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만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1월 13일 - FORECAST

4050 고독사가 증가하고 있다. 저소득 중장년층의 생계와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1월 1일 서울 관악구 한 노숙인 쉼터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같은 날 동작구에 거주하던 또 다른 50대 남성이 다세대 주택 반지하 방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저소득 중장년층의 생계와 죽음은 누구의 책임인가?
WHY_ 지금 4050 고독사를 읽어야 하는 이유

20대, 30대의 경우 취업의 폭이 넓다. 65세 이상은 국민연금 대상자다. 문제는 40대, 50대다. 노동 능력이 있다는 이유로 복지 대상에서 제외된다. 건설업, 운송업 등 비정규직 노동을 전전하는 저소득층 중장년에겐 어떤 사회적 혜택이 있나? 죽음이 빈발하는 사각지대를 살펴보자.
DEFINITION_ 고독사

고독사와 무연고사는 조금 다른 의미다. 고독사는 홀로 임종을 맞는 경우다. 무연고사는 시신 인수자가 없는 죽음이다. 혼자 살다 사망한 채 발견되어 가족이 시신을 인수하면, 고독사는 맞지만 무연고사는 아니다. 요양 병원에서 사망했는데 가족들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한 경우, 고독사는 아니지만 무연고사다. 무연고사 사망자에 대한 통계는 가능하지만 고독사는 정확한 통계 수집부터 녹록치 않다. 사망 원인 통계는 사망 신고서나 기타 행정 자료를 기반으로 수집하는데, 이 자료엔 고독사 여부 관련 항목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NUMBER_ 54.9

서울시가 25개 자치구를 분석한 결과 2020년 한 해 발생한 고독사 가운데 54.9퍼센트가 50~64세로 중장년층이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에서 받은 통계에 의하면 2020년 국내 무연고 사망자 수는 2880건이었다. 2015년 1676건에 비해 5년 새 1.71배 증가한 수치다. 이 중 60~64세의 사망 건수(499건)가 65~69세(355건)보다 높게 나타났다. 50~59세의 사망 건수도 623건으로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KEYMAN_ 기동민

2017년 8월 보건복지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고독사 예방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난해 4월 1일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처음 시행됐다. 아직 걸음마 단계이니 관련 정책은 미비하다. 법안이 처음 발의될 당시 기 의원은 고독사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도, 통계 자료도 없음을 문제시했다. 5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RECIPE_ 살피미

작년 여름 서울시에서 ‘서울 살피미 앱’을 출시했다. 50~64세 1인 가구를 고독사 위험군으로 지정하고, 일정 기간 이상 휴대폰 미사용 시 보호자에게 알림을 전송하는 서비스다. 움직임과 전력 사용량을 감지해 위험 상황을 판단하는 스마트 플러그 또한 중장년층 1인 가구 3000여 명을 대상으로 지원했다. 그러나 사각지대엔 또 다른 사각지대가 숨어 있다. 지난 1월 1일 고독사한 동작구 50대 남성의 경우 직접 주민 센터를 방문해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다. 긴급 생계 지원금을 받았으나 살피미 앱 등 고독사 예방 사업에선 제외됐다. 지난해 하반기 실태 조사 결과 가족도 있고 사회생활 기록도 있어 ‘고독사 저위험군’으로 분류됐다고 한다. 시신은 한 달이 지나서야 발견됐다.
CONFLICT_ 보건복지부

고독사는 누구 관할일까? 사망자 관련 업무를 두고 보건복지부와 지자체가 눈치를 보고 있다. 장사법상으론 지자체가 무연고 사망자 관련 업무를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고독사법상으론 고독사 예방 계획 수립, 고독사 실태 조사 등의 책임이 보건복지부에 있다. 장사법과 의료법의 갈등도 있다. 장사법에 따르면 형제는 가족 구성원 중 마지막 연고자로, 사망자의 직계 자손이 시신을 인수하지 않을 시 형제가 대신 인수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반면 의료법상으론 자식이 시신 인수를 거부할 시 형제에게 인수권이 돌아가지 않고 지자체로 바로 넘어가, 무연고사로 취급된다. 
MONEY_ 견적

삶이 화려했던 사람은 죽음도 대체로 화려하다. 고독사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고인의 집을 청소해주는 특수 청소 업체들은 “조건에 따라 그때그때 보수가 다르다”라고 밝힌다. 주거지 면적, 상태, 사망 후 발견 시점까지의 기간 등에 따라 건당 적게는 30만 원부터 수백만 원까지 지불한다.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지점마저 견적으로 나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짐이 많고 집이 넓어서 정리 비용이 올라가면 행복한 죽음일까. 시신을 일찍 발견해 처리 비용이 저렴하다고 유족 입장에서 기쁠 수 있을까.
RISK_ 도시

“고독사 현장엔 술병이 많아요.” 김새별 바이오해저드 특수 청소 업체 대표가 한 방송에 출연해 말했다. 누구를 만날 여건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즐길 수 있는 취미는 술이다. 2021년 서울시 고독사 위험계층 실태 조사에 따르면 고독사 위험군의 특성을 보이는 50대 남성들이 주로 지닌 질병은 알코올 중독, 간경변, 고혈압 등이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만인 것도 아니다. “청소하러 집에 왔는데 집안이 도둑 든 것처럼 뒤집어져 있는 경우가 있어요. 이때는 유족들이 먼저 온 거예요”. 사회에서 고독은 어떤 의미인가? 기본 소득이 생계를 해결해줄 순 있지만 고독을 해결해주진 못한다. 2020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 순위는 경기 1위(22.5퍼센트), 서울 2위(19.48퍼센트), 부산 3위(11.91퍼센트)였다. 고독사는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데 역설적으로 가장 외로움을 타는 대도시의 단면이다.
REFERENCE_ 외로움

영국에선 외로움이 국가적인 의제다. 지난 2018년 1월 세계 최초로 외로움 담당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설립해 기금을 모으고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일본은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의 영향으로 오래전부터 고도쿠시의 해결책을 고민해 왔다. 영국을 벤치마킹해 일본에서도 지난해 2월부터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두고 외로움을 정책적으로 연구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외로움은 개인의 문제다. 지금까지도 코로나 블루를 비롯해 전국민적인 우울이 심각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 외로움을 단순히 사회적 증상 이상의 진지한 의제로 고민하는 노력은 미비했다. 정신 건강, 복지와 같은 거대한 단어 속에서도 ‘외로움’이라는 구체적인 의제에 집중할 때 고독사 해결에 좀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INSIGHT_ 소득

전통적으로 삶을 평가하는 지표는 생애 주기였다. 20대엔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고 30대엔 결혼하여 40대엔 집을 사고 50대엔 화목한 가정에서 자식들에게 효도받는 걸 당연히 여겼다. 최근엔 생애 주기의 매뉴얼이 뒤틀리고 있다. 부의 세습으로 20대라도 50대 직장인보다 넉넉한 사람이 있고, 만 34세가 넘어 청년 혜택을 받지 못해도 여전히 저소득층 혹은 실업자인 사람도 있다. 복지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해선 ‘이 나이면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사회적 역할의 기대가 바뀌어야 한다. 오늘날 존중받는 사람은 고령자가 아닌 부자다. 복지의 사각지대를 좁히는 열쇠는 생애 주기 즉 연령이 아닌, 소득 기준의 지원책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FORESIGHT_ 공영 장례

안타까운 사고 발생 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독사 이후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지도 중요한 문제다. 2018년 5월, 서울시 무연고 공영 장례가 처음 시행됐다. 무연고자나 저소득층 시민이 사망할 경우 장례 서비스나 비용을 지원하는 식이다. 하지만 공영 장례 제도가 마련된 지자체는 전국적으로 60여 곳에 불과하다. 공영 장례제가 마련되지 않은 곳에선 장례 의식 없이 바로 화장 절차를 밟는다. 결과적으로 어느 지역에서 죽느냐에 따라 장례 절차도 달라진다. 삶에서 누리지 못한 평등을 그 종지부에서만큼은 누릴 수 없을까. 지역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공영 장례를 고민할 때 죽음의 미래는 지금보다 평등해질 수 있다.


죽음의 다양한 방식을 알고 싶다면 《적당한 거리의 죽음》을 추천합니다.
죽음을 지워 버리는 서울과 달리, 일상에서 죽음을 기억하고 삶을 성찰하는 파리의 문화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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