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가스라이팅

1월 11일 - FORECAST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가 진압되고 있다. 이 시위는 무엇의 전조였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월 2일 정부의 액화 석유 가스(LPG) 가격 인상을 위시해 촉발된 반정부 시위가 유혈 사태로 번졌다.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며 시위는 진압되는 모양새다. 시위의 본질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난무한다. 이 시위는 무엇의 전조인가?
WHY_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를 읽어야 하는 이유

러시아를 제외한 독립국가연합(CIS) 대부분은 정치·경제적으로 불안정하다.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인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는 세계에 충격을 안겼다. 이 시위에 세계의 독재자들과 권위주의 국가 국민들의 이목이 쏠려 있다. 러시아가 역내 지위를 회복하는 계기로 사용되면 우크라이나 사태에도 영향을 미친다.
RECIPE_ 자원의 저주

카자흐스탄과 같은 자원 부국이 겪기 쉬운 딜레마가 있다. 일명 자원의 저주다. 자원 매장량이 많은 저개발국은 대부분의 투자가 에너지 산업에 집중되며 의존도가 커진다. 경제의 양적 성장에 비해 분배가 고르지 않고 자원 대금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며 자원 가격에 따라 경제가 휘청인다. 이를 자원의 저주 혹은 풍요의 역설이라고 한다. 카자흐스탄은 자원 부국이면서도 이를 경계해 경제 다각화를 꾀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4년까지 경제 성장률이 연간 15퍼센트씩 상승했다. 외국 에너지 회사로부터 막대한 투자를 유치한 덕분이었다. 다만 자원의 저주를 완전히 벗진 못했다. 에너지 산업의 의존도가 60퍼센트 이상이었고 유가 쇼크에 취약한 구조였다.
NUMBER_ 162

자원으로 얻은 부는 소수에게 돌아갔다.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단 162명이 카자흐스탄 전체 부의 55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1인당 GDP는 9000달러에서 만 달러 수준이지만 카자흐스탄의 최저임금은 월 100달러 정도다. 소득 수준 차이가 심하다. 다수 언론은 이번 시위의 근본적 원인을 양극화로 본다. 막대한 천연 자원은 민주주의 발달이 더딘 국가에서는 내전의 원인이 된다. 장기 독재는 이런 내부 분열을 예방할 수 있지만 부패를 예방하진 못한다. 권위주의 정부임에도 정치적으로는 이례적인 안정성을 보일 수 있던 것은 안정된 정치력과 지속적인 개혁 정책 때문이었다.
REFERENCE_ 싱가포르

자원 부국인 저개발국이 카자흐스탄만큼 정치적 내홍이 없는 경우는 드물다. 늘 열강의 개입이 있고 주변국의 위협이 도사린다. 자원의 저주로 국내 정치의 안정성도 떨어진다. 권위주의 정부임에도 성공적인 경제 성장을 이뤄 국민 신임이 비교적 높은 나라로는 싱가포르를 꼽을 수 있다. 카자흐스탄 초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와 닮아 있다. 싱가포르는 국토 면적이 작고 천연 자원이 없지만 강력한 군대 양성과 산업화, 엘리트 육성을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했다. 많은 국민이 독재 정치를 수긍할 정도의 성과다. 다만 싱가폴 역시 양극화가 극심하다. 사회 안전망 역시 부실하다. 사회주의 체제를 포함해 가장 성공적인 권위주의 국가는 중국이다.
MONEY_ 120텡게

시위의 출발은 카자흐스탄 서부 유전 지대인 망기스타우주(州)였다. 자나오젠은 그 주의 석유 생산 도시다. 망기스타우주의 수도인 악타우는 LPG가 석유보다 훨씬 저렴해 LPG 개조 차량이 대부분이다. 보조금으로 운영하던 가격 상한제가 폐지되며 1리터에 50탱게(137원)이던 LPG가 올해 120탱게(330원)로 올랐다. 이는 물가 상승과 직결된다. 자나오젠 광장에서 시위가 시작됐고 최대 도시인 알마티부터 전국 곳곳으로 번졌다. 주지사의 유가 롤백에도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반정부 시위로 변해갔다.
CONFLICT_ 유혈 사태

카자흐스탄 정부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했다. 수도 누르술탄의 대통령궁이 불타고 알마티의 시청, 공항, 대통령 관저로 시위대가 몰려갔다.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시위대의 요구대로 내각 총사퇴를 단행했지만 전국적인 확산세가 이어지자 시위대를 테러리스트로 칭하며 무력 진압을 시작했다. 유혈 사태가 발생해 최소 164명이 사망하고 5135명이 체포됐다. 거기에 구소련 6개국이 모인 집단안보조약이 사상 최초로 평화 유지군을 파병하며 시위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LPG 가격 인상으로 촉발된 시위는 빈곤, 부패, 실업, 반러시아의 구호가 뒤섞였다. 카자흐스탄 남부의 탈디코르간에서는 오랜 독재자의 동상이 시위대로 인해 부서졌다. 그들은 “늙은이는 물러가라”라고 항의했다.
KEYMAN_ 나자르바예프

시위대가 부르짖은 대상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다. 그는 1990년부터 2019년까지 카자흐스탄 공화국을 통치해온 초대 대통령이다. 5선을 지냈고 29년을 독재했다. 소련 붕괴 이후의 경제난을 석유로 극복했다. 정치적으론 독재자였지만 국민 신임은 높았다. 퇴임은 평화적이고 권력 이양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민족의 지도자라는 뜻인 ‘엘바시’라는 직함을 유지하며 사임 후에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장직과 여당 대표직을 맡았다. 상왕이 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한편 이번 반정부 시위가 토카예프 대통령과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권력 다툼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1월 6일 나자르바예프의 사람인 마시모프 전 NSC 위원장을 반역 혐의로 체포했기 때문이다. 시위 격화에 따라 나자르바예프는 NSC 의장직을 토카예프에게 넘겼다. 다만 토카예프가 나자르바예프의 꼭두각시인지는 시위대에게 중요치 않았다. 시위대의 분노는 독재정 그 자체를 향했다.
DEFINITION_ 독재자의 딜레마

독재는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다. 운전자 교체가 어렵다. 독재의 정당성은 독재의 주체를 대체할 것이 없다는 헤게모니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자신만큼 강하게 만들어 내세울 경우 힘의 균형이 깨져 권력을 찬탈당할 수 있다. 반대로 아무 힘도 없는 후계자를 내세우거나 후계자를 지정하지 않을 경우 권력 공백으로 국가는 분열한다. 내전을 겪은 국가들은 열강 통치 이후 대부분 후자의 형태를 겪었다. 힘의 공백이 낳는 참사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퇴임 당시 나이는 81세였고 그는 자신의 정부에서 오랜 기간 외교적으로 활약하던 토카예프를 내세웠지만 안정적인 승계에 실패했다. 전임자에 비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구축하려던 토카예프 역시 강경 진압으로 힘을 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독재자의 딜레마다.
RISK_ CSTO

문제는 그 과정에서 CSTO를 부른 것이다. 카자흐스탄은 그간 친러 성향을 보였지만 정치적으로는 독자 노선을 유지해 왔다. 평화 유지군 개입은 외교 노선의 큰 변화를 의미한다. 이번에 파견된 2500명 규모의 CSTO 평화 유지군에는 러시아의 특수부대로 유명한 스페츠나츠도 포함됐다. 원래 유엔에서 승인하는 평화 유지군(UNPKF)은 비무장을 원칙으로 하고 내정 간섭을 피해 완충 지대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CSTO는 카자흐스탄의 주요 시설을 확보 및 경비하는데 주력했다고 밝혔고 유혈 진압은 정부군 주도하에 이뤄졌지만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군 파병에 의구심을 품었다. 중립성의 문제와 러시아의 역내 패권 강화에 대한 우려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시위대에 승리를 선언했지만 그 공은 결국 러시아가 안게 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INSIGHT_ 독배

카자흐스탄 시위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성공적’ 권위주의 국가의 시위라는 점이다. 주변 독재 국가로 시위가 번질 가능성이 큰 사건이었고 많은 독재자는 불안에 떨었다. 일부는 미국 등의 서방이 주도하는 색깔 혁명으로 본다. 색깔 혁명은 ‘아랍의 봄’과 같이 상징적 색이나 오브제를 위시한 민주화 운동을 총괄하는 말이다. 시위대의 요구는 민주화에 해당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것이 곧 친 서방 민주 국가로의 이행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는 오히려 불만을 왜곡하는 프로파간다다. 카자흐스탄 시위는 민중 봉기에 가깝다. 권위주의 자체가 가지는 위험성에 기인한다. 러시아에게 이 시위는 독배이자 기회였다. 타국의 내정 간섭을 ‘핵심 이익의 존중’이란 이름 아래 극히 꺼리던 중국 역시 파병을 고려했을 정도다. 아무리 성공한 국가의 경우라도 독재는 곧 손에 든 독배임이 확인된 사건이다.
FORESIGHT_ 몰락의 전조

독재는 영원할 수 있을까? 완벽한 세습은 주로 혈통을 통해 이뤄진다. 모범 답안은 북한의 김씨 정권이다. 중국의 집단 지도 체제 역시 공산당의 존속이 가능한 구조다. 다만 북한은 국제 사회의 제재를 받고 중국 역시 지속적인 민주화 도전에 시달린다. 역사상 영원한 독재는 없고 그 끝은 대부분 파국이었다. 통치 거버넌스가 무너진 많은 저개발 권위주의 국가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러시아는 이러한 딜레마를 이용해 역내 지위를 강화하려 할 것이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수많은 권위주의 정부의 자금줄이 되어준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다만 그것이 곧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아니다. 독재 정권의 명암은 이번 시위를 계기로 다양한 권위주의 국가에서 속출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가 포퓰리즘과 부족주의로 위기를 맞듯이 이 시위 역시 권위주의 몰락의 전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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