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멸종의 시대
완결

백화점 멸종의 시대

60년이나 된 셰필드의 존 루이스 백화점이 폐업했다. 쓰라린 타격이었다. 그리고 남겨진 거대한 공터를 두고 논쟁이 격렬해지고 있다. 셰필드는 영국의 도심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시범 케이스가 되고 있다.

세퍼드시의 바커스 풀 광장에 위치한 옛 존 루이스 백화점 건물 ©Photograph: Richard Saker/The Observer


1. 백화점이 문을 닫았다


작년 6월 셰필드의 존 루이스 백화점 직원들은 선반을 비우고 상품을 다른 곳에 재판매 할 수 있도록 박스에 포장하는 일을 시작했다. 도심의 매장은 올해 초부터 문을 닫았고, 2021년 3월 존 루이스 파트너십은 매장을 영구 폐점한다고 발표했다.

직원 중 일부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포장 일에 참여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료들과 함께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건물에게 작별을 고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참여한 사람들도 있다. “희비가 교차한다”는 전 직원의 말처럼, 분노의 감정과 함께 추억이 함께 했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 옆에 비치되어 있던 매장 안내 책자 같은 기념품을 가져가는 이들도 있었다.

백화점 안의 레스토랑에는 한 간판 작가가 “더 이상 우리들의 매장은 없지만 우리는 언제까지나 추억을 간직할 것입니다”라는 글을 적었다. 그리고 그 주변의 벽은 하트 모양으로 배열된 사진과 함께 감사와 슬픔의 표현으로 곧 가득 찼다. “저는 근무 첫날 이 문을 열고 들어왔어요. 가게를 둘러봤죠. 그리고 23년 동안 이 곳에서 일했습니다.” “19년 동안 나는 당신을 돌봐 줬고 당신은 나를 돌봐 줬습니다. 우리는 가족이었어요.” 이런 표현들이었다. 또, 사람들이 나누어 가진 티셔츠에는 “셰필드 존 루이스 백화점: 1963년 9월~2021년 6월”이라고 적혀져 있었다. 3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2021년 9월 백화점의 다섯 개 층이 텅 비었다. 58년간 이어온 이야기가 끝난 것이다.

그로부터 두 달 뒤 방문해 보니 건물은 닫혀 있었고 조용했다. 1층의 모든 창문은 존 루이스의 “가상현실 이벤트”와 온라인 주문 서비스를 광고하는 파스텔 톤의 포스터로 덮여 있었다. 폐업에 대해서는 모두가 수긍했다. 한 행인은 “가족의 죽음만큼이나 안타까운 일이에요”라고 이야기하더니, “좀 과장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정말 속상해요. 백화점은 늘 그 자리에 있었는데 말이죠”라고 덧붙였다. 다른 이들도 훌륭했던 고객 서비스, 크리스마스 쇼핑이나 신년 세일과 같이 사랑받았던 행사들, 그리고 백화점 나들이의 소박한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물건이 어떤 지 직접 볼 수도 있었고, 뭐가 뭔지 알 수 있었죠.”

이런 폐업은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 즉, 전통적인 스타일의 백화점들이 멸종되면서 도심 지역에는 더 큰 위기가 닥쳤다. 브리티시 홈 스토어는 2016년 영국 내의 167개 매장을 전부 닫았고, 2018년에는 1849년에 개업한 하우스 오브 프레이저가 운영을 맡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상점이 임시 휴업하고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큰 희생자 중 하나는 셰필드 지점을 포함한 118개 매장을 2021년 1월에 폐업하겠다고 발표했던 디벤험스였다. 디벤험스는 중저가 시장을 겨냥하고 시내 중심가 지역에 주요 매장을 운영해 왔다. 존 루이스는 2020년 7월 처음으로 백화점과 몇몇 소규모 아울렛을 포함하여 총 8곳의 매장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했고, 반년 후에는 추가로 셰필드 지점을 포함한 추가 8곳의 폐업을 알렸다. 지난 여름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영국의 대형 백화점 중 83퍼센트가 문을 닫았다.

큰 규모로 백화점의 특성에 맞게 지어진 건물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렵다. 일부는 예술 센터, 실내 트램펄린 공원, 교육 시설 등으로 훌륭하게 재탄생했다. 하지만 텅 빈 건물들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약 도심을 쇼핑이 지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심을 무엇으로 만들고자 하는가?

대부분의 경우 백화점이 빠져나간 빈 점포의 운명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셰필드 지역의 경우 존 루이스 백화점이 문을 닫기 직전에 체결된 계약 덕분에 빈 건물을 현재 시의회가 소유하고 있다. 도시의 중요한 중앙광장 한 쪽에 위치한 이 건물은, 차기 도시 재생 계획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셰필드의 두 지역신문은 그 건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논쟁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활동가, 건축가, 또 도시를 사랑하는 지역 주민들로 구성된 느슨한 공동체가 주도하고 있다.

“셰필드 사람들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집주인이 아이디어를 내놓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어갈 수 있다.”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정치 경제학자 톰 헌트가 최근 시의회와 주민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대담해져야 한다. 전 세계에 새로운 도심지역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존 루이스 백화점이 자리했던 건물은 개조되거나 철거될 수 있다. 매각되거나 공공 용도로 유지될 수도 있다. 토론이 격화하면서 셰필드시는 우리의 도심이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 나아갈 수 있는지, 또 이를 누가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모범이 되고 있다.
 
셰필드 도심 지역의 새로운 건설 프로젝트 ©Photograph: Richard Saker/The Observer


2. 역사와 문화가 켜켜이 쌓인 그 곳에는


셰필드의 기차역에서 도심으로 걸어가다 보면 “우리 도시에 새로운 동력이 생겼다”, “셰필드의 심장을 리믹스한다”와 같이 활기찬 미래를 상징하는 열렬한 문구들로 가득 찬 광고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그 다음에는 할람 대학교 확장사업과 ‘도시의 심장’이라는 이름의 도시 재생사업으로 나뉜 건설 프로젝트가 나타난다. 도시 재생사업은 “즐길 거리, 휴식, 경험, 놀이, 일, 모임, 쇼핑, 술을 위한 공간”을 약속하고 있다. 쇼핑은 의도적으로 후순위로 언급된다. 셰필드시는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건축 공사들을 강행하는 것이라고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셰필드시는 늘 이런 방식을 택해왔다. 40년여 전 철강 및 석탄 관련 일자리들이 사라졌고, 이는 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했다. 노동당이 장악한 시의회와 전국 광산 노동조합 셰필드시 지부 덕분에 도시와 주변지역은 ‘사우스 요크셔 인민공화국’으로 명명되었다. 노동절에는 시청에 붉은 깃발이 휘날렸고 평등과 연대가 깊이 뿌리내렸다.

또다른 측면도 있다. 셰필드에는 전쟁 이후 미래지향적인 감성을 담은 건물들이 많이 들어섰고, 1970년대에는 카바레 볼테르, 헤븐17, 휴먼 리그 등과 같은 밴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는 투쟁과 저항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는 국제적이고 화려한 성공을 맛봤다. 특히, 휴먼 리그의 전설적인 노래, 〈Don’t You Want Me〉가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던 1981년 말에서 1982년 초에는 더욱 그러했다.

존 루이스 백화정 건물은 셰필드라는 도시와 그곳의 문화를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1920년대에 상호 회사로 전환한 후, 존 루이스의 직원들은 회사의 이익을 공유하는 일종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들의 일터는 산업 시대가 낳은 거대한 집성체였으며 미래 지향적인 최첨단 건축 미학이 결합되어 있었다. 셰필드의 매장은 백화점이 어떤 곳인지를 정확히 보여줬다. 열정적이고 민주적이며,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풍요로움과 끝없는 선택을 누릴 수 있는 장소였다.

이는 19세기와 20세기에 뿌리를 둔 비전이었다. 거대하고 화려한 매장은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모든 것을 갖춰 두었다. 백화점은 대중이 경험을 공유하고 미래를 꿈꾸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백화점은 공공 문화 공간의 역할도 했다. 〈The Floorwalker〉(1916)에서 찰리 채플린은 풍요롭게 진열된 상품과 20세기의 놀라운 발명품인 에스컬레이터 사이에서 자유를 얻었다. 막스 형제의 〈The Big Store〉(1941)는 “Sing While You Sell”이라는 제목의 뮤지컬 넘버와 함께 샹들리에와 우편물 전달 통로를 배경으로 추격전이 펼쳐진다. 1972년부터 1985년까지 방영된 영국 시트콤 〈Are You Being Served?〉는 “그레이스 브라더스”라는 가상의 백화점 매장을 성적 억압과 계급 차별이 만연한 일종의 제국으로 묘사했다.

존 루이스가 매입하기 이전 셰필드 매장 건물은 콜 브라더스(Cole Brothers)라고 불렸으며, 두 명의 포목상이 설립한 가족 기업이었다. 실크 원단, 숄, 외투 및 카펫 등의 도매 유통상이었으며 모자 제작, 재봉틀 공급 등도 겸했다. 콜 브라더스는 셰필드의 대명사가 되었는데, 두 개의 도심 도로인 파 게이트와 처치 스트리트의 교차점이라는 입지 때문이었다. 지역 주민들은 콜스 코너(Coles Corner)라고 불렀고, 친구나 연인을 만나는 약속 장소가 되었다. 철거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명패가 남아있다. 얼마 전까지는 카페 체인점인 ‘Pret a Manger’가 위치했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추억을 간직한 이 작은 지역을 느끼고 싶다면, 셰필드 출신의 싱어송 라이터인 리처드 홀리가 작곡한 〈Coles Corner〉라는 향수 어린 아름다운 노래가 있다. 동명의 앨범 표지에는 콜 브라더스 입구에서 꽃다발과 함께 연인을 기다리는 홀리의 사진이 실려있다. 노래는 풍부한 스트링으로 도시의 밤의 희미한 불빛, 매혹적인 즐거움,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길을 갈망하는 누군가의 외로움을 표현한다.

차가운 도시의 불빛이 빛나고,
삶을 싣고 차량들이 흐른다.
강 너머 어둠 속으로
나는 음악이 있는 시내로 갈 거야,
목소리가 공기를 채우는 곳으로 갈 거야,
어쩌면 누군가 날 기다리는 이 있을지 몰라
그녀의 머리칼에 미소와 꽃을 꽂은 채

1927년 셀프릿지 프로뱅셜 스토어스 그룹(Selfridges Provincial Stores Group)이 콜 브라더스를 인수했다. 그리고 존 루이스가 1940년 다시 인수했다. 다만 이러한 소유권 변경에도 불구하고 콜 브라더스는 그 이름을 유지했고 1963년 이 매장은 번쩍이는 새 건물로 이전했다. 새로운 매장은 시청을 바라보는 도심 광장 바커스 풀의 한 켠에 자리했고, 밥 딜런, 윈스턴 처칠은 물론 셰필드의 기념비까지 모든 이를 초대했다. 이 건물은 영국, 슬로바키아, 핀란드 출신들이 설립한 요크 로젠버그 마달(Yorke Rosenberg Mardall) 건축 사무소가 설계했다. 건물 외부의 흰색 타일은 벨기에에서 공수했고 입구는 스페인산 화강암으로 장식되어 있다. 자동차가 선망의 대상이었던 시절에 설계되었기 때문에 400대의 주차 공간을 여러 층에 걸쳐 갖췄다. 내부에는 다섯 개 층에 60여개의 매장이 있었다. “화려한 색상이 전체적인 기조입니다.” 《 존 루이스 가제트 》 는 1963년 9월호에 실린 8페이지 분량의 특집 기사에 개장 일에 입구로 몰려든 어마어마한 인파의 사진과 매장 내부 모습을 자세히 묘사했다. 기사는 “레스토랑에서 춤을 추기 위한 공간은 카펫을 제거할 수도 있습니다”라고 소개한다.

이후 40년 동안 지역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콜 브라더스’라는 이름이 건물에 남아있었다. 2002년이 되어서야 백화점 브랜드가 존 루이스로 바뀌었다. 그 동안 도심과 기업은 낯설고 힘겨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셰필드의 옛 콜 브라더스 백화점 모습을 담은 판화 ©Photograph: Mick Flynn/Alamy


3. 교외 쇼핑센터의 시대로


1990년 셰필드 지역의 소비생활은 교외에 들어선 거대한 쇼핑센터로 인해 급격하게 재편되었다. 옛 제철소 부지에 들어선 메도우홀은 자체 기차역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개장 당시에는 180여개의 점포가 들어섰고 12000여개의 무료 주차 공간도 제공했다. 5년 만에 매년 수백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당연히 메도우홀은 셰필드의 도심지역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셰필드의 최근 건축사를 살펴보면 메도우홀이 “도심 지역에서 활기를 빨아들였다”고 적기도 한다. 도심 지역은 사람들을 다시 끌어 모아야 만 했다. 1999년 3월, 이 곳에 국립 대중음악 센터가 개관하면서 쇼핑이 아닌 다른 것이 미래를 세울 수도 있다는 아이디어가 시험대에 올랐다. 4개의 거대한 강철 드럼 모양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1500만 파운드의 복권 기금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셰필드의 음악 유산으로 방문객을 끌어들이고자 하는 시도는 실패했으며, 대중은 이 시도가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국, 대중음악 센터는 2000년 6월에 문을 닫았다.

도심 지역에 유통업을 진흥해서 메도우홀과 경쟁해 보려던 야심찬 계획은 2008년의 금융위기로 인해 물거품이 되었다. 결국 시의회는 쇼핑을 후순위로 두고 주택, 사무실, 식음료 등에 중점을 둬 새로운 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커스 풀 광장도 재생 프로젝트의 일부이다. 그러나 존 루이스 백화점은 여전히 이 계획의 중심에 있었다. 매장 이전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자 도심 지역의 경제적 활력의 상징으로서 매장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부부의 총리 관저 리모델링에 대한 설명 과정에서 “존 루이스 악몽”을 비웃는 방문객의 말이 인용되었다. 이는 영국 사회의 미묘한 등급 매기기와 속물성을 드러낸다. 존 루이스 백화점은 부유층에게는 비웃음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는 접근성이 높으면서도 탄탄한 고급 브랜드이다. 이것이 바로 시의회가 셰필드시에 남겨두고자 했던 가치이다.
날린 세네비라트네, 전 셰필드 시의회 도시 개발 국장 ©Photograph: Richard Saker/The Observer


4. 백화점 심폐소생술


셰필드 시의회는 2010년대까지 도시 재생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협상의 중심에는 날린 세네비라트네가 있었다. 런던에서 태어나 리버풀에서 자란 그는 13년 전 셰필드로 이주해 왔고, 우리가 지난해 11월 처음 만났을 때 셰필드 시의회의 도심 개발 책임자였다. 도시 계획의 기술 관료적인 언어에 정통한 세네비라트네는 도시와 그 미래에 대한 열정적이고 낙관적인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모든 것이 도심으로 흘러 들어간다” 고 말한다. “모든 주요 도로는 도심으로 흘러 들고, 모든 강은 도심으로 흘러와 다시 밖으로 흘러 나가며, 주요 기차역도 이곳에 있다. 우리 시의 두 대학은 도심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훌륭한 것들을 건설해야 한다.”

세네비라트네는 2013년 존 루이스와 거래를 시작했다. 당시 그 회사는 근처에 새 부지를 제안 받았다. 존 루이스 측은 “마크 앤 스펜서에서 너무 멀리 떨어진 그 부지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존 루이스 측이 원하는 부지가 어디인지에 대해 오랫동안 논의했습니다”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들은 우리가 제시한 계획을 모두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 어떻게 하고 싶으시죠?’라고 물어봤죠.”

한 시의회 관계자에 따르면 존 루이스가 새로운 지하 주차장을 위한 터널을 파고 빅토리아식 건물을 철거하는 조건으로 도심 내 이전을 제안했다고 한다. 완전히 미친 짓이며 실현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존 루이스가 백화점을 메도우홀로 이전할 가능성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2017년 존 루이스 측은 백화점이 원래 자리에 그대로 위치할 것이라고 의회에 전했다. 그러나 3년 후 팬데믹 상황은 회사에 위기를 몰고왔다. 2020년 존 루이스 측은 “시 당국이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할 수 없다면 이전하겠다”고 세네비라트네에게 밝혔다.

도심 지역에서 이렇게 큰 규모의 폐쇄가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 의회는 임대가 아니라 매입을 선택했다. 340만 파운드에 존 루이스 셰필드 지점을 매입하고 매출액에 따른 새로운 임대료 시스템에 합의한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입점 비용은 늘어나겠지만, 세네비라트네에 따르면 시의회는 1980년 이래 처음으로 실시되는 리모델링 비용으로 상당한 금액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한다. 갑자기 다 잘 될 것만 같았다. 존 루이스 백화점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게 된 것이다.

세네비라트네는 이 매입 결정이 도심 지역에 확실한 무언가는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에 근거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매 상권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아, 백화점이 미래다’라는 생각으로 넋 놓고 있을 수 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건물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것이 중요했다”며, 전기설비, 승강기, 에스컬레이터 등과 같이 기본적인 것을 정비하는 데에 자금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존 루이스가 없어진다고 해도 시의회는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갖게 되는 것이죠.”

그로부터 8개월 뒤인 2021년 3월, 존 루이스는 뜻밖의 발표를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인해 셰필드 매장은 2021년 1월부터 문을 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회사 측은 직원과의 의무 규정에도 불구하고, 매장을 아예 폐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자에서 떨어질 뻔 했어요.” 세네비라트네는 당시를 회상했다. ‘새로운 거래’를 한 지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갑작스럽고 충격적인 결정이 나온 것이다. 존 루이스 측은 “지원책이 없으면 이전할 수 밖에 없다”고 했고, 그래서 지원을 했으나 결국 존 루이스 백화점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셰필드의 시의회 대표는 테리 폭스라는 이름의 전직 광부이다. 존 루이스 백화점의 폐업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그는 부대표였다. “도시와 관계를 끊은 것은 그들이었지 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말한다. “저는 완전히 속이 뒤집혔고 분노했습니다. 데번햄즈에서의 폐쇄를 생각하면 한 대 제대로 맞은 거죠. 무슨 말인지 아시죠?”

존 루이스에 시의회 측의 입장을 제시했지만, 홍보 담당자는 자세한 답변을 피했다. 회사는 “우리가 이 도시에 남을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시의회와 수년간 논의 해 왔으나, 더 이상의 논의는 적절하지 않을 것” 이라고 밝혔다.

존 루이스는 준비된 성명에서 “80년 동안 셰필드를 위해 봉사한 후 떠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결정이었다” 고 밝혔다. 그러면서 “팬데믹 이전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장에 대한 투자를 통해 도시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매장에 대한 새로운 임대 계약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세 번의 전국적인 봉쇄 조치와 온라인 쇼핑으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는 등 팬데믹이 매장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컸다” 고 말했다.

폐업 소식이 알려진 후, 존 루이스 측이 결정을 번복해야 한다는 온라인 청원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2만 명의 서명이 모였다. 사람들은 백화점 건물의 창문 위에 메시지와 사진을 붙였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여기서 장례식에 쓸 양초를 샀습니다.” 한 쪽지에 쓰여진 내용이다. “너무 경황이 없었는데 한 친절한 직원이 저를 위해 의자를 가져와 앉혀주고는 양초를 찾으러 가 줬어요. 그녀는 너무나 큰 도움을 주었고 인내심을 보여줬으며 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줬습니다. 맞아요. 온라인으로 주문을 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서비스를 받을 수는 없을 거에요. 그래서 존 루이스에서 다시 쇼핑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라나 바커는 란제리 매장에서 20년동안 일했고, 그 다음에는 아동복 매장에서 7년동안 근무했다. 지난 11월, 그녀는 여유 자금 일부를 투자해서 도심 바로 외각에 ‘The Woman In Me’라는 간판의 란제리 매장을 열었다. 그녀가 고객을 응대하는 중간에 틈틈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한 고객은 유방암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바커는 그 고객을 차분하고 다정하게 대했다. 존 루이스 백화점의 매장에서 보낸 세월과 사람들이 호평했던 고객 서비스가 보였다. “그곳에서 일할 때가 좋았어요”라고 바커는 말했다.

폐업이 발표된 다음, 직원 상담과 이사를 위한 준비가 이어졌다. 바커는 “어떤 사람들은 건물 자체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했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라고 말했다. “좌절하고 분노했으며 속상했고 실망하면서 그 모든 것을 겪어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뭘 해야 할지에 대해 걱정이 되었어요. 저는 확실 한 것을 좋아해요. 그래서 갑자기 8월 말부터 내 인생이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게 되었을 때 공황에 빠질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겨우 43살이에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존 루이스 백화점의 옛 고객들이 건물 문에 붙여 둔 메시지들 ©Photograph: Gary Calton/The Observer


5. 전혀 다른 미래를 계획해 보자


셰필드 시의회의 신임 최고 경영자인 케이트 조셉스는 이 일련의 과정을 다음 단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었다. 적어도 올해 1월까지는 말이다. 셰필드에서 23마일 떨어져있는 돈캐스터에서 자란 그녀는 고위 공직자로서의 경력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에는 백악관에서 일했고 2020년 7월부터 12월까지는 영국 정부의 코로나19 TF를 이끌며 관련 규정 및 방역 제제의 초안을 작성했다. 또, 팬데믹 관련 정책 분야에서도 관리자로 일했다.

지난 2022년 1월, 조셉스는 이른바 ‘파티게이트’에 휘말렸다. 방역수칙을 어기고 국무조정실 건물에서 송별회를 한 의혹을 받고 있다. 해당 모임에 관해서는 경찰 광역 수사대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조셉스도 시의회의 조사를 받고 있다. 상세 내용은 분명치 않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녀는 유급휴가 중이다.

이 의혹이 터지기 약 한 달 전. 옛 존 루이스 백화점 건물 맞은 편의 고급카페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일터와 존 루이스 건물 관련 사항들에 대해 강한 열의를 보였다. “시의회가 저를 임명한 것은 확실히 과감한 조치였죠.” 그녀는 말했다. “저는 이 지역 사람은 아니지만 힘을 많이 실어주셨어요. 기쁜 일이죠.”

셰필드 지점의 폐업 발표는 그녀가 셰필드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루어졌다. 이번에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도시 주민에게 그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저는 셰필드시 주민들과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느낍니다. 바로 인간적인 실망이죠.” 그녀는 설명했다. “주변 지역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콜 브라더스를 종종 갔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폐업 발표를 다르게 생각할 방법이 없는지를 궁리했던 것 같아요.”

그녀는 접수된 아이디어들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이야기 했다. “클라이밍 시설부터 실내 공간을 독립된 상점 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 혹은 아예 허물고 멋진 공공 광장을 만들자는 제안도 있었어요.”
케이트 조셉스, 셰필드 시의회 최고 경영자 ©Photograph: Richard Saker/The Observer

 

시의회가 시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점이 바로 이야기의 독특한 부분이다. 백화점이 폐업하고 나면, 대부분의 지자체는 민간 자본이 빈 건물을 사들여 개발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몇 달, 심지어 몇 년동안 비어있는 경우도 많다. 셰필드에서는 바커스 풀에서 도보 5분거리에 있는 옛 디벤험스의 미래가 바로 이런 경우다. 그러나 존 루이스 건물에 대해서는 시의회가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해 나아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활발하고 열정적인 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셰필드에는 《스타》와 《텔레그래프》라는 주요 지역 언론사가 있다. 이 두 매체는 끊임없이 관련 이슈를 다루어 왔다. 최근 《텔레그래프》지는 축구 센터와 관련된 제안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축구의 첫 번째 규칙이 바로 셰필드에서 생겨났다는 사실이 그 제안의 근거이다. 기사 내용을 보면 축구 센터는 “유명인사, 옥상의 커뮤니티 경기장, 바커스 풀로 이어지는 1층의 바와 레스토랑이 함께하는 시범 축구 체험”을 개최 할 것이라고 한다. 이 센터는 아직까지는 이름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포함된 컨소시움이 계획하고, 셰필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어바나 타운 플래닝(Urbana Town Planning)이라는 회사가 앞장서고 있다. 초기 단계의 계획이나 관련자들의 발언을 보면 센터는 ‘주거용 건물’이 될 것이다.

옛 존 루이스 백화점 건물의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두 사람이 있다. 셰필드 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 정치경제연구소 부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톰 헌트와, 역시 셰필드 대학을 졸업하고 지역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는 아담 박이다.  2021년 4월, 그들은 《텔레그래프》지로부터 ‘건물의 재사용 및 재해석에 관한 공개 토론회’ 개최를 시의회에 촉구하는 글을 요청 받았다. 대중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제안을 내놓았다. 존 루이스 건물을 “셰필드 지역의 코벤트 가든”으로 재창조 하자는 것이다. 아담 박은 카페와 바가 1층에 위치하고, 그 위층으로 문화와 소비를 위한 공간이, 그리고 수직으로 확장해 올라간 공간은 주거용 아파트가 들어서도록 설계했다.

그들은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과 파리 한복판의 재생 백화점인 ‘라 사마리텐느’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아인트호벤 지역은 낡은 쇼핑센터를 음악 공연장을 포함한 “녹색 문화 지구”와 직접 올라가 볼 수 있는 “유리 산”으로 바꿀 계획을 하고 있다. 파리의 ‘라 사마리텐느’ 백화점은 물결 모양의 유리로 감싸여 있으며 지금은 상점과 사무실, 보육시설과 함께 96개 가구가 들어서있다. “아직 아래층에는 백화점이 있지만, 그 위에 3개 층을 새로 증축했어요.” 헌트가 말했다. 비슷한 방식이 셰필드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거대한 타워가 아니라 3층 정도 규모면 된다. 가족을 위한 주거공간이나 고령층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재미있는 일 들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은 축구 센터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것은 1990년대의 산물인 것 같아요.” 아담 박이 말했다. 헌트는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그것이 한가지 목적만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라는 점이 문제 같습니다. 만약 실패한다면 걷잡을 수 없을 거에요 대중음악 박물관처럼, 아니 그보다 훨씬 큰 규모인데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꼴이에요.”

두 사람 모두 주거 단지 개발에 대해서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자면 촌스러운 학생용 원룸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이런 방식의 개발이 도심 지역에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도 반대했다. “더 이상 건물을 허물어서는 안됩니다.” 아담 박이 말했다. “특히 이 건물처럼 시민들에게 존재감이 크고 역사를 담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만,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건축업계부터 철거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말고 다른 생각을 해야겠죠. 그 건물은 대단한 에너지를 품고 있어요. 물론, 석면도 품고 있겠죠. 하지만 건물을 콘크리트 골조만 남기고 굉장히 빠르게 다시 지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셰필드의 옛 존 루이스 백화점 부지 근처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축 공사 현장 ©Photograph: Richard Saker/The Observer


6. 팬데믹 이후, 도시의 생존 전략


지난 크리스마스 직전, 건물 외부에 있던 존 루이스 로고가 철거되었다. 주차장 입구에는 다시 ‘콜 브라더스’의 이름이 걸렸고, 밤에는 조명의 일부가 켜졌다. “아직 사람들이 남아있어요.” 세네비라트네는 말한다. “하지만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헌트와 아담 박은 셰필드의 《텔레그래프》지와 함께 시청에서 이 건물의 미래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했다. 분위기는 조용하고 소극적이었다. 새로 등장한 코로나19 변종 바이러스, 오미크론 때문인 것 같았다. 또, 건물에 대한 최종 결정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도 한 몫 했다.

독자 두 명이 토론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한 사람은 존 루이스 백화점 같은 시설을 원했다. 즉, 방문해서 물건을 둘러보고 선물이나 향수, 화장품 따위를 고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독자는 여성, 유색인종, LGBT 커뮤니티의 활동을 중심으로 한 사회문제 박물관에 찬성했고, 스포츠 박물관과 관련된 체험적인 활동에 지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 밖에 도서관, 보육시설, 재창조된 쇼핑 아케이드 등도 제안되었다. 헌트는 발언을 통해 민주주의, 참여, 생활환경의 미래 등과 관련된 큰 질문들을 던지면서 그의 제안을 구체화 했다. “전 세계에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음 날 시의회는 존 루이스가 현재의 임대 계약과 그에 따른 의무 사항들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500만 파운드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그 돈은 향후 그 부지의 재개발을 위해 투입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3개의 컨설팅 회사가 시의회의 선택지들을 구체화 하기 위해 용역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건물을 재건축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특히 대량의 석면 문제를 지적했다. 도시 계획 기관인 포스 스트리트(Fourth Street)는 보고서를 통해, 건물을 철거하고 주변 공간을 대중에게 개방하면서 도서관, 기록보관소, 스토리텔링 센터, 미술관, 공연장이나 스포츠 시설들이 들어설 수 있는 작은 공간을 새로 짓도록 권고했다. 개인 공간이나 상업시설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간이다.

비어있는 건물은 곧 10만 파운드 가격의 거대한 포장재로 덮이게 될 예정이다. 시의회는 도심의 미래에 대한 5주에 걸친 협의를 마무리 하고 있다. 존 루이스 셰필드 지점 건물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그 중 두 가지는 일단 철거한 다음에 거대한 공공 공간을 새로 조성하거나 포스 스트리트가 제시한 계획을 반영하는 것이다. 세 번째 선택지는 기존 건물을 재사용하는 것이다.

2022년 중에는 확실한 방향이 나오겠지만, 누군가는 참여하지 않을 예정이다. 바로 13년 동안 우여곡절을 겪어왔고, 이제는 도심 개발 책임자 자리에서 내려오고자 하는 날린 세네비라트네이다. “제가 어떤 조직에 가장 오랫동안 몸 담았던 경험이었어요.” 그는 말한다. “다른 사람이 다음 챕터를 맡아야 합니다.”

셰필드 도시 주변을 함께 걸으며 세네비라트네는 공공 공간을 사들이는 민간 자본에 저항하는 것과 사람들의 추억이 어린 공간에 대한 중요성을 이야기 했다. 거리의 배치는 바꾸지 말아야 하고, 건물의 역사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이다. 존 루이스 건물의 미래는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과 사람들의 오랜 관계를 반영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직원과 고객은 서로 이름을 부르는 사이였어요. 사람들은 그 곳에서 첫 교복을 장만하고 첫 신발을 구입했죠.”

“관건은 다음에 그 곳이 어떻게 되든, 그런 애정이 담겨야 한다는 겁니다.” 세네비라트네가 강조했다. “직접 방문하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인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나? 이런 것들입니다. 존 루이스에서는 그냥 돌아다닐 수 있었고, 굳이 뭘 살 필요도 없었어요. 그저 레스토랑에서 사람들을 만나거나 커피나 한 잔 마시러 가곤 했죠. 누군가와 만나는 공간, 이 모든 것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우리가 종종 간과해 버리는 것이 있다. 흔히 단순한 소비 지상주의로 치부되어 버리는 것이 실은 사람들의 상호작용이나 자기 표현,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는 날실과 씨실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세네비라트는 바로 그 점을 강조했다.

셰필드도 다른 도시들처럼 대형 매장들이 지배력을 상실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장소들을 찾고자 한다. 시의회는 콜 브라더스의 옛 부지 모퉁이에 있는 클린턴 카드를 매입해 ‘이벤트 센트럴’이라는 시설로 바꾸고 있다. 거리에서 야외 모임이 가능한 곳이 될 것이다. 2021년에는 150만명 이상의 방문객을 유치한 것으로 추산되는 〈Summer in the Outdoor City〉라는 이벤트 시리즈도 시작했다. 다른 어떤 곳보다 셰필드 중심가에는 그냥 앉아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장소가 넘쳐난다. 이는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이다.

리처드 홀리가 노래한 음악, 조명, 목소리는 옛날 방식의 상업처럼 셰필드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세네비라트네는 말한다. “사람들은 늘 함께 하기를 원할 겁니다. 이런 곳에서 어울리고, 만나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인간으로서 우리 모습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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