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다의 답이 던지는 질문

2월 17일 - FORECAST

AI 아티스트의 시대가 열렸다. 창작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남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인공지능 휴먼 ‘틸다’와 디자이너 박윤희가 협업한 의상이 뉴욕패션위크 무대에 섰다. 박윤희 디자이너는 틸다에게 “금성에 꽃이 핀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틸다는 그에 답하는 여러 꽃의 이미지를 내놨다. 박윤희 디자이너는 틸다가 만든 3000여 장의 가상의 꽃 이미지로 패턴을 만들어 옷을 디자인했다. 인간과 AI휴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의상이 세계 4대 패션쇼에 선 것은 처음이다.
WHY_ 지금 AI 아티스트를 읽어야 하는 이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놓은 〈2021 4차 산업혁명 지표〉에 따르면 인공지능 산업 매출액은 6895억 원으로, 전년 대비 16.3퍼센트 성장했다. 정확한 정보 도출을 위한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활용 횟수 역시 153.4퍼센트 늘었다. 인공지능 시장 규모가 커짐과 동시에 인공지능의 수준도 수직 상승하고 있다. 고도화 된 딥러닝 기술은 AI 아티스트를 낳았다. 새로운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 평가받던 창작의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제 막 무대에 첫 발을 내딛은 틸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KEYMAN_ 틸다

뉴욕패션위크에 디자이너로 이름을 올린 틸다는 첫 가상인간 아티스트다. 틸다는 스스로 학습하고 사고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가상인간과는 다르다. 틸다의 창작물은 인간과 AI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했다. 틸다의 창작물을 인간이 받아 발전시키고 그 협업의 산물은 다시 감상자인 인간에게 닿는 식이다. 틸다는 뉴욕패션위크가 마무리 된 이후 독자적인 친환경 패션 브랜드를 선보일 예정이라 밝혔다. 현실 세계를 넘어선 메타버스와 NFT까지, 세상에 모습을 비춘 AI 아티스트가 활동할 무대는 넓다.
DEFINITION_ 초거대 AI

초거대 AI는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팅 구조를 기반으로 대규모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한다. AI와 초거대 AI는 파라미터의 수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초거대 AI는 기존 AI보다 수백 배 많은 파라미터를 기반으로 정보를 처리한다. 일론 머스크의 주도 아래 2018년 공개된 ‘GPT-3’는 1750억 개의 파라미터를 통해 소설을 쓰거나 외국어를 번역할 수 있다. 네이버의 ‘하이퍼 클로바’는 2040억 개의 파라미터 규모로 개발됐다. 중국이 개발한 ‘우다오 2.0’은 중국 전통 문체로 시를 창작할 수 있다. ‘에이바’의 AI 창작곡은 게임과 광고 등에 활용되고 있다.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 아니다.
NUMBER_ 6000억 개

틸다의 인공지능 기반은 LG가 개발한 초거대 AI ‘엑사원’이다. 엑사원은 ‘EXpert Ai for everyONE'의 줄임말로, 모두를 위한 전문가를 뜻한다. 엑사원은  6000억 개의 말뭉치 데이터와 2억 5000만 개의 이미지를 배워 새로운 것을 만든다. 엑사원이 처리하는 데이터는 세계 최대 규모다. 초거대 AI가 인간이 처리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를 학습하기 때문에 인간은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는다. 박윤희 디자이너가 틸다에게 질문을 던진 것처럼, 인간은 AI에게 창작의 동력을 부여한다. AI는 그 동력에 맞는 결과물을 생산하고, 인간은 다시 AI의 창작물을 선별한다. 인간과 인공지능 아티스트는 동업자의 관계에 가깝다.
MONEY_ 4억 9000만 원

AI 아티스트의 창작물은 예술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까? 2018년 세계 최대 경매회사인 크리스티 경매에서 AI 화가 ‘오비우스’가 그린 초상화가 4억 9000만 원에 낙찰됐다. 미술 외에도 AI 아티스트가 활약하는 공간은 무궁무진하다. 음악, 문학, 저널리즘 등 각계에서 AI가 활약하고 있다. 2016년 일본에서는 AI가 창작한 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이 문학 공모전의 1차 예심을 통과했다. 작년에는 AI 소설가인 ‘비람풍’의 작품 《지금부터의 세계》가 출간됐다. 소니컴퓨터사이언스연구소의 플로우머신은 비틀즈 풍의 노래 ‘Daddy's Car'를 유튜브에 공개했으며, 구글이 개발한 ‘딥드림’의 전시회에서는 추상화 29점이 총 1억 1600만 원에 팔렸다.
RECIPE_ 다작

AI 아티스트는 다작에 특장점이 있다. 창작에 물리적 한계가 있는 인간과 달리 인공지능은 이미 학습한 데이터를 토대로 무한대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국내 최초의 AI 작곡가 ‘이봄’은 1년 동안 130여 개의 앨범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숏폼 콘텐츠가 생태계를 지배한 지금, 틱톡이 영국의 AI 작곡 스타트업 ‘쥬크덱’을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저작권에서 자유로우면서도 빠른 속도로 창작이 가능한 AI는 지금의 콘텐츠 생태계와 맞물리며 성장했다. AI의 창작물이 새로운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것도 선순환의 신호탄이다. AI를 보조적 도구로 활용하면서 콘텐츠의 풀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것이다.
CONFLICT_ 저작권

AI의 창작이 보편화되자 저작권에 대한 법적 논의가 촉발됐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창작물을 만드는 경우 사람에게 저작권이 귀속되지만 AI가 단독으로 만들어낸 창작물은 저작권에 대한 보호 법률이 미비하다.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의 음악저작권협회는 영국의 인공지능 작곡가 에이바를 저작권자로 인정한 바 있다. 한국의 경우 관련 논의는 현재진행중이다. 2021년 정부가 발표한 〈인공지능 시대를 준비하는 법·제도·규제 정비 로드맵〉은 인공지능이 창작물을 생성할 경우 법적 주체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다. 국가의견조사 결과 인공지능 법인격 주체성 책임은 인공지능 시대의 중요 법적 쟁점 1위를 차지했다. 정부는 장기 과제로서 인공지능의 지적재산권 인정 여부와 민법, 형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REFERENCE_ 이루다

AI 챗봇 ‘이루다’는 동성애와 장애인, 여성에 대한 차별적 발언으로 인해 논란이 됐다. 업체의 개인정보 무단 사용으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논란으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이루다 서비스가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이루다의 개발사는 ‘AI 챗봇 윤리 준칙’을 마련해 개인정보 무단 수집을 막았다고 밝혔으며 혐오 표현과 선정적인 단어를 걸러내는 프로그래밍 모델을 강화했다고 덧붙였다. 인간과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챗봇이 직면한 문제는 AI 창작과도 멀지 않다. AI의 법인격은 인공지능의 권리 보장보다 인간의 권리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에 가깝다. 무단 정보수집이나 명예훼손 등의 법적 책임을 질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RISK_ 창작의 범위

법적 논의에 앞서 제기되는 질문은 AI의 창작물과 인간의 창작물을 완벽히 분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AI가 예술가를  위협한다는 시각과 AI를 도구 삼아 새로운 예술사를 형성할 수 있다는 낙관이 맞선다. 어디까지가 창작이고, 어디부터가 학습일까? AI는 인간의 학습을 모방한 딥러닝을 통해 기존의 데이터에서 유사한 패턴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를 토대로 새로운 질문에 답하며 가상의 산물을 만든다. 틸다가 실재하지 않는 금성의 꽃을 그려낸 것이 그 사례다. 인간의 창작이 결국 모방이라면 AI의 창작은 인간의 창작과 다를 바 없다. 더 나은 콘텐츠 생태계를 위해 인간과 AI가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다.
INSIGHT_ 감상자

AI로 인해 예술가의 영역은 축소될 수도, 새로운 영역을 발견해 이동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굳건한 인간의 자리는 감상과 선택의 영역에 있다. 이미 인공지능은 생산의 역할을 상당 부분 떠맡고 있다. 인간은 생산된 창작물 중 무엇이 의미 있는지를 택한다. 선택된 정보는 다시 미래의 AI에게 투입될 것이다. 이미 AI 아티스트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다. AI가 인간의 성역을 침범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일은 현실을 정비하는 작업이다. 저작권과 보안 문제, 윤리성 및 표절 문제 등에 대응한 안전장치를 만들고 시민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교육 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다.
FORESIGHT_ 새로운 질문

AI 아티스트의 창작은 인간의 콘텐츠와 기계의 학습 사이의 벽을 허물고 있다. 틸다는 독자적인 패션 브랜드를 론칭할 것이며, 렘브란트의 화풍을 따라하던 MS의 AI가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낼 날이 머지않았다. 지금은 설계자의 결정을 따르는 AI 아티스트가 창작 의지까지 학습한다면 전통적인 방식의 예술가는 살아남기 어렵다. AI 시대에서 살아남을 새로운 예술가는 기존에 형성된 학습 데이터 바깥에서 새로운 창조의 영역을 발견할 것이다. 틸다가 뉴욕패션위크에 내놓은 답이 인간에게 새로운 질문으로 다가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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