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너머
 

2022년 일곱 번째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사전투표를 했습니다. 지난 3월 4일과 5일 이틀 동안 20대 대선 사전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1632만3602명 가운데 하나가 됐습니다. 사전투표는 처음 해봅니다. 늘 본투표만 고집했거든요. 정치 취재를 하는 저널리스트여서 그랬습니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에 선택을 뒤흔들 결정적 변수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대선처럼 초박빙이라면 작은 불씨도 승패를 가르는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사전투표 기간에 발생해서 무려 54시간째 지속되고 있는 울진삼척의 초대형 산불도 정치적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양당 대선 후보 모두 산불 현장을 찾아서 이재민들을 위로했죠. 솔직히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도 아니고 아직 정당의 대표인 대선 후보가 재난 현장에서 도움이 될 리가 없습니다.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니 적잖은 유권자들이 그렇게 비판하시더군요. 비록 보여주기라도 가긴 가야만 합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리더쉽을 보여주는 게 대통령의 역할이니까요. 전쟁이나 재난은 대통령에겐 중대한 시험대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코미디언에서 영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세월호로 탄핵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탑승하게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자라면 재난 현장의 최전선에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야만 합니다. 

2022년 20대 대선 막바지에 발생한 영월 산불이란 재난은 2007년 12월 19일에 치러진 17대 대선을 연상시킵니다. 그때도 국가적 재난이 덮쳤었죠.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입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였죠. 삼성1호 크레인선과 허베이 스피빗 유조선이 충돌하면서 태안국립공원 일대가 검은 기름띠로 뒤덮인 재난이었죠. 대선을 열흘가량 앞두고 벌어진 태안 기름유출 사고는 결과적으로 17대 대선의 변수가 됐습니다. 대선이 끝나면 승패원인을 복기하게 됩니다. 선거 막판에 후보가 어느 지역에 집중했고 어떤 이슈에 올인했는지를 보면 캠프의 판세 분석이 맞았었는지 틀렸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 대패한 정동영 캠프의 판세 분석이 어긋나도 한참 어긋났었다는 걸 보여주는 게 태안 재난입니다. 정동영 후보는 대선 직전 마지막 주말을 태안에서 보냈습니다. 당시 여당이었던 대통합민주신당의 관계자 1천명도 태안에 집결해서 기름띠 제거작업에 나섰죠. 재난 복구에는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선거전략으로선 패착이었습니다. 정동영 후보는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더블 스코어 차이로 패배했습니다. 선거 막판에 수도권 대신 태안에서 머물 일이 아니었던 거죠. 그렇다고 태안 봉사로 충남표를 얻은 것도 아닙니다. 정동영 후보는 전북과 전남 그리고 광주에서만 이명박 후보를 이겼습니다. 

이번엔 여야 후보 모두 정동영 후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재난 현장을 찾아서 리더쉽을 보여줬지만 전후엔 표밭 공략도 게을리하지 않았죠. 여야 후보 모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수도권에 올인하는 분위기입니다. 사전투표에서 전체 유권자의 36.93%가 선택을 끝냈다고는 하지만 아직 63%의 유권자가 본투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거대 양당도 양당 후보도 재난 현장에서 자원 봉사를 하면 유권자가 진심을 알아줄거라 착각할만큼 순진하지 않습니다. 불은 강원경북에서 났지만 표는 서울경기에 있다는 걸 너무 잘 압니다. 2000만 유권자가 수도권에 있으니까요. 만일 양당 후보 둘 중 누구라도 울진삼척 산불 현장에 안 갔다면 대선에서 이기기 어려웠을 겁니다. 만일 양당 후보 둘 중 누구라도 수도권 유세 현장으로 즉각 돌아오지 않았다면 대선에서 이기긴 어려웠을 겁니다. 이제껏 사전투표보단 본투표를 선호해온 건 이런 변수까지 전부 고려하고 싶어서였습니다. 한번 선택이 5년을 좌우하니까요. 
이쯤 되면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도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스윙보터라는 사실을요. 울진삼척 산불에 대응하는 양 캠프의 자세까지 투표의 변수로 볼 정도니까요. 90년대에 투표권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면 모든 투표에 참여해왔습니다. 매번 선거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달랐습니다. 진보를 뽑은 적도 있고 보수를 선택한 적도 있습니다. 소수정당에 표를 준 적도 있습니다. 어떠한 당적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저널리스트니까요. 진보가 선이고 보수가 악이라거나 혹은 그 반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떤 후보가 개인적으로 더 유리한 경제 정책이나 복지 정책을 제시한다고 해서 표를 준 적도 없습니다. 투표는 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니까요. 

선거 때마다 선택 기준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투표의 맥락이 중요했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보수에 표를 줄 때라고 볼 때도 있었고 지금은 진보가 권력을 쥘 필요가 있다고 볼 때도 있었습니다. 소수정당이 득표를 해야 한다고 느낀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투표는 스윙보터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역사의 맥락은 시대마다 시기마다 바뀌니까요. 

다른 기준 하나는 투표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흔히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가격비교도 하고 설명서도 숙독하는 꼼꼼한 소비자처럼 정치인의 상품개요 격인 정책을 비교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얘기죠.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다만 너무 정치학 교과서 같습니다. 공약이 늘 빌 공자가 되는 건 정책이 안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현실 정치에서 정책은 득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해진지 오래입니다. 여가부폐지 정책이 대표적이죠. 여가부폐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해당 정책으로 모을 수 있는 표가 목적이죠. 가덕도 신공항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울경 지역에서 득표하려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니까요. 모든 유권자는 결국 특정 정책의 수혜자이거나 소외자거나 피해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절대 기준이 되면 결국 유권자는 개인적 이해득실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됩니다. 가격비교하듯 정책비교를 하고 정치를 구매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을 올바르게 선택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음 지도자가 우리를 다음 시대로 이끄는 것이니까요. 그가 어떻게 권력자로 탄생했는지를 살펴봅니다. 권력도 계급도 세습되지 않은 민주공화정에선 어떤 정치인도 날 때부터 공권력의 주인일 순 없습니다. 반드시 권력에 접근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이재명의 탄생〉과 〈윤석열의 탄생〉은 과정으로 분석한 사람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선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로선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겠죠. 이때 개인적으로 한사코 기피하려는 단어가 바로 지지입니다. 지지는 너무 끈적한 단어입니다. 한번 지지자면 영원히 지지자여야만 할 것 같거든요. 지지보단 선택이 쿨합니다. 이번 선거에선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죠. 시대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으로 볼 때 그 사람이 지금 우리한테 필요하니까요.

현대 정치에서 유권자에게 사람을 후보자로서 제시하는 건 정당의 역할입니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필터라고 불립니다. 선거에서 여러 후보자들 가운데 최적의 후보자를 가려내고 제시하는 게 정당의 핵심 기능입니다. 유권자를 위해 선거를 주관식에서 객관식으로 바꿔주는 역할이죠. 이런 정당의 순기능이 극대화된 경우가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민주당은 신출내기 상원의원을 미국 정치의 새로운 얼굴로 제시했죠. 역기능이 극대화된 경우는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포퓰리즘으로 정당의 필터링 기능을 마비시켜버렸으니까요. 공화당은 트럼프가 거짓말쟁이라는 걸 알면서도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집권욕에 눈이 멀었기 떄문입니다.

정작 정당들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객관식을 제시하는 핵심 기능은 게을리합니다. 오바마를 찾아낸다는 건 기존 대선 주자들한테 출마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어렵죠. 대신 정당이 최선을 다하는 건 집토끼 만들기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당을 지지해줄 집토끼야말로 정당의 핵심 자산입니다. 집토끼를 만들려면 일단 갈라치기부터 해야만 합니다. 여야의 정쟁은 집토끼 지지자들에게 지지를 유지할 이유를 계속 공급해주는 행위입니다. 정쟁이 치열해질수록 핵심 지지층은 뭉칩니다. 안타깝게도 핵심 지지층이 탄탄한 정당일수록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는데는 인색합니다. 어차피 우리 후보를 뽑아줄 것이니까요. 

스윙보터는 정당들한텐 골칫거리입니다. 우리당 집토끼도 아니고 상대당 산토끼도 아니거든요. 우스갯소리지만 차가운 도시 토끼쯤 될까요. 차도토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특정 후보다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책에 따라 사람에 따라 표를 줬다 뺐었다 하죠. 대신 스윙보터는 선거의 승패에 별로 연연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고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민중의 노래를 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다수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구나 인정할 뿐이죠. 불의가 이겼다거나 정의가 패했다고 생각하는 법은 없습니다. 상대 후보는 적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또 하나의 선택지였을 뿐입니다. 만일 다른 변수가 개입했다면 기표 용지의 다른 자리에 도장이 찍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전투표를 했다는 사실에 좀 놀라고 있습니다. 사전투표 대신 본투표를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만 충분했다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 
이렇게 스스로 스윙보터라고 커밍아웃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선 이후가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앞선 대선들은 선거 막판이면 대강 승패의 윤곽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 대선은 다릅니다. 이겨도 승리했다고 선언하기 어렵고 져도 패배했다고 승복하기 어려운 아슬아슬한 승부가 될 겁니다. 그만큼 선거 후유증도 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미국 민주주의가 반반치킨화된 건 2000년 대선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민주당 앨 고어는 이겼지만 졌고 공화당 조지 부시는 졌지만 이겼죠. 양당정치에서 정치적 박빙승부는 국민을 반토막냅니다. 올오어낫씽 싸움이다보니 물러설 곳도 없죠. 이번 대선은 사실상 양당 모두 집토끼를 총결집시키는 걸 목표로 삼았던 선거였습니다. 정당의 자산을 탈탈 털어서 총동원한 셈이었죠. 양당 모두 올인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오바마 같은 후보를 제시하지 못한 벌입니다. 

그래서 양당 모두 패배할 경우 패배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패배를 순순히 받아들이면 지지기반이 와해될수 있기 때문이죠. 미래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와 민경욱 전 의원이 한사코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건 한 줌도 안 되는 지지기반이라도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박빙표차로 승패가 갈린다면 두 후보는 승패를 인정하겠지만 양당은 곧바로 지지기반 지키기에 돌입할 공산이 큽니다. 선거는 졌어도 정당은 망하면 안 되니까요. 선거 기간보다 더욱더 치열한 정쟁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도 개전 시점은 새 정부의 인사청문회일 겁니다. 집토끼들이 떠나가지 않게 하려면 증오의 정치를 벌여야만 하니까요. 정당은 그렇게 지지자를 이용합니다. 상대를 악마화하거나 상대를 쓰레기화하죠. 

이미 대선 너머가 더 중요합니다. 이재명 후보든 윤석열 후보든 둘 중 한 사람이 다음 정부를 이끌 대통령이 될 겁니다. 그걸로 끝난 겁니다. 이건 선악의 싸움도 정의와 불의의 싸움도 아닙니다. 그냥 선거입니다. 다른 변수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지도 가능했던 선거인 것이죠. 스윙보터는 그 선택지의 후보가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신의 가호를 빕니다. 선택이 달랐다고 실망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습니다. 선거에선 후보자한텐 승패가 있지만 유권자한텐 승패가 없어야 합니다. 유권자는 언제나 승자여야 하니까요. 그래서 후보자의 패배를 유권자의 패배로 만드는 정당은 민주정치를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젠 우리도 그런 식의 선거 과몰입에서 졸업해야만 합니다. 부디, 대선 이후 4420만명의 대한민국 유권자 모두가 이겼다고 느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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