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로 정했다! 제빵왕 피카츄

3월 16일 - FORECAST

16년 만에 돌아온 포켓몬빵이 빵터졌다. 띠부씰의 혁신은 무엇인가?

©일러스트: 권순문/북저널리즘
16년 만에 재출시된 포켓몬빵이 이상할 정도로 열풍이다. 2주 동안 350만 개가 팔렸다. SPC삼립의 주가를 끌어올렸다는 분석이 줄을 잇는다. 빵은 별 것 없다. 평범한 양산빵이다. 끼워주는 부록은 별 것 있다. 전세계가 사랑하는 포켓몬스터의 캐릭터가 인쇄된 띠부띠부씰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작은 종잇조각이다. 실질적인 가치는 없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가상화폐처럼 가치가 치솟고있다. 어떻게 된 일일까?
WHY_ 지금 포켓몬빵 열풍을 알아야 하는 이유

MZ세대의 소비 욕구를 읽기 위해. 콜라보와 한정판 과잉의 이유를 알기 위해. SPC그룹의 실체를 알기 위해. 빵에도 아이스크림에도 콘텐츠가 필요한 시대라는 점을 깨닫기 위해.
NUMBER_ 898마리

포켓몬스터는 2021년 현재 전 세계에서 미디어 믹스 총매출 1000억 달러(120조 원)를 돌파한 유일한 콘텐츠이다. 1996년 게임보이용 게임으로 첫선을 보인 이래 현재까지 총 898마리가 창작되었다. 세계관이 단순하고 평면적으로 보이며, 그래픽도 마블 스튜디오 등과 비교하면 웃음이 나오는 수준이겠지만 매출 기준으로 보자면 전 세계를 사로잡은 콘텐츠 1위는 누가 뭐래도 포켓몬스터이다. 898마리에 비밀이 있다. 소비해도 소비해도 끝이 안 난다. 일단 사랑에 빠지면 계속해서 돈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장르도 콘솔용 게임부터 카드 게임, 애니메이션 등 너무나 다양하다. 1999년 SBS를 통해 TV용 애니메이션으로도 국내 시청자들을 만났으며, 당시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이었던 시청자들은 이제 구매력을 가진 20대, 30대가 되었다. 99년 당시, ‘국찐이빵’이라는 캐릭터 빵으로 도산 위기에서 벗어난 바 있는 삼립식품은 포켓몬스터의 가능성을 빠르게 인지하고 포켓몬 빵을 출시했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DEFINITION_ 鄕愁  

MZ세대는 ‘오래된 곳’을 찾아다닌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이들에게 일종의 ‘비일상’의 감각을 제공하는 곳들이다. 을지로 주변의 노포들은 ‘힙지로’가 되었고, 동묘 앞 중고 시장에 사람들이 몰린다. 그런데 이들이 소비하는 또 다른 레트로가 있다. 바로 그들의 ‘유년’이다. 2020년, 우리는 30년 만에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소환했다. 음악 스트리밍 앱에는 90년대생, 2000년대생이 어린 시절 들었던 가요를 모아 둔 플레이리스트가 넘친다. 우리의 두뇌는 과거의 경험들을 실제보다 더 아름답게 기억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적당히 필터를 끼운 기억은 추억이 되고, 이 추억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덮어버린다. 이것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형성된 적응 기제이다. 그래서 우리는 유년에 우리가 누렸던 것을 다시 소비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게 된다. 어른이 되기 이전, 행복했던 그 시절을 맛보고자 하는 심리이다. 게다가 ‘포켓몬’처럼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는 ‘친구’라면 더 할 나위 없을 것이다.
KEYMAN_ 친구들

광고업계와 마케터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진리가 있다. 바로 ‘인간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원한다’라는 것이다. 띠부띠부씰은 동 세대의 공감각을 자극한다. 포켓몬이라는, 엄마와 아빠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와 내 또래의 ‘친구들’끼리만 제대로 알고 있는 존재들이다. 게다가 어린 시절, 몹시도 갖고 싶어 했다. 그것을 이제 내가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500원은 큰돈이 아니다. 편의점 몇 군데 발품을 팔 정도의 가치는 있다. 잘 팔린다는 소문이 돌더니 이제는 품절 대란이란다. 내 친구들 모두가 ‘지금도’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매력은 더욱 치솟는다. 당근마켓에 4만 원짜리 매물이 올라오는 현상은 이렇게 설명된다.
RECIPE_ 멘탈데믹 

그뿐만이 아니다. 이 녀석들이 많이 귀엽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정신적으로 지쳐있는 시기이다. 경제도 팍팍하다. 위안형 소비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19로 인해 대중들이 ‘기분전환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실제로 최근 심리상담 앱 등이 주목받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500원에 나의 평화로웠던 유년 시절과 귀여운 포켓몬 한 마리가 손에 들어온다. 이른바 ‘멘탈데믹’에서 잠시 도망치는 비용으로는 나쁘지 않다. 비대면에서 오는 외로움을, 많은 이들이 함께 공감해 줄 ‘추억거리’를 소비하면서 희석하는 효과도 있다.
CONFLICT_ 도파민

그런데 요즘 포켓몬빵의 인기를 가만히 뜯어보면 이건 애정이라기보단 집착에 가까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우연히 제품을 발견하면 기쁜 마음으로 구매해 띠부띠부씰을 확인하며 추억을 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양한 종류의 캐릭터 스티커를 수집하거나 나아가 전체 캐릭터를 다 모으고자 하는 본격적인 컬렉터도 있는 것이다. 제조사의 발표에 따르면 포켓몬스터 캐릭터 띠부씰은 총 159종이다. 어떤 포켓몬 씰이 들어있는지 확인하느라 진열된 빵을 훼손하는 사례가 제보되는가 하면, 빵을 상자째로 사서 띠부띠부씰만 챙기고 버렸다는 후기, 원하는 씰을 찾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왔지만 결국 실패했다는 후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이쯤 되면 소비의 영역을 넘어섰다. 이미 이 현상은 게임이다. 우리의 뇌는 목표 달성 직전에 안타깝게 실패했을 때 도파민 분비가 급증한다. 게임 중독이 발생하는 원리이다. 포켓몬 띠부띠부씰 획득 작전도 마찬가지다. 분명 가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원하는 캐릭터는 도저히 가질 수 없다.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비난이 따라붙는 랜덤박스, 즉 확률형 아이템에 베팅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구매행위이다. 발품을 팔고 돈을 들여 마침내 그것을 획득하는 순간, 우리의 뇌는 비로소 뚜렷한 보상을 인지하게 된다. 이 제품은 지난 2월 24일 발매한 이래 약 2주 만에 350만 개가 팔렸다. 이 놀라운 판매량은, 한정판의 매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제조사의 전략이 한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일반적인 편의점은 매일 2개 정도밖에 물량 확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더 찍어내지 못해서 팔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찍어내서 잘 팔리는 결과이다.
MONEY_ 9만 3600원

이에 힘입어 주식도 급등했다. SPC 삼립의 주가는 3거래일 연속 상승해 3월 15일 어제 종가는 9만 3600원이었다. 최근 3개월간 9만 원대에 진입하지 못했던 상황에서 지난 3월 3일 반등을 시작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호재는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팬데믹으로 활로를 찾지 못했던 대량 식자재 공급 사업 부문이나 코로나19가 터지기 직전 투자를 감행했던 가평휴게소 등의 실적 반등이 기대된다. 1500원짜리 빵이지만, 매출은 물론 기업 마케팅에도 적잖은 역할을 했다.
RISK_ 오너리스크

그러나 최근 SPC삼립의 행보를 보면 노회한 식품회사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SPC 그룹은 승계를 위해 통행세 거래를 만들었다는 혐의를 받았고,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647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또, 허영인 회장의 차남 허희수 부사장이 대만에서 대마를 밀수해 피운 혐의로 2018년 8월 검찰에 구속되는 일도 있었다. 최근에는 던킨도너츠 생산공장의 위생 상태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른바 ’가치소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는 요즘의 소비트렌드를 생각하면 너무나 큰 위험 요소이다. 게다가 식품의 경우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소 중의 하나가 기업 이미지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남양유업이 어떤 길을 걸었는지, 최근 한성식품이 겪고 있는 썩은 김치 사태를 생각하면 밑바닥부터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REFERENCE_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 

게다가 포켓몬 띠부띠부씰은 로열티를 주고 빌려오는 콘텐츠에 불과하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정확한 로열티 금액은 대외비이지만, 업계의 관행에 따르면 약 10퍼센트 안팎으로 추정된다. 물론 아주 오랫동안 매력적인 상품이었으며 당분간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단기간의 매출 상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경쟁력이 되려면 콘텐츠가 자기 것이어야 한다. 자신의 스토리가 필요한 것이다. 관련해서 주목해 볼 만한 기업이 “빙그레”이다. 2020년 2월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 계정에 등장한 이후, 독자적인 세계관을 펼쳐오고 있는 “빙그레우스 더 마시스 짐”이라는 캐릭터가 빙그레의 스토리이다. 빙그레는 2년 넘게 이 마케팅을 지속하고 있다. 내부 평가가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다. 처음엔 가벼운 농담 같았던 캐릭터들의 나열이, 보면 볼수록 과몰입을 유도한다. 물론, 이 마케팅의 가격 대비 성과가 어느 정도인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빙그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마켓컬리도 마찬가지이다. 새벽 배송을 주요한 성공 비결로 꼽지만, 각 상품 상세 페이지에 펼쳐지는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통해 ‘특별한 소비’ 경험을 만들어낸 전략도 주요했다. 토마토를 구매하는 일상을, “낙동강 하류에 위치한 부산 대저동 지역에서만 생산되는 특별한 토마토”를 “만끽”하는 경험으로 바꾸어 주는 것이 바로 스토리의 힘이다. 마켓컬리에는 20여 명의 전문 에디터가 일하고 있다. 빵을 팔더라도 스토리가 필요한 시점이라면 이제 SPC에도 자신만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INSIGHT_ 혁신적으로

포켓몬빵 띠부띠부씰 사태는 혁신이 아닌 것을 혁신적으로 팔아 치우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보여주었다. 곰표 콜라보를 해서 기간 한정 발매를 해야 한다. 와디즈 같은 사이트에서 펀딩을 받아 런칭해야 한다. 뻔한 제품에는 특별한 스토리를 입혀야 한다. 뻔한 빵을 뻔하게 잘 만든다고 혁신적인 판매량이 나올 수 없다. 이미 기본적인 소비재는 넘쳐나는 세상이다. 품질도 기준 미달은 찾아보기 힘들다. 재화의 부족함과 거리가 먼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질릴 만큼 많은 콜라보와 한정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제 콜라보와 한정판도 시시하다. 뻔한 것을 팔고자 할 때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을 이야기 할 것인가.
FORESIGHT_ 섹터나인

SPC그룹은 그 답을 스토리보다는 “섹터나인”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지난 2021년 1월 출범한 토탈 마케팅 솔루션 계열사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해피포인트를 활용한 NFT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메타버스 공간에서 베스킨라빈스 매장을 오픈하는 등 적극적으로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마케팅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롯데슈퍼와의 제휴를 통해 즉시 배송 서비스를 론칭하거나 무인매장을 선보이는 등 유통 면에서도 혁신을 시도한다. 한발 앞서나간 자에게 기회가 먼저 오는 것은 인지상정! 그러나 함께 떠난 모험을 통해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함께 쌓아 올린 ‘소비자 경험’이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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