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쇼크

1월 18일 - FORECAST

중소 제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고 청년은 구직난에 시달린다. 제조업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중소 제조업의 구인난이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기술 숙련도를 요하는 뿌리산업은 내국인도 외국인도 일하려 들지 않는다. 숙련공들은 택배나 배달 등의 유통 업계로 빠져나간다. 지난 1월 5일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2022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에 참여한 대선 후보들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겠다고 했지만 이들이 처한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WHY_ 지금 중소 제조업의 구인난을 읽어야 하는 이유

코로나19는 소상공인에게만 직격탄을 날린 게 아니다. 중소 제조업에도 잔인했다. 65퍼센트의 중소기업이 적정 수준의 인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중소 제조업 구인난은 오랜 얘기다. 제대로 된 해결 없이 미봉책의 연속이었다. 제조업은 산업의 근간이고 이 중에 중소기업의 비율은 97.9퍼센트다. 중소기업 업종 중 1위인 도·소매업에 이어 2위가 제조업이며 국내 전체 일자리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 인력난 장기화로 기반 산업이 타격을 입으면 국내 주력 산업인 조선·자동차·반도체·에너지 등에 모두 영향이 간다.
DEFINITION_ 미스매치

중소 제조업은 산업 특성상 건강하고 젊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힘을 쓰거나 정교함을 요하기 때문이다. 청년에게 제조업은 최후의 선택지다. 그마저도 대기업 생산직을 원한다. 중소 제조업의 숙련공이 되어도 일자리 상향 이동이 어렵고 원하청 도급 형태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도권 제조업도 구인난이 있지만 지방은 사실상 내국인 구인을 포기했다. 내국인, 특히 청년에 대한 유인 요소가 없다. 일자리 미스매치 현상은 가속화하고 있다. 이제껏 중소 제조업은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 노동자로 버텼다.
RECIPE_ 이주 노동자

이주 노동자는 3D 업종이나 지방의 제조업 등 내국인이 기피하는 단순기능 일자리의 부족한 노동력 해소를 위해 정부가 들여왔다. 1991년에 처음 시행된 외국인 산업 연수 제도부터 이를 개편한 고용허가제, 방문취업제로 노동력을 수혈해왔다. 일련의 제도는 이주 노동자의 저임금을 구조화하고 느슨한 노동법으로 그들을 관리하려는 의도를 가졌다. 코로나19로 입국 중단이 장기화하고 이주 노동자의 몸값이 높아지자 브로커들이 성행했다. 불법 체류자가 되면 더 높은 임금으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급히 노동자 입국을 재개했지만 또 한 번의 응급 처치에 불과했다. 노동력 품귀로 이젠 이주 노동자조차 제조업을 기피한다. 이들에 기대온 중소 제조업 산업 구조는 흔들리고 있다.
RISK_ 계급의 인종화

저임금, 저생산성 분야가 이주 노동자로만 채워지는 것은 이들에 대한 인종주의를 부추긴다. ‘외노자’라는 말이 혐오 표현에 가까워지는 이유다. 전문 인력을 수입해올 때는 거주 비자인 F-2나 E-7으로 들여오지만 3D 업종에 종사하는 단순기능 인력을 들여올 때는 비전문취업(E-9) 방문취업(H-2) 등의 비자를 발급해준다. F-2는 장기 체류가 가능하고 취업의 제한도 없으며 추후 F-5 영주 비자로도 변경 가능한 비자다. 하지만 E-9은 체류 기간을 제한하고 직종 변경도 제한된다. 고용주의 권한이 강한 이유다. 고용허가제는 주로 E-9비자를 이용하며 송출 국가도 필리핀,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 아시아 내 16개국으로 정해져 있다. 이들과 사회적으로 교류할 틈도 없이 한국 사회 내에서 이들은 저소득 3D 업종 근무자로 각인되며 저임금 노동 계급에 대한 인종화로 이어진다. 이는 중소 제조업 경시 풍조가 강해지는 하나의 이유로 작용한다.
NUMBER_ 52

지난 2021년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제 역시 중소 제조업의 발목을 잡았다. 이는 숙련공 이탈을 불렀다. 비전문취업으로 들어온 이주 노동자는 단순기능 인력이다. 내국인과의 일자리 경합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는 외국인 숙련공 수입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내국인 숙련공은 주 52시간제 시행으로 야근이나 잔업수당을 받을 수 없어 연봉이 줄었다. 그들은 일하는 만큼 벌 수 있고 수당이 좋은 플랫폼 혹은 유통 기업으로 이직했다. 코로나19로 배달이나 택배 수요도 급증했기 때문에 일할 곳도 많았다. 정책 취지는 좋았으나 제조업 분야에선 대기업과 달리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를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MONEY_ 56.68원

주 52시간제는 다른 문제도 낳았다. 제조 공정을 야간에 돌리기 어렵게 됐다. 심야에 전기를 사용하면 경부하 시간대에 포함돼 전력을 원가 대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산업용 전기 경부하 판매 단가는 킬로와트시(kWh)당 56.68원이고 산업용 전기료 단위 원가는 101.8원이다. 대기업은 전력 사용량의 54퍼센트를 경부하 시간에 집중해 조업한다. 자동화나 전력 저장 시스템이 구축돼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은 설비에 투자할 돈이 없다. 제조업 특성상 모든 공정에 전기가 들어가는데 낮에 어쩔 수 없이 작업하다 보면 비싼 전기를 써야 한다. 한전이 중소기업에 판매한 전기는 대기업보다 평균 17퍼센트가량 비싸다. 역진성이 발생한 것이다. 전기료는 계속 인상되고 대기업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다.
CONFLICT_ 세대론

중소 제조업의 위기는 구조적 문제고 최근 이를 가속화한 것은 코로나19와 원자재 가격 상승, 노동 정책이다. 구인난은 이로 인한 대표적 현상이다. 이를 원인으로 치환하면 세대 간 인식 간극이 드러난다. 기성 세대는 청년층이 구직난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산업단지나 지방의 공장으로 가지 않는 것을 질타한다. 이들에게 청년 세대는 일자리 눈높이가 높고 편한 일만 하려는 이기적인 세대다. 청년 세대의 입장은 다르다. 지방의 중소 제조업은 정주 여건과 임금이 좋지 않다. 부동산과 주식 투자의 가치가 상승하며 노동의 의미도 잃었다. 무엇보다 3D 업종 기피 현상은 지금 청년 세대에서만 대두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를 세대론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오독이다.
KEYMAN_ 이과장

“중소기업이 낳은 괴물 중낳괴 이과장입니다.” 유튜버 이과장의 영상 인사 멘트다. 그는 중소기업만 10년 넘게 다니며 중소기업의 문제점을 재치있게 비판하는 유튜버다. 그는 2021년 〈좋좋소〉라는 웹 드라마를 기획해 유튜브와 왓챠에 공개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29세 사회 초년생 조충범의 눈으로 바라본 중소기업을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그렸다. 복지와 임금 등 열악한 처우, 비전문성, 구성원의 낮은 역량과 만성적 패배주의, 주먹구구식 회의, 낙하산, 편법 행위 등 수많은 문제가 다뤄졌다. 과할 정도지만 실제 중소기업에 근무해 본 청년 세대는 다큐멘터리에 가깝다며 호평하고 열광했다. 각 회차의 조회 수 평균이 100만을 가볍게 넘을 정도다. 제조업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중소기업에 대한 청년들의 보편적 인식이 싸늘한 이유에 대한 모법 답안이다.
REFERENCE_ 모노즈쿠리?

먼저 성장을 경험했던 일본의 사례는 어떨까. 일본은 전통적으로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다. 보통 ‘메이드 인 재팬’을 떠올리면 좋은 품질을 기대하는 것은 이들의 기업 정신 때문이다. 이른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다. 혼신의 힘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이 단어는 장인 정신을 대표한다. 오랜 저성장과 일본 대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하락에도 일본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이른바 ‘강소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의 비결은 단순한 기업 정신이 아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0퍼센트 정도지만 일본은 80퍼센트 수준이다. 전반적인 처우와 더불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단가 압박이 없진 않지만 공동 이익을 우선시해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관계다.
INSIGHT_ 착취

구인난은 원인이기 전에 결과다. 중소 제조업의 구인난을 해결하려면 필요 인력에 대한 유인 요소가 필요하다. 그것이 불가한 이유가 이 산업의 고질적 문제다. 대기업은 주 52시간제로 인한 타격이 작다. 전기 역시 중소기업보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구인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중소 제조업 분야에서 대기업 비율은 2.1퍼센트지만 생산액 비중은 64퍼센트에 달한다. 종사자 역시 29.8퍼센트에 달한다. 중소 제조업은 여기에 더해 대기업의 단가 압박에 시달린다. 기업의 이윤 추구는 당연하다는 논리 속에 수직적 착취 구조는 가려진다. 중소 제조업은 최근 글로벌 공급망 대란으로 원자재와 부자재 값이 폭등하며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았다. 이들은 한계기업으로 내몰린다. 수직적 산업 구조는 아래로의 착취를 일삼았고 그것이 중소 제조업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를 이주 노동자 송출국과 수용국의 관계로 확장하면 글로벌 자본주의의 착취 구조를 읽을 수 있다.
FORESIGHT_ 리쇼어링

제조업이 망하면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선진국 제조 기업들은 코로나19로 공급망 차질을 경험하고 리쇼어링(Reshoring) 중이다. 리쇼어링은 해외로 진출한 기업의 국내 복귀를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분쟁과 자원의 무기화는 국내 제조업 역량 강화 필요성에 불을 지폈다. 코로나19로 물가와 운임이 폭등해 해외 생산이 저렴하지 않은 것도 이유다. 이들은 국내로 제조업을 들여오며 생산 공정 디지털화와 고부가가치 분야 육성에 초점을 맞춘다. 제조업에 강한 중국, 베트남, 태국 등의 신흥국도 제조업의 자급률을 높이고 고부가가치화하고 있다. 한국은 일련의 문제로 오히려 오프쇼어링이 일어난다. 제조 기업이 국내로 U턴해도 일할 사람이 없다. 국내 중소 제조업은 생산 시설의 자동화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결국 플랫폼 기업으로의 노동자 흡수는 계속되고 공정의 스마트화 이전에 많은 중소기업이 무너질 것이다. 수직적 착취 구조의 문제는 돌고 돌아 다시 대기업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


이주 노동자 문제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다문화 쇼크》를 추천합니다.
국제 노동 시장에 대처하는 한국의 다문화 정책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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