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RST STEP
 

2021년 마무리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우리 동네 인근엔 홈리스 한분이 살고 계십니다. 더운 여름엔 앞에서 길거리에서 햇살을 쬐고 추운 겨울엔 지하철역 계단 아래로 몸을 숨기죠. 그렇게 사계절을 살아내는 걸 오다가다 본 세월만 벌써 몇년 째입니다. 올해는 아버지께 좀 더 두툼한 새 패딩을 선물해드렸습니다. 그동안은 수년 전에 제가 즐겨 입었던 등골브레이커 롱패딩을 물려 입고 계셨죠. 아버님 댁에 새 패딩을 하나 놔드렸더니 구형 롱패딩 하나가 옷장에서 잠만 자게 생겼던 겁니다. 문득 동네 이웃 홈리스분을 떠올렸습니다. 

한겨울은 노숙자한텐 사선입니다. 영하권의 혹한을 매일 밤 길바닥에서 견디고 견뎌내야 겨우 겨울을 날 수 있습니다. 겨울엔 보호시설에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보호시설을 거부하는 노숙자들이 꽤 많습니다. 보호시설 자체도 부족합니다. 사연은 모르지만 우리 동네 홈리스분도 벌써 몇 년 째 거리에서 온몸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옷장만 차지할 롱패딩이었습니다. 동네 홈리스분에게 선물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작은 롱패딩 선물이지만 올겨울에 사람 목숨 하나 살리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내심 생각했습니다. 

추워서 나가기 싫다는 딸 아이를 금품으로 꼬드겨서 동네 홈리스분을 찾아갔습니다. 역시나 오늘밤도 거기 계셨습니다. “아주머니.” 홈리스분은 누군가 말을 거는 게 오랜만인지 말없이 쳐다만 보셨습니다. “이거 입으세요.” 그때서야 아주머니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습니다. 옆에 서 있던 딸 아이한테도 폴더 인사를 시켰습니다. 낮은 곳에 사는 분들에게도 예의바르게 인사를 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바랐거든요. 아주머니한테 말했습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아주머니가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쑥스러워서 딸 아이와 줄행랑치듯 집으로 돌아왔거든요. 달음박질하면서 딸 아이가 핀잔을 줬습니다. “아빠, 착한 일을 하는 건 좋은데 이렇게 티 나게 하기야?” 대꾸했습니다. “아빠는 ENTP이라구. 엔팁은 뭐든 티를 내는 걸 참 좋아한다구. 어쩔티비.” 딸 아이가 말했습니다. “저쩔냉장고. 아빠 부탁 들어줬으니깐 게임 아이템 하나 사줘.”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가?” 모든 스타트업에게 주어지는 빅퀘스천입니다. 미디어 스타트업인 북저널리즘 역시 절대 피해갈 수 없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정작 평소엔 사방팔방에서 쏟아지는 매일매일의 질문들에 답을 하느라 빅퀘스천에 대답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2021년을 마무리하고 2022년을 시작하는 시기만큼은 북저널리즘도 빅퀘스천과 씨름해볼 짬을 냈습니다. 화두는 “우리는 2022년에 세상에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였습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사람들의 어떤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이었죠. 역시나 “과연 저널리즘은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정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벌써 22년째 찾고 있는 답인데도 매년 실패합니다. 어쩌면 답도 없는 질문에 답을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레거시 미디어에서도 뉴미디어에서도 답을 찾는 건 역시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나름의 이론은 있습니다. 질량감 이론입니다. 질량은 저널리즘이 제공하는 지식정보의 양과 질이 해당 미디어에 대한 저널리즘 수용자의 평가 지표라는 상식에 기초합니다. 진짜 고민거리는 질량의 기준입니다. 독자는 얼마나 많고 얼마나 깊은 스토리여야 만족하는가. 사실상 양은 넘치게 필요합니다. 다 보지는 못해도 못 보지는 않아야 합니다. 연말연초면 읽지는 않아도 읽어야 할 것 같은 양서를 주문하는 심리와 같습니다. 질은 안타와 홈런이 모두 필요합니다. 평균 타율을 유지하면서도 가끔씩 담장을 넘기는 장타력도 선보여야 하죠. 이걸 미디어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고 나름 부릅니다. 미디어 경영을 프로야구팀 운영에 비유할 때가 많습니다. 프로스포츠 가운데 경기횟수가 가장 많고 개인과 팀의 안타율과 장타율에 시즌의 승률이 좌우되는 통계 스포츠라는 점에서 미디어는 야구와 여러모로 닮아 있습니다. 〈머니볼〉의 브래드 피트가 했던 고민과 미디어 스타트업의 경영진의 숙제는 서로 맞닿아 있습니다. 

레서피가 하나 더 있습니다. 질량 이론이 아니라 질량감 이론인 이유입니다. 여기서 감은 공감입니다. 미디어는 세상의 사실과 진실과 맥락을 분석하고 통찰하고 전망하는 비즈니스입니다. 한없이 차가울 것만 같죠. 아닙니다. 미디어의 목표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사람의 마음을 바꿔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심리학자인 대니얼 카너먼과 경제학자인 리차드 탈러는 행동경제학으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라는 고전 경제학의 가설을 깼습니다.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신성을 깨는데 대략 40년 정도 걸렸죠.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은 비이성적 충동에 휩쓸리는 말 그대로 인간적 존재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젠 미디어 역시 이성적 독자라는 가설을 버려야만 합니다. 독자가 어떤 미디어를 구독하는 건 단순히 질량 보존의 법칙 때문만이 아닙니다. 미디어와 독자가 정서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입니다. 미디어를 지지하기 때문이고 독자를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CBS 〈김현정의 뉴스쇼〉의 DJ 김현정 PD가 직접 들려줬던 말이 있습니다. “유력 정치인 인터뷰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마이크가 없어서 세상에 이야기를 전할 수 없는 분들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줄 때가 가장 보람 있다.” 〈김현정의 뉴스쇼〉에는 화제의 인터뷰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물에 빠진 소년을 구한 평범한 가장처럼 보통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도와준 이야기를 듣는 시간입니다. 인터넷에서 화제를 모으는 건 대선 주자 인터뷰일지 모릅이다. 〈김현정의 뉴스쇼〉의 오랜 청취자들이 애정하는 코너는 화제의 인터뷰입니다. 이런 게 질량감입니다. “스타트업이 세상 사람들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미디어 스타트업에선 “미디어가 어떤 사람들을 대변해 주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어떤 독자와 연결되고 연대하고 유대하고 교감하고 공감하냐가 중요합니다. 질과 양과 감으로요. 북저널리즘은 독자 여러분과의 질량감을 치열하게 탐구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널리즘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저널리즘의 본질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질문은 문제의 시작이지 답이 아닙니다. 저널리즘의 한계죠. 그래서 1년에 딱 한번 딱 1분 정도 무력해집니다. “당신은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느냐”는 질문 앞에서 저널리스트는 “말과 글로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이야기를 전해준다”고 변명해야 하니까요. 큰 돈을 벌지도 큰 칭찬을 받지도 못하는 저널리즘을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대가일 겁니다. 그럴 땐 작은 행동을 합니다. 집 없는 동네 이웃을 찾아가 롱패딩을 선물하는 일 같은 것 말입니다. 말과 글이 아니라 행동을 하는 겁니다. 그 순간만큼은 1g만큼은 세상이 따뜻해졌을 거라고 믿으면서요. 생각하느니 행동하는 ENTP의 전형이죠. 그러고보니 롱패딩이야말로 북저널리즘 라디오 〈포캐스트 2022〉에서 김혜림 에디터가 트렌드 키워드로 짚어준 셀프기프트였는지도 모르겠네요.  

북저널리즘 빅퀘스천 회의 장소는 노래방이었습니다. 위워크엔 노래방이 있거든요. 완벽한 방음력과 흡음력을 자랑해서 북저널리즘 라디오 스튜디오로도 쓰입니다. 정작 라디오 녹음만 하고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노래방이 아니라 대화방이었죠. 2021년을 마무리하면서는 꼭 한번 노래방을 노래방으로 사용해보고 싶었습니다. 주변 시선 아랑곳 없고 마이크 잡길 너무 좋아하는 또라이답게 회의 시작 전에 선곡부터 했습니다. 선택은 오르막길이었습니다. 요즘 37호 가수 때문에 푹 빠져 있는 노래입니다. 물론 직접 불러보는 건 처음이었죠. 잘 부를 턱이 없었죠. 그래도 끝까지 올랐습니다. 

새로운 미디어를 만들어간다는 건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한 걸음씩 걸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정상은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도 모릅니다. 웃음기는 사라지고 숨소리만 거칠어지죠. 그래도 앞만 보고 걸어야만 합니다.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동료와 독자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첫 번째 발자국부터 한 발자국씩 매일 걸어가는 것만이 오르막길을 오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첫 발자국처럼 다음 발자국을 걷는 수밖에 없죠. 저 끝까지. 
북저널리즘은
2021년에도 오르막길을 올랐습니다.
2022년에도 오르막길을 오릅니다.
북저널리즘과 함께 해주시는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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