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는 기자들

1월 21일 - FORECAST

대선을 앞두고 두 앵커가 정치권으로 이직했다. 정치와 언론이 선을 넘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들이 정치권으로 향했다. JTBC의 이정헌 기자와 YTN의 안귀령 앵커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선대위 공보단에 합류한 것이다. 두 사람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과 언론계 모두 술렁이고 있다.
WHY_ 지금 언론과 정치 사이의 선을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

이정헌 기자와 안귀령 앵커가 선을 넘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언론과 정치 사이에는 왜 선이 있을까. 그 선은 정녕 넘어서는 안될 선일까.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이 바로 대선 정국이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을 뽑기 위해 온 나라가 언론이라는 렌즈를 통해 정치권을 바라보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DEFINITION_ 공중전 

20대 대통령 선거는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환경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 첫째, 사상 최초로 ‘이념’보다 ‘효능감’이 중요한 대선이다. 따라서 후보들은 정당명이나 기호 대신 자신들이 유권자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를 세일즈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말하고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절실한 것이다. 둘째, 바야흐로 매체 춘추전국시대의 선거이다. 누군가는 폭증한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에 의구심을 갖겠지만, 이미 정치적 팬덤을 동원하는 효과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네거티브는 빠르게 퍼지고 팬덤과 안티팬덤은 모두 공고해진다. 마지막으로, 선거 유세 방식에 있어 사회적 거리두기를 고려해야만 하는 시대가 되었다. 선거철이 되면 밤마다 이어졌던 초대형 술자리가 아예 원천 봉쇄된 지금, 조직선거의 힘은 약해질 대로 약해졌다. 지상전이 봉쇄됐다. 이제 후보들은 언론을 통한 공중전으로 개인화된 유권자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결국 어느 정당이 되었든, 혹은 무소속 후보라 해도, 미디어 전략이 선거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RECIPE_ 방송금지

지금 각 선거대책본부들은 언론에 진심일 수밖에 없다. 그 증거가 바로 정치권의 잇따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는 자신과 한 인터넷 매체 기자와의 통화 내용이 담긴 7시간 분량의 녹취록 파일 내용을 보도하겠다고 나선 MBC를 상대로 두 차례에 걸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다. 또, 국민의당과 정의당은 거대 양당의 후보만을 참여토록 한 대선후보 TV토론에 반발해 지상파 방송 3사를 대상으로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접수했다. 언론을 마음대로 움직여 보고자 하는 정치권의 욕망이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공공연하게 그 욕망을 선언한 일은 드물다. 아니, 이제 정치인은 방송사를 직접 항의 방문해 불공정과 편파방송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쏟아내며 일갈한다.
MONEY_ 후원금

물론, 언론이 무조건 결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매체들은 ‘녹취록’이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매력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추한 꼴을 보고 싶어한다. 꾸며진 모습과 정제된 말이 아니라 진짜 민낯과 밑바닥을 보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관음증과 녹록하지 않은 미디어 시장 상황이 만나 녹취록 보도를 비롯한 각종 자극적인 콘텐츠가 줄을 잇는다. 기자의 손과 입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사실을 전달한다는 명분과 시청자의 알 권리라는 포장지를 뒤집어쓴 채 배달된 판도라의 상자. 그러나 그 포장지를 벗기고 뚜껑을 열어보면 언론의 ‘직무유기’와 ‘클릭장사, 후원금 장사’라는 충전재가 가득 들어 있음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NUMBER_ 2

지상파 3사가 주관하게 될 양자 TV토론도 결국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대통령 선거는 단순히 다음 5년간 행정부의 수반을 결정하고 끝나면 될 일이 아니다. 다양한 정책과 의견이 쏟아져 나오고, 이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공론의 장으로서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대중의 관심은 ‘둘 중 누가 될까?’에 있다. 결국 시청률을 위해 선택한 양자 토론 앞에 군소 정당들은 목소리를 낼 창구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언론과 거대 양당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동행 아닌 동행을 선택했다.
REFERENCE_ 민경욱

이렇게 언론은 정치가 필요하고 정치는 언론이 필요하다. 그래서일까, 언론인을 향한 정치권의 러브 콜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인의 정치계 입문에는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라는 비판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지난 2014년 2월 5일 오후, 당시 KBS 보도국 문화부장이었던 민경욱 전 의원이 갑자기 청와대에 나타나 신임 대변인으로 인사를 한다. KBS 구성원들은 아무도 몰랐던 것은 물론, 당일 오전에 그는 기사 데스킹까지 봤다고 한다. 그가 기자로서 수행했던 업무가 과연 정치적인 목적에서 마지막까지 자유로웠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가 따라붙는 이유이다.
CONFLICT_ 이정헌

이번에 민주당행을 결정한 두 앵커의 행보를 두고도 비슷한 우려의 시선이 있다. 결국, JTBC 출신의 이정헌 앵커는 “30년 가까이 방송을 하면서 항상 모든 말과 글의 중심에는 팩트가 있었다. 팩트를 왜곡하거나 한 쪽에 치우친 가치를 갖고 기사를 쓰거나 방송을 한 적이 없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언론계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정헌 앵커가 정당을 비판하는 저널리스트에서 정당을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건 팩트다.
KEYMAN_ 안귀령

YTN 출신의 안귀령 앵커는 조금 결이 다른 입장을 내놨다. “비정규직 신분의 앵커로 높은 현실의 벽에 충동적으로 사표를 던진 뒤 당에서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란히 앉아 뉴스를 진행하지만 조명이 꺼진 뒤 사무실로 돌아가면 ‘비정규직 아나운서’와 ‘정규직 기자’의 자리는 동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정치권으로의 ‘이직’이 안 전 앵커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다. 정치권이 영입한 인재지만 언론계가 놓친 인재인 측면도 있단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귀령 앵커가 선을 넘었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비정규직 기자라고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써도 되는 건 아니다. 저널리즘의 선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없다. 선은 선일 뿐이다.
RISK_ 권언유착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비판적인 시선을 감수하고서라도 언론인들을 ‘인재영입’하는가. 민주당이 이번에 영입한 이들이 맡은 직책을 살펴보면 답이 나온다. 이정헌, 안귀령 전 앵커는 각각 선대위 미디어센터 센터장과 부센터장으로 임명되었다. 언론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정치와 선거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가속화할수록 언론의 ‘감시견(watch dog)’으로서의 역할이 약화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정치가 언론의 작동 구조를 속속들이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정치권으로의 이직이 언론인의 가시적인 장래희망이 될수록 권력을 향한 쓴소리는 어려워진다.
INSIGHT_ 언론감시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여론이 언론을 감시해야만 한다. 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 미디어 소비자인 유권자는 자신의 기준에 맞춘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의 대상은 언론과 정치다. 그렇다면 방법은 미디어를 소비하는 당사자가 신중해지는 것이다. 미디어를 끊임없이 의심하고 그 진의를 파악해야 한다. 피곤한 일이지만, 우유를 사기 전 유통기한을 확인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읽어야 할 때이다.
FORESIGHT_ 뱃지 

이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21대 국회의원들의 이력을 따라가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는 있다. KBS 아나운서 출신인 고민정 의원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다. MBC 아나운서 출신인 한준호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다 역시 뱃지를 달았다.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출신의 김의겸 의원도 청와대 대변인을 지내다가 우여곡절 끝에 국회의원이 되었다. 이 중에 이정헌, 안귀령 전 앵커가 그리는 미래의 청사진이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의원이 될 상인가.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다면 《알고리즘의 블랙박스》를 추천합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유튜브에서 매일 접하는 뉴스들이 왜 나에게 노출되었는지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