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 핸디캡
9화

북저널리즘 인사이드; 길은 걸을수록 넓어진다

지난해 말 시각 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부여하는 의료법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2008년 첫 판정 이후 다섯 번째 합헌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시각 장애인 안마사 제도는 시각 장애인 생존권 보장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안도하는 한편 착잡했다. 안마라는 일에 매력을 느껴 업으로 택한 시각 장애인이 많지 않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해당 의료법이 비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여론은 늘상 제기되지만 그렇다고 장애인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지원하는 법이라 속 편히 말하기도 어렵다. ‘안마는 시각 장애인만 할 수 있다’는 명제는 ‘시각 장애인은 안마사로 일하면 된다’는 명제로 곧잘 치환되고 끝난다. 우리는 소수자에게 제한된 권리를 쥐여 준 뒤, 그들이 그 이상의 것을 바랄 경우 쉽게 놀란다.

일자리를 찾는 대다수의 장애인은 특정 전형으로 공공기관이나 기업에 취직해 단순·반복 업무를 맡는다. 최근엔 장애인을 고용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들이 이례적으로 늘고 있다. 취지와 이미지만큼이나 성과도 좋다. 그러나 장애인이 주도권을 잡고 일하거나 기업의 목표와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들의 이야기는 주로 비장애인 CEO가 대변한다. 장애 유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안심은 손쉬운 호의를 선호하는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이다.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도 사치가 아님을 말하는 일곱 명의 장애인 아티스트가 모였다. 현재의 일을 선택한 계기와 앞으로 가고 싶은 길을 작가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 사회복지사가 될 뻔한 김종욱은 휠체어 모델이라는 전례 없는 분야를 열고 있다. 모델 이찬호는 피부의 절반 이상이 상처이지만 몸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일을 택했다. 비보이 김완혁은 7년간 홍보, 디자인, 영상 제작 등 다양한 업무를 겸하다 프리랜서 비보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영화를 이론으로 배운 적 없는 영화감독 김종민은 충무로 영화판의 첫 장애인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서 제품을 검수하던 서영채는 다시 모델의 길로 돌아왔다. 웹툰 작가 고연수는 사고도, 장애도, 우연히 시작한 만화의 인기에도 여전히 적응 중이다. 어릴 적부터 키워 온 발레리나의 꿈을 이룬 고아라는 이젠 예술인 너머 경영인의 삶을 바라본다.

임플로이(employee)가 아닌 워커(worker)를 고민하는 시대다. 주어진 일이 아닌, 나에게 잘 맞는 일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누군가의 고민은 나의 적성과 능력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누군가의 고민은 그 이상의 의지와 결심을 담보한다. 일곱 명의 이야기가 모든 장애인을 대표하진 않는다. 그들 안에서도 장애를 얻은 계기와 시점에 따라 각자 장애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랐다. 모든 장애인이 사회에 나와 일해야 하는 것도,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국내 장애인 인구 260만 명의 수많은 표본 중 하나일 뿐이다. 다만 가보지 않은 길은 누군가 걸을 때 넓어진다. 내가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는 여정은 비장애인만의 특권이 아니다. 일하고 싶은 누구나 품고 싶은 꿈이다.

이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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