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여가부인가. 무엇을 위한 여가부 폐지인가.
 

1월 12일 - FORECAST

여성가족부 폐지가 표심을 뒤흔든다. 여성가족부는 필요 없는 걸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지난 1월 7일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일곱 글자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업로드했다. 국민의힘이 불씨를 지핀 여성가족부 폐지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지난 1월 10일 여성가족부는 부처 명칭에 ‘청소년’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를 청소년 정책 전환의 해로 삼아 다양한 청소년 정책에 집중하겠다는 포부다.
WHY_ 지금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을 읽어야 하는 이유

들끓는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여성가족부는 젠더 갈등의 가시적인 무기로 사용됐다. 여성가족부의 정책 인지도는 희미하지만 최근의 대선 형국에서 여성가족부는 새로운 표심 공략 방법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후보는 지난 10월 여성가족부를 양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았으나 지지율 급락을 의식해 최근 폐지론으로 돌아섰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2030 남성을 겨냥한 공약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가족부는 필요하지 않은 부처일까? 저출생과 다양한 가족에 대한 논의가 뻗어 나오는 시점에서 성평등과 가족 정책은 무엇을 향해야 할까?
RECIPE_ 표심

지금 정치권은 2030 남성의 표심을 얻기 위해 혈안이 됐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논의되던 여성가족부 폐지론은 지금의 젠더 갈등을 양분 삼아 유의미한 표심으로 가시화됐다. 윤석열 후보가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한 이후 20대 지지율이 두 배가량 급등했다. 2주 전 20.4퍼센트였던 지지율이 40.9퍼센트로 올랐다. 30대에서도 23퍼센트에서 33.3퍼센트로 10.3퍼센트포인트 올랐다. 여성가족부 폐지는 2030 남성의 표를 가져올 수 있는 맞춤형 공약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가 지지율 반등의 신호탄이 된 건 다양한 문제를 암시한다. 2030 남성이 여가부를 젠더 갈등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과 더불어 여가부의 정책이 대중의 지지와 호소를 받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DEFINITION_ 여성가족부

여성가족부의 주요 업무는 크게 네 가지다. 여성 정책의 기획 및 여성 권익 증진, 청소년 복지 및 보호, 가족과 다문화 가족정책의 수립 및 지원,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 피해 예방 및 보호다. 정책은 양성평등, 가족, 청소년, 인권보호로 분류된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추진한 주요 업무는 아이돌봄서비스와 새일여성인턴 채용 장려, 청소년 학습 강화와 한부모 가족 아동양육비 추가 지원 등이다. 업무와 정책 대부분이 사회적 약자라고 분류되는 여성, 청소년에 맞춰져 있다.
KEYMAN_ 김지환 대표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본부장은 지난 1월 10일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며 여가부가 한 부모 가족 문제와 싱글대디 문제를 놓치고 있다고 발언했다. 덧붙여 “여성가족부가 사실상 남성혐오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국 싱글대디가정지원협회 ‘아빠의 품’ 김지환 대표는 해당 발언에 맞서 오히려 여성가족부의 확대와 강화를 바란다고 밝혔다. 여성가족부의 미혼부 출생신고 및 복지급여·건강보험 지원 안내를 통해 싱글대디는 다양한 법률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미혼모·부자 거점기관을 운영 중이다. 여성가족부의 손길이 닿는 곳은 여성만이 아니다.
CONFLICT_ 남성혐오

여성가족부를 젠더 갈등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은 국민의힘 장예찬 본부장만이 아니다. 하태경 의원 역시 당내 청년 정치인 모임에서 “여가부가 젠더갈등조장부가 되었다”고 말했다. 뿌리 깊은 젠더 갈등의 원인과 양상이 여성가족부라는 실체가 명확한 존재로 치환됐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를 돕는 여가부 산하 기관인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에서 도움을 받은 피해자의 20퍼센트는 남성이다. 여성만을 위한 정책이라 비판 받는 권익 분야 예산에는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에 대한 무료 법률 지원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가족부 예산의 대부분이 소외 가정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남성혐오라는 갈등 구조는 만들어진 프레임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은 아직 사회적 약자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에서 발간한 「글로벌 젠더 격차 보고서 2021」에서는 한국의 성평등 순위를 156개국 중 102위로 판단했다. 특히 경제 부문 성평등 순위에서 123위로 낮은 수준을 보였다. 경제적 격차 뿐 아니라 성폭력 피해도 여성 비율이 상당한 수준을 차지한다. 2020년 발생한 성범죄 2만 1717건 중 여성이 피해를 당한 건수는 2만 51건에 이른다.
MONEY_ 1조 4650억 원

여성가족부에 편성된 2022년 예산은 1조 4650억 원이다. 전체 정부 예산의 약 0.23퍼센트에 해당한다. 18개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적다. 한정된 예산에 비해 지원 대상은 한부모 가족, 위기 청소년, 학교 밖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 등을 망라한다. 여성가족부 전체 예산의 61퍼센트는 가족 정책에 배정된다. 이 중 한부모 가족 지원에 가족 예산의 절반을 사용한다. 맞벌이 부부를 위한 아이돌봄서비스에도 2000억 원가량이 쓰인다. 성폭력, 가정폭력, 강력범죄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예산은 9.2퍼센트다. 여성가족부가 여성만을 위한다는 논리의 근거가 된 여성 성평등 예산은 7.2퍼센트에 그친다. 그중에서도 70퍼센트에 해당하는 예산은 경력단절 여성 지원에 쓰인다.
NUMBER_ 44.3점

가족 정책과 성폭력 피해자 보호, 청소년 보호 등의 거시적 목적에 반대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성가족부에 대한 부처 호감도와 정책 공감도는 40점대에 그친다. 여론조사 기관 마크로밀엠브레인에 의하면 전국 16~59세 남녀 1200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가족부에 대한 호감도는 43.4점을 기록했다. 주요 정책에 대한 공감도는 44.3점이었다. 주요 정책 공감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한 것은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제도로 74.4점이다. 성평등 정책 및 문화 확산은 47.9점의 공감도를 보였다. 여성가족부의 내부 구성에 대한 비판도 끊이지 않는다. 장관과 차관 대부분이 이화여자대학교 출신과 여성민우회 출신 위주로만 구성되어있기 때문에 카르텔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이 외에도 타 부처의 업무와 여가부의 업무 영역이 겹친다는 점, 이정옥 전 여가부 장관의 실언 등이 지속적으로 도마에 올랐다. 김경선 여가부 차관은 작년 7월, “모든 정책이 사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서 노력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폐지론을 일축했다.
RISK_ (양)성평등

여성가족부 장관은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라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할 의무가 있다. 양성평등기본법의 골자는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참여, 대우, 책임, 권리 공유다. 문재인 정권 초기,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던 성평등은 찾아보기 어렵다. 2015년 여성가족부는 동성애자를 포함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을 명시하는 성평등 기본조례의 개정을 대전시에 강력 요구했다. “성소수자와 관련된 대전시 조례가 상위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취지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양성평등기본법에 기초하여 여성가족부 정책 기조가 정해진다. 기존의 이분법에서 벗어난 젠더와 성적 지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REFERENCE_ 다양성

프랑스에는 여성가족부의 역할을 맡는 장관이 존재한다. 성평등·다양성·기회균등 장관이다. 주목할 것은 다양성에 대한 강조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뿐 아니라 LGBT, 호모섹슈얼, 트랜스젠더 등에 대한 업무도 진행한다. 독일의 가족·노인·여성·청소년부는 성평등 정책 수립과 집행에 대한 독립 관할권과 책임을 갖고 있다. 지금 한국의 여성가족부는 타 부처와 달리 기능이 아닌 대상별로 조직되어 있다. 여성정책, 청소년정책, 가족정책으로 조직된 식이다. 결국 타 부처와의 업무 범위가 불가피하게 겹치게 되고 권한과 역할이 제한된다. 정책은 자연스럽게 동사가 아닌 명사로 향한다. 여성가족부라는 이름만 바꾼다고 저절로 사회가 바뀌지는 않는다.
INSIGHT_ 필요성

작년 2월 소성욱과 김용민 부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사실혼 관계에서 가능한 건강보험 피부양자 신청이 받아들여졌고 이에 대해 인터뷰를 하자 곧바로 피부양자 등록이 취소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에서는 등록 인정이 실수였다고 말했다. 비혼 및 동거 등에 대한 국민 인식은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추세다. 작년 5월 여성가족부에서 내놓은 「2020년 가족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비혼에 동의하는 20대는 53퍼센트, 비혼동거에 동의하는 20대는 46.6퍼센트로 나타났다. 그러나 소성욱, 김용민 부부의 사실혼 관계는 여성가족부를 포함해 어느 부처도 나서지 않는 외로운 증명 싸움이 되었다. 새로이 형성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가족공동체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여성부는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개편으로부터 17년이 지났다.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이라는 대전제와 젠더 갈등의 소음 아래에서 불필요해졌다.
FORESIGHT_ 업그레이드

정부의 정책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시대마다 각 정부에는 가장 중요한 부처가 존재해 왔다. 박정희 정권 당시 경제 개발을 위한 상공부와 재무부는 그 어느 부처보다 중요했다. 본격적으로 무역이 활발해진 1996년 상공자원부는 통상산업부가 되었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때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요 부처였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함께 문화예술의 산업적 가치가 강조되면서 국가 예산의 1퍼센트가 문화예술 분야에 투자됐다. 지금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대안가족의 다양화, 저출생이다. 여성과 가족을 묶어 놓는다면 저출생은 여성의 출산 기피를 줄이는 데에만 집중하는 피상적 정책으로 환원되기 쉽다. 대상별로 묶인 정책국은 미처 명사가 되지 못한 대상을 필연적으로 배제한다. 여성과 가족, 그들과 관계 맺는 개인이 존재하는 나라에서 그들을 위한 정책이 사라질 수는 없다. 폐지가 아닌 업그레이드를 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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