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화 꽃이 피었습니다

2월 16일 - FORECAST

단일화 밀당이 시작됐다. 철수일까 야합일까 필연일까 새정치일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2월13일 일요일, 안철수 후보가 쏘아 올린 단일화 제안이 여의도를 집어삼켰다. 공교롭게도 그날 수술실 CCTV 관련 메시지 등을 내놓았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은 부랴부랴 기자들에게 전화까지 돌려가며 이슈가 잠식되는 것을 막아보려 나섰다. 그러나 단일화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단순히 여당 후보의 아젠다만 집어삼킨 것이 아니라 발표 당시 대선판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현 정권 적폐 청산’ 이슈까지 덮어버린 것이다.
WHY_ 지금 단일화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역사적으로 단일화는 대선의 판을 뒤집기도 했고, 정치적 유산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즉, 단일화를 단순히 정치인들의 힘겨루기라는 시각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단일화는 우리나라의 정책 결정에 관여하게 될 사람들을 바꾸고 또 그에 관여하는 논리를 바꾼다. 정치라는 거대한 강이 흐르는 방향을 틀어버리기도 한다. 결국, 그 과정과 결과에 따른 파장을 감당하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유권자들이다.
DEFINITION_ 안일화

안철수 후보는 그동안 단일화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 왔다. 정치공학적으로 올바른 전략이다. 지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쪽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안 할 것처럼 보이다가 막판에 ‘고심 끝에 무거운 결단을 내렸다’라고 발표할 때 이른바 ‘몸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후보의 메시지는 그동안 아리송했다. 단일화를 안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국민의힘 측에서 연락이 없다”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유권자는 안 후보의 진심을 일찍부터 눈치채고 말았고, 한동안 탄탄한 두 자릿수까지 확보했던 지지율이 부진을 거듭하면서 협상력도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적폐 청산’ 인터뷰 이슈가 터지면서 공식 선거운동 기간을 앞두고 안 후보의 존재감 자체도 급속도로 희미해진다. 자의든 타의든, 카드를 스스로 꺼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MONEY_ 513억 원

국민의당으로서는 돈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안 후보의 사재도 들어갔다고는 하지만 당의 재정을 탈탈 털어야 하는 것이 선거이다. 당장 풀어놓을 유세차부터가 한 대당 700~2000만 원가량 소요된다. 대선 후보들이 쓸 수 있는 선거 자금 법정 한도는 약 513억 원, 최선을 다한다면 한도를 꽉 채워 돈을 쓰는 것이 선거판의 상식이다. 어차피 단일화를 할 것이라면 당장 6월에 닥칠 지방선거를 생각해서라도 돈을 아껴야 한다는 당 내 요구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지점이다. 
CONFLICT_ 동상이몽

결국 안 후보는 단일화 이슈를 띄웠다. 예상대로 블랙홀처럼 뉴스를 빨아들였고, 야권에는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러나 국민의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단일화가 확실한 정권교체를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가 뻔히 나와 있는데도 수동적인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자면, 국민의당 쪽이 제시한, 지난해 5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단일화 당시처럼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화 후보를 결정하는 방식을 국민의힘은 받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논의를 해 보자, 협의해 보자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굽히고 들어오라는 입장이다. 단일화를 두고 양측이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안철수 후보 측은 여론조사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을 증명하며 몸값을 ‘제대로’ 받고 싶은 상황이고, 국민의힘은 안철수라는 선택지를 최대한 유권자의 뇌리에서 소거하고자 하는 것이다. 
REFERENCE_ DJP연합

국민의힘이 이렇게 미온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는 이유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생각하는 것만큼 극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도 한몫을 한다. 즉, 이 단일화가 지지층 확장에 대단할 역할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있다는 이야기다. 이번 단일화 이슈를 둘러싸고 지속해서 소환되었던 것이 바로 DJP연합의 추억, 그리고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의 추억이다. 그러나 당시처럼 극적인 효과는 이번에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두 사례는 지지기반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야권이 부족한 지지기반을 확보한 세력과 연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DJP 연합의 경우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가 자민련과의 연합을 통해 중도 보수를 성공적으로 끌어들였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도 재벌 출신의 정몽준 후보가 인권변호사 출신의 노무현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효과를 누렸다. 그런데 안철수 후보는 과연 윤석열 후보가 갖지 못한 지지층을 가졌는가? 답은 ‘가졌다’이다. 정권교체를 원하지만, 도저히 윤석열을 지지할 수 없는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단일화의 효과를 긍정하기란 어렵다. 설사, 안철수 후보의 지지자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설득해 낸다고 하더라도 소비되는 에너지가 작지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KEYMAN_ 중도층

이러한 구도는 안철수 후보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극중주의”라는 용어의 실체에 대한 논란은 뒤로하더라도 안 후보가 표방해 온 가치는 바로 ‘중도’였다. 그렇다면 이 중도층은 과연 누구인가? 1997년에는 영남도, 호남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2002년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우리 정치사에서 중도층이란 바로 아군도 적군도 아닌 사람들이다. 시기와 구도에 따라 달라지지만, 이들의 비율을 대략 20%로 잡는다. 정치적 주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평소에는 그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지만, 이들의 의견은 언제나 가장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었고 현재와 미래를 고려한 것이었다. 2022년, 이번 선거의 중도층은 이재명도 윤석열도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단일화 과정을 거쳐 정책으로 연대하고 사람으로 협치한다고 쉽게 포섭할 수 없다. 따라서 안철수 후보의 한 자릿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중도층은 ‘어차피 잡히지 않는 물고기’가 되는 것이다. 
RECIPE_ 담판

그래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단판 협상”을 밀어붙일 수 있다. 원래 단일화란 정책과 사람을 섞어내는 과정이다. 점령이 아니라 합병과정이다. 섬세한 논의와 치열한 협상을 통해 양 측의 정치적 지향과 인물을 조합해 내야 한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단일화 과정에 따라 향후 선거에서의 공천 지형과 내각 구성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단판 협상은 그래서 단일화를 위한 이상적인 방법이 되기 힘들다. 오히려 ‘흡수합병’에 어울리는 결정 방식이다. 국민의힘은 진정한 의미의 단일화를 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RISK_ 또철수

이번 단일화는 유권자들에게 기회가 되어야 한다. 윤석열 후보가 내 건 공약 중 아쉬운 부분을 보강하고 ‘윤핵관’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킨 인적 자원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낼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거판의 격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역할을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단일화 논의과정을 보면 쉽지는 않아 보인다. 그 이전에, 단일화 협상을 제안하고 나선 안 후보 본인에게 그런 의지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이번 단일화 논의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정치권은 유권자가 응당 누려야 할 기회를 박탈해서는 안 된다. 정치의 목적이 ‘승리’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INSIGHT_ 유죄추정 

심상정 후보는 더불어민주당과의 단일화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나마저 멈추면 역사에 죄”라고 답했다. 심 후보마저 물러난다면 양당정치가 대변하지 않는 수많은 비주류 시민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지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일화는 주권자의 의지를 대의하는 정치인이 자의적으로 유권자의 선택을 제한하는 정치 행위다. 야합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 사회의 대변되지 못하는 목소리들을 함께 논의하는 것은 과연 정치인들만의 몫일까? 시대는 변화했고 그 어느 때보다도 손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세상이다. 이번 대선 국면에서 각 선대위를 가장 크게 흔들었던 이슈 중 하나가 바로 후보들의〈삼프로TV〉 출연이다. 어마어마한 합계 조회수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이 바로 댓글들이다. 각 후보별로 편차는 있지만 가장 많은 댓글을 받은 이재명 후보 편은 7만 개가 넘게 달렸다. 유권자의 목소리와 평가가 각 선대위에 직접 가 닿았다. 더 이상 정치를 정치인들에게 ‘외주’줄 필요가 없다. 필요하다면 직접 명령할 수 있는 것이다. 유권자의 의무가 더 무거워진다. 단일화 과정도, 앞으로 남은 TV 토론도 이들을 ‘직접 고용’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 한국 정치는 유권자들에게 선택지 없는 답안지만 강요하고 있다. 그나마도 단일화로 선택지가 더 줄어들 판이다.   
FORESIGHT_ 윤일화?!

단일화 무산의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단일화가 성사될 가능성이 더 큰 것은 사실이다.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정권 초반에는 압도적인 지지율이 필요하다. 새로운 내각을 출범시키는 원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신에서도 지적했듯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를 통해 뽑히는 만큼 득표율 1%가 아쉬운 상황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172석을 장악하고 있는 입법부의 상황을 고려하면 국민의힘으로서는 만약 당선된다 하더라도 차이를 최대한 벌리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단일화가 이루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그것이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 고심해야 한다. 또 하나의 철수로 남을 것인가, 한국 정치 보수 진영의 체질을 개선하는 시발점이 될 것인가. 유권자가 지켜보고 목소리를 낼 때이다. 


이번 선거가 남긴 논란들에 관해 더 생각해 보고 싶다면 〈김건희의 강〉과 〈이재명의 탄생〉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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