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쇼크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왜 실패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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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무인
에디터 이현구
발행일 2022.01.16
리딩타임 9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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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지금, 깊이 읽어야 하는 이유
“인종 차별은 아닌데 옆집은 좀..”

사람들은 왜 다문화를 반대하는 걸까?
다문화주의의 적은 진짜 인종 차별일까?


인종주의의 시대는 지났다. 한국의 순혈주의 신화도 무너졌다. 그 자리엔 다문화주의 신화가 들어섰다. 이제는 인구 5퍼센트가 외국인인 다문화 국가로의 전환기다. 캠퍼스와 노동 현장, 시골 농촌에 외국인이 들어찼고, 말소되지 않은 차별은 은밀해졌다. 금융 위기와 저성장, 내전에 따른 난민 문제로 세계가 각자도생을 시도할 때, 한국은 2018년 예멘 난민에 이어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입국 사건을 겪었다. 냉담한 여론은 인종주의였을까? 호기로운 한국 정부의 다문화 정책과 달리 이미 갈등의 골은 깊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다문화주의의 성역을 넘어 문제의 구조적 본질을 향한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런 분에게 추천합니다.
  •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마음과 머리가 충돌한 경험이 있는 분
  • 다문화를 적극 지지하거나, 적극 반대하는 분
  • 한국의 이주 노동자 및 불법 체류자 문제를 구체적 사례와 함께 알고 싶은 분
저자 소개
김무인(필명)은 사회 초년까지 한국에서 보낸 후 뉴질랜드로 이민해 지금까지 생활하고 있다. 세계화 조류로 인해 다인종·다문화화되어 가는 현대 사회에 관심이 많고,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팽개쳐진 사회적 가치의 부활을 위해 어떤 대안이 가능한지 탐구할 요량으로 독서와 글쓰기를 한다. 관심사를 좀 더 체계적으로 심화시키고자 뉴질랜드 매시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 과정을 공부했다.
키노트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1화. 프롤로그 ; 위드 코로나 그리고 위드 이주자

2화. 다문화 현상을 바라보기 위한 키워드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문화도 인종도 아닌 에스니시티
누가 한국인인가
다문화라는 단어

3화. 한국의 외국인들
그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부른 것은 한국 사회다
같은 외국인, 다른 정책

4화. 다문화 정책이 말하고 있는 것
결혼 이주자 ; 한국인 2세를 낳아 줘
이주 노동자 ; 돈 벌었으면 고향에 다시 돌아가 줘
불법 체류자 ; 한국에 눌러앉지 말아 줘
친이주자 시민 단체, 그들은 누구인가

5화. 다문화를 반대하는 사람들
누가 다문화를 원하는가
그들은 어떻게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가
이주 노동자가 유일한 대안인가
이주 노동자 수입은 잘못된 처방이다

6화. 다문화주의, 민족주의 그리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충돌
이민 반대는 인종 차별인가
같은 이민 반대, 다른 민족주의
글로벌 자본주의와 민족 국가의 충돌
한국은 다문화 국가가 될까
결국은 구조적 문제다

7화. 에필로그 ; 평등한 다문화 세계를 향하여
전환기의 한국 사회
축복받을 다문화 세계를 향하여

8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 좋은 게 좋다는 착각

에디터의 밑줄

“한 농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갔을 정도로 이주 노동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한국 농촌의 현실, 단순기능 인력 카테고리에 속하는 비백인 이주 노동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차별적 대우, 그리고 이민자의 실체를 가능한 한 잘 포장하여 원주민 사회 구성원들이 딴죽 걸지 않기를 기도하는 한국 정부.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불안한 상태다.”

“한국 사회는 고려인과 같은 재외 동포가 몇 세대 후에도 현지에서 한국 문화를 지키고 있는 것을 뿌듯해한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주자들이 그들 모국과 연결 고리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불편해한다. “한국에 왔으면 한국 사람으로 살아야지” 같은 훈수가 대표적 예다.”
 
“한국 사회의 많은 원주민이 다문화라는 말을 들을 때 우려 섞인 긴장을 하는 것은 똠양꿍이나 쌀국수처럼 내가 원할 때만 찾을 수 있는 ‘다양한 문화’ 때문이 아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부터 나의 사회적 경제적 공간을 공유하기 시작한 ‘이질적 인종’ 때문이다. 원주민의 이에 대한 경계심은 새로운 에스닉 이웃에 대한 인종화 형식으로 나타난다.”

“한국인 가계 혈통에 참여함으로써 결혼 이주 여성은 ‘우리’의 한 부분이 될 것을 요구받지만, 그들 자체로는 존중받지 못한다. 그들 개개인의 문화적 정체성은 무시된다.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은 항상 타자의 문화 형식, 즉 이국적이며 박제화된 스테레오 타입(가령 전통 의상과 전통 음식)으로 표현될 것이 기대된다.”

“이주 노동자에게 내국인 노동자와 같은 권리를 부여하면 ...(중략)... 원주민 비정규직과 외국인 비정규직 간 저임금 직장이라도 차지하려는 약육강식 〈오징어 게임〉식 평등만 있을 뿐이다. 인종 장벽을 없앤다고 계급·계층 사다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이 사다리에서 원주민 노동자가 맨 아래쪽에 위치한다면 지금 이주 노동자에게 행해지는 사회적 인종화가 똑같이 시도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구가 줄어들어서는 안 되기에 이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과 인류에 대한 사랑이 아닌 노동자와 착취에 대한 집착일 수 있다. 끊임없는 팽창은 달리는 자동차와 같다. 거기에서 내리는 순간 파산을 맞이해야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자본가들은 생산을 위한 노동자가 무조건 필요하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 유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에는 관심이 없다.”

“21세기에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인종 차별 그리고 그 대척점에 서 있는 반인종 차별 이데올로기는 모두 한 주체가 만든 것이다. 바로 자본주의다.”

“자기와 다른 인종·에스닉 그룹이 특정 계급 혹은 직종·업종에 집중되어 있을 경우, 원주민 사회 구성원들에게 이들에 대한 차별은 많은 경우 계급 차별이 아닌 인종 차별로 비친다. 자본주의 정치 이데올로기인 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인권 단체 등은 이 인종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지만 본질적 계급 차별은 외면한다.”

“이민을 둘러싼 문제의 해결은 세계의 모든 사람, 특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방식이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자국 원주민 노동자와 사회 구성원만을 위한 처방을 뛰어넘어야 한다.”
코멘트
제주에 예멘 난민이 입국했을 때 포용을 호소하던 연예인에게 “당신 집에서 데리고 살아라”라는 비난이 향하던 것을 기억한다. 은밀히 공고해지던 자국 우선주의는 판데믹 이후엔 공공연해졌다. 다만 국제 이주는 이를 뛰어넘는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이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차별 없는 세상을 바란다. 다문화주의는 세계화의 당연한 덕목이다. 아쉽게도 한국의 다문화주의는 무언가 한참 잘못됐다. 뉴질랜드 교민인 저자의 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한국의 다문화 현상을 날카롭게 파헤쳐 본다.
북저널리즘 이현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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