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파업, 우리 삶도 파손주의

3월 3일 - FORECAST

택배 파업이 두 달 넘게 이어진 끝에 마무리 되었다. 21세기에 벌어진 20세기 노동쟁의였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CJ대한통운 택배 파업이 64일만에 종료되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예전과는 달리 싸늘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그리고 어디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을까. 
WHY_ 지금 택배 파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코로나19를 2년째 겪고 있다. 사람들은 ‘이동’을 자제했지만 ‘삶’을 자제할 수는 없었다. 쇼핑하고, 물건을 주고받았으며 음식을 사 먹었다. 다만 바뀐 것이 있다면 그 이동을 전담해서 대신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먹는 것, 입는 것, 일하는 방식은 물론 인간관계까지 송두리째 뒤바뀐 현실. 지금까지 그저 ‘저숙련 노동자’로 분류됐던 배달 노동자들의 중요성이 증가했다.
NUMBER_ 22명 

지난 2020년, 코로나19로 택배 수요가 급증하면서 택배기사의 과로사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감염병 재난을 감당해 온 지난 2년간 22명의 택배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택배노조는 그 주요한 원인으로 ‘분류작업’을 지목한다. 본업인 ‘배송` 업무가 아닌 ‘분류작업’에 그동안 공짜 노동을 강요당해왔고, 이 때문에 노동시간이 길어져 과로사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작년에 발표한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택배기사들의 28.6퍼센트가 1일 10~12시간, 42.3퍼센트가 1일 12~14시간, 17.6퍼센트가 1일 14시간 이상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97.3퍼센트가 주 6일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녹색병원의 임상혁 원장에 따르면 주당 노동시간이 60시간 이상일 때 심근경색 위험이 2배 이상 증가하고, 월간 휴일이 2일 이하면 2.9배 증가한다. 하루에 11시간 이상 일할 경우에도 심근경색 위험이 2.9배 이상 증가한다. 많은 수의 택배기사들이 과로사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있다.
RECIPE_ 사회적합의   

결국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기구가 조직되었고 노·사·정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2021년 1월 ‘사회적 합의’를 도출했다. 정부가 개입한 끝에 노조 측과 사측이 한 테이블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다. 1차 합의안에는 분류작업을 택배기사의 기본작업 범위에서 제외하고, 사측이 분류작업 전담 인력을 투입하며 근로 시간을 주 60시간으로 제한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의 진경호 수석부위원장은 “택배가 도입된 지 28년 동안 공짜 노동으로 일해왔던 분류작업으로부터 택배 노동자들이 완전히 해방됐고 벗어난 날”이라며 감격스러운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DEFINITION_ 합의 이행 

그러나 이후 택배노조는 사측이 합의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며 다시 파업에 돌입한다. 여전히 분류 작업이 가장 큰 문제였다. 사측은 체제 전환에 시간이 더 필요하므로 합의 이행을 1년 유예해 달라고 요청했다. 파업과 합의 과정이 또다시 반복되었다. 결국 2차 합의가 이루어졌고, 합의 이행일은 바로 올해, 2022년 1월 1일로 미뤄졌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이를 불과 4일 앞두고 다시 파업에 돌입한다. 합의 이행일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류 작업으로부터 ‘해방`된 택배 노동자가 턱없이 적고, 인상된 택배 요금이 노동환경 개선에 투입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1월 24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25개 작업장 현장 점검 결과에 따르면 택배기사가 완전히 분류 작업에서 손을 뗀 곳은 7곳(28퍼센트), 일부 참여하는 곳은 12곳(48퍼센트), 전부 부담하지만, 추가 보수를 지급받는 곳은 6곳(24퍼센트)이다. 노조는 합의 이행률이 28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고 사측은 각 사업장의 사정에 맞춰 모든 사업장에서 합의를 이행하고 있다고 말한다. 
MONEY_ 76원  

택배 요금 인상분을 둘러싸고도 갈등은 첨예했다. 노조 측은 CJ대한통운이 지난해 택배비 인상분 327원 가운데 76원만 택배기사 처우 개선에 사용하는 등 회사가 초과 이윤을 독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CJ대한통운은 노조의 계산이 잘못되었다고 설명한다. 창고 임대 사업, 택배 상자 판매 등 부대사업까지 포함하여 계산하면 실제 택배비 인상분은 140원이고 인상분의 절반을 택배기사 수수료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택배노조는 국토부 등 공신력 있는 기관에 검증을 의뢰하자며 맞섰다. 검증 의뢰에 사측이 동의만 하면 즉시 파업을 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CJ대한통운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KEYMAN_ 사용자  

결국 또다시 정치권이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민생연석회의가 지난 2월 28일 택배노조가 점거 농성을 펼치던 CJ대한통운 본사를 찾아 사회적 합의에 참여했던 주체들이 재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촉구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었다. 노조 측은 점거 농성을 풀었지만, 파업은 지속했다. CJ대한통운 측과 대화의 여지가 열린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사측은 노조의 대화상대가 본사가 아닌 대리점이라고 주장했다. 택배기사의 사용자는 본사가 아닌 대리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택배기사와 CJ대한통운과의 관계는 아직 법적으로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그러나 택배노조는 본사를 실질적인 ‘원청’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CJ대한통운 본사를 상대로 사회적 대화 형식의 검증 차원에서 대화에 나서라고 주장해 온 것이다. 그러나 사측은 여전히 ‘교섭 의무가 없다’라는 입장만을 견지했다. 결국, 택배노조는 대리점 연합과 협상에 나섰고 어제(3월2일) 극적인 타결이 있었다. 파업은 종료되었지만 결국 택배노조는 대리점과 계약관계를 맺고 용역을 제공하는 개인사업자임을 증명하는 아이러니에 빠져버렸다.
RISK_ 폭력  

여론도 더 이상 택배노조의 편이 아니었다. 가중되는 불편도 문제지만, 언론을 통해 공개된 택배노조의 폭력적인 모습들이 시민들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했다. 특히 지난 2월 26일 김슬기 비노조연합 대표가 게재한 CCTV 영상이 공개되면서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비노조 택배기사들을 향해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거나 택배 물품을 발로 차고, 심지어 파손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공개되면서 파업의 정당성 여부부터 뿌리째 흔들었다. 또, 비노조 택배기사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택배노조가 택배기사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도 생겼다. ‘비노조택배기사연합`은 파업으로 인해 수입이 30~40%는 줄어들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8월 김포에서 택배대리점을 운영하던 40대 점주가 극단적 선택으로 숨진 사건도 여론 악화에 한몫을 했다. 해당 점주는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과 업무 방해에 하루하루가 지옥과 같았다”라는 취지의 유서를 남겼다. 대선 후보도 말을 보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SNS를 통해 “택배노조의 악랄한 업무방해는 선량한 사람들의 생계를 볼모 삼아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범죄행위다”라고 규정했다. 노동자라는 이름이 면죄부가 되는 시절은 이미 진작에 끝났다. 
CONFLICT_ 개인사업자  

이 모든 상황은 택배기사의 법적 지위가 모호하기 때문에 발생했다. 택배기사는 법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이도 저도 아닌 위치이다. 이들에게는 노조 설립의 권리가 있지만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아니다. 노동쟁의권이 있지만 고용된 노동자가 아니란 뜻이다. 이러한 기형적인 직군은 문재인 정부의 ‘특고 노동 3권 보장’ 공약에 따라 탄생했다.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한 걸음이었지만, 이미 너무 많이 변해버린 노동시장의 현실은 담아내지 못했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이들은 개인사업자로서 대리점 측과 계약을 맺고 일한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택배노조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사측과의 대화를 원했지만, 비노조 택배기사와 대리점, 사측의 입장에서 이들은 개인사업자이며 법적으로 각종 책임은 이들의 몫이다. 사측에 직접 고용되는 사례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개인사업자로 일하는 쪽이 더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직접고용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 비노조연합 측의 설명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례가 앞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고용과 노동에 대한 인식의 대 전환이 일어나고 있고, 플랫폼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했다. 이제 ‘직원’으로서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는 결코 ‘특수’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이들의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것은 여전히 ‘기업’이다. 
REFERENCE_ 리키

켄 로치 감독의 2019년도 영화 〈미안해요, 리키〉에서 주인공 리키는 주택담보대출 계약금을 모으기 위해 개인사업자로 택배 기사 계약을 맺는다. 영화 속에서 택배 회사 매니저는 이렇게 말한다. “서명하면 개인사업자가 됩니다. 자기 운명의 주인인 겁니다.” 그리고 그의 불행이 시작된다. 강도를 당해도 제 몸보다 물어줄 돈과 벌점을 걱정해야 한다. 사고를 친 아들을 데리러 구치소에 갔을 때도 배달 일을 하지 못해 발생한 손해액을 보상해 줘야 했다. 소변볼 시간도 없어 페트병을 들고 다니는 리키는, 그러나 결코 직원이 아니었다. 리키의 아내 애비는 그 상황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일주일에 6일씩 일하고 하루에 16시간씩 일하는데 어떻게 직원이 아니에요?”  
INSIGHT_ 노동자성

리키와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해외의 사례를 보자. 지난 2021년 9월 유럽의회는 ‘배달·운전종사자의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적 권리보장을 위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한발 빠르게 지난 2019년 9월 AB5 법안을 통과시켜 사용자가 ‘노동자 아님’을 증명하도록 했다. 그러나 법과 제도는 이미 시장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노동자’라는 정의는 어쩌면 이미 폐기 수순을 밟고 있을 수도 있다. 바야흐로 대 퇴사의 시대이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고용안정은 ‘권리’가 아니라 ‘선택’인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고자 하는 기업과 시장으로서는 특수고용노동자나 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 인정 문제가 시대착오적인 발목잡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FORESIGHT_ 긱 이코노미 

우리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의 서막을 목격하고 있다. 재즈 공연장에서 즉흥적으로 고용되어 연주했던 연주자들, 즉 긱(gig)들의 고용 형태와 유사한 고용 시장이 열린 것이다. 지금 당장이라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만나 고용이 발생할 수 있다. 구직의 자유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평생직장이 미덕이었던 20세기는 진작에 끝났고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원하는 만큼 일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이 긱 이코노미가 완성형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직까지 긱 워커들은 비전문 저임금 노동 비중이 크다. 또, 긱 이코노미는 21세기의 산물이지만 아직 20세기의 패러다임을 살고있는 노동자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택배노조 또한 그러하다. 투쟁 과정에서 그들이 보여준 방식과 요구는 다분히 20세기적이었다. 노동시장이 급변하고 있다. 그 충격파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흡수해 낼지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 택배 상자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삶에도 ‘파손주의’가 필요하다.  

노동의 새로운 흐름에 대해 잘 알고 싶다면 〈디펜던트 워커〉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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