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 처벌은 가능한가?
 

1월 19일 - FORECAST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적용한 심의가 시작됐다. 표현의 자유 침해인가 불가피한 차선책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월 17일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적용한 인터넷 게시물 심의가 시작됐다. 2013년 발의된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를 처벌하자는 취지의 법안을 적용한 첫 심의다. 꾸준히 제기돼 온 역사 왜곡 처벌 법안은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 가능 여부와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 등에 부딪혀 왔다. 역사 왜곡을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침해일까, 불가피한 고육지책일까?
WHY_ 지금 역사 왜곡 처벌을 읽어야 하는 이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인터넷상의 불법 정보와 유해 정보를 심의해 왔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시행 이전에도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는 게시물은 유해 정보로 분류되었다. 지난 1월 17일 심의부터는 지난해 시행된 5.18민주화운동 특별법에 따라 해당 게시물이 유해 정보가 아닌 불법 정보로 심의됐다. 2020년 국회를 통과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의 일부 개정 법률에 대한 논쟁이 계속된다. 유사 법안인 역사왜곡방지법에 대해서도 변호사와 사학계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편에서는 사회적 합의를 지향한다는 목적 아래 끊이지 않는 선동과 날조를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논리가 맞선다.
NUMBER_ 55퍼센트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에 찬성하는 국민은 55퍼센트, 반대하는 입장은 34.7퍼센트였다. 찬성 여론은 광주, 전라 지역이 75퍼센트로 가장 높았고, 반대 여론은 보수 지지층에서 우세했다. 2019년 자유한국당의 일부 국회의원이 5.18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유가족을 괴물 집단으로 매도했던 사태에 대한 반발이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여론과 일부 정치인은 5.18 역사왜곡처벌법 등을 지역 갈등과 이데올로기적 갈등으로 빚어내려 했다.
DEFINITION_ 처벌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먼저 통과됨에 따라 역사왜곡방지법과 금지법은 유사성으로 인해 통과가 지연됐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이후 발의된 일련의 역사 왜곡 처벌 법안은 기본 논리를 공유한다. 국가 범죄와 참사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가 2차 피해를 양산하고 거짓 선동을 펼치기 때문에 이를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 그것이다. 해당 법안들은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 등에 대한 사실 왜곡과 일제 폭력 미화, 욱일기 사용 등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으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사실 왜곡 처벌 내용도 포함됐다. 이를 위반할 시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역사왜곡방지법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숭고한 가치를 거짓으로 훼손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빈번해 국민적 공분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발의 사유로 들었다.
MONEY_ 3809만 원

주류 언론사와 방송사로 미디어가 한정되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1인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의 구축으로 인해 개인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외부에 전달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가짜 뉴스가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운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는 자극적인 제목과 허위 사실을 이용해 돈을 번다. 작년 4월 발생한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과 관련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유포한 일부 유튜버는 거액의 수익을 올렸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62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받기도 했으며, 조회 수를 올려 최대 3809만 원까지 벌어들였다. 자극적인 선동과 왜곡된 진실은 이미 굳어진 믿음에 보내는 일종의 동조다. 단단하게 짜인 믿음은 퍼지기 쉽다. 돈은 그 믿음에 따라오는 일종의 부가수익인 셈이다. 허위 사실 유포와 가짜 뉴스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KEYMAN_ 소준섭

5.18 당시 광주의 기록을 찾아 기록한 《광주백서》에 대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유언비어가 떠돌았다. 《광주백서》의 원저자가 북한에 있다는 루머다. 저자 소준섭은 직접 해당 논란을 인용하며 5.18 왜곡에 대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준섭은 “이러한 막무가내식 표현의 자유로 인해 피해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미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왜곡이 일상화되어 있고, 광범위하게 유통된 상황에서 최소한의 법적 규제가 없다는 것은 실질적 방임이라는 논리가 역사 왜곡 처벌 법안 제정에 힘을 실었다.
CONFLICT_ 법의 구멍

역사 왜곡과 관련한 처벌 법안에 반대하는 이들은 이미 규정된 명예훼손·모욕 법제로도 유공자 및 관련자의 인격 침해를 처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기존의 법 조항으로는 처벌의 공백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 미국과 달리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전면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우리나라의 경우 허위 사실에 대한 형사 고소가 불가하다. 또한 특정 개인을 지칭하지 않거나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 명예훼손 및 모욕죄 적용이 어렵다는 난점도 존재한다. 2013년 지만원 칼럼니스트는 5.18 북한군 개입설을 유포해 명예훼손으로 기소된 바 있으나 개인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무죄를 받았다.
RISK_ 표현의 자유

사단법인 오픈넷은 역사왜곡금지법 입법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오픈넷은 역사왜곡금지법이 민주주의의 원리와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을 결정하고 이에 반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제는 국가와 정치 권력이 반대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남용될 위험이 높다는 논리다. 또한 무엇이 금지되는 표현인지가 불명확하기에 또 다른 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이 또 다른 희생자를 낳는 법안으로 확대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의 경우 이에 대응해 각종 보완책을 마련했다.
RECIPE_ 완충재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이 표현의 자유와 학문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를 받아들여 5.18 허위 사실 유포 처벌 조항이 수정 및 보완됐다. 사적 대화는 처벌 대상이 아니다. 처벌 대상은 신문, 잡지, 방송, 출판물, 정보통신망, 전시물, 공연물 토론회, 기자회견으로 제한됐다. 또한 부인, 비방, 왜곡, 날조는 처벌 구성 요건에서 모두 삭제되고 허위 사실 유포만 처벌 대상이 됐다. 그러나 사실의 영역과 의견의 영역이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가에 대한 여지도 남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민주주의 국가는 국가의 절대적 확실성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며 “표현의 허용 여부를 국가가 재단하게 되면 언론과 사상의 자유 시장이 왜곡되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REFERENCE_ 홀로코스트 처벌법

역사 왜곡에 관한 처벌 법안 제정의 근거가 된 홀로코스트 처벌법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된 유대인 학살에 대한 부정이나 선동을 막기 위해 제정됐다. 홀로코스트 처벌법 역시 다양한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의견과 선동은 본질적으로 발화라는 점에서 구별이 쉽지 않다. 노골적인 혐오 발언이 아닌 경우 외려 교묘한 사실 조작이 가능하다. 모호하게 표현하거나 개인적 의견임을 밝히는 경우 얼마든지 법망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다양한 현대사의 쟁점에 관한 논의가 죄의 유무 논의로 축소되면 오히려 공론장은 좁아진다. 유럽은 홀로코스트 처벌법과 함께 시민 교육과 인권 의식의 확장 등에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들이고 있다.
INSIGHT_ 진동

더불어민주당은 역사 왜곡에 대한 처벌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입법을 적극 추진했다. 역사 왜곡은 옳지 않기에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에 기반해 입법이 추진됐다. 하지만 현실은 논리보다 크다. 5.18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과 이후 재생산된 각종 허위 사실은 우리 사회의 새로운 차별과 혐오로 번졌다. 한편 사학계는 해당 법안이 결과적으로 학술적 자유를 위축시킬 것이라 우려했다. 법안은 학술 연구에 처벌 예외를 뒀으나 현실적으로 고소 진행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해결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과 이대로 재생산되는 왜곡과 폄훼를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법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 사회는 실질적 방임이 된 사회적 합의와 소수자 혐오를 막기 위한 사법화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다.
FORESIGHT_ 시험대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왜곡과 허위 사실 유포 문제가 크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사안이다. 사회에 적용된 법은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실질적 효용성이 어느 정도인지,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성찰이 이뤄진다. 효력이 본격화된 5.18 역사왜곡처벌법 역시 그 대상이 될 것이다. 해당 법안이 유지되거나 강화된다면 현재 계류 중인 역사왜곡방지법과 금지법 역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법안의 효용성을 따지는 활발한 공론장을 만들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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