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에도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스윙보터라는 사실을요. 울진삼척 산불에 대응하는 양 캠프의 자세까지 투표의 변수로 볼 정도니까요. 90년대에 투표권을 얻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을 제외하면 모든 투표에 참여해왔습니다. 매번 선거마다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가 달랐습니다. 진보를 뽑은 적도 있고 보수를 선택한 적도 있습니다. 소수정당에 표를 준 적도 있습니다. 어떠한 당적도 가진 적이 없습니다. 저널리스트니까요. 진보가 선이고 보수가 악이라거나 혹은 그 반대로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어떤 후보가 개인적으로 더 유리한 경제 정책이나 복지 정책을 제시한다고 해서 표를 준 적도 없습니다. 투표는 내가 아니라 우리를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니까요.
선거 때마다 선택 기준은 2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투표의 맥락이 중요했다는 얘깁니다. 지금은 보수에 표를 줄 때라고 볼 때도 있었고 지금은 진보가 권력을 쥘 필요가 있다고 볼 때도 있었습니다. 소수정당이 득표를 해야 한다고 느낀 시기도 있었습니다. 이런 맥락투표는 스윙보터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역사의 맥락은 시대마다 시기마다 바뀌니까요.
다른 기준 하나는 투표는 정책이 아니라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흔히 정책을 보고 투표를 해야 한다고들 합니다. 가격비교도 하고 설명서도 숙독하는 꼼꼼한 소비자처럼 정치인의 상품개요 격인 정책을 비교하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얘기죠. 맞습니다. 동의합니다. 다만 너무 정치학 교과서 같습니다. 공약이 늘 빌 공자가 되는 건 정책이 안 지켜지기 때문입니다. 현실 정치에서 정책은 득표를 위한 수단에 불과해진지 오래입니다. 여가부폐지 정책이 대표적이죠. 여가부폐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입니다. 해당 정책으로 모을 수 있는 표가 목적이죠. 가덕도 신공항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울경 지역에서 득표하려면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니까요. 모든 유권자는 결국 특정 정책의 수혜자이거나 소외자거나 피해자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절대 기준이 되면 결국 유권자는 개인적 이해득실에 따라 투표를 하게 됩니다. 가격비교하듯 정책비교를 하고 정치를 구매하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을 올바르게 선택하려고 노력합니다. 다음 지도자가 우리를 다음 시대로 이끄는 것이니까요. 그가 어떻게 권력자로 탄생했는지를 살펴봅니다. 권력도 계급도 세습되지 않은 민주공화정에선 어떤 정치인도 날 때부터 공권력의 주인일 순 없습니다. 반드시 권력에 접근하는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 사람이 보입니다. 〈
이재명의 탄생〉과 〈
윤석열의 탄생〉은 과정으로 분석한 사람입니다. 저널리스트로선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유권자로선 어느 한쪽을 지지해야겠죠. 이때 개인적으로 한사코 기피하려는 단어가 바로 지지입니다. 지지는 너무 끈적한 단어입니다. 한번 지지자면 영원히 지지자여야만 할 것 같거든요. 지지보단 선택이 쿨합니다. 이번 선거에선 그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죠. 시대적 역사적 정치적 맥락으로 볼 때 그 사람이 지금 우리한테 필요하니까요.
현대 정치에서 유권자에게 사람을 후보자로서 제시하는 건 정당의 역할입니다. 정당은 민주주의의 필터라고 불립니다. 선거에서 여러 후보자들 가운데 최적의 후보자를 가려내고 제시하는 게 정당의 핵심 기능입니다. 유권자를 위해 선거를 주관식에서 객관식으로 바꿔주는 역할이죠. 이런 정당의 순기능이 극대화된 경우가 오바마 대통령입니다. 민주당은 신출내기 상원의원을 미국 정치의 새로운 얼굴로 제시했죠. 역기능이 극대화된 경우는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포퓰리즘으로 정당의 필터링 기능을 마비시켜버렸으니까요. 공화당은 트럼프가 거짓말쟁이라는 걸 알면서도 트럼프를 대선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집권욕에 눈이 멀었기 떄문입니다.
정작 정당들은 국민들에게 양질의 객관식을 제시하는 핵심 기능은 게을리합니다. 오바마를 찾아낸다는 건 기존 대선 주자들한테 출마 기회가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기가 어렵죠. 대신 정당이 최선을 다하는 건 집토끼 만들기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우리당을 지지해줄 집토끼야말로 정당의 핵심 자산입니다. 집토끼를 만들려면 일단 갈라치기부터 해야만 합니다. 여야의 정쟁은 집토끼 지지자들에게 지지를 유지할 이유를 계속 공급해주는 행위입니다. 정쟁이 치열해질수록 핵심 지지층은 뭉칩니다. 안타깝게도 핵심 지지층이 탄탄한 정당일수록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내세우는데는 인색합니다. 어차피 우리 후보를 뽑아줄 것이니까요.
스윙보터는 정당들한텐 골칫거리입니다. 우리당 집토끼도 아니고 상대당 산토끼도 아니거든요. 우스갯소리지만 차가운 도시 토끼쯤 될까요. 차도토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특정 후보다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책에 따라 사람에 따라 표를 줬다 뺐었다 하죠. 대신 스윙보터는 선거의 승패에 별로 연연하지 않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당선됐다고 〈레미제라블〉을 보면서 민중의 노래를 부르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다수의 선택이 그렇다면 그러한 것이구나 인정할 뿐이죠. 불의가 이겼다거나 정의가 패했다고 생각하는 법은 없습니다. 상대 후보는 적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또 하나의 선택지였을 뿐입니다. 만일 다른 변수가 개입했다면 기표 용지의 다른 자리에 도장이 찍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스스로 사전투표를 했다는 사실에 좀 놀라고 있습니다. 사전투표 대신 본투표를 했다면 그럴만한 이유만 충분했다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걸 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