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렉카가 쏘아올린 작은 공
 

2월 10일 - FORECAST

사이버 렉카의 희생자가 나왔다. 무엇이 저지선을 만들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1월 말, 트위치 및 유튜브에서 활동했던 방송인 ‘잼미’가 극단적 선택으로 사망했다. 일부 유튜버와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던 래디컬 페미니스트 논란이 중심이 됐다. 잼미는 개인 방송을 통해 도 넘은 악플과 루머에 시달려왔다고 밝혔던 바 있다. 2019년 잼미의 어머니 역시 악성 댓글로 인한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다. 프로 배구선수 김인혁 역시 근거 없는 악플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다가 지난 1월 4일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의 고통 섞인 호소는 또 다른 조롱거리가 됐다.
WHY_ 지금 사이버 렉카를 읽어야 하는 이유

커뮤니티, 유튜브를 거치며 유사 진실이 된 루머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던 이는 많았다. 몇몇은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리기도 했다. 사람들의 시선은 사이버 렉카로 닿았다. 정치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움직임이 보인다. 지난 8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를 과거 유흥주점에서 만난 적 있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제보자를 내세웠다. 지난해 발생한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확산된 바도 있다. 추측과 경험, 기억에 의존해 알 권리를 뒤집어쓴 정보는 어떻게 대중에게 닿을까?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KEYMAN_ 뻑가

최근 잼미 사망 사건과 관련해 가장 큰 질타를 받고 있는 이는 일명 사이버 렉카 유튜버로 불리는 ‘뻑가’다. 이슈 유튜버 중 최초로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돌파해 현재 12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파급력 있는 유튜버다. 그는 일부 커뮤니티에서 논란이 일었던 잼미의 발언과 콘텐츠를 엮어 동영상을 제작했다. 잼미의 사망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는 자신의 과거 영상을 발췌해 자신이 했던 일과 하지 않았던 일을 구분했다. 요약하자면 자신은 이미 떠돌던 정보를 조합해 정리했을 뿐 혐오 선동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요지였다.
DEFINITION_ 사이버 렉카

사고가 났을 때 차량을 견인하는 렉카처럼, 타인의 사건이나 결점을 공론화해 퍼나르는 이를 사이버 렉카라고 칭한다. 대부분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영상의 형태로 콘텐츠를 제작한다. 좁게는 이런 영상을 통해 인지도나 광고 수익 등의 이득을 챙기는 이들을 말하고, 넓게는 이득과 상관없이 사실되지 않은 정보를 재생산하는 이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작년 인기를 끌었던 유튜브 예능 ‘가짜사나이’의 한 출연진을 겨냥한 유튜버는 스스로를 기자라고 칭하며 자신은 알 권리에 앞장섰을 뿐이라고 변호했다.
RECIPE_ 팩트 패싱

1인 미디어를 중심으로 작동하는 렉카 유튜버들이 쉽고 빠르게 정보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동력은 뭘까? 비법은 팩트 빠진 추측과 여론이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 없이 일부 커뮤니티나 SNS의 반응을 인용해 영상을 제작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팩트를 지나친 정보는 자극적이고 재미있게 포장되기 쉽다. 대부분의 사이버 렉카 유튜버들은 법적 문제를 회피하고자 본인의 신상을 모자, 탈, 안경 등으로 감춘 채 익명으로 활동한다. 허위 논란이 재생산되는 걸 두려워하는 피해자들은 이들을 고소하기도 어렵다. 법적 대응을 예고하면 그 사실 자체가 또 다른 소재로 활용되기도 한다. 익명성을 통해 법적 제한망을 빠져나가고, 악의적 짜깁기를 통해 빠른 속도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사이버 렉카의 구조는 손익적 측면에서 매혹적이다.
MONEY_ 5000만 원

온라인에서 상대방을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적시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혹은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구형된다. 벌금에 비해 유튜브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억 단위를 넘어선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징역 선고는 기소된 사건 전체의 2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이버 렉카 콘텐츠는 ‘논란’이나 ‘의혹’과 같은 단어를 사용해 교묘하게 사실을 조작한다. 징역 선고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 자극적인 썸네일은 해당 이슈나 논란에 관심이 없었던 이들의 이목도 끌기 좋다. 수동적인 알 권리를 지속적으로 요구하는 고정 팬덤도 두텁다. 보장된 주목도와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는 확산력은 이들을 벌금도 무섭지 않은 무적으로 만들었다.
CONFLICT_ 커뮤니티

사이버 렉카의 무모한 용기에는 또 다른 동력이 있다. 커뮤니티, 유사 언론, 대중의 호기심이 탄탄히 얽혀 넝쿨과 같은 구조가 땔감이 됐다. 일부 여론은 이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져 확인 가능한 정보를 정리해주는 것뿐인데 무엇이 문제냐는 목소리도 낸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의 자기 방어 논리도 이 여론을 답습한다. 실제로 뻑가는 논란에 대해 “사태가 벌어진 이후 (커뮤니티 내의) 이슈를 정리한 것”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커뮤니티는 개인의 목소리가 모이는 공간이다. 사이버 렉카가 쏘아올린 공은 산발적인 개인의 목소리에 구심력을 준다. 렉카의 공은 개인의 입을 타고, 유사 언론을 타고, 또 다시 커뮤니티를 타고 불특정 다수에게 닿는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논쟁이 소모전으로 흐르듯 선후관계를 따지는 일은 실효성이 없다.
NUMBER_ 800만 명

2018년, ‘미디어 오늘’이 진행한 〈미디어 이용 조사〉에 따르면 불신하는 매체 1위는 ‘인사이트’, 2위는 ‘위키트리’로 조사됐다. 전직 기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들은 별도의 취재 과정 없이 커뮤니티의 반응을 모아 뉴스를 쓴다. 기자당 하루 10개 이상의 기사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구조 속에서 기사가 나온다. 자극적인 제목과 사진을 이용해 교묘하게 SNS를 파고든 유사 언론은 약 800만 명의 팔로워를 갖고 있다. 이들의 재생산은 개인이 정보를 확산시키는 것보다 큰 힘을 가진다. 뉴스와 미디어 등 언론의 목소리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다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의 긍정적 확산력 이면에는 주목 경제라는 공동정범이 존재하는 셈이다.
RISK_ 사각지대

유튜브는 방송법상의 방송이 아닌 전기통신사업법상의 부가통신사업자로 분류된다. 따라서 공공성과 공정성 유지라는 방송의 책무에서 자유롭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시정 요구에 국내 사업자는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유튜브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유튜브는 자체 가이드라인을 통해 유해 콘텐츠를 걸러낸다. 그러나 알고리즘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확증편향이나 노골적 표현이 아닌 이상 가이드라인에서 걸러지기 어렵다.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피해를 입은 개인이 선택할 길은 많지 않다. 민사소송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오히려 새로운 논란을 제공하는 꼴이 된다. 결국 유튜브의 가이드라인을 믿고 삭제를 요청하는 수밖에 없다. 그마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이슈가 터질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유튜브도_공범”이라는 해시태그가 퍼지는 이유다.
REFERENCE_ 독일

독일의 네트워크 집행법은 온라인의 혐오 발언을 제한하기 위해 시행 중인 법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특정 혐오 콘텐츠를 24시간 이내 차단해야 한다. 불법적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삭제하지 않는 플랫폼에는 최대 5000만 유로의 벌금이 부과된다. 2020년 결의된 개정안에 따르면 사업자는 신고된 게시물을 삭제하고 연방법죄수사청에 신고할 의무도 있다. 원활한 수사를 위해서다. 해당 법안이 직면한 실효성과 비용,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그럼에도 독일은 직접적인 범죄로 이어질 수 있는 콘텐츠는 국가 차원의 강제를 통해서라도 제재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INSIGHT_ 주목경제

물건이 아닌 대중의 관심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제조업이 싸고 좋은 재료를 찾기 위해 경쟁하는 것처럼, 주목경제의 메커니즘은 더 빠르고 쉽게 관심을 끌기 위해 경쟁한다. 유튜브를 통해 허위 정보를 접한 비율은 70퍼센트에 달한다. 논란과 의혹을 편집해 진실을 알린다는 미명은 법적 책임과 자율적 규제로부터 그들을 자유롭게 했다. 필터를 거치지 않은 여론은 정보를 거쳐 쉽게 진실이 된다. 가짜뉴스가 위험한 이유다.
FORESIGHT_ 저지선

플랫폼의 자율적 규제, 국가의 법적 규제, 혹은 개인의 경각심 모두가 저지선이 될 수 있다. 어떤 저지선도 없다면 경제 구조는 확대되고 고착화된다. 전 세계를 연결하고 커뮤니티를 만드는 플랫폼은 이 문제를 윤리적 렌즈 너머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이버 렉카 유튜버 뻑가는 한국 유튜버 순위 2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유튜브 콘텐츠의 생태계가 자극적인 이슈만 좇는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업 경영의 차원에서도 좋지 않은 신호다. 개인의 저지선을 강화하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포문을 열었다. 7년 만에 개정되는 교육과정 총론에는 디지털 소양과 언어 소양 등이 포함됐다. 탄탄한 저지선을 만들 의무가 모두에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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