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을 봤습니다. 단숨에 봤습니다. 덕분에 마감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마감이 밀리고 밀렸습니다. 따지고 보면 《
가디언》 때문입니다. 이렇게 강권했거든요. “미친 듯이 좋은 작품이다. 아직 보지 않았다면 하던 일을 모두 멈추고 당장 시청하라.” 《
가디언》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팔대지옥 가운데 아비지옥 다음으로 무시무시하다는 마감지옥에 떨어졌습니다. 잘못한 게 진짜 없는데 지옥에 가는 게 정말 가디언의 뜻일까요?
연상호 감독의 〈지옥〉은 가디언의 뜻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신의 뜻 말입니다. 갑자기 천사가 나타납니다. 죽음을 고지합니다. 당신은 몇 년 몇 월 몇 시 몇 분에 죽는다고 알려줍니다. 그리곤 지옥에 간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천사가 말한 시각에 악마들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산채로 불태워서 지옥으로 끌고 갑니다. 이걸 시연이라고 합니다. 시연이 TV로 생중계되면서 세상이 바뀝니다. 카톨릭과 개신교와 이슬람과 불교와 힌두교를 압도하는 신흥 종교가 탄생합니다. 새진리회입니다.
새진리회는 지상에서 시연을 행하는 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해석해 줍니다. “신은 더 이상 인간의 죄를 용납하지 않는다. 인간이 죄를 짓지 않도록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 천사가 고지하고 악마가 실행하는 지옥행 급행열차를 만들었다. 정답을 찍어줬는데도 시험 망치는 학생은 지옥에 가도 싸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새진리회는 죄 없는 완전무결한 새 세상이 열렸다고 주장합니다.
새로운 세상인 건 맞습니다. 완전무결하진 않습니다. 오류투성이입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는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고지를 받은 자는 죄인으로 낙인찍힙니다. 가족까지 손가락질을 당합니다. 고지를 받은 죄인은 죄인이 틀림없습니다. 신이 실수를 할 리가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고지 당한 사실을 숨기기 시작합니다. 새진리회는 고지 당한 죄인들을 색출해서 공개 처형 시키려고 혈안이 됩니다. 죄인의 죄가 명백할수록 신의 뜻을 새진리회가 참되게 해석한 셈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누가 처음 고지를 하는 천사를 신의 뜻을 전하는 천사라고 정의했을까요. 누가 처음 시연을 하는 악마를 신의 뜻을 행하는 악마라고 규정했을까요. 누가 처음 사람이 끌려가는 그곳이 우리가 아는 신의 지옥이 맞다고 단정했을까요. 〈지옥〉에선
정진수라는 사람입니다. 정진수는 시연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훨씬 전부터 시연은 신의 의지라고 설파했습니다. 실제로 시연이 일어나자 세상은 정진수의 해석에 의존하게 됩니다. 천사와 악마 그리고 지옥은 인간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을 두려워합니다. 극도의 공포는 인간이 터무니없는 것도 믿게 만듭니다. 〈지옥〉도 그랬습니다. 패닉 상태였던 세상은 정진수라는 개인의 주관적 해석을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신흥 종교가 탄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