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잔혹사

2월 9일 - FORECAST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의 배경에는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있다.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한국 정치권에는 영리한 전략이 없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2월 7일 중국 베이징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가 대한민국을 뒤집었다. 누가 봐도 무리한 편파 판정이 있었고, 그 결과 금메달은 주최국인 중국이 거머쥐게 됐다. 그야말로 국민적 분노이다. 안 그래도 반중 정서가 심상치 않던 일부 커뮤니티 등에서는 제어하기 힘든 수준의 언어가 넘치고, 연예계와 정치권에서도 이 분노에 탑승해 독한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WHY_ 편파 판정 논란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들

이 분노가, 그리고 항의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메달을 돌려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가 던지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진지하게 찾아볼 필요는 있다. 중국은 왜 무리해서까지 금메달을 가져가고자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중국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나. 우리가 좋든 싫든, 대한민국은 이미 중국과 이별해서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중국과의 불화에 대해 고민해 볼 때이다.
KEYMAN_ 시진핑

무리수를 두어서라도 중국 선수에게 금메달을 안겨야 하는 배경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있다. 이번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시진핑 주석의 ‘3연임 대관식’ 무대이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8년 이미 헌법 개정을 통해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닦아 두었다. 당장 다음 달 4일로 예정된 중국 최대 규모의 정치 이벤트 ‘양회’와 올가을로 예정되어있는 중국 공산당의 제20차 당대회를 통해 시 주석은 3연임을 공식화하게 될 것이다. 연임으로 10년째 이어 오고 있는 국가주석 겸 공산당 총서기 지위를 5년 더 연장하게 되는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빅 이벤트를 통해 중국 인민의 호감도를 끌어올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또한, 미·중 갈등으로 인해 개막식 VIP 참석이 평창 대비 3분의 1로 급감하는 등의 악재까지 등장하면서 자국 선수들의 선전은 훨씬 중차대한 문제가 되고 말았다. 결론적으로 지금 시진핑에게는 금메달이 절실하다.
CONFLICT_ 한복

개막식에 등장했던 조선족의 한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서방 세계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보이콧하면서 내건 ‘표면적인’ 이유가 바로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 문제이다. 시진핑은 서방 세계가 틀렸다는 것을 전 세계에 반드시 증명해야 했다. 한복 논란에 가려 우리나라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번 개막식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이목을 끌었던 장면은 바로 성화를 점화한 위구르인 스키선수 ‘디니거얼 이라무장’이었다. 개막식에 55개 소수 민족이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나와 오성홍기를 함께 옮기는 장면도 정확히 같은 목적으로 연출되었다. 55분의 1에 해당하는 조선족 중 많은 숫자는 일제강점기에 이주한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21세기의 이주노동자처럼 가난에 등 떠밀려 타국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었다. 당연히 그들의 전통 복장은 한복일 수밖에 없다.
DEFINITION_ 조선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면이 유독 우리 눈에 거슬렸던 명확한 이유는 지금까지 중국이 끊임없이 동북공정을 통해 반중 정서를 자극해 왔기 때문이다. 역사 문제 외에도 최근 중국과 한국의 불화는 도드라진다. 사드 배치 이후 오랫동안 지속된 한한령에 이효리 사태BTS 사태까지, 중국을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반중 정서에 기름을 붓는 또 다른 요소가 바로 조선족을 향한 ‘혐오’이다. 한국인이 경험하는 조선족은 일하기 위해 외국까지 온 사람들이다. 3D 업종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취약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조선족에 대한 편견이 발생하고 이를 이용한 혐오가 자라난다. 그 혐오를 위해 언어가 변화하고 근거들이 제시된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족에 대해 ‘동포’라는 언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대선 후보 토론회장에서 조선족은 건강보험 부정수급의 타깃으로 언급되었다. 조선족이 한복을 입고 등장하는 당연한 장면에 울컥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MONEY_ 1629억 달러

프로이트는 혐오를 “불행의 원인을 없애버리려는 자아의 상태”라고 설명했지만, 혐오가 불행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다. 혐오에는 문제 해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걷어내고 냉정히 상황을 바라보면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불화를 멈춰야 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조정해야 하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만만치 않은 우리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바로 그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중 수출액은 1629억 달러로 전체의 25.3퍼센트, 수입액은 1386억 달러로 22.5퍼센트를 각각 차지했다. 우리나라의 국가별 수출액, 수입액 모두 중국이 1위이다. 싸우기보다는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상대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말이다.
RISK_ 요소수

게다가 우리가 중국이라는 나라에 얼마나 심하게 의존하고 있는지는 이미 전 국민이 체감한 바 있다. 바로 지난 가을 겪었던 요소수 품귀 현상이 그것이다. 다음에는 전기차 배터리의 주 원자재 중 하나인 흑연이 될 수도 있다. 마그네슘이 될 수도 있고 리튬이나 텅스텐이 될 수도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미·중 무역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그 불똥이 언제 어떻게 튈지 모른다. 많은 수의 유권자가 가진 반중 감정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현명한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이다.
REFERENCE_ 2002년 솔트레이크

우리가 특정 국가에 대해 이렇게까지 큰 반감을 품었던 가장 최근의 기억은 바로 2002년의 반미 감정이다. 마치 2022년을 예견이라도 하듯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벌어진,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의 안톤 오노 사태가 시작이었다. 당시 미국 대표로 출전한 안톤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남자 쇼트트랙 1500m 결승에서 1위로 골인한 우리나라의 김동성이 실격 처리되었다. 그리고 금메달은 2위로 골인한 안톤 오노의 차지가 된다. 지금처럼 온 국민의 여론이 들끓어 올랐다. 이어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6월에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발생한다. 주한 미군의 과실로 중학교 2학년생이었던 효순이와 미선이가 장갑차에 깔려 숨졌다. 같은 해 11월, 가해자들에 무죄 선고가 내려지자 결국 반미감정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이 분노는 촛불집회라는 한국 고유의 시위 문화를 정착시킨다.
RECIPE_ 반중 감정의 정치학

그런데 2022년의 반중 감정과 20년 전의 반미 감정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국내 정치 지형에 끼치는 영향력이 바로 그것이다. 2002년도의 반미 감정은 정부를 향하지는 않았다.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죽음과 관련해 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있었을지라도 반미 감정의 유무가 정권에 대한 지지로 직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22년의 상황은 다르다. 반중 감정 속에는 중국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혹은 저자세를 보이는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분명히 존재한다. 이는 대선이라는 정치의 계절을 맞아 더욱 명확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각 정치 진영 간의 다툼은 중국에 대한 불만을 더욱 크고 깊게 만들고 있다. 반중 감정이 정치의 테이블에 올라가면서 정교한 외교 전략에 빨간 등이 켜지고 있다.
INSIGHT_ 너에게 난, 나에게 넌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이다. 경제적인 측면과 아울러 남북 관계, 안보 측면에서도 중국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할 이유가 명확하다. 그래서 민간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감정적인 불화보다 정치의 영역에서 발생하는 섣부른 발언들을 우리는 더욱 우려해야 한다. 정치가 를 낼 때가 아니다. 오히려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영리하게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팬덤민족주의에 기대어 장기 집권의 기틀을 다지고 있는 시진핑,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상대인 미국의 동맹국이자 북한을 제외하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한국을 대하는 중국 정부의 태도, 그리고 우리 안에 이미 뿌리를 내린 반중 감정의 실체까지 꼼꼼하게 계산해서 움직여야 할 때이다.
FORESIGHT_ 차기 정부는 묘책이 있을까

그래서 자연스럽게 차기 정부의 외교 전략에 눈길이 쏠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영리한 외교 공약이 눈에 띄지 않는다. 누군가는 불법으로 영해를 침범한 중국 어선을 “격침”하겠다고 하고, 누군가는 “사드를 추가 배치”하겠다고 한다. 실제로 그런 계획을 갖고 있더라도 외교적 실리를 따지자면 벌써부터 크게 떠들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번 선거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혐오’에 편승해 표를 끌어모으고자 하는 전략일 뿐이다. 중국통으로 꼽히는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는 북저널리즘과의 통화에서 “혐오가 존재하는 이상 뾰족한 수가 없다”라고 밝혔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인식을 바꾸고 이해해 보고자 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권자는 묻는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중국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오랜 불화를 넘어 우리나라에 득이 되는 외교를 할 묘책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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