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죄
 

12월 다섯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박근혜는 권력을 쓰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쓰는 정치인이다.” 박근혜 씨가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이었습니다. MBC의 어떤 정치부 기자가 어느 방송에선가 한 말입니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박근혜 씨는 노무현 정부 시절엔 보수 야당의 당수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강력한 맞수였죠. 국민은 박근혜 한나라당을 유력한 견제 세력으로 여겼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엔 여당 내 야당의 좌장이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막강한 라이벌이었죠. 국민은 무능한 민주당과 부패한 친이보단 친박을 유력한 대안 세력으로 여겼습니다. 이 시절 박근혜 씨는 선거의 여왕이라고 불렸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씨가 대통령을 능가하는 여왕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권력을 지녔지만 권력을 쓰지 않아서였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시절 정치인 박근혜는 사실상 입법 권력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박근혜 씨는 거대 야당 한나라당 대표였습니다. 정작 박근혜 씨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는 거의 모든 정책에 반대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시하는 거의 모든 대안을 거부했습니다. 거부의 여왕이었죠. 노무현 대통령은 탈권위적이고 유연한 합리적 리더였습니다. 정적일지라도 터놓고 토론하길 원했습니다. 설사 표를 잃는 불리한 길도 옳다고 믿으면 걸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불운은 카운터파트가 박근혜 씨였다는 정치 현실이었습니다. 박근혜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멸시할수록 득표에 유리한 정치 현실을 철저하게 이용만 했습니다. 거부의 여왕으로 등극한 덕분에 선거의 여왕으로 연전연승할 수 있었습니다. 더 큰 입법 권력을 손에 넣었죠.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박근혜 씨는 변함없이 거부의 여왕이었습니다. 같은 당 이명박 정부가 집권했지만 박근혜 씨는 경선에서 경쟁했던 이명박 정부에 협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건 이명박 정권도 마찬가지였죠. 이명박 정부는 겨우 집권 1년 차였던 2008년 5월 광우병 촛불 시위로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했습니다. 곤두박질친 지지율을 회복하려고 전 정권에 대한 수사 정국을 조성했다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라는 비극을 초래했죠. 전 대통령 이명박 씨는 정치를 비즈니스처럼 하는 타산적 리더였습니다. 덕분에 상대편뿐만 아니라 같은 편한테도 불신 받았습니다. 박근혜 씨는 그런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집권에 확실하게 이용했습니다. 집권 여당이 친이친박으로 양분돼 서로 물고 뜯는 걸 부추겼습니다.

모든 게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박근혜와는 무관하다고 국민이 여겼기에 가능했습니다. 두 정부에 걸쳐서 입법 권력을 쥐고 흔들었던 선거의 여왕이 권력을 쓰지 않음으로써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권력은 책임입니다. 박근혜 씨는 권력이 있는데도 권력을 쓰지 않음으로써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결국 더 큰 권력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박근혜식 유체이탈 정치였습니다.
박근혜는 권력을 쓰지 않는 게 아니라 권력을 쓸 줄 모르는 정치인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7일 오후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하고 하루가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았습니다. 체육관 연단에 올라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그때 한 가족분이 연단 아래에서 무릎을 꿇더니 박근혜 대통령에게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며 울며 빌기 시작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대통령에게 조아리지 않습니다. 국민이 대통령에게 조아리는 나라는 더 이상 민주국가가 아닙니다. 봉건국가입니다. 그런데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우두커니 무릎 꿇은 국민을 내려다보고만 있었습니다. 무릎 꿇은 국민을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습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지도 못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은 그럴 때 쓰라고 주어진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 순간 대통령 박근혜가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질 능력은 없으면서 권위만 지키는 유체이탈 권력자라는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럴타워가 아니다”라는 유체이탈 변명도 그때 나왔죠. 박근혜 정권은 바로 그 순간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인 박근혜는 대통령 권력을 욕망했지만 대통령 권력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정적이었고 라이벌이었던 대통령들의 실패가 가져다준 반사이익을 누리기만 했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의 실패는 정치인 박근혜 씨한테도 연대 책임이 있습니다. 입법 권력을 장악한 선거의 여왕이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대화할 땐 대화하고 협력할 땐 협력하고 반대할 땐 반대하는 게 입법부와 야당의 역할입니다. 그러자면 현직 대통령에게 주어진 국정 과제가 지금은 야당인 자신에게 주어졌을 때 과연 대안이 있는가를 겸허하게 고민할 줄 알아야만 합니다. 박근혜 씨는 두 번의 정권 동안 야당을 이끌면서도 내내 유체이탈 정치로 일관했습니다. 책임은 회피하고 권력만 연장하는 정치 말입니다. 박근혜 씨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이명박 대통령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었습니다. 박근혜는 다를 거라는 나을 거라는 국민의 근거 없는 믿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결과는 정반대였죠.
박근혜 씨는 권력을 쓸 줄 모르는 걸 넘어서 권력을 지킬 줄도 모르는 정치인이었습니다. 국정농단 사태는 박근혜 씨가 주권자인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 권력을 비선실세 최순실한테 초법적으로 일임하면서 초래된 일입니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대통령 박근혜의 무능력에 실망했습니다. 국민은 최순실 사태에서 드러난 대통령 박근혜의 무책임에 분노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7년 겨울 동안 이어진 촛불혁명은 실망과 분노의 도가니였습니다. 한편으론 박근혜 씨에 대한 실망과 분노였습니다. 다른 한편으론 박근혜 같은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뽑은 스스로에 대한 실망과 분노였습니다. 우리가 좀 더 유능한 대통령을 뽑았다면 세월호의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수장되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좀 더 책임감 있는 대통령을 선택했다면 최순실 같은 비선실세가 청와대에서 기생하지 못했을지 모릅니다. 우리의 선택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오점을 남겼습니다.

권력을 쓸 줄도 모르면서 권력을 갖고만 싶어했던 박근혜 씨가 대통령직에서 탄핵당하고 청와대에서 퇴거당하고 특검에 기소당하고 감옥에 수감당한 건 사필귀정이었습니다. 박근혜 씨는 2021년 1월 국정농단과 국정원 특활비 상납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에 벌금 180억 원에 추징금 35억 원을 확정 받았습니다. 정작 박근혜 씨는 4년 9개월의 수감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국민에게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에 대해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발간된 옥중 서신 모음집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선 이렇게 밝혔습니다. “믿었던 주변 인물의 일탈로 인해 혼심의 힘을 다했던 모든 일들이 적폐로 낙인찍혔다. 무엇보다 정치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함께 했던 이들이 모든 짐을 제게 지우는 것을 보면서 삶의 무상함도 느꼈다.” 전가의 보도인 배신의 정치 논리입니다. 정말 배신당한 건 대통령 박근혜에게 국정을 맡겼던 국민입니다. 이번만큼은 국민도 속았고 저도 속은 게 아닙니다. 제가 국민을 속였다고 사죄해야 맞습니다. 살려달라고 대통령 앞에 국민이 무릎 꿇는 민주정치의 대참사를 연출했던 박근혜 씨는 탄핵까지 당하고서도 국민 앞에 잘못했다고 고개조차 숙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한 박근혜식 유체이탈 정치입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는 2021년 12월 31일 0시에 석방됐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으로 박근혜 씨는 15년여의 남은 형기와 150여억 원의 벌금을 면제받게 됐습니다. 정치공학적 해석이야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박근혜를 풀어준 문재인과 박근혜를 잡아넣은 윤석열의 대칭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윤석열 후보와 야권은 자칫 탄핵의 강에 다시 빠질 수도 있습니다. 윤석열 후보가 연말 연초에 대구경북 지역에서 집중 유세를 펼치고 있는 배경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사면의 책임은 회피하면서 대구경북의 표심에는 어필하는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대선 정국에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라는 정치적 변수가 등장한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려됩니다. 박근혜 씨는 권력을 국민을 위해 쓸 줄은 모르지만 권력을 자신을 위해 쓸 줄은 아주 잘 아는 정치인이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박근혜 씨의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강했던 시기는 최고권력책임자인 대통령이었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대통령이 아니면서도 대통령에게 필적하는 영향력을 가졌던 때였습니다. 그건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물려받은 지역적 기반과 권력을 쓰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극대화하는 박근혜식 유체이탈 정치술이 결합된 결과였습니다. 대구경북과 유체이탈이라는 박근혜 정치의 두 가지 요소는 아직 완전히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여야 대선주자들이 박근혜 변수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건 박근혜 씨가 국정농단사태에 관해 사과하지 않은 채 사면됐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을 4년 9개월 동안 가둬놓는 것도 민주주의의 수치입니다. 4년 9개월이나 수감되고도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용서해줘야 하는 것도 민주주의의 수치입니다. 덕분에 박근혜 씨는 비록 훼손되고 축소됐지만 정치적 기반을 그나마 유지한 채 자유의 몸이 됐습니다.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에선 이렇게 밝혔습니다. “거짓말은 일부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박근혜 씨에게 촛불혁명은 거짓혁명입니다.
박근혜는 권력을 쓰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쓰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권력을 쓸 줄도 모르면서 권력을 쓰려는 정치인입니다. 권력을 씀으로써 져야 하는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다가 탄핵이라는 더 큰 정치적 책임을 져야만 했던 실패한 정치인입니다. 박근혜 씨의 잔존하는 정치적 영향력이 얼마가 됐든 더 이상은 대한민국 현실 정치에 일말의 권력이라도 행사하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합니다. 이번 대선에 영향을 주는 것부터 차단해야만 합니다. 박근혜 씨의 유체이탈 정치 탓에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실패했고 박근혜 정부 스스로는 탄핵당했습니다. 비록 법적으론 사면 받았지만 박근혜 씨의 진짜 죄는 절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박근혜 씨가 인정하지도 사과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박근혜의 죄는, 무능의 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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