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
 

3월 4일 - FORECAST

단일화로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윤석열과 안철수는 권력을 나눌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3월 3일 새벽 야권 후보 단일화에 합의했다. 3월 3일 자정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빌라에서 만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는 2시간 30분간의 담판 끝에 전격 단일화에 합의했다. 담판에서 안철수 후보는 윤석열 후보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신뢰 담보와 정부 운영과 합당 방안이었다. 윤석열 후보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를 믿어달라. 나도 안 후보를 믿겠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면, 윤석열과 안철수는 과연 권력을 나눌 수 있을까? 
WHY_ 지금 권력 나누기를 읽어야 하는 이유

윤석열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누르고 3월 9일 20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윤석열 후보가 승리한다면 대선 승리에서 안철수 후보의 역할은 결정적일까 보조적일까? 윤석열 국민의힘 정부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지분은 절반일까 일부일까? 민주당 지지층이 결집해서 초박빙 개표 끝에 이재명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은 높을까? 윤석열 후보가 정권 교체에 성공한다면 안철수 후보는 정치 교체에 성공할까? 차기 정부에선 마침내 개헌이 될까? 제7공화국이 실현될까?
REFERENCE_ 71조 3항

“제2항의 당선자가 없을 때에는 최고득표자가 1명이면 최고득표자와 그 다음 순위 득표자에 대하여, 최고득표자가 2명 이상이면 최고득표자 전원에 대하여 결선투표를 실시하고, 그 결과 다수득표자를 당선자로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3월 22일에 공개하고 3월 26일 발의했던 대통령 개헌안의 일부다. 4장 정부 1절 대통령 71조에 결선투표제를 명기했다. 정작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은 국민투표법이 위헌이라 무산됐다. 대통령은 국민투표법에 따라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문제는 헌재가 2014년에 현행 국민투표법에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다. 국민투표법이 국내에 거주하는 국민의 투표권만 인정하도록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2022년 현재 국외에 거주하는 재외 동포 주권자는 700만명에 이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초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서 대통령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붙일 계획이었다. 국민투표법 개정은 문재인 개헌안 자체를 거부하던 당시 야당 자유한국당의 몽니로 부결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민주당은 단독으로 국민투표법도 고치고 개헌 국민투표도 가능한 의석수를 얻었다. 정치개혁을 할 권력도 시간도 있었지만 민주당은 하지 않았다. 권력 독점이라는 악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면 권력 독점을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악마의 디테일에 흔들렸다. 덕분에 지금까지도 국민투표법은 9년째 위헌 상태다. 대한민국 국민은 국가의 중요정책에 결정하는 투표를 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10년 가까이 박탈당해왔다. 21대 총선 이전엔 여야 정쟁 탓이었다. 21대 총선 이후엔 민주당의 변심 탓이었다. 솔직히 민주당은 정치개혁보단 정권연장에 집중했다. 개헌은 커녕 국민투표법 하나 고쳐놓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가 이재명 후보의 정치개혁안을 거부하고 윤석열 후보와 손잡은 명분이다.
RECIPE_ 결선투표제  

윤석열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안철수 후보는 곧바로 결선투표제 도입을 공론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권교체 직후 정치교체에 돌입하는 것이다. 방법은 2가지다. 하나는 정공법이다. 2022년 6월 지방선거와 결선투표제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여야에 로드맵으로 제시하는 방식이다. 4년 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개헌 청사진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다. 물론 물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 변수는 있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 입장에서도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대선 국면에서 민주당이 제시한 국민통합 정치개혁안은 사실 안철수 후보가 추진하려는 정치개혁안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대통령 권력과 입법 권력을 둘 다 독점한 정당한텐 추진할 유인이 없다. 실제로 2020년 총선 이후 거대 민주당이 그랬다. 민주당이 2022년 대선에서 청와대를 잃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대통령제를 손본다고 손해 볼 게 없기 때문이다. 정략적으로도 차기 정부를 집권 초기부터 개헌 블랙홀로 빨려들게 만드는 것도 나쁠 건 없다. 설사 집권한다고 해도 국회 소수당 대통령이 되는 윤석열 후보 입장에서도 해볼 만 하다. 지금의 여소야대 구도로는 어차피 식물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오히려 대선 결선투표제, 국회의원 연동형 비례제, 국회 책임총리 추천제,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은 권력구조개편에 집중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윤석열 후보 입장에서도 정권교체와 정치교체를 연계하지 않으면 집권했으나 통치하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전락할 수 있다. 안철수 후보 입장에선, 자신의 정치 개혁 소신을 현실화시키려면 소수파 대통령에 다수파 야당의 권력 지형도가 가장 유리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장 개헌 추진이 쉽지 않다면 우회로도 있다. 일단 대선 직후 일주일 안에 이뤄질 예정인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 과정에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당헌당규에 명기할 가능성이 높다. 안철수 후보는 결선투표제는 개헌 사항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개정 사항이라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대통령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안철수 후보의 해석에 따르면 국회 안에서의 합의만으로도 얼마든지 새정치가 가능해진다. 소수파 여당과 다수파 야당의 공조를 이끌어낼 중도적 구심점만 있으면 된다. 예측 가능한 구심점은 안철수 후보다. 3일 오전8시 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국민의힘을 보다 실용적인 중도적인 정당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안철수 후보가 국회발 권력구조와 정계개편을 주도할 때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차기 대통령의 지지다. 만일 윤석열 후보가 정권교체 이후 안철수 후보를 배제하고 권력을 독점하려고 든다면 모든 게 수포가 된다. 사실 87년 체제 이후 지금까지 모든 대통령은 권력을 나누지 않았다. 예외는 없었다. 언제나 악마가 이겼다.
KEYMAN_ 안총리

“제가 국회의원으로서 여러 가지 열심히 입법 활동을 했지만 그걸 직접 성과로 보여주는 행정적 업무는 하지 못했다. 할 만한 기회를 가지지 못했다.” 3월 3일 오전 8시 단일화 발표 직후 안철수 후보가 남긴 힌트다. 윤석열 정부가 탄생한다면, 안철수 후보는 초대 총리를 맡게 될 공산이 크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는 1997년 11월 이뤄진 김대중 후보와 김종필 총재의 DJP연합의 벤치마크다. 1997년 12월 대선을 한달 여 앞둔 상황에서 이뤄진 DJP연합은 명실공히 연합정부였다. 김대중 정부 임기의 절반은 대통령제로 절반은 내각제로 운영하는 게 골자였다. 대통령은 김대중이 맡고 총리는 김종필이 맡았다. 김대중 정부의 경제 부처 장관들은 국무총리 김종필이 임명했다. 윤안단일화에서도 디테일에선 이런 합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세부 협상은 국민의힘에선 장제원 의원이 국민의당에선 이태규 의원이 맡고 있다. 다만 윤안단일화와 DJP연합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개헌의 우선순위와 세부방향이다. DJP연합에선 개헌을 후순위에 뒀고 방향은 내각제였다. 윤안단일화에선 개헌이 선순위고 방향이 대통령제 업그레이드라면 윤안연합정권의 성격도 크게 달라진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는 DJP연합의 초대 총리와는 다른 위상을 갖게 된다. DJP연합에선 실세 총리라는 표현이 쓰였다. 대통령이 임명한 건 맞지만 실질적 권력을 분점했다는 의미였다. 반면 안철수 후보가 상정한 차기 정권의 국무 총리는 책임 총리다. 국회 추천 책임 총리제는 대통령이 국무총리를 임명할 때 국회의 추천을 받도록 하고 해임할 때도 국회의 인준 투표를 거치게 하는 제도다. 대통령제지만 내각제의 수상에 버금가게 국무총리의 위상이 높아진다. 안철수 후보가 윤석열 정부의 책임 총리가 되려면 일단 국민의힘부터 장악해야만 한다. 국회 추천 책임 총리는 다수당의 리더거나 대통령의 동지여야만 될 수 있다. 안철수 후보는 윤안단일화 기자회견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은 국민의힘을 보다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정당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답했다. 바꿔 말하면 대선 이후 안철수 후보의 1차적인 목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통합된 차기 여당에서 당대표가 되는 것이란 의미다. 고작 3석 짜리 국민의당 대표가 통합여당의 당대표가 되려면 차기 대통령의 절대적인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래야 2차적인 목표인 책임 총리가 될 수 있다. 안철수 후보가 2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려면 윤석열 후보의 변함 없는 지지가 절대 조건이다.
RISK_ 윤대통령 

“청와대라는 명칭 자체를 없애겠다.” 윤석열 후보가 지난 2월 9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윤석열 후보는 취임 첫날부터 하루도 청와대 집무실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청와대 대신 대통령실이라는 명칭을 쓰겠다고 밝혔다. 이 말을 믿는다면, 윤석열 후보가 구상하는 차기 대통령상은 권력 독점형이 아니라 권력 분점형에 가까워 보인다. 현행 1987년 체제는 쉽게 말해 제왕적 대통령제와 소왕적 국회의원제를 기반으로 한다. 대통령은 청와대와 내각을 모두 지배한다. 소선거구제로 선출되는 국회의원은 사실상 지역의 유일한 대표다. 국가적으로도 지역적으로도 유일한 패권자만 허용하는 방식이다. 대통령이 각하라고 불리고 국회의원이 영감이라고 불리던 20세기엔 자연스러웠다. 대통령이 대통령님이라고 불리고 국회의원은 일꾼이라고 불리는 21세기엔 부자연스럽다. 한국 사회는 이미 각계각층의 권력이 분산된 상태다. 정치체제만 뒤쳐져 있다. 사실 난다 긴다하는 엘리트들인 정치인들도 이런 시대 변화를 모르진 않는다. 다만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권력을 쥐는 순간 권력을 내려놓지 못할 뿐이다.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나눌 수 없다. 아이러니가 있다.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켰지만 이명박 정부과 대척점에 섰던 고 정두언 의원은 2016년 12월 〈머니투데이〉에 이런 글을 남겼다. “권력은 나눌수록 커진다.” 정두언 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성공했던 건 권력을 힐러리 클린턴에게 나눠졌기 때문이라고 썼다. 오바마 대통령은 링컨 대통령한테서 권력 분점의 지혜를 배웠다. 사실 정두언 의원 본인부터가 대표적인 권한 배분형 정치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일찍 세상을 등졌다. 권력에 집착하지 않는 정치인은 낭만적이다. 그래서 상대를 믿고 본다. 그래서 자기 것을 먼저 내려놓는다. 그래서 양보에 능하니 협상에 능하다. 그렇게 집착이 없으니 선택이 빠르다. 윤안단일화에서 막판 담판이 가능했던 것도 윤석열 후보가 이런 특징을 가진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다만 리스크가 있다. 막상 대통령이 됐을 때도 여전히 낭만적일 수 있느냐다. 21세기에 들어선 이후 스스로 최고 권력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정치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유일했다. 지지층을 패닉에 빠뜨렸던 대연정 제안도 권력을 나누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역권력 의지 때문이었다. 노무현 정부에선 사실상 이해찬 총리가 실세 총리였다. 현행 대통령제에서도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권력 분점이 가능하다. 다만 윤석열 후보가 대통령이 된다면, 안철수 후보한테 그 이상을 요구받을 것이라는 게 관건이다. 윤석열 후보는 자신을 제도적으로 위상이 격하된 대통령으로 만드는 정치교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재명 후보처럼 대통령이 돼서 나라를 바꾸려는 정책적 방향성이 뚜렷할수록 이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어쩌면 정권교체가 정치교체가 될지는 일단 윤석열 후보가 집권 이후 단 하루도 청와대에서 일하지 않느냐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대통령이 청와대를 버리면 비로소 정치교체가 가능하다. 윤석열 후보가 악마의 유혹을 이겨낸다면 말이다.
CONFLICT_ 이준석

지난 2월 23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이태규 국민의당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폭로전을 벌였다. 이준석 대표가 윤석열 후보와는 별개로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합당을 추진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양쪽 모두에게 일종의 이간계를 썼다. 한 인터뷰에선 “국민의당 관계자가 우리측에 안철수 대표를 접게 만들겠다면서 제안을 해온 것도 있다.” 국민의당에 배신자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동시에 이태규 본부장한텐 협상 과정에서 “윤후보는 인사 그립을 강하게 잡으려는 사람이고 총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아 공동정부는 쉽지 않다”면서 “윤후보 측근을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배신자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성사되면서 결과적으로 배신자는 이준석 대표가 돼버린 꼴이 됐다. 공개적으로 안철수 후보를 조롱하면서 감정 싸움을 부추켰다. 내부적으론 반간계를 통해 양측의 갈등을 유도했다. 급기야 권영세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장이 나서서 “당대표를 비롯해 우리 모두가 사감이나 사익은 뒤로 하고 정권 교체라는 대의를 앞세워야 할 때”라고 경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 당내지지 기반이 별로 없다. 2021년 6월 당대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2030세대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는 예비경선에선 일반 국민 여론조사가 50% 반영된다. 본선에선 30% 반영된다. 이준석 대표는 일반 여론 조사에서 60% 가까운 지지를 얻었다. 헌정 사상 최초 30대 보수당 당수의 화려한 데뷔였다. 이준석 대표가 당대표로서 치러야하는 선거가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아니라 대통령 선거라는 게 함정이었다. 총선이나 지선에선 당대표가 공천권을 휘두르는 주인공이다. 대선에선 당대표의 역할은 조연일 수밖에 없다. 지난 2021년 11월 경선에서 윤석열 후보가 대선후보로 선출되면서 우려는 현실이 됐다. 당의 무게추가 곧바로 윤석열 후보쪽으로 쏠렸다. 안철수 후보가 서울 시장 선거 때의 약속을 어기고 대선에 출마하면서 상황이 더 꼬였다. 대선 막판 단일화 협상은 필연이었기 때문이다.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를 지렛대로 당권을 노릴 것도 자명했다. 이준석 대표한테 주어진 선택지는 2가지였다. 단일화를 저지하면서 단일화 없이 대선 승리를 쟁취하거나, 단일화가 되더라도 이준석이 중심이 되는 합당을 통해 이뤄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둘 다 실패했다. 이준석 대표는 3월 3일 오전 8시 두 후보가 기자회견을 통해 단일화를 공식 발표하기 1시간 전에 “정권교체의 대의를 위해 국민의힘 일원이 되기로 큰 결정을 내린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 구성원들을 환영합니다”라며 “조건 없는 우리 후보에 대한 지지선언과 합당을 결심한 용기에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단일화를 당사자보다 먼저 공식화하면서 우리 후보라는 표현도 썼다. 여기에도 권력의 악마가 있다. 이준석 대표는 당대표로서의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합당과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도 이준석 대표는 대선 이후의 새 판에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거나 극대화할 방안을 우선 모색했다. 당대표로서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아서였다. 역설적으로 이준석 대표의 권력은 점점 작아지고 있다. 이준석 대표는 세대교체를 통한 정치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 정작 정권교체를 위해 당대표로서 자기 권력을 내려놓지 못했다. 대선 이후 이른바 윤핵관과 안철수 후보의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권력 투쟁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게 됐다. 정치 권력을 쥐면 누구나 악마를 보게 된다. 예외는 없다. 악마를 보았다.
NUMBER_ 5.28%?!

지난 3월 3일 발표된 《중앙일보》와 엠브레인퍼플릭의 마지막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할 경우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47.4%와 41.5%였다. 5.9% 격차였다. 역시 3일에 발표된 《한국경제》와 입소스 여론 조사에서도 윤석열 후보는 48.9%였고 이재명 후보는 42.8%였다. 격차는 6.1%였다. 〈뉴시스〉와 리얼미터 조사에선 윤석열 후보는 48.4%였고 이재명 후보가 43.5%였다. 격차는 2.8%였다. 《서울경제》와 칸타코리아 조사에선 윤석열 후보는 49%였고 이재명 후보는 38.3%였다. 격차는 10.7%였다. 《문화일보》와 엠브레인퍼블릭의 조사에선 윤석열 후보는 45.9%였고 이재명 후보는 45.%였다. 격차는 0.9%였다. 여론조사 공표 금기 기간 직전에 이뤄진 여론조사들 가운데 단일화를 가정하고 이뤄진 5개 지지율 조사에선, 모두 윤석열 후보가 이재명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5개 지지율 조사의 평균 격차는 5.28%다. 물론 여론 조사는 어디까지나 여론 조사일 뿐이다. 실제 투표에서 이재명 후보가 승리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여기서 더 흥미로운 지점은 따로 있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에도 적잖은 여론 조사가 윤석열 후보의 우세승을 점쳤다는 사실이다. 〈오마이뉴스〉와 리얼미터의 마지막 여론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 후보는 45.1%였고 이재명 후보는 40.6%였다. 안철수 후보는 7.1%였다. 리서치뷰는 윤석열 47%였고 이재명 41%였다. 안철수 후보는 7%였다. 〈CBS노컷뉴스〉와 서던포스트의 조사에선 윤석열 39.6%였고 이재명 37.7%였다. 안철수는 8.6%였다. 대부분 윤석열 후보의 승리를 예측한 가운데 NBS 조사가 가장 박빙이었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모두 40%로 동률이었다. 안철수 후보는 9%였다. 단일화 이후 안철수 후보의 지지층은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거의 절반씩 나눠 갖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오히려 이재명 후보의 흡수율이 더 높다. 종합해보면,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대선 승부에 변수가 아닐 수도 있단 의미다. 단일화가 안철수 후보가 주장한 것처럼 더 나은 정권교체에 별다른 기여도가 없었을 수도 있단 뜻이다.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여권 지지층 결집으로 윤석열 후보가 패배한다면 상관 없다. 단일화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가 단일화 이전의 여론조사처럼 힘겹게 승리한다면 집권 이후 계산이 더 복잡해진다. 한 마디로 윤석열 후보는 차기 정권의 지분을 안철수 후보한테 너무 낭만적으로 양보한 꼴이 된다. 단일화 빅딜의 승자는 대통령이 된 윤석열 후보가 아니라 무임 승차를 한 단일화 전문가 안철수 후보가 된다. 여기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 있다. 과거 DJP연합이 2년 이상 존속할 수 있었던 건 김종필 총리의 기여도가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지역구도가 선명하던 때라 충청권 표를 자민련이 김대중 후보한테 몰아줬다는 사실은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이번 윤석열과 안철수 단일화는 DJP연합처럼 덧셈 공식이 선명하지가 않다. 모두가 초박빙 대선이라는걸 알고 있어서 잠자코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선 윤석열 후보가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게 아니냐는 고민이 있다. 3석 정당과 당대당 합당을 하기로 원칙적으로 합의한 것도 내심 불만 거리다. 이건 대선 이후 윤석열 리더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의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역사를 보고 정치를 해도 된다. 당직자는 자리를 보고 정치를 할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청와대 없는 정부를 주장해서 자리까지 줄었다. 그나마 안철수 계파와 나눠야 한다면 결국 무슨 기여를 했느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가 이런 당내 불만을 잠재우고 끝까지 안철수 후보와의 신의를 지킬 것이냐가 관건이다. 정권을 나눈다는 건 결국 자리와 돈을 나눈다는 뜻이다. DJP연합의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가 권력 분점에 성공했던 건 이런 권력의 속성을 직시했기 때문이었다. 삼김은 악마와 거래할 줄 알았다. 게다가 DJ와 JP 모두 자기 계파의 보스였다. 윤석열 후보는 보스 기질이 있을진 몰라도 보스는 아니다. 윤석열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직을 박원순 시장에게 양보하던 시절의 안철수 후보와 닮아있다. 아직 제대로 악마를 마주한 적이 없다. 11년 정치 끝에 안철수 후보는 그나마 노회해졌다는 평가다. 무수한 단일화의 악마들을 만난 덕분이다. 그래봤자 과거 DJP연합만큼의 노련함은 없다. 윤석열 후보도 안철수 후보도 아직 거인들은 아니다. 그래서 만일 윤석열 후보가 압도적으로 승리하지 못하면 개헌 같은 정치개혁은커녕 합당조차 쉽지 않을 수 있다. 두 후보 모두 아직 권력을 피도 눈물도 없이 나눌만큼의 악마적 카리스마가 부족하다.
NUMBER#2_ 12.31%

3월 4일 금요일 오후 3시 현재 20대 대선 사전투표율은 역대급 최고기록을 돌파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사전투표 첫날인 3월 4일 오후 3시 기준 544만2667명이 투표를 마쳤다. 투표율은 12.31%다. 이는 사전투표율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2020년 21대 총선의 첫날 사전투표율 12.24%를 이미 뛰어넘은 결과다. 2020년 총선에선 사전투표 첫날 오후 3시 사전투표율은 8.28%였다. 사전투표 열기가 높았던 2020년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이 180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뒀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텃밭으로 분류되는 전남과 전북 그리고 광주가 높은 사전투표율을 기록했다. 단일화로 사실상 양자 구도로 대선이 치러지는데다 사실상 양당 모두 지지층 결집을 완수한 만큼 승패는 투표율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어느쪽 지지층이 빠짐없이 투표에 참여하느냐가 마지막 승부처다. 2020년 21대 총선을 기준으로 하면 일단 높은 사전 투표율은 단일화 역풍으로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이 결집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호남 지역의 사전 투표 열기가 높은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유세 시간 동안에는 윤석열 후보가 호남에서 선전할 것으로 기대됐다. 광주 복합쇼핑몰 같은 생활밀착형 이슈를 발굴해낸 덕분이다. 정작 광주전라 지역의 높은 투표율은 민주당 텃밭에서 단일화 역풍이 더 거세게 불었을 수 있다는 걸 반증한다. 게다가 이재명 후보의 지지층이 윤석열 후보의 지지층에 비해 적극적 투표 의사가 6%포인트 이상 높다는 게 국민의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의 조사 결과다. 단일화는 정권 교체를 원하는 유권자보단 정권 유치를 원하는 유권자가 정권 사수를 위해 적극 투표를 하게 만들 수 있는 이슈다. 반면에 안철수 후보의 핵심 지지층한텐 단일화가 오히려 투표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는 이슈다. 정동영 후보가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 실패하면서 투표율도 역대 최저였던 17대 대선과 달리 20대 대선에선 이재명 후보가 지지층 결집에 성공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닥을 쳤던 17대 대선과 달리 20대 대선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40%대다. 실제로 단일화가 이재명 후보한테 유리한 역풍을 일으켰다면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한텐 치명타다. 대선에서 패배하면 안철수 후보는 정치 생명이 끝난다. 윤석열 후보는 정치를 계속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후보의 이름으로 집결한 보수표가 정치를 계속할 밑거름이 될 수는 있다. 그러자면 국민의힘이 대선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하는데 구심점 역할을 해야만 한다. 쉽진 않다. 윤석열 카드는 정권 심판론을 상징하는 대선 필승 카드였다. 대선에서 패배했는데도 윤석열 카드가 유통이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게다가 20대 대선에서 패배하면 한국의 정치 지형도가 진보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보수의 암흑기다. 일단 압도적으로 높은 사전 투표율은 이재명 후보한테 더 희소식이다. 단일화 역풍이 불고 있다. 악마는 역풍을 입는다. 
INSIGHT_ 불공정 

20대 대선이 승패를 쥔 캐스팅보트가 2030세대 유권자일 거라는 건 양당 모두 진작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1997년 DJP연합이나 2002년 노무현과 정몽준 단일화 시절 유권자는 자신의 정치적 한 표를 거대 양당이나 정치 리더에게 일임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역주의나 이념성향에 따라 투표를 했다. 과거 유권자들한테 투표는 내가 아니라 집단을 위해 투표하는 행위였다. 반면 2022년 현재 2030세대 유권자들한테 투표는 나를 위한 행위다. 민주주의를 인식하는 방식이 자본주의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투표와 소비는 유사한 선택이다. 소비의 만족도처럼 투표에서도 정치적 효능감이 중요하다. 나를 위한 정책을 제시한 후보를 선택하는 게 가장 민주적이라고 믿는다. 이런 유권자의 소비자화는 1990년대 미국에서 이미 시작됐었다. 이런 정치 현상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선거에 활용한 건 클린턴 민주당이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는 레이건과 부시로 이어졌던 이념 정당 공화당에게 일격을 가한 무기였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는 자신의 저서 《슈퍼 자본주의》에서 이런 유권자의 소비자화가 장기적으로 미국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2년 대선에서 한국 민주주의가 겪고 있는 현상과 대동소이하다. 그래서 지금 2030세대한테 단일화는 대리인에 불과한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표를 나눠먹기한 불공정 거래에 불과하다. 과거 유권자들은 정치리더의 선택에 따라 표를 줬다면, 지금 유권자들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정치인이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가 정권교체와 정치교체의 대의를 내세웠던 아니건 상관 없다. 정치인이 유권자의 의견을 무시하고 서울 강남 빌라에서 불공정 거래를 한 것에 불과하다. 높은 사전 투표율이 단일화 역풍이 맞다면 그건 윤석열와 안철수의 정치적 야합에 대한 분노 때문이 아니다.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유권자들의 정치권에 대한 응징이다. 20대 대선의 유권자수는 4420만명 정도다. 이 가운데 20대 유권자는 660만명이고 30대 유권자는 667만명이다.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다. 2030을 더해서 1327만명의 표심이 단일화가 절대 우호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놓쳤을 수도 있는 부분이다. 바로 이것이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에도 결선투표제가 필요한 이유다. 실제 투표 현장에선 결선투표제를 추구하겠다는 단일화 연합정부를 유권자가 거부하는 역설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2020년대 이후 한국 정치의 변화는 모두 공정성과 관련이 있었다. 조국 사태도 코로나 방역도 모두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지금 2030세대가 생각하는 공정의 정의가 다른 세대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단일화는 불공정하다. 악마의 마음을 읽는 자들은 불공정이란 디테일 속에 있다. 

윤석열의 탄생에 관해 더 잘 알고 싶다면 〈윤석열의 탄생〉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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