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인가 예방인가

12월 14일 - FORECAST

n번방 방지법이 시행됐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디까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도마 위에 올랐다. 2020년 5월 4일 발의되어 지난 2021년 12월 10일부터 시행됐고 카카오톡 등 주요 메신저나 플랫폼에서 불법 촬영물 필터링이 시작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검열 공포”라고 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자유에는 한계가 있다”라고 말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디까지 자유를 제한할 수 있나?
WHY_ 지금 n번방 방지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검열은 민감한 문제다. 대한민국 헌법 제17조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18조는 통신의 자유를 보장한다. n번방 사건은 그 자유를 의심케 했다. 코로나19 이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였고 부끄러운 민낯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개정안은 실행 첫날부터 논란이 거세다. 정치권은 확연한 의견 차이를 보인다. 국가의 역할론과도 이어지는 이 논의는 대선을 관통해 헌법상 자유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NUMBER_ 5

n번방 방지법은 크게 다섯 종류다. 성폭법 개정안은 불법 카메라 촬영물 관련 처벌 수위를 높였다. 시청자도 처벌한다. 형법 일부 개정안은 미성년자 의제 강간 연령을 13세에서 16세로 높였다. 아청법 개정안은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을 정확히 성착취물로 규정한다. 범죄 모의 처벌 및 구입·소지자의 전반적 형량이 강화됐다. 범죄수익은닉 처벌법 개정안은 범죄로 인한 수익의 연계성 조건을 강화했다. 이번에 논란인 법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다. n번방 방지법 전체가 아니다. n번방 범죄의 심각성은 해당 법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제한할 우려가 있다. 분리해서 봐야 한다.
DEFINITION_ 조치의무

정확히는 사업자에게 조치 의무를 지운 것이다. 일평균 국내 이용자 수 10만 명 이상 또는 연평균 매출액 10억 원 이상의 부가통신사업자는 불법 촬영물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는 등의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하도록 정했다. 포털과 소셜 미디어, 인터넷 커뮤니티를 모두 포괄한다. 네이버·카카오는 오픈 채팅 그룹만 적용된다. 문제가 된 텔레그램과 디스코드엔 적용 불가하다. 본사 위치도 모르고 정부에 협조를 안 한다. 규제 가능 기업에만 사전 감시 의무를 내린 셈이라 기업 신뢰도는 낮아지고 사업자도 부담스럽다. 불법 촬영물 여부는 국가가 제공한 필터링 기술에 의해 판별된다.
RECIPE_ DNA

불법 촬영물 표준 필터링 기술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했고 올 8월부터 공공 DNA 데이터베이스와 함께 제공됐다. 영상물의 특징값인 DNA를 데이터베이스와 비교·식별하여 게재 제한 여부를 결정한다. 데이터베이스는 방통위가 제공한다. 기존에 신고 받거나 모니터링한 불법 촬영물의 화면상 특정 정보를 코드화한 것이다. 기계적 방식이다. 이러한 알고리즘 기술은 인간의 개입이 없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다. 적어도 방통위에서 주장하듯 사람이 필터링하는 것이 아니니 사생활 침해 우려는 줄어든다. 다만 코드나 해시값은 우회할 수 있고 아예 새로운 형태의 성착취물이라면 기존 데이터베이스로는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엄한 게시물을 제재하는 사례도 잇따른다. 법안이 시행되자 각종 검열 테스트 방이 생겨나며 촌극을 빚은 이유다.
MONEY_ 50만 원

과잉 입법일까? 지난 11월 29일 n번방 사태의 주범 중 하나인 ‘갓갓’ 문형욱의 성착취물을 구매한 20대에게 내려진 벌금은 50만 원이었다.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가 더해졌다. 200여 개의 아동·청소년음란물을 구입해 소지한 죄다. n번방 방지법으로 각종 처벌 수위가 높아졌지만 단순 시청자나 소지자, 구매자에 대해서는 아직 솜방망이 처벌이다. n번방 사태 당시 입법으로 이어졌던 국민적 공분은 어디로 가고 시행할 때가 되니 정치권을 포함한 일부 여론이 날을 세운다. 해당 법은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정치권의 이번 공방은 특정 표층을 노린다는 분석이 많다.
CONFLICT_ 빅브라더

헌법상 기본권의 제한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될 수 있다. n번방의 심각성은 국민 모두가 안다. 핵심은 얼마나 제한될 수 있는가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빅 브라더는 검열과 감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다. 이 법은 빅 브라더일까? 정보인권 전문가들의 시민 단체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3월 9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청구 배경으로 사업자에게 게시물 감시 의무를 지운 것은 국제 인권 기준에 반하며 이로 인해 통신의 비밀,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을 침해한다고 제기했다. 게시물 감시 의무는 기본권과 큰 정부를 동시에 겨누는 양날의 검이다. 방통위는 개인 간의 대화방을 절대 열람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지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네이버 비공개 카페는 공개된 곳이라고 볼 수 있을까? 반대 측이 기준의 모호성을 비판하는 이유 중 하나다.
REFERENCE_ 테러방지법

유사한 논의는 2016년 19대 국회에서도 있었다. 아이러니하게 박근혜 정부였고 미래통합당은 찬성, 더불어민주당은 반대였다. 만 8일 17분을 필리버스터로 여야가 싸웠다. 테러방지법은 국정원이 대테러 활동에 필요한 정보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한 추적을 할 수 있다는 조항이 문제가 됐다. 여기서도 테러 위험 인물에 대한 출입국·금융거래, 통신 이용 등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는데 기본권 침해의 소지가 있었다. 결국 이 법은 통과되었고 아직도 개정이나 폐기 수순은 없다. 중요한 건 이 법 이후 텔레그램 가입자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텔레그램으로의 사이버 망명은 박근혜 정부가 2014년에 노동당 부대표 카카오톡 사찰 논란을 빚었을 때 크게 일어났다.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는 법률은 오히려 사람들을 음지로 내몰 수 있다.
KEYMAN_ 파벨 두로프

텔레그램이 뭐길래 대규모 망명이 일어났을까. 창업자 파벨 두로프는 러시아 태생이다. 텔레그램은 2013년 최초 출시됐고 지난 11월 전까지 완전히 비영리였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두로프가 러시아에서 상당한 억만장자였기 때문이다. 수익을 창출하지 않으니 각종 규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텔레그램의 보안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전문가들은 많다. 그러나 유저들이 안심하는 것은 이용자 정보를 어떤 기관에도 제공하지 않는 정책 때문이다. 구 동구권에서 검열 없는 소셜 미디어로 유명한 브콘탁테(VK)는 유로마이단 시위 참가자 정보를 제출하라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요구를 거절한 일이 있다. 파벨 두로프는 브콘탁테의 개발자이자 CEO였고 보복을 피해 독일로 가서 텔레그램을 만들었다. 표현의 자유는 좋은 취지지만 이를 표방하는 앱은 늘 극단주의자나 음성 이용자로 몸살을 앓는다. 팔러가 양대 마켓에서 퇴출당한 것도, 메타가 혐오 표현을 방조했다가 논란이 된 것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RISK_ 실효성

법안의 필요성과 기본권 침해의 충돌 속에 잊혀가는 건 당시 n번방 사건이다. 법안이 촉발된 이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면 실효성 논란이 다르게 보인다. n번방 사건이 악랄했던 이유는 범행 대상이 성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거나 교내 동류 집단을 강하게 의식하는 미성년자였다는 점이다. 범행 수법은 주로 고수익 알바로 유혹하거나 소위 ‘일탈계’를 운영하는 미성년자에게 접근해 협박하는 식이었다. 음란물 규제가 약한 트위터의 경우 이번 개정안 시행 이후에도 자신의 신체를 촬영해 올리는 것에는 문제가 없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하나 기존 n번방 범죄자들의 수법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감시 의무에 텔레그램이 빠졌다는 것 역시 오히려 텔레그램의 안정성을 입증하는 셈이 된다. 사전적 조치는 전 국민의 일부 게시물 업로드 직전이 아니라 피해자와 범죄자의 접점에 있어야 했다.
INSIGHT_ 톰과제리

이번 개정안은 사적 대화를 들여다볼 수 없고 방통위의 제한된 성착취물 DB 내에서 간단한 필터링을 거치는 것으로 검열이라고 볼 수 있을지 속단이 어렵다. 다만 질문은 남는다. 헌법 가치는 자유와 제한을 동시에 언급하는데 그럼 국가는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을까? 파벨 두로프는 한국의 테러방지법 제정에 대해 “정치인들이 사이버 검열 등을 해야 국민이 안전하다라고 하는데 그들 말에 너무 의존할 필요 없다”라며 폄하했다. 그러나 텔레그램에서 일어나는 숱한 문제는 우리가 자유를 누릴 정도의 시민 사회 성숙을 이뤘는지 반문케 한다. 시장주의자는 작은 정부를 바라지만 그것은 건강한 시장을 전제로 한다. 마찬가지로 리버럴리즘의 가치를 수호하는 정부는 성숙한 시민 의식 위에서 생긴다. 강제냐 자정이냐는 기독교의 자유의지나 최근 넷플릭스에서 흥행한 〈지옥〉을 연상케 한다. 만인의 만인에 의한 감시 상태는 억지지만 그럼에도 n번방의 충격은 컸다. 결국 입법 과정에서 사회적 공분이 아닌 합의가 필요했다. 오픈 채팅방에 가족 사진을 올리는 사람도 거의 없을뿐더러 고양이 사진이 조금 늦게 간다고 실질적 불편을 겪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정작 피해자에게 별 도움도 되지 못하고 범죄를 놓쳐버리는 〈톰과제리〉 같은 실효성이 문제다.
FORESIGHT_ 마이데이터

자유민주주의 정부는 리버럴리즘을 지향한다. 정부가 교정할 것이 없는 세상은 자유주의식 유토피아다. 선진국의 강한 시민 사회가 모두 작은 정부를 지향하진 않지만 적어도 프라이버시만큼은 모두 핵심 가치로 생각한다. 우리 헌법상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과 표현의 자유는 개인주의화 되는 사회적 흐름 속에 중요한 화두이자 가치가 될 것이다. 알고리즘이 무차별적으로 수집하는 정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반대로 개인이 한 플랫폼에서 발생시킨 데이터를 타사의 서비스에 적용할 수 있는 마이데이터가 주목받는 시대다. 데이터의 주권은 개인에게 옮겨가고 있다. 전 공민을 감시하는 중국, 그리고 백신 접종마저 거부하는 서방 국가 사이에 한국은 서 있다. 이번 개정안의 단초가 된 n번방 사태와 별개로 이번 개정안은 데이터의 주권 측면에서 장기적인 홍역을 앓을 것이다.


소셜 미디어와 검열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누가 의사소통을 통제할 것인가》를 추천합니다.
미국 테크 기업인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사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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