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 트리거

2월 15일 - FORECAST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천했다. 역사 왜곡 논란을 넘어 한일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2월 1일 일본 정부가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추천했다. 이어 2월 12일 정의용 외교장관이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참석차 하와이 호놀룰루를 방문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 별도의 회담을 가졌으나, 관련 논의의 진전은 없었다. 역사 은폐 논란을 넘어 한일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WHY_ 지금 사도광산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사도광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인 강제 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진 일본의 금광이다. 일본이 해당 사실을 배제한 추천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한 것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군함도 강제 노역, 독도 소유권 논란에 이어 일본의 역사 왜곡 및 은폐는 한일 관계를 뒤흔드는 핵심 사건이 되고 있다. 사도광산은 과거 역사를 해석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미래의 한일 관계를 좌우할 정치적 트리거다.


DEFINITION_ 사도광산

사도광산은 일본 니가타현 북서쪽 사도섬에 위치한 금광이다. 에도 시대 일본의 핵심 재원으로 현재는 문화 유적지로 운영 중이다. 조선인 강제 노역 사실을 배제하고 유네스코에 추천한 것에 반발이 일자, 일본 정부는 ‘사도광산의 유산적 가치는 에도 시대에 한정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논란 때와 비슷한 논리다. 유네스코는 일본 측에 해당 장소의 전체적인 역사 사실을 기재한 보고서를 올해 12월 1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NUMBER_ 7

7년 전이다. 2015년 7월 일본은 하시마 즉 군함도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하려 외교적 맞불을 놓은 전력이 있다. 군함도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및 노동이 동원된 곳이다. 한일 양국의 외교전 끝에 유네스코는 강제 징용을 포함한 섬의 전체 역사를 공개하는 조건부 등재로 결론 지었다.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2021년 유네스코는 일본이 군함도 관련 역사를 제대로 알리지 않음을 비판하는 결정문을 내기도 했다. 유네스코 등재 당시 협상 주체인 일본 외무성의 외상이 기시다였다. 아베 당시 총리는 조건부 등재에 크게 실망했다.


KEYMAN_ 아베

스가 전 일본 총리는 아베의 그림자 무사였다. 현 기시다 총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네스코에 사도광산 세계문화유산 추천서 제출 전 일본 정부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일었다. 한국의 반발 및 심사 과정에서의 탈락 가능성을 우려한 여론이다. 고민하던 기시다 총리가 전화한 사람은 아베였다. 아베는 현 일본 총리가 한국과의 논쟁을 피하는 것을 비판했다. 메이지 산업혁명유산 등재에 성공한 것을 일례로 들며 기시다를 압박했다. 아베의 그늘이 일본 정계를 드리운 이상 한일 관계 개선의 성과는 물론 의지조차 기대하기 어렵다.


CONFLICT_자민당

반한(反韓) 감정은 일본 자민당 정치의 오랜 비결이었다. 아베 전 총리의 호소다 파가 뿌리 내린 정한론은 하루아침에 해소될 리 없는 이데올로기다. 게다가 현재 일본은 군사적으로 북한과 대치하고 외교적으로 한국과 충돌한다. 아베, 스가 전 총리의 경우 내각 출범 직후 반대층 비율이 각 20퍼센트대였던 반면 기시다 총리의 출범 직후 반대층 비율은 40퍼센트를 육박했다. 이전 내각과 손쉽게 비교되는 현 기시다 정권에게 사도광산을 비롯한 외교적 긴장은 내부 결집을 위해서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불쏘시개다.


MONEY_ 4만1000달러

외교는 당위가 아닌 필요성의 메커니즘이다. 경제적 실익의 관점에서라면 한국이 장기 저성장을 앓는 일본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은 불분명하다. 최근 20년간 한국은 경제력과 지정학적 영향력 측면에서 일본과 비슷한 수준에 올라섰다. 2019년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며 반도체 수출을 개별 허가로 전환하는 조처를 한 후 한국은 오히려 반도체 국산화에 성공하며 대일 수입 의존도가 낮아졌다. 2020년 3월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구매력평가지수(PPP)는 2017년 기준 4만 1000달러로 일본의 4만 827달러를 앞섰다. 일본 싱크탱크는 2027년이면 한국의 GDP가 일본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RISK_ 정치고립

그러나 한일 관계의 핵심은 양국의 국력 다툼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미중 갈등이다. 미국은 지난 9월 오커스 출범으로 중국과의 인도·태평양 경쟁을 공식화했다. 중국 남쪽으로 대만과 베트남이라는 든든한 지원군도 확보했다. 문제는 동쪽 즉 한국과 일본이다. 한미일 협력을 통해 중국 견제를 노리는 미국에게 한일 갈등은 정치적 피로감이다. 미국의 피로가 가중될 경우, 한국은 쿼드 가입 논의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 미일 관계의 격상을 바라보며 외교적 고립을 겪을 수 있다.
RECIPE_ 쿼드

2월 11일 호주 멜버른에서 쿼드(Quad)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쿼드는 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비공식 안보 협의체다. 아시아의 나토로 불린다.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인도·태평양을 장악하려는 중국의 공격성’에 대한 견제였다. 이어 2월 12일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회담했다. 골자는 최근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에 대한 규탄이었다. 북한의 동해상 미사일 발사는 근접한 일본엔 실질적인 위협이다. 즉 세계의 관심이 북한의 도발과 미중 패권 경쟁에 있는 와중, 이번 회담에서 사도광산은 결코 중심 의제가 될 수 없었다.
INSIGHT_ 반일

어쩌면 사도광산은 기시다 정권의 후킹 포인트다. 한일 양국의 경제 수준이 비등해지며 갈등이 심화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걸 일본 정부 입장에서 잘 활용한 결과가 이번 역사 은폐 논란이다.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뻔뻔함처럼, 사도광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추천한 일본의 도발은 바보 같은 실수가 아닌 영민한 전략이다. 그러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는 옛말이다. 민족주의를 민족주의로 대응하다간 외교적 실리 없이 국민적 분노만 쌓인다. 반일, 반중 정서에 무감하지만 친일, 친중에 민감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시점이다.
FORESIGHT_ 대선

정권이 교체되면 대외관계는 재정립되기 마련이다. 사도광산이 한일 관계의 퇴보였다면 다가오는 대선은 한일 관계의 새로운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정치적 긴장감은 양국 모두에게 피로감을 준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 배웠다. 국내 정치에서와 다르게 외교적 실수는 돌이키기 어렵다. 현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배웠다. 결국 외교는 국내 정치의 부속품이 아닌 외교 자체가 되어야 한다.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는 유권자의 성숙함이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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