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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두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영감을 얻어가세요.” 트레바리 독서클럽의 첫 모임이면 클럽장으로서 늘 빼놓지 않고 하는 말입니다. 트레바리는 오프라인 독서클럽을 운영하는 스타트업입니다. 트레바리가 압구정역 근처 폐업한 바를 월세 내서 독서클럽을 운영하던 초창기 무렵부터 클럽장을 했었습니다. 트레바리의 성장과 역경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죠. 책을 함께 읽는 독서클럽이 하나의 커뮤니티 비즈니스로서 자리잡아 가는 모습도 관찰했습니다.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은 독서클럽의 내용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무슨 책을 읽을지 결정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조율합니다. 트레바리엔 파트너도 있습니다. 독서클럽의 분위기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독서모임의 날짜나 다음 모임에 같이 읽을 책을 공지하는 일부터 새로 합류한 멤버와 중도에 이탈하는 멤버에게 친절하게 가입탈퇴 절차를 안내하는 일까지 여러 가지 역할을 합니다. 매달 한번씩 있는 공식 독서 모임 이외에 비공식 번개를 추진하는 것도 파트너의 몫이죠. 

처음 트레바리를 접하면 클럽장부터 눈에 띌 수 있습니다. 사실 트레바리 성공의 보이지 않는 레서피는 파트너 제도입니다. 파트너는 트레바리 직원이 아닙니다. 멤버들 가운데 지원자를 받아서 선발합니다. 물론 보상이 있죠. 파트너는 커뮤니티를 경영하는 트레바리의 직원도 아니고 커뮤니티를 소비하는 트레바리의 멤버도 아닙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죠. 사람들의 모임인 커뮤니티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보이는 내용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분위기라는 얘기입니다. 

영감이라는 키워드도 클럽장으로서 커뮤니티의 분위기를 빚어내기 위한 레서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이라는 지식정보를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에선 아무래도 문제해결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의 정답을 찾는 겁니다. 인생이 수능 객관식도 아닌데 인생에 정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각자가 찾아야 하는 건 정답이 아닙니다. 자기만의 영감입니다. 영감은 모든 문제 해결의 실마리입니다. 문제는 영감을 얻으려면 반드시 타인의 두뇌에 접속해야 한다는 겁니다. 영감은 인간 두뇌의 CPU가 서로 연결돼 병렬 연산을 할 때만 잠깐씩 나타납니다. 독서 토론은 두뇌를 병렬 연결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게 트레바리의 클럽장을 제법 오래 하게 된 배경일 겁니다. 함께 독서클럽에 참여하는 멤버들로부터 무수한 영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로운 독서클럽을 시작할 때면 늘 강조합니다. “여러분 각자만의 영감을 얻어가세요.”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트레바리 독서클럽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1년도 넘게 문을 열지 못했죠. 코로나 판데믹 초창기만 해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모임 일정을 잡았다 취소하기를 반복했었죠. 그러다 지쳐 전부 멈춤했습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된다던 판데믹이 2년째로 접어들면서 이건 아니다 싶었죠. 트레바리 독서 클럽은 오프라인 모임이 기본입니다. 당시만 해도 폐쇄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토론을 한다는 게 불가능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으니까요. 여전히 코로나 상황은 엄중합니다. 그래도 코로나 판데믹이 3년째로 접어드는 2022년엔 독서클럽을 하나쯤은 다시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만큼 일상을 비상으로 살았으면 하나쯤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려도 좋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지난 1월 22일 토요일부터 다시 시작한 독서클럽의 이름은 〈경영하는 인간〉입니다. 기업 이야기와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들을 읽어나가는 독서클럽입니다. 트레바리의 거의 초창기부터 있었던 시조새 클럽 가운데 하나죠. 포스트 코로나로 리부팅하면서 다른 클럽들은 정돈했지만 경영하는 인간은 남겨뒀습니다. 경영과 인간은 저널리스트로서 가장 흥미로워하는 주제거든요. 경영하는 인간에선 경영하는 인간이란 이름답게 경영하는 인간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아무래도 스타트업 종사자들과 대기업 관계자들 그리고 연구소 연구원이나 실전 창업자 여기에 창업을 하고 싶거나 퇴사를 하고 싶은 멤버들을 주로 만나게 되죠. 그런 커뮤니티인 겁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더군요. 4개월 동안 매달 한번씩 만나서 독서토론을 하게 됩니다. 첫날 첫 번째 책은 《규칙 없음》으로 정했습니다. 넷플릭스 컬쳐에 관한 책이죠. 자유와 책임의 밸런스 게임은 모든 스타트업의 숙제죠. 무엇보다 요즘은 오징어 게임의 시대잖아요. 그 어느때보다 흥미롭게 읽힐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역시나 다시 하길 잘했다 싶었습니다. 계속 메모를 해야 할 정도로 영감으로 충만한 독서토론이었거든요. 독서토론 멤버들은 각자 분야에서 쌓아온 지식과 정보를 테이블 위에 기꺼이 올려놓았습니다. 그걸 씨줄과 날줄로 엮어서 통찰을 만들어내는 건 전적으로 클럽장의 책임이죠. 2시20분부터 6시까지 4시간 가까운 토론 시간 동안 멤버들이 지치지 않도록 다독이는 건 파트너의 역할입니다. 혹시나 토론에 참여하지 못한 멤버는 없는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하죠. 마침 넷플릭스 주가는 1월 22일 금요일장에서 25퍼센트 가까이 빠졌습니다. 연준의 기준 금리 인상 시사 발언 탓도 큽니다. 넷플릭스의 경우는 좀 더 심각합니다. 시장이 넷플릭스의 성장성을 낮게 보기 시작했거든요. 경영하는 인간의 2022년 첫 시간 넷플릭스 토론에서의 화두는 과연 성장하지 못하는 기업에서도 자율과 책임의 성공방정식이 작동할까였습니다. 

《규칙 없음》에는 인재밀도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회사의 인재 수준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인사원칙이죠. 넷플릭스는 업계 최고 대우로 인재를 스카우트합니다. 대신 기대에 못 미칠 경우 하루 아침에 내쳐지죠. 물론 이 때도 섭섭하지 않을 정도의 보상은 해줍니다. 인재밀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 정도로 보는 거죠. 넷플릭스에 규칙이 없어도 되는 건 높은 인재밀도 덕분입니다. 경영하는 인간에선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초일류 기업이 아닌 일반 스타트업에선 이런 인재밀도원칙을 과연 지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로 토론했습니다. 투자금이 넘쳐났던 넷플릭스의 인사원칙을 군소 스타트업에 적용하면 부작용만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였죠. 그래서 《규칙 없음》 말고 넷플릭스를 다룬 다른 책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야》였죠. 리드 헤이스팅스와 함께 넷플릭스를 공동 창업했고 초창기 넷플릭스를 이끌었던 마크 랜돌프가 쓴 책입니다. 인재밀도는 커녕 퇴사자가 안 생기게 하려고 발버둥치던 초창기 넷플릭스의 솔직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죠. 
사실 커뮤니티는 저널리즘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커뮤니티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기 위해 저널이 탄생했죠. 스티브 잡스에겐 성경이나 다름 없었던 IT매거진 《홀 어스 카달로그》가 대표적입니다. 창업자 스튜어트 브랜든은 실리콘밸리 일대 지역의 기술과 문화 트렌드를 《홀 어스 카달로그》에 담았습니다. 번듯한 매거진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상 실리콘밸리의 벼룩시장과 가까웠죠.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 축사에서 인용한 “Stay Foolish, Stay Hungry”도 《홀 어스 카달로그》 폐간호에 실린 글입니다. 잡스는 늘 좋은 걸 자기 걸로 만드는 데 천재입니다. 

그런데 《홀 어스 카달로그》 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배경은 이미 실리콘밸리에 기술과 혁신 트렌드를 공유하는 커뮤니티가 생성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혁신적 사고 방식과 문화적 공통점과 기술에 대한 애정을 공유한 커뮤니티가 그들이 교류하게 해줄 미디어를 필요로 하고 있었던 겁니다. 《홀 어스 카달로그》 가 실리콘벨리 지식 커뮤니티의 필독서가 된 건 그래서였죠. 홀 어스 카달로그를 통해 커뮤니티와 두뇌를 병렬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동시에 자신이 누구인지까지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읽는 월가의 여피들과는 다른 《홀 어스 카달로그》 를 보는 실리콘밸리의 히피라는 아이덴티티 말입니다. 그래서 커뮤니티에 기반한 미디어는 로켓처럼 빠르게 성장합니다. 《홀 어스 카달로그》는 폐간됐지만 후예들은 여전합니다. 《와이어드》와 《패스트 컴퍼니》죠. 두 미디어 모두 《홀 어스 카달로그》에 열광했던 기술 커뮤니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커뮤니티가 건재하는 한 커뮤니티를 대표하는 미디어는 영원합니다. 

오랜만에 트레바리 독서클럽을 마무리하고 돌아오면서 북저널리즘에도 독서클럽이 생기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그것도 트레바리 독서클럽에서 얻은 영감 가운데 하나였거든요. 북저널리즘은 올해부터 커뮤니티 저널리즘으로 한걸음 진화했습니다. 슬랙을 통해 구상의 독자들과 세부적으로 소통하고 있죠. 이연대 CEO는 매일 아침 8시마다 뉴스브리핑을 슬랙을 통해 커뮤니티 독자분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신아람 에디터는 매일 오전에 북저널리즘 에디터들이 픽한 뉴스들을 하나로 모아 15미닛픽퐁 브리핑을 합니다. 

그런데 북저널리즘엔 슬랙 커뮤니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북저널리즘 같이 읽기 모임에 참여한 독자 여러분들이죠. 북저널리즘의 포캐스트와 라디오 그리고 프라임레터와 전자책에 달리는 수준 높은 댓글들은 모두 북저널리즘 같이 읽기 커뮤니티를 통해 탄생한 콘텐츠들입니다. 무엇보다 북저널리즘 같이 읽기 모임에는 커뮤니티 파트너도 있습니다. 조영난 님이죠. 본래 업무와는 별도로 시간을 쪼개서 북저널리즘 커뮤니티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더 많은 독자들이 댓글과 의견으로 북저널리즘을 완성해줄 수 있게 됐습니다. 조영난 같은 탁월한 커뮤니티 파트너를 회사에 보유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북저널리즘 북클럽도 가능하지 않을까. 심지어 독서클럽의 명가 트레바리에서 수년 간 독서클럽 클럽장을 활동한 경력을 가진 CCO도 있네요. 

결국, 북저널리즘이 하려는 일도 독자 여러분에게 영감을 주는 것입니다. 북저널리즘이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고 통찰과 전망을 제시하면 독자에겐 그것이 영감이란 열매로 맺혀지게 되는 겁니다. 독자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기 위해서라면 북저널리즘도 독서클럽을 못할 것도 없을 겁니다. 그걸 독자가 원하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북저널리즘 북클럽의 주제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기후위기에 진심인 인간〉일 수도 있겠고 〈정치하는 인간〉일 수도 있겠습니다. 〈미래기술에 몰두하는 인간〉일 수도 있겠네요. 지난 주말 어느 독서클럽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북저널리즘 독자 여러분에게 더 많은 영감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그렇게 영감을 얻어가세요.  
프라임 레터는 매주 프라임 멤버분들에게 보내 드리는 위클리 레터입니다.
2022년부턴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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