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드 러시아

3월 8일 - FORECAST

러시아는 언론 통제를 강화하고 글로벌 기업들은 러시아를 보이콧 한다. 푸틴은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러시아발 ‘가짜 뉴스 처벌법’이 현지시각 3월 4일 통과됐다. 해외의 유력 언론이나 방송사들은 러시아에서 보도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각종 글로벌 기업들 역시 러시아 보이콧에 동참하고 있다. 러시아는 국제적으로 고립 상태다. 러시아 국민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WHY_ 지금 러시아의 언론 통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을 바란다. 동시에 러시아 국민이 과연 정부에 반기를 들지 궁금해한다. 이 전쟁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사가 확전이나 종식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의 이익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익은 복합적이다. 구소련 시절의 패권을 회복하는 것일 수도,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중 독재를 유지하고 강화하려는 의도도 빼놓을 수 없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침공의 명분이 사라진다. 언론 통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요한 신호다.
CONFLICT_ 가짜 뉴스 처벌법

러시아 의회를 통과한 가짜 뉴스 처벌법은 러시아 정부가 가짜 뉴스로 판단하는 정보를 유포할 시 징역형이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는 형법이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 최대 15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한 20대 여성은 인스타그램 DM을 통해 개인이 소셜 미디어에 ‘전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CNN, CBS 뉴스, 블룸버그, ABC 뉴스, BBC, CBC 등 유력 언론이나 방송사들은 보도 활동을 중단하고 있다. BBC의 팀 데이비 사무총장은 독립 언론을 범죄화하는 법안이라며 규탄했다. 가짜 뉴스는 원래 러시아의 무기다. 젤렌스키 우크리아나 대통령이 늘 자신이 키이우에 있다고 영상을 올리는 이유다. 러시아의 가짜 뉴스는 대부분 조악하지만 우크라이나 여론 분열에 쓰이고 있으며, 침공 날짜를 알기 어렵게 하는 회색지대 전략에 사용됐다. 다만 대대적 침공 이후 러시아의 가짜 뉴스는 효력을 다했다. 이제는 러시아를 상대로 하는 선전전에 대응하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발의된 법이다.
DEFINITION_ 프라브다

가짜 뉴스 처벌법이 실제로 향하는 곳은 국내 언론이다. 러시아의 반정부 성향 방송과 언론은 당국의 검열로 보도가 중단되고 있다. 푸틴은 자국민에게 이 전쟁이 ‘침공’으로 보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우크라이나 특수 작전’이라는 용어를 쓴다.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발행 부수가 높은 신문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이다. 소련 공산당 청년 동맹의 기관지였다가 민영화된 신문이며 정부 비판이 없는 황색 언론으로 꼽힌다. 좌측 상단 메뉴를 누르면 우크라이나 특별 작전이라는 카테고리가 하필 ‘노란’ 글씨로 적혀있다. 프라우다 혹은 정식 표기법에 따른 프라브다(Pravda, правда)는 러시아어로 진실, 진리를 뜻한다. 대안적 진실을 추구하는 트루스 소셜을 연상케 한다. 러시아의 선전전은 국내를 향한다.
REFERENCE_ 이라크 전쟁

전시에 프로파간다는 빈번하다. 러시아가 유별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며 두 가지 명분을 내세웠다.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점과 그들이 9.11 테러의 배후라는 점이다. 전자는 조작으로 드러났다. 후자 역시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테러를 주도한 알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관성을 결국 밝히지 못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매클렐런 전 백악관 대변인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이라크전을 위해 여론을 조작했다고 회고록에 적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미국의 언론통제전략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했고 대부분 유효했다. 이를 그대로 퍼 날라 왜곡 보도에 일조한 한국 언론 역시 책임이 가벼울 수 없다.
RECIPE_ 기업 행동주의

러시아에 언론 통제가 필요한 이유는 비단 반전 시위 때문이 아니다. 러시아를 향한 각종 제재가 시위에 관심 없는 국민에게도 피부로 와닿기 때문이다. 언제든 국민의 불만이 높아질 수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비롯, 넷플릭스, 레딧, 틱톡, 유튜브, 스냅, 구글과 애플, MS, 에어비앤비, 나이키, 이케아 등 수많은 기업이 다양한 방법으로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 특히 스페이스X는 우크라이나가 디지털 통신이 가능하도록 위성으로 지원했다. 한편 애플이 러시아에서 제품 판매를 중단한 것은 러시아 매출 비중이 큰 삼성에 과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은 ‘선적 중단’이라는 중립적 조치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구호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들의 행동주의는 러시아 국민의 일상을 바꾼다. 당장 휴대폰을 들어도 넷플릭스가 나오지 않고 주요 SNS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자유주의와의 대립은 비단 국가적 차원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MONEY_ 7억 달러

러시아의 악재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가 3월 16일 상환해야 하는 국채는 7억 달러, 우리 돈 8522억이다. 미국의 투자은행 JP모건은 현지시간 6일 보고서를 통해 러시아가 이를 상환하지 못하고 디폴트를 선언할 것이라 예상했다. 스위프트 국제 금융 결제망 차단으로 타격을 입은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고 이를 막기 위해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리를 기존 9.5퍼센트에서 20퍼센트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이미 세계 3대 신용 평가사가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디폴트 임박 수준으로 강등했다. 스위프트 제재는 국제 사회에도 고육지책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수입 제재를 시작하면 국제 유가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 그럼에도 서방 국가들은 단결을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 천연가스에 이해관계가 큰 독일은 가장 먼저 러시아 제재를 발표하며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을 약속했다. 천연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등을 볼모로 한 러시아의 고육지책은 통하지 않았다. 서방 국가들은 지금 고통을 나눌 각오가 돼 있다.
KEYMAN_ 알렉세이 나발니

러시아가 국민에 의해 전복 된다면 핵심 인물은 알렉세이 나발니일 것이다. 그는 러시아의 변호사이자 정치 고발 블로거다. 푸틴의 정적(政敵)이자 반 푸틴 여론의 상징이다. 2011년 러시아 총선 당시 부정 선거를 저지른 ‘통합 러시아’를 규탄하고 시위를 주도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2020년 8월에는 러시아 연방 보안국(FSB)로부터 독살 미수 사건을 겪었고, 2021년에는 푸틴의 호화 궁전을 폭로했다가 체포됐다. 무시로 일관하던 크렘린궁도 이례적으로 비밀 궁전 의혹에는 반박했다. 나발니 석방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반정부 시위는 늘 있었지만 해당 시위는 성격이 다르다. 주로 시위가 일어나던 극동지역이나 대도시뿐 아니라 새로운 지역이나 성향의 사람들도 참여했다. 나발니는 현재 옥중에서 전쟁 반대에 나서 달라며 러시아인들을 독려하고 있다.
NUMBER_ 13355

지금의 시위는 어떨까. 러시아의 비정부기구 ‘OVD 인포’는 러시아에서 반전 시위로 체포된 인원수를 공개하고 있다. 3월 7일 오후 4시 기준 13355명이다. 현지시각 3월 6일엔 전국 56개 도시에서 하루에만 4300명 이상을 구금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전 여론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최근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은 러시아 내 우크라이나 전쟁 찬성 여론을 68퍼센트로 집계했다. 물론 편향된 조사다. 해당 문항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군사건설 차단 및 나치 세력 견제를 위한 특수 군사작전에 찬성하느냐”는 식이었다.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한 방송인 일리야에 의하면 러시아 국민이 가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개념을 엿볼 수 있다. 실제 장년층과 고령층은 구소련 시절의 러시아에 익숙하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했다. 옐친 시절을 경험한 사람들은 오히려 푸틴 집권 이후 러시아가 부강해졌다고 느낀다. 현재 러시아 사회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목소리와 반푸틴 목소리가 뒤엉켜 있다.
RISK_ 올리가르히

사회 균열보다 더 큰 신호는 지도부의 갈등이다. 미국과 EU는 푸틴 개인에 대한 제재와 함께 러시아 신흥 재벌인 올리가르히들을 제재 명단에 올렸다. 올리가르히는 구소련 붕괴 당시 공산당 지도층 위주로 구성된 기득권이자 거대 재벌이다. 푸틴은 집권 당시 러시아 국민의 눈엣가시인 올리가르히를 숙청하며 인기를 얻었고 그중 소수만 살아남았다. 올리가르히는 이들의 사설 경호를 맡던 ‘실로비키’와 권력을 양분하고 있는데 실권은 대부분 실로비키가 쥐고 있다. 푸틴을 지원하는 든든한 아군이지만 돌변할 가능성이 있다. 세계 각지에 숨겨둔 올리가르히의 재산은 압류당하고 있고 올리가르히 중 일부는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다. 푸틴의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의 분열을 꾀했던 푸틴을 역으로 공략하는 미국의 이간질 계략이다. 스위프트 제재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INSIGHT_ 두 개의 전쟁

공공외교 시대다. 외교의 주체는 다양해졌다. 과거엔 국가가 유일한 행위자였다면 지금은 기업도 국민도 모두 외교의 대상 혹은 주체가 된다. 크림반도와 조지아, 남오세티야를 신속히 점령하며 서방 세계가 행동을 취할 틈을 주지 않았던 신속결정작전(RDO)이 실패하며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계산 착오다. 변수는 우크라이나의 하드 파워뿐이 아니었다. 전쟁마다 반등했던 푸틴의 지지율은 초국적 반전 시위와 기업의 행동주의를 불렀고 격화하던 반푸틴 여론에 불을 지폈다. 러시아가 전쟁에 소요하는 비용은 하루 25조 원으로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의 절반 수준이다. 푸틴은 국내 정치적, 물질적, 국제 정치적 목적 달성에 모두 실패했다. 중국은 러시아를 편드는 듯하지만 미온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의 패착으로 꼽히는 것은 전선 이원화다. 러시아는 지금 두 개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상대는 우크라이나와 자유주의다. 패색은 짙고 러시아 국민의 피해는 가중되고 있다.
FORESIGHT_ 푸틴의 옵션

푸틴이 핵 버튼을 만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옵션이 없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싶지만 그를 기다리는 것은 성난 러시아 국민과 파탄 난 경제, 외교적 고립이다. 그는 반드시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한다. 가장 좋은 선택지는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가 민족주의에 경도된 나치 세력임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엔 젤렌스키 및 우크라이나 지도부의 항복이 필요하다. 차선책은 돈바스 지역의 분리 독립 및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다. 우크라이나가 나토나 EU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약속 및 민스크 협정 폐기가 필요하다. 두 선택지 모두 우크라이나 정부와 나토의 강한 의지로 성사되기 어려워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EU가입을 신청했으며 중립국 모델인 핀란드마저 나토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 세 번째 선택지는 우크라이나 남부를 완전히 장악해 보급로를 마련하고 어떻게든 전력을 다해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는 것이다. 현재 남부 공격에 집중하는 이유이다. 각종 원전과 하르키우 등의 주요 거점을 노리는 이유는 우크라이나의 의지를 꺾고 러시아 자국 내 홍보를 위한 것이지만 남부는 다르다. 이 옵션이 모두 실패하면 푸틴은 전범이 된다. 국민의 신임을 얻지 못하면 모든 게 끝난다. 그가 핵 버튼을 만지는 이유이자 언론 통제에 미리 열을 올리는 이유다. 러시아 사회가 당장에 전복될 가능성은 적지만 푸틴의 옵션이 사라질수록 러시아 국민은 마음을 돌릴 것이다. 서방 세계는 푸틴이 핵 옵션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제재 수위를 조정하며 러시아 정부의 붕괴를 노리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우크라이나 라인》을 추천합니다.
푸틴의 생각과 옵션에 대해 자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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