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금도 희망이 되나요?

2월 22일 - FORECAST

청년희망적금 신청이 시작됐다. 화제의 적금은 청년에게 희망인가 고문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2월 21일 청년희망적금 신청이 시작됐다. 가입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사전 조회 기간 내 해당 상품의 접속자 수는 200만 건에 달한다. 화제의 적금은 우리나라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까?

WHY_지금 청년희망적금을 알아야 하는 이유

지난해 투자자들은 황금기를 맞았다. 저축, 저금, 적금은 수익률 낮고 구시대적인 단어들이 됐다. 지금은 다르다. 두 자릿수 수익률을 기대하며 주식과 코인 투자에 몰리던 시기가 한차례 막을 내렸다. 불안정한 주가 파동을 주시하는 것보다 마음 편히 목돈을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다. 적금 상품에 2030의 관심이 쏠리는 현상을 이해할 때 현세대가 시장에 갖는 피로감과 돈에 대한 가치관 변화를 읽을 수 있다.


DEFINITION_ 청년우대

국민, 신한 등 우리나라 11개 주요 은행과 서민금융진흥원의 협약으로 만든 청년 적금 상품이다. 가입 대상은 만 19세 이상 만 34세 이하다. 지난해 총급여액이 3600만 원, 종합소득금액 2600만 원을 넘지 않아야 한다. 매월 50만 원 한도 내 자유 납입하는 방식이다. 만기는 2년이다. 이번 청년희망적금이 주목받는 이유는 금리 때문이다. 모든 은행에서 5퍼센트 기본금리에 약 1퍼센트포인트의 우대 금리를 붙여 최대 연 6퍼센트의 금리를 얻을 수 있다. 저축장려금, 비과세 혜택까지 합하면 최대 10퍼센트 수준의 금리 혜택을 볼 수 있다.


NUMBER_38만

지난여름 청년희망적금 출시를 논하던 초기 국회와 금융위원회는 신설 계좌 수를 38만 개로 예상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운영한 재형저축에서 준용한 숫자다. 국회 측은 38만이 과다계상된 수치라고 말했지만 금융위 측은 오히려 적게 예상한 수치라고 밝혔다. 가입 첫날인 어제 다수 은행 앱이 과다 인원 접속으로 마비됐다. 해당 상품이 이번 주 내 조기 소진될 수 있다는 추측도 많다. 현재 개설된 계좌 수나 개설 가능한 전체 계좌 수는 밝혀지지 않았다. 참고로 지난 1월 기준 19~34세 청년 취업자는 600만 명을 웃돈다.


MONEY_475억

청년희망적금 사업에 배정된 예산은 475억 5000만 원이다. 38만 개 계좌가 신설된다는 조건, 월 최대 50만 원 납입, 가입 기간 12개월, 1년 차 이자율 2퍼센트로 계산한 금액이다. 해당 예산이 부족할 경우 금융위는 올해 예산의 예비비 5조 원 중 일부를 청년희망적금 예산에 할애할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EYMAN_이승윤

청년정책조정실은 현 정부의 청년 정책 컨트롤타워다. 청년희망적금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2020년 9월 출범한 청년정책조정위원회는 현재 김부겸 국무총리의 총괄 하에 정부 위원 20명, 민간 위원 19명으로 구성됐다. 민간 위원 대표는 중앙대 이승윤 교수다. 이 대표는 청년 기본소득을 오랜 기간 주장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CONFLICT_투자

시장의 유동성에 지친 청년들에게는 안정감이 필요했다. 이번 청년희망적금은 그 시기가 잘 맞물렸다. 그러나 시장이 다시 호황기를 맞는다면 2030의 마음은 돌아설 것이다. 청년희망적금에 가입하고 2년 뒤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은 98만 원이다. 적은 돈은 아니지만 큰돈도 아니다. 2년 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더 작게 느껴질 법하다. 잠깐의 선택으로 수백만 원의 투자 수익을 내는 시대에서 2년간 차곡차곡 모은 적금 혜택 98만 원으로는 영원히 행복해질 수 없다.


RISK_FOMO

청년희망적금에 가입자가 몰린 또다른 이유가 있다. 모두가 받는 혜택을 나만 못 받을 수는 없다는 경쟁 심리와 보상 심리다. 은행 앱에 접속해 수천 명의 대기자 뒤에서 혹여 내 차례가 오기 전에 지원금이 동나진 않을까 가슴 졸인다. 청년희망적금이 거느린 인기의 배후에는 일도 투자도 지원금도 어느 하나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청년 세대의 불안감이 있다.
REFERENCE_청내공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청년희망적금만큼 인기 있는 청년 정책이다. 중소기업에 취업한 청년이 2년간 300만 원을 적립하면 정부와 기업의 지원으로 총 1200만 원의 목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정책의 취지와는 다르게 2년 이상 근속하는 비율은 총 가입자의 64퍼센트대에 그쳤다. 그럼에도 지원자 수는 점점 불어 현재 해당 정책은 접수 시작 한 달 안에 빠르게 마감되고 있다. 지원금이라는 매혹적인 단어에 청년 취업자들이 우르르 신청하지만 중도 이탈자가 많아 막상 정부의 계획대로 노동 시장이 견고하게 유지되진 않는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목돈이지만 원하는 것은 만족할 만한 일자리다.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지 않는 이상 한국 청년 정책은 퍼주기식 정책에서 공회전 중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
RECIPE_기본소득

이번 적금은 수익금이 아닌 정책 실험의 시각으로 접근할 때 의미가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980년 은행의 정기예금 이자는 연 24퍼센트였다. 현 제로금리 세대가 들으면 까무러칠 수치다. 은행에 넣어놓고 가만히 있어도 리스크를 껴안은 웬만한 투자 수익 수준의 혜택이 있었다. 40년이 지난 오늘날 정부는 10퍼센트 금리를 제시했다. 저금리 시대의 고금리 적금은 일종의 기본소득 실험이다. 이번 적금의 성공 여부에 따라 기본소득 논쟁의 폭이 또 한 번 달라질 수 있다.
INSIGHT_희망

이승윤 교수의 말을 빌리면 현대 사회의 노동은 녹아내리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일의 형태가 불분명해지고 특정 노동에 특정 가치가 부여된다는 컨센서스는 사라진 지 오래다. 이질감을 해결할 수 없다면 ‘돈 벌기 위해 일한다’는 명제는 잊어야 한다. 부의 수준은 이미 우리가 노동으로 닿을 수 있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돈과 희망을 함께 논하는 것은 애초에 잘못된 접근이자 고문이다. 청년의 희망은 적금도 투자도 아닌 노동 가치의 재현이다.
FORESIGHT_34

청년기본법상 청년은 만 19세에서 34세다. 만 35세 이상의 국민을 위한 국내 지원책은 미비하다. 39세까지 신청 가능한 행복주택 정도다. 이들이 정책으로 혜택을 보려면 노년층 즉 65세가 되기까지 30년을 기다려야 한다. 희망은 청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사회에 안착하지 못한 계층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취지라면, 수혜자의 자격을 나이로 정하는 오랜 정책적 관습은 변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 소득과 자산이다.

한국 30대의 불안한 심리에 더 알고 싶다면 《불안한 어른》을 추천합니다.
결혼과 출산, 내 집 마련 등 성공에 대한 환상과 좌절의 이야기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포캐스트를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의견이 북저널리즘을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