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주거의 미래

1월 6일 - FORECAST

창문 없는 고시원이 사라진다. 도시 주택의 구조를 바꾸면 도시민 주거의 질이 나아질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2월 30일 서울시가 고시원 각 방 최소 면적을 7㎡로 제한하는 건축 조례 개정안을 발표했다. 건물 외부로 난 창문을 의무 설치하는 조항도 추가됐다. 면적, 창문 관련 건축 규정을 고시원에 적용하는 것은 처음이다. 다가오는 7월부터 적용이다. 도시 주택의 구조를 바꾸면 도시민 주거의 질이 나아질까?
WHY_지금 고시원법 개정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회 초년생들은 집을 보러 다니며 종종 황당무계한 집을 마주한다. 변기에 앉아 세수하는 집, 벽 한가운데에 넓은 선반을 박고 복층이라는 집, 방과 화장실이 샤워 커튼으로 분리된 집 등. 신문에서 말하는 집값 하락과 폭등은 이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부동산이 아닌 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주거 환경이다. 고시원은 우리나라 주거 환경의 최전방이다. 도시 전반의 생활권 향상은 고시원의 변화에서 시작할 수 있다.
DEFINITION_ 고시원

과거엔 고시 준비생들이 구획된 공간에서 공부와 숙박을 겸하는 곳이었다. 지금은 누구나 찾는 대도시의 생계형 거주지로 자리 잡았다. 고시원은 크게 세 종류다. 외부 창문이 있는 방, 내부 창문이 있는 방, 창문이 없는 방. 이번 개정안으로 두 가지는 사라진다. 건물 외부로 뚫려 있으며 유효 폭 0.5m 이상, 유효 높이 1.0m 이상의 창문을 설치하는 게 규정이다. 기준은 사람이 탈출 가능한 최소 크기다.
NUMBER_ 4만 원

이번 개정안은 2018년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문 없이 촘촘히 붙어 있던 방들과 비좁은 복도 구조는 비상 상황을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당시 창문 있는 방은 월 32만 원이었다. 창문 없는 방은 월 28만 원이었다. 주로 일용직 노동자가 거주했다. 4만 원 차이로 생사가 결정됐다. 일곱 명이 숨졌다. 
CONFLICT_ 집주인

고시원 운영자의 부담이 늘었다. 황규석 한국고시원협회 회장은 인터뷰에서 “최소 면적 7㎡와 창문 크기 규정을 지키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밝혔다. “이 비용이 월세에 포함돼 결국 고시원에 거주하는 사람들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경제적 자유가 없는 사람들은 그 아래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논리가, 주거 공간에까지 적용돼야 할까.
RISK_ 월세

하지만 실제로 세입자가 우선시하는 조건은 창문보단 월세다. 이번 개정안은 7월 이후 신축 또는 증축하는 시설에만 적용된다. 기존 노후화된 고시원은 해당 사항이 없다. 상술한 국일고시원 사고를 예로 들자.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법안이 개정된 건 2009년이었다. 2007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국일고시원은 해당 사항이 없었다. 7월이 와도, 누군가는 여전히 월세를 아끼기 위해 창문 없고 오래된 고시원을 찾을 것이다.
RECIPE_ 재개발

고시원의 등장은 1980년대다. 주택 재개발이 한창일 때다. 기존 낡은 건물을 헐고 속속들이 새로운 건물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대도시 내에서 저렴한 주거비로 살 수 있는 공간은 고시원, 옥탑방, 지하만 남게 됐다. 숙박형 연습실과 같은 기형적인 생계 공간도 생겨났다. 음악을 하지 않아도 24시 연습실을 찾는 세입자들도 늘고 있다. 월세가 저렴하기 때문이다. 저렴한 주거 공간에 대한 수요는 분명하다. 그러나 그 선택의 폭은 지극히 좁다.
MONEY_ 2703만 원

목돈이 없다. 생계형 주거지에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지난해 11월 부동산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의 통계에 따르면 1월~10월 실거래된 서울 30㎡ 이하 원룸의 평균 월세는 40만 원, 보증금은 2703만 원이었다. 같은 조건 전세금의 경우 평균 2억 2065만 원으로 집계됐다. 크고 무거운 숫자에 압도된 이들에게 보증금 50만 원, 30만 원, 0원은 매력적인 조건이다. 집 자체의 좋고 나쁨은 단연 후순위가 된다.
KEYMAN_ 자취남

집의 품격은 삶의 질과 직결된다. 유튜버 자취남은 1인 가구 구독자의 자취방을 방문해 채널에 소개한다. 지역은 수도권, 주 연령은 20대와 30대다. 비교적 넓고 깔끔하게 인테리어한 집은 현실적인 1인 가구의 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의뢰인 조건에 맞춰 집을 구해주는 MBC 예능 〈구해줘! 홈즈〉 또한 고액 매물만 다뤄 위화감을 조성한다는 비판을 받은 적 있다. 집만큼 생활의 격차가 확실히 드러나는 곳은 없다.
REFERENCE_ 플랫

그렇다면 보증금의 부담은 덜되 더 나은 생활 환경이 보장된 곳은 없을까? 미국의 사설 기숙사의 경우 한 방에 2인, 3인이 공동 생활한다. 기숙사라 해서 학생 전용이 아니라 일반 직장인도 찾는 주거 형태다. 유럽에선 주방, 세탁실 등 생활 공간을 함께 쓰되 입주자의 각 방이 딸린 플랫(flat) 문화가 발달했다. 대도시에 살아야 하지만 월세가 부담되는 이들에겐, 함께 사는 것이 우선순위 선택지로 자리 잡았다.
INSIGHT_ 안전

현실이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 2000년대를 휩쓸었다. 지금은 다르다. 가난한 꿈도 좋다는 이들에게 대출, 투자, 성공은 너무 먼 이야기다. 조금이라도 월세를 아끼고 싶은 사람들이 집값이 내려간다고 더 나은 집으로 이사하지 않는다. 집값보다 중요한 것은 주거 환경의 최악이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현재 개정 중인 고시원법의 의미는 바로 그들의 안전을 확보하는 것에 있다.
FORESIGHT_ 따로또같이

생계형 주거지의 최전방을 개선할 열쇠가 법이라면, 그보다 나은 조건의 세입자들에게 주어진 열쇠는 문화에 있다. ‘타인은 지옥’이란 말처럼 우리나라에선 혼자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을 의미했다. 나만의 공간, 내 집 마련하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여기며 자란다. 자취의 의미가 달라질 수는 없을까. 일반 사옥이 아닌 공유 오피스가 증가하며 근무 문화가 변해 왔듯이, 셰어 하우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 한국의 주거 문화도 새로워질 수 있다. 이미 세입자의 성향에 따라 주거 유형을 선택할 수 있는 공유 주거 시설도 생기고 있다. 처음엔 가격 때문에 입주했지만 문화 때문에 눌러앉을 수 있다. 1인 주거의 미래는 역설적으로 다시 공동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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