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물을 수 없는 아이들

3월 2일 - FORECAST

형법 제9조에 따라 만 14세 미만의 행위는 벌할 수 없다. 촉법소년 연령, 낮춰야 하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넷플릭스 신작 〈소년심판〉이 지난 2월 25일 공개됐다. 1화부터 촉법소년 문제를 던졌다. 형법 제9조는 “14세가 되지 아니한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한다. 지난 2020년 4월 2일, 대전에서 훔친 렌터카로 한 10대가 사망사고를 냈다. 운전한 이들은 형법 적용이 불가한 촉법소년이었다. 관련 청원이 올라왔고 100만 명이 넘게 서명했다. 청와대는 처벌이 어렵다고 답했다.
WHY_ 지금 촉법소년 연령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해묵은 논쟁이 대선판에 소환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촉법소년 연령을 현행 만 14세에서 12세로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연령 조정 의사를 밝혔다. 주요 대선 후보 과반이 찬성할 만큼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오늘날의 민심이다. 연령 하향, 괜찮은 걸까?
DEFINITION_ 소년법

소년법은 생후부터 만 19세까지의 모든 연령을 포괄하는 법이다. 범죄를 저지를 시 만 10세까지는 범법소년이다. 보호처분과 형사 처벌을 받지 않는다. 10~14세까지는 촉법소년이다. 보호처분은 가능하나 형사 처벌은 불가하다. 14~19세까지는 범죄소년이다. 보호처분과 형사 처벌 모두 가능하다. 청소년의 범죄가 급증하고 범죄 연령도 낮아진다는 이유로 ‘소년법 폐지’를 외치는 것은 이 모든 구간에 성인과 동일한 형법을 적용하자는 이야기다. 요컨대 문제가 되는 것은 ‘촉법소년’ 구간이다. 만 14세면 중학교 1~2학년이다. 이들의 강력범죄를 소년원 등의 보호처분이 아닌 형사 처벌을 해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REFERENCE_ 세계의 촉법소년

청와대가 위 국민청원을 거절한 이유 중 하나는 세계의 사례다. 우리와 같은 대륙법 체계를 가진 독일과 일본, 오스트리아 등은 만 14세 미만으로 우리와 기준이 같다. 영국과 호주는 만 10세로 매우 낮은 편이다. 미국은 주별로 차이가 있고 프랑스는 13세, 캐나다는 12세다. 요컨대 적절하다고 정해진 나이는 없다. 미국의 소년사법체계는 주로 엄벌주의를 탈피하고 교정·교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추세다. 일본은 반대로 2000년 이후 엄벌화되고 있으며 중국도 16세까지 촉법소년을 규정하지만 강력 범죄에 대해서는 형법으로 다스리며 부모를 엄벌에 처하기도 한다.
CONFLICT_ 목소리들

굳이 촉법소년의 연령을 하향할 필요성은 무엇일까. 촉법소년의 강력 범죄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 범행 연령대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 아이들이 이 법을 악용하고 있다는 점. 요컨대 1953년에 정해진 14세 기준을 깨고 시대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의당은 이를 “아동 인권을 후퇴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촉법소년을 처벌로 다스리는 것은 교화 가능성을 줄이고 사회 복귀를 어렵게 해 낙인과 다를 바 없다는 논지다. 즉 성찰, 교화를 목표로 하는 소년사법의 이념과 목적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지난 2019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촉법소년 연령을 현행대로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NUMBER_ 34.2

촉법소년 범죄는 매년 증가하는 것으로 보도된다. 한편 2018년 이후 공식적이고 명확한 통계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자주 인용되는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소년 보호 처리 건수 중 34.2퍼센트가 촉법소년이었다. 이 중 살인·강도·강간·추행·방화·폭력 등 강력범죄가 차지하는 비율은 28.3퍼센트다. 이중 절도의 비율이 가장 높고 폭력, 강간·추행 등이 뒤를 잇는다. 어리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년심판〉은 사건 피해자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다. 단죄가 피해자의 억울함을 직접적으로 풀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촉법소년의 범죄는 피해자에게 자연재해와도 같다.
RISK_ 악용

촉법소년 즉 형사미성년자의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는 책임능력 때문이다. 행위의 위법 사실을 인식하는 변별력 여부다. 형사미성년자는 곧 책임조각사유다. 이들은 정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나이일까? 이와 관련해 여론이 들끓는 지점은 악용이다. 온라인에서는 범죄 성립이 불가한 점을 이용해 상대를 우롱하는 “응 나 촉법”과 같은 표현이 널렸다. 이른바 ‘민식이법’이 제정된 이후 아이들 사이에서는 어린이 보호 구역에서 자동차 앞에 자해 공갈을 하는 ‘민식이법 놀이’가 유행하기도 했다. 대부분은 10세 미만의 범법 소년이다. 다만 악용 문제는 역설적으로 촉법소년의 변별력이 약하다는 방증이다. 자신들이 받게 될 보호처분이 약해서라기보다 법 교육이 부족하고 죄의식이 형성되지 않은 것에 가깝다. 이 경우 형사 처벌을 제외한 민사 손해배상이나 보호처분의 사회적 의미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 악용 논란이 언론의 침소봉대라고 생각하는 전문가들은 오히려 구치소에 해당하는 소년분류심사원이나 교도소에 해당하는 소년원을 두려워하지 않는 소년범은 드물 것이라고 말한다.
RECIPE_ 엄벌주의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법의 무서움을 알려주면 범죄가 줄어들까? 이는 엄벌주의 논리다. 피해자 구제와 범죄 예방, 재범 방지의 목적으로 여론은 쉽게 엄벌주의를 찬성한다. 사형제 존폐 논쟁과 유사하다. 촉법소년의 악용 우려는 여기에 기름을 붓는다. 엄벌주의는 교화 가능성에 대한 배제다. 살인적인 공부로 경쟁하는 한국 사회에서 형사 처벌까지 받을 경우 영원한 구조적 패자가 된다. 소년범의 대부분이 이미 가정이나 학교 등에서 극단적인 상황에 놓인 아이들이다. 형사 처벌은 열패감을 높일 뿐이다. 교도소의 영향으로 재범률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는 보호관찰도 마찬가지다. 2016~2021년 사이 전체 소년보호관찰 대상 중 12.4퍼센트가 재범행을 했다. 이는 성인 보호관찰 대상자의 약 1.7배다. 현행 보호처분이 교화 가능성이 낮은 것은 솜방망이 처벌이기 때문일까?
MONEY_ 1893원

소년원생 한 끼 급식비는 1893원이다. 지난 2021년에 2080원으로 겨우 2000원을 넘겼다. 서울 소재 중학교 평균은 3783원, 6호 보호시설은 2496원이다. 이 급식비는 소년범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다. 소년원은 기본적으로 학교다. 교복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 보호처분에서 8~10호 처분을 받은 소년들이 온다. 교화를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지만 실상은 감옥과 다를 바 없다. 교정 내 또래 문화에 적응하기 위해 바깥세상보다 더 어려움을 겪는다. 시설 역시 열악하다. 6호 처분을 받으면 가게 되는 보호시설 역시 예산 부족으로 인한 재정난에 허덕인다. 〈소년심판〉 에서도 예산 부족과 님비 현상 등을 짚었다. 시설을 총괄해야 할 법무부 산하 범죄예방정책국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죄를 지었으니 열악한 처우는 당연한 것일까? 가정 폭력이 학교 폭력을 낳듯 재사회화에는 인권 친화적인 환경과 처우가 필수적이다. 바깥 사회도 그렇다.
KEYMAN_ 박인숙과 천종호

법무부 소년보호혁신위원회 위원으로 다수 방송에 출연한 박인숙 변호사는 촉법 소년의 연령 인하를 말하기 전에 소년법 그 자체부터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품행 교정과 환경 조정. 박인숙 변호사가 말하는 소년법의 취지다. 수많은 촉법소년을 만나며 소년원에서 아무리 교화에 대해 꿈꿔도 퇴원 후 똑같은 현실에 마주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가 설명하는 재범행의 이유다. ‘호통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이 필요하다는 것엔 공감하면서도 적정 연령대가 없기 때문에 실질적 하향은 어렵다고 말한다. 재판에서 그가 호통친 것은 아이들이었지만, 동시에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부모와 사회를 향해 있었다.
INSIGHT_ 어른 없는 사회

모두 알지만 하나 같이 외면하는 것은 아이들의 환경이다. 불우한 가정 환경에 놓였거나 가정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 학폭에 노출되거나 가해자가 되는 아이들, 탈가정 상태로 가출팸이나 성매매 등 각종 신변위협에 노출되는 아이들을 우리는 “어른보다 더한 촉법소년, 강력범죄 잇따라”와 같은 기사 제목으로 만난다. 촉법소년 연령을 한 살, 두 살을 낮춘들 범죄 동기를 제공하는 환경은 바뀌지 않는다. 아이들이 사회구성원이 되기까지 돌봐주는 것은 누구인가. 가정이 그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것은 사회의 책무다. 〈소년심판〉의 주인공 심은석은 “법은 원래 그래”라고 자조한다. 법은 피해 구제나 범죄 억지에 대한 적극성을 가지는 게 아니라 마지노선이다. 촉법소년의 처벌을 둘러싼 문제에 아이들의 목소리는 없다. 촉법소년 문제가 발생하는 곳은 어른 없는 사회다.
FORESIGHT_ 돌아갈 곳

사회에 내 자리가 없다는 인식은 모든 연령에게 절망스럽다.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는 그 벽이 훨씬 높다. 사회화를 경험해야 하는 시기에 사회에 잔존하는 악·폐습의 굴레에 갇힌 아이들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은 배신으로 돌아온다. 소년법 개정은 적정 기준도 없이 촉법소년의 연령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처분 그 이후를 보는 방향이어야 한다. 법의 영역이 아닐지도 모른다. 범죄 노출에 취약한 아이들에 대한 안전망과 그들이 사회구성원으로서 기능하는 경험을 주어야 한다. 노서진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위원장은 청소년이 정치에 무심한 이유로 “내 손으로 무언갈 바꿔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년법의 미래는 아이들이 돌아갈 곳을 만들어주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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