 사용은 우리 사회 노동 실태의 어떤 단면일까?
WHY_ 지금 화장실 사용권을 읽어야 하는 이유

화장실 이용이 어려워 방광염에 걸린 한 초등학교 급식 조리원 인터뷰에서, 산재 신청 여부를 묻자 얻은 답변은 “생각도 해 본 적 없다”였다. 해당 급식실에서 방광염에 걸린 조리원은 일곱 명 중 일곱 명 전원이었다. 직원들끼리도 서로 몰랐다. 화장실 사용은 근무 환경의 기본이다. 복지라 부르기도 거창하다. 그 때문에 오히려 ‘알아서 할 문제’로 은폐돼 왔다. 화장실병은 노동자 개인이 숨겨야 할 질환, 성과를 위한 고충이 아니라 사회적 논의가 시급한 문제다.
DEFINITION_ 시간

화장실을 못 가는 근로자는 크게 두 유형이다. 고정 사업장 근로자와 이동‧방문 노동자. 공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노동자는 2시간 근무 후 10분 휴식한다. 배라도 한번 아프면 난감하다. 학습지 교사는 15분 간격으로 평일 스케줄이 촘촘히 짜여 있다. ‘이주의 일잘러 선생님’이 되기 위해선 한 건이라도 더 ‘뛰어야’ 한다. 지난 3월 〈여성 노동자 일터 내 화장실 이용 실태 및 건강 영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할 때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 1위는 ‘갈 시간이 없다’였다. 2위 ‘자리를 비워야 하는 경우 대체 인력이 없다’ 또한 시간 부족의 연장 선상이다. 시간은 돈이다. 고용주 입장에선 비용이고 노동자 입장에선 실적이다.
KEYMAN_ 워터세이버

대표적인 사례는 2013년 미국 시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설비 제조 업체 워터세이버(WaterSaver)는 근로자들의 화장실 사용 시간을 하루 6분으로 제한해 논란이 됐다. 워터세이버의 스티브 커스틴 CEO는 직원들의 잦은 화장실 출입으로 인해 월 목표 생산시간 120시간을 달성하지 못했다고 짚었다. 그래서 그가 새롭게 제시한 건 화장실 기프트카드 시스템이었다. 일일 근무시간 중 한 번도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하루 1달러, 그러니 월간 20달러 상당의 쿠폰을 주겠다고 했다. 워터 세이버인 동시에 대단한 머니 세이버였다.
MONEY_ 콜센티브

“화장실에 오래 있으면 팀장이 데리러 온다.” 상담 중 이동 금지로 유명한 콜센터 직군의 발언이다. 한 콜센터의 모든 직원은 인형을 들고 화장실에 간다. 인형이 없으면 누가 이미 화장실에 간 거니 자리로 돌아와 하던 업무를 마저 하면 된다. 인형과 함께라면 화장실 기다리느라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다. 콜센터 인센티브는 직급에 따라 차이 난다. 정해진 직급이 아니라 매일의 성과가 반영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한 콜센터 직원에 따르면 제일 높은 직급의 인센티브는 40만 원이다. 가장 낮은 직급 인센티브는 5만 원이다. 화장실 가지 않는 것도 능력이다.
NUMBER_ 5.5시간

서울 시내버스 노선 356개 가운데 27개는 운행거리가 60km 이상이다. 왕복 65km 구간을 운행하는 한 운전사에 따르면 그의 평균 운행 시간은 5.5시간이다. 비나 눈이라도 오면 당연히 늘어진다. 한 유튜버가 버스 운전사에게 “화장실 가고 싶을 땐 어떡하냐” 묻자, 그의 대답은 “앞 차에겐 천천히, 뒷 차에겐 빠르게 운행해 달라고 전화한다”였다. 
RECIPE_ 마시지않는다

보다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애초에 물을 마시지 않으면 된다. 상술한 여성 노동자 화장실 이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화장실 이용이 어렵다'고 답한 근로자 중 ‘수분 섭취 제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83.1퍼센트였다. ‘음식물 섭취 제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사람은 74.5퍼센트였다. 해당 보고서는 국내 노동 환경에서 화장실 사용 실태를 전면적으로 다룬 유일한 자료다. 관련 통계자료를 찾기 어려운 이유는, 화장실 사용을 ‘알아서 할’ 문제로 생각하는 분위기 때문이다.
CONFLICT_ 주인

지난 8월 26일 한 식당 점주가 화장실을 사용한 배달 기사를 폭행한 영상이 화제가 됐다. 화근은 화장실 사용이었다. 정수기 관리직, 에어컨 수리기사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은 회원 집에서 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고객 만족 평가 제도를 무시할 수 없다. 민원은 평가 요소다. 곧 불이익이다. 상가 화장실의 경우 매주 비밀번호를 바꾼다. ‘외부인은 출입을 삼가 달라’는 문구에 방역과 보안 외에 담긴 의미는 ‘내 화장실이야’다. 화장실은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다. 우리 집 화장실은 보여주기 민망할 수 있고 우리 가게 화장실은 청소하기 귀찮을 수 있다. 오늘 처음 본 사람이 가려진 공간에서 뭘 할지 알 수 없다. 미묘한 이해관계가 화장실을 둘러싸고 있다.
RISK_ 공중화장실

그렇다면 누구나 언제든 사용 가능한 공중화장실 증설이 답일까.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에서 공중화장실이 가장 잘 마련된 나라 중 하나다. 2004년 세계 최초로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정도로 공중화장실에 적극적이었다. 2021년 12월 현재 공중화장실은 전국 5만 개, 서울에만 5200여 개가 있다. 전철역, 공공기관을 제하고 공원 등에 설치된 순수한 공중화장실만 1000여 개다. 뉴욕의 공중화장실 수는 660개다. 런던은 400개다. 한국의 공중화장실 수를 현재의 두 배로 늘린다 했을 때 혜택을 볼 직군도 분명 있다. 화장실이 아예 없는 건설 노동직, 운수직 등이다. 하지만 문의 전화가 빗발치는 콜센터 직원이나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는 철도 운전사에겐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상술했듯 업무 시간에 화장실을 가지 못하는 이유 1위는 ‘갈 시간이 없다’였다.
REFERENCE_캘리포니아

2019년 캘리포니아에 일명 ‘화장실 휴게법’이 등장했다. 근로자가 4시간 근무마다 10분의 휴식 시간을 갖되,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은 이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게 골자다. 말 그대로 순수한 ‘휴게 시간’ 보장법이다. 지난 9월 22일 캘리포니아는 대형 소매회사들의 노동 쿼터제를 제한하는 법을 도입했다. 즉 회사 측에서 직원들에게 업무 할당량을 부과하지 못한다. 코로나 여파로 업무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물류회사의 근무 실태에 대한 일침이다. 캘리포니아 측이 실명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최근까지 ‘화장실 갈 시간도 안 주던 회사’로 논란이 되던 곳이다.
INSIGHT_ 시간

화장실권은 결국 시간과 비용의 문제다. 화장실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고용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화장실은 누구에겐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는 공간이고, 누구에겐 직장 상사의 눈길을 피하는 도피처고, 누구에겐 유일한 휴게 공간이다. 화장실에 오래 있고 싶어서 화장실권을 주장하는 근로자는 아무도 없다. 자리를 비운다 해서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지 않을 권리, 나의 워크플로는 내가 정할 권리의 가장 첫 단계에 화장실권이 있다.
FORESIGHT_ 인권

최근 화장실 이용 실태를 다룬 한 인터넷 기사에 성난 댓글이 달렸다. “나도 혼자 가게 운영하느라 밥도 못 먹고 일하는데, 화장실 갖고 난리냐”가 요지. 오늘 포캐스트는 고용이 불안정한 조직 내 근로자들의 화장실을 다뤘다. 자영업자의 화장실과는 다른 결이다. 그럼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나도 회사원이지만 오늘 화장실 참아 가며 일했는데요?” 우리가 화장실이란 단어에 솔깃한 건 그만큼 모든 근로자의 환경에 해당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학습지 교사와 버스 운전사의 화장실은 최전방에 있다. 고용 형태조차 불안정한 업종의 단면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나 사무직의 화장실권 또한 근로의 질을 드러내는 지표다. 현재는 논의가 차순위일 뿐이다. 화장실권은 모든 직군에 퍼져야 할 노동권 개선의 시작이다. 업무에 지쳤을 때 누구는 휴가를 가고 누구는 고작 화장실로 간다. 다시 말하지만 화장실 갈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이 화장실이 좋아서 그러지 않는다. 직장 내 무언의 압박부터 다시 보자. 쉬고 싶을 때, 아플 때, 힘들 때 스스로가 무능력하게 여겨지지는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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