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2022년 네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니 굳게 다문 입술에서 한 시대를 모두 짊어진 듯한 깊은 고뇌와 마지막까지 흔들리지 않았을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대한민국 전통장례명장 1호 유재철 장인이 쓴 《대통령의 염장이》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장례를 치르는 대목입니다. 유재철 장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했는데도 얼굴 만큼은 깨끗해서 너무 감사했다고 회고합니다. 시신에 새겨진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표정이 어떠했는지를 저렇게 설명합니다. 유재철 장인은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 그리고 노태우와 최규하 대통령의 장례식을 책임졌습니다.

대통령의 죽음은 한 사람의 죽음일 수 없습니다. 한 시대의 종언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은 새시대를 꿈꾸는 국민의 여망이 담긴 선출직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헌법상으론 행정부의 수반이고 국군 최고사령관이고 국가원수입니다. 퇴임해서 전 대통령이 되면 이런 헌법상의 권한과 의무도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지만 전 대통령이 됐다고 해서 시대 정신의 상징이라는 존재감까지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했던 국민들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민들 각자가 꿈꿨던 나라의 상징입니다. 대통령의 이름은 국민들 각자가 살아냈던 우리 시대의 이름입니다.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꿈꿨던 시대전환이 설사 미완으로 끝났더라도 대통령은 영원히 국민의 일부로 남게 됩니다. 물론 대통령도 정당인입니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한텐 대통령은 우리 시대의 상징이라기보단 여당의 수장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당대의 상징적 존재라는 사실까지 반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죽음은 한 시대의 퇴장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대통령의 죽음은 대통령을 자기 시대의 상징으로 삼았던 정치 집단과 특정 세대가 퇴조하고 은퇴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후입니다. 한 시대와 한 세대가 역사의 저편으로 물러가고 있다는 걸 선언하는 사건이죠. 그래서 《대통령의 염장이》에서 유재철 장인이 염습하는 대상은 어쩌면 대통령의 시신이 아닙니다. 지나간 새 시대 정신의 유해입니다. 
노무현 대통령만큼은 예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5월 23일 투신자살했습니다. 2008년 2월 대한민국 16대 대통령으로서 5년 임기를 마친지 1년여 만이었습니다. 퇴임 이후 봉하마을로 내려간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운영 지지도는 한때 5.7퍼센트였습니다. 나라를 외환위기에 빠뜨렸던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운영 지지도조차 8.7퍼센트였습니다. 탄핵을 당해 대통령직에서 쫓겨난 박근혜 대통령의 마지막 국정운영 지지도가 5퍼센트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국민들한테 사랑만 받지는 못했습니다. 정작 퇴임 이후 인기가 치솟았죠. 노무현 대통령 특유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 덕분에 전직 대통령 노무현의 재발견이 이뤄졌던 것이죠. 국가원수나 여당 수장이라는 프레임를 내려놓고 바라볼 수 있게 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탈권위주의와 참여민주주의라는 시대정신의 변함 없는 상징이라는 진실을 국민들이 깨닫게 됐던 겁니다. 

노무현은 우리 시대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가치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차기 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검찰 그리고 언론은 박연차 게이트로 노무현이라는 상징을 무너뜨려버렸습니다. 아직 노무현을 자기 시대의 상징으로 여기는 국민들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래서 노무현을 무너뜨려야 했었던 건지도 모르죠. 이건 노무현 대통령이 누구보다 뼈저리게 알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9년 4월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을 폐쇄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정의, 이런 말을 할 자격을 잃어버렸습니다.” 

대통령의 자연사는 대개 시대의 자연스런 퇴장입니다. 대통령이 상징하던 시대 정신은 지지자들과 함께 서서히 바래져가고 있었죠. 그래서 당대 국민 입장에선 과거 대통령들의 죽음은 애도는 해도 원통하지는 않습니다. 당대 국민들한텐 자기 시대의 시대 정신을 상징하는 대통령이 이미 있으니까요. 국민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원통했고 애통했고 비통했습니다.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시대 정신은 현재진행형인데 노무현이라는 상징만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당대 국민들에게 커다란 부채 의식을 남기게 됩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서 이루지 못한 가치를 이 땅 위에서 이루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죠. 케네디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케네디는 암살당했지만 미국 국민들은 케네디가 상징했던 뉴프론티어 시대 정신을 끝까지 완수합니다. 대표적으로 문샷입니다. 케네디가 선언한 그대로 1960년대가 지나기 전에 인간을 달로 보내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노무현이 못 다 이룬 꿈을 이루고자 했죠. 어쩌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벌어진 한국 정치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모두 노무현에 대한 국민적 부채 의식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2기 노무현 정부라고 할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출범이나 촛불 시위에 이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태 그리고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수감으로 이어진 적폐청산을 지지한 국민들이라면 크게 다른 의견이진 않을 겁니다. 모두가 운명이었죠. 전부가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입술을 굳게 다문 채 한 시대를 모두 짊어지고 떠났기 때문이죠. 

따라서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처럼 불행해지는 것만큼은 막아야만 하는 겁니다. 시대 정신이 또 다시 그렇게 외롭게 쓰러져가는 걸 지켜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문재인 대통령의 직무 수행 평가는 긍정평가 40퍼센트대를 줄곳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지지율 40퍼센트대로 퇴임하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대통령 지지율 방어는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이철희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마지막 지지율이 40퍼센트가 나온다면 여한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으로선 달성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철희 정부 수석이 지지율 40퍼센트에 집착하는 건 기록 달성 때문이 아닙니다. 이번 대선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서도 아닙니다. 퇴임 이후 문재인이라는 상징을 지키려면 지지율이라는 해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인기 없는 대통령으로 낙인 찍혀서 퇴임 이후 검찰과 언론의 마녀사냥까지 당한 노무현 대통령한테 없었던 게 임기 말 지지율이었으니까요. 지금 문재인 청와대의 최대 관심사는 정권 재창출이 아닙니다. 지지율을 지켜서 대통령을 지키는 겁니다. 엄밀히는 국민적 지지가 전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죠. 

그래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지난 2월 7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던진 발언은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정치사의 비극을 깊이 이해한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심지어 윤석열 후보 본인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고 알려졌으면서 말입니다. 두 번의 대선토론에서 윤석열 후보는 짧은 정치 경력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사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정치인이라기보단 검찰총장 같은 대답을 해버렸습니다. “집권하면 전 정권 적폐청산 수사는 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원칙론을 강조한거죠. 물론 잘못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합니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정치는 법과는 달라야만 합니다. 법은 원칙대로 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원칙 그 너머의 가치를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법은 적용하면 그만이지만 정치는 이끌어야 하니까요.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이른바 검찰주의자들이었습니다. 법을 원칙에 따라 적용하기만 하면 완전무결하고 그래서 검찰은 무오류라고 믿는 게 검찰주의자들의 특징입니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 후보는 다시 한번 검찰주의자라는 걸 커밍아웃했죠.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하면서도 검찰주의자들은 법과 원칙을 내세웠습니다. 전직 대통령까지 법정에 세우는 것이야 말로 검찰의 공명정대함을 만천하에 보여주는 것이라고 착각했죠. 결과적으로 당시 검찰의 선택은 한국 정치를 소용돌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검찰 자신은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죠. 당대의 시대정신을 검찰의 손에 잃어버린 국민은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같은 일을 겪게 될까 우려하고 있죠. 문재인이라는 시대 정신마저 잃게 될까 두려워하고 있죠. 국민이 대통령 후보에게 원하는 건 법과 원칙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겁니다.

사실 윤석열 후보의 인터뷰는 정치공학적으로도 부족합니다. 양당의 당파싸움에 질린 사람들이 중도층입니다. 문재인 정부를 적폐로 몰아서 수사하면 수구보수는 환호할지 모릅니다. 윤석열 후보 입장에선 원래 있던 집토끼죠. 확장성이 없는 메시지입니다. 윤석열 캠프도 뒤늦게 그걸 알고 확전을 피하는 분위기죠. 반면에 이재명 후보는 지난 2월 12일 조치원 유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그 험한 길을 가셨다. 우리가 지켜주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다시 지켜주지 못했다고 똑같은 후회를 두 번씩 반복할 것이냐.” 한 마디로 문재인을 지키려면 이재명을 찍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이재명 후보는 친문적통이 아닙니다. 친노와 친문은 이재명 후보가 집권하면 결국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수 있다고 의심해왔죠. 이젠 이재명 후보가 노골적으로 문재인 지키기에 나선 모양새입니다. 노무현의 트라우마 때문이죠. 노무현은 여전히 한국 정치의 상수입니다. 아직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시대 정신이 성취되지 못해서일 겁니다. 

눈물은 울음이 됐습니다. 울음은 통곡이 됐습니다. 길바닥에서 기진할 정도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덕수궁 대한문 앞이었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시민 분양소 앞이었습니다. 2009년 5월 28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등을 다독여주면서 휴지를 건내줄 정도였죠. 울면서도 왜 이렇게 눈물이 멈추질 않는지 스스로로 납득이 안 갔던 기억도 납니다. 눈물의 이유를 몰랐죠. 그날 집에 돌아가서 당시 기고하던 〈프레시안〉에 노무현 대통령의 부고 기사를 썼습니다. 제목은 ‘근조, 노무현’이었습니다. 정작 해당 기사를 민주당 관련 단체에서 책에 싣고자 했을 땐 단호박 거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노무현을 사랑했던 것이지 민주당을 지지하는 건 아니었던 겁니다. 아마 노무현 정부를 실패하게 만든 건 리더를 따를 줄 모르는 당시 열린우리당한테도 책임이 있다고 여겨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습니다. 이제서야 당시의 눈물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됐습니다. 노무현 트라우마를 소환해준 윤석열 후보 덕분입니다. 노무현은 우리 시대의 이루지 못한 꿈입니다. 노무현 시대는 부족하고 불안하고 불완전했습니다. 대신 역사는 반드시 진보한다고 믿었습니다. 내일이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죠. 대통령부터가 그런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 시대였죠. 대통령이 상록수를 부르며 꿈을 이야기하는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그런 낭만의 시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노무현 2기인 문재인 정부조차 지지율에 혈안이 된 마당이니까요. 눈물은 한 시대가 이렇게 좌절되고 그 시대를 영원히 그리워할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노무현 세대가 잊혀져 죽어갔던 선장에게 보냈던 송가였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하루 아침에 한 시대가 눈물로 끝나버리는 비극이 반복돼선 안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우선 원칙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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