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신소의 자격

12월 16일 - FORECAST

불법 흥신소가 범죄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 데이터 수집의 감시는 누구의 몫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2월 10일 서울 송파구에서 피의자 이석준이 헤어진 연인의 가족을 찾아가 보복 살해했다. 피의자 이 씨가 피해자의 주소를 알아낸 경로는 불법 흥신소였다. 해당 흥신소 운영자가 체포된 혐의는 고작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다. 흥신소의 자격은 어디까지인가? 법의 사각지대에 갇힌 데이터 감시의 의무는 누구에게 있는가?
WHY_ 지금 탐정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왜 흥신소를 찾아갈까? 피의자 이석준처럼 범죄를 노리는 사람이 있다. 혹은 경찰 등 공권력의 도움 없이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 사건은 불법 흥신소의 정보가 악용된 사례지만, 흥신소의 성행은 일반인이 수집하지 못하는 정보의 분명한 수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나쁜 정보란 없다. 정보를 유통하고 이용하는 사람이 문제일 뿐이다. 정보의 평등을 넘어 정보의 바람직한 쓰임은 어떤 것일까. 불법 흥신소를 근절하는 탐정법이 논의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DEFINITION_ 탐정

탐정인가 흥신소인가 민간 조사인가 심부름센터인가. 한국에서 ‘탐정’이라는 명칭은 지난 40여 년간 사용 금지였다. 국민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이유였다. 2020년 8월 해당 조항이 삭제되며 탐정 사무소 개업이 공식적으로 가능해졌다. 명칭만 있을 뿐 관련 업태 규정은 1년이 넘도록 부재하다. 법적 공백을 이용해 민간 기관은 자격증 장사를 하느라 바쁘다. 국가 공인, 경찰청 승인이란 말은 허위다. 탐정의 업무 영역이나 권한에 대한 합의도 없다. 탐정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NUMBER_ 65

탐정을 자처하는 이들과 흥신소 운영자는 자격증 한 장 차이다. 사무실도 사업자 등록도 필요 없다. 한국직업능력연구원 민간자격센터에 따르면 탐정 명칭을 사용하는 민간 자격증은 현재 65종이다. 이 가운데 49종은 올해 신설됐다. PIA 사설 탐정사, 특수 경호사, 도·감청 탐색사 등 범위를 넓히면 관련 자격증은 끝이 없다.
MONEY_ 31만 원

탐정이 되려면 비용이 얼마나 들까? 자칭 대한민국 탐정 사관학교 피아사이버아카데미에 문의한 결과 1·2차 시험 응시료 6만 원, 최종 교육비 25만 원으로 총 31만 원이면 자격증이 나온다. 관련 경력이 없어도 걱정할 필요 없다. 해당 사이트에서 수강료 58만 원을 내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시험도 100점 만점에 60점을 넘으면 합격이다. 전직 경찰이었다면 탐정이 되는 것은 더욱 수월하다. 일반 경찰 관리로 수사 등 업무에 5년 이상 근무한 자는 1차 시험 면제 대상이다.
KEYMAN_ 윤재옥

지난해 11월 26일 국민의힘 윤재옥 의원은 ‘탐정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했다. 경찰청이 주관하는 자격시험에 합격하고 등록 절차를 마쳐야 공인 탐정으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윤재옥 의원은 전직 경찰청장이다. 탐정법 제정은 윤 의원만의 관심사가 아니다. 지난 20년간 탐정법이 발의된 것은 수차례지만 매번 무산됐다. 반대 여론의 근거는 퇴임 경찰 취업 등 경찰 권력 확대에 대한 우려 혹은 견제다.
CONFLICT_ 대한변협

지난 1월 19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윤재옥 국회의원의 탐정법에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전했다.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생활 침해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 현행 법률과 모순되는 직업을 제도화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소송, 심판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탐정법을 발의한 역대 국회의원을 살펴보면 이상배, 이인기, 윤재옥 의원은 경찰청장을 감독관청으로 제시했다. 최재천, 이한성, 송영근 의원은 법무부 장관을 제시했다. 지난 20년간 탐정 합법화 공전의 중심엔 경찰청과 법무부의 이권 다툼이 있었다.
RECIPE_ 공인탐정제

사설탐정의 강점은 자유의 몸이라는 것이다. 공권력보다 조사 가능한 범위가 넓다. 경찰청이든 법무부든, 사설 탐정이 어느 정부처에 소속되냐를 두고 공권력 다툼의 연장선이 된다면 없느니만 못하다. 한국을 제외한 모든 OECD국은 탐정제를 도입했지만 국가가 적극적으로 감독하는 관리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일본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국가 자격시험과 같은 형태로 공인 탐정제를 운영하며 이후 자생할 수 있는 자율권을 부여한다. 미국의 경우 공인 탐정과 일반 탐정을 아예 분리해 자격 요건을 다르게 채용하는 등 세부적인 탐정제가 존재한다. 관리 감독의 야심을 버린 공인 탐정제는 자격증만 난무하는 탐정, 음지로 숨어드는 흥신소의 병폐를 벗어날 열쇠가 될 수 있다.
RISK_ 의뢰인

탐정 법제화가 불법 흥신소를 근절할 수 있을까?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들은 그 정보가 어디서 나왔는지에 관심 없다. 탐정이든, 불법 흥신소든 정보만 제대로 얻으면 된다. 국가 공인 탐정 사무소가 많이 생겨도 의뢰인이 그 정보를 범죄의 도구로 사용하면 도루묵이다. 탐정제 법제화는 투명한 정보 유통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일 뿐이다. 이번 체포된 불법 흥신소 운영자의 혐의는 고작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이다. 5년 이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 벌금이면 해결된다. 정보 유통자의 범죄 조력, 혹은 의뢰인의 범죄 교사 행위 등에 대한 처벌도 함께 재고해야 한다.
INSIGHT_ 플랫폼

모두의 탐정은 올해 론칭한 국내 탐정사무소 비교 상담 플랫폼이다. 등록된 업체는 19개뿐이고 편파적인 고객 리뷰를 보면 공정성을 신뢰할 수 있는 단계의 플랫폼은 아니다. 하지만 눈에 잘 들어오는 UI, 밝고 깔끔한 분위기는 이때까지 우리가 갖고 있던 ‘흥신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말끔히 잊게 한다. 증거 수집 영역은 이때까지 음지에만 숨어 있었다. 그걸 폐지하지 않고 양성화를 논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분명히 필요로 하는 서비스인 동시에 돈이 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탐정제가 합법화된다면, 증거 수집 영역은 더욱 치열한 플랫폼 비즈니스의 생태계에 뛰어들 것이다.
FORESIGHT_ 민영화

치안과 안보는 전통적으로 국가의 의무였다. 그런데 사경제 영역으로 나아가고 있다. 현재 탐정 사무소 및 흥신소는 바람난 배우자, 기업 비리 등 증거 확보 중심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사설탐정의 역할이 양성화된다면, 수사와 안보 등 전통적으로 경찰의 몫이라 느껴지던 영역까지 확장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금 우리는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유명한 피부과를 가고 몸값이 비싼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당연한 사회에 살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더 알고 더 보호받기 위해 안전을 구매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국민의 안전은 과연 비즈니스적으로 해결할 문제인가. 정보 비대칭을 비판하며 등장한 탐정제가, 또 다른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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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공전 중인 타투 합법화 논란을 의료인의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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