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표의 모험

12월 3일 - FORECAST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모든 당무를 거부하고 떠났다. 사상 초유의 당 대표와 대선 후보 간 갈등의 끝에, 누가 웃게 될 것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잠행하고 있다. 모든 당무를 거부하고 지방으로 내려갔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 후보를 보유한 야당 대표의 돌발행동에 정치계와 언론,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그간 지적돼 온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WHY_지금 이준석 대표의 잠행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

D-97. 대선을 100일 남짓 남긴 시점에 국민의힘은 집안싸움을 하고 있다. 당장 윤석열 후보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 사이 이재명 후보는 벌어진 지지율을 차곡차곡 좁히고 있다. 당 대표가 대선 후보의 지지율에 타격을 입히는 행보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잠행은 이 대표에게 정치 인생의 운명을 건 도박이다. 갈등이 수습되지 않은 채 사태가 장기화한다면, 이는 윤 후보의 대권 행보에 치명적인 균열을 안길 수 있다.
CONFLICT_ 당무우선권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의 갈등은 당무우선권을 두고 표면화되었다. 당무우선권은 대선 후보 선출 시 후보에게 당무 전반에 관한 의사 결정권을 넘기는 것을 말한다. 국민의힘 당헌에는 “대통령 후보자는 필요한 범위 내에서 당무 전반에 대한 모든 권한을 우선하여 가진다”라고 명시돼 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두 정치인의 입지가 달라진다. 양측의 해석은 엇갈린다. 윤석열 후보가 ‘모든 권한’을 주장한다면, 이준석 대표는 ‘필요한 범위’에 주목한다. 모든 권한을 넘기고 물러나 있으라는 윤 측과 대표로서 입지를 찾으려는 이 대표의 힘겨루기가 계속되었다. 이번 잠행은 양측의 힘의 균형이 한쪽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난, 예정된 충돌이다.
DEFINITION_ 패싱

이준석 패싱은 현실이다. 지난 29일 윤석열 후보가 이수정 교수를 공동 상임선대위원장 선임을 발표한 것이 표면적 원인이었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총괄선대위원장으로 모시려던 이준석 대표의 노력은 최종적으로 ‘패싱’됐다. 그래서 이번 잠행의 목적은 시위다. 지금처럼 패싱이 계속되면 정치인으로서 이준석 대표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가 당선된다면 대선 기간 내내 후보와 갈등을 보인 이준석 대표의 처지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MONEY_ 대선비용 

결국 자리 싸움이고 돈 싸움이다. 표면적으론 윤석열과 이준석의 갈등이지만 본질적으론 당과 보수의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이른바 윤핵관들과 이준석의 파워게임이다. 여기엔 작게는 당의 인사권과 대선비용 집행권이 걸려 있고 크게는 청와대의 파워와 머니가 달려 있다. 이준석 대표는 지난 12월 2일 저녁 JTBC와 단독 인터뷰를 했다. 여기서 윤석열 후보 주변의 핵심 관계자들이 국민의힘 내부 윤석열 후보에 인의 장막을 형성하고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는지 적시했다. 이준석 대표는 윤핵관이 자신에게 “홍보본부장 자리를 꿰차서 당의 홍보비를 유용하려 한다”는 식의 인신공격을 해왔다고 말했다. 본질은 국민의힘이 이준석 대표가 당선된 6.11체제에서 윤석열 후보가 선출된 11.5체제로 회귀했다는 사실이다. 당 대표 선거에서 패배한 중진들이 윤 후보를 깃발 삼아 당을 좌지우지하려고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김종인 위원장은 인적 쇄신을 주무기로 삼는 정치인이다. 윤핵관들도 박근혜 비대위 시절에 김위원장이 쇄신했던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김종인 위원장이 윤 후보 주변 인물들을 파리떼에 비유한 것도 그래서다. 윤핵관과 파리떼는 윤석열 대선열차에 올라타 당과 청와대에서 자리를 꿰차고 싶어 한다. 윤석열호가 패배한다 해도 제주도 잠행을 한 당 대표한테 책임을 떠넘길 태세다. 이준석 대표는 JTBC 인터뷰에서 “실패한 대통령 후보와 실패한 대통령을 도울 생각은 없다”고까지 말했다. 선출된 대선 후보가 당을 장악하는 과정과 인수위를 구성하는 과정만 보면 집권 5년의 성패를 알 수 있다. 윤핵관과 파리떼에 둘러싸인 윤석열은 이미 실패하고 있다. 이준석은 더 늦기 전에, 윤 후보 측의 무시에 맞서 영향력을 보여 주고 정치적 입지를 되찾아야 했다. 당 대표라는 입지를 활용해서 윤석열 후보과 윤핵관의 관계를 흔들어야만 했다. 말 잘 듣는 주변인을 선호하는 보스 기질이 강한 윤석열이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대선은 필패다. 결국 이준석은 패싱에 맞서 잠행이라는 강수를 뒀다. 이준석 대표는 JTBC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 대표는 대선 후보의 부하가 아니다.”
KEYMAN_ 김종인

복귀를 위한 이 대표의 요구 조건은 김종인 전 위원장의 영입이다. 김 전 위원장은 대선 기간이면 야권, 여권 할 것 없이 모시려 하는 정치권의 킹메이커다. 윤 후보에게 김 전 위원장은 이재명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를 견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굳히기 카드였다. 한편으로 이 대표에게 김 전 위원장은 당내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고, 대선 이후에 야권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꼭 필요한 인물이다. 김 전 위원장은 이 대표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정치적 후원인으로 평가받는다. 당의 상임선대위원장 영입을 놓고 이 대표는 김종인 원톱을 주장했고, 윤 측은 김병준 전 의원과 역할을 나눌 것을 요구했다. 윤 후보는 최종적으로 김병준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선임했고, 김 전 위원장은 당 합류를 거절했다. 이 대표가 잠행을 결정한 이유다. 결국 윤 후보는 김종인 전 위원장이나 이준석 대표의 도움 없이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NUMBER_ 2030

2030 세대는 이번 대선의 캐스팅보트다. 양당은 청년층 표심을 잡기 위한 인사 영입에 공을 들이고, 청년 선대위를 발족하는 등 2030 세대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올인하고 있다. 이 대표의 이번 잠행이 도박이라면, 그는 청년 정치인으로서의 상징성을 판돈으로 걸었다. 그는 올해 6월, 보수화하는 2030 세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으며 헌정사상 최초의 30대 제1 야당 대표로 선출됐다. 대선 후보 선출 기간 동안 후보자들은 너도나도 이준석 마케팅을 벌이며 청년층에 지지를 호소했다. 중요한 것은 이 대표의 잠행 사태가 국민의힘 2030 세대 지지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다. 청년 정치인으로서 이 대표의 상징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4월 재·보궐선거나 9월 대선 후보 선출 당시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REFERENCE_ 서울시장 선거

서울시장 선거는 대선의 바로미터다. 지난 4·7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됐는데, 이때 가장 주목받은 것이 2030 세대의 표심 변화였다. 20대 유권자의 55.3퍼센트, 30대 유권자 56.퍼센트가 야당에 표를 던졌다. 20대 남성의 72.5퍼센트가 오세훈 후보에게 표를 줬다. 4월 재·보궐선거에서 야권의 압승을 끌어낸 것은 2030 세대였고, 그것이 청년 세대가 대선의 캐스팅 보트로 주목받는 이유다. 이준석은 당의 대표로서 그전까지 5년간 선거에 참패해온 당에 승리를 안겨준 공신이자, 당의 젊은층 지지율을 끌어올린 당원으로서 자신의 공로와 입지를 인정받길 바라고 있다.
RISK_ 윤석열

윤 후보 측이 대선 레이스에서 대놓고 이 대표를 패싱한 건, 이 대표의 2030 세대에 대한 영향력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청년층 남성들은 홍준표 후보의 대선 탈락과 함께 탈당 러시를 하며 등을 돌렸다. 2030 세대 여성 유권자의 경우 페미니즘 논란으로 이 대표와 각을 세우고 있다. 윤 후보 측에서는 이 대표가 없더라도 2030 세대의 표심에는 큰 영향이 없을 거라고 판단한 듯 보인다. 문제는 윤석열의 경쟁력이다. 이 대표가 부재할 때, 당의 중심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선거 유세나 정치 활동 과정에서 정무 감각을 보여줘야 하는데, 오히려 그때마다 너무나 정치적이지 않은 언행으로 지지율을 갉아 먹고 있다. 주 52시간제를 철폐하겠다는 발언 등이 그렇다. 대선주자로서 윤 후보의 리스크, 그로 인해 가라앉는 지지율은 이 대표가 윤 측의 패싱에 맞서 항명하고, 자신의 입지를 요구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RECIPE_ 지지율

이번 파동의 향방은 잠행이 장기화되는 시점에서 윤 후보의 지지율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달려 있다. 3일 차인 오늘, 그의 제주행이 크게 이슈가 되면서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11월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실시한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후보는 34퍼센트, 이재명 후보는 33퍼센트를 기록했다. 격차는 1퍼센트였다. 당선 전망에서는 이 후보가 윤 후보를 1퍼센트 앞섰다.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후보는 기세를 타고 있고, 윤 후보는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INSIGHT_ 모험

이준석 패싱에는 윤 후보 측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이 대표 없이도 이재명 후보를 꺾을 수 있다는 자신감. 나아가 김종인이라는 킹메이커 없이도 대선에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판단의 기준은 지지율이다. 대장동 논란과 비호감 이미지로 지지율이 답보 상태인 이재명 후보를 거뜬히 이긴다는 공식, 비공식의 지표를 여기저기서 확인했을 것이다. 지지율에 취한 윤 후보 측은 이 대표는 물론이고 김종인 전 위원장까지도 그들의 집권 이후의 권력 게임에서 제외하려 했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이 대표는 당내 대선주자의 지지율에 흠집을 내서라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지켜내야 했다. 정치 내공이 부족한 윤 후보의 약점을 공략해서 자신이 대선판을 뒤흔들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잠행은 노련한 젊은 정치가의 과감하고 영리한 전략이다.
FORESIGHT_ 담판

이준석 대표가 잠행을 결심했을 때, 그는 자신의 정치생명의 일부를 걸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보면 도박은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 같다. 국민의힘은 12월 3일에 윤 후보가 이 대표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로 향한다고 언론에 밝혔다. 일단 패싱은 멈춘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향후 정치적 입지를 보장받을 수 있는가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의 거취가 중요해지는 대목이다. 윤 후보가 이 대표의 잠행을 멈추게 하려면 당내에 김 전 위원장의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윤핵관 측에서는 마뜩잖은 일이다.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여기서 이 대표의 잠행을 멈춰 세우고, 하루빨리 당내 갈등을 수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락하는 지지율 추이를 어찌할 도리가 없다. 윤석열 후보가 윤핵관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제주도에서 이준석 후보와 푸른밤을 보내느냐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자신의 정치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에 97일 후 대권의 향방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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