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 부실이 되지 않으려면

3월 24일 - FORECAST

윤석열 당선인은 대출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한다. 벌써 시중 은행들은 곳간 문을 열었다. 잔치의 시간인가, 폭탄의 시간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윤석열 정부는 대출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가계대출총량제도 폐지될 전망이다. 그러나 문제는 가계부채의 규모다. 역대 정부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고, 위험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새 정부는 대출 시장의 정상화와 가계부채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열쇠는 무엇인가?
WHY_ 지금 새 정부의 대출 정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영끌해서 투자했지만, 자산시장은 가라앉고 이자는 올라서. 이 와중에 대출이 풀리지만 금리는 더 오를 전망이라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성사시킬 기회가 또다시 올지 불확실해서. 윤석열 정부의 경제 성적표를 결정할 밑그림이 그려지고 있어서.
DEFINITION_ 가계대출총량제  

요즘 돈 빌리기 어렵단 얘기가 나온다. 겨우 빌린다 해도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다. 전 세계적인 금리 인상 기조와 함께 2021년 4월부터 시작된 ‘가계대출총량제’ 때문이란 분석이다. 코로나19 이후 폭등한 가계부채를 잡고,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부동산 가격도 잡겠다는 목적으로 시행된 규제 정책이다. 쉽게 말하자면, 은행이 개인에게 빌려줄 수 있는 돈을 정부가 정해준 것이다.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은행권 가계대출은 석 달 연속 감소했다. 그러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들자 대출 시장이 수요자에서 공급자 위주로 전환되었다. 기준금리와 상관없이 우대 조건 등을 폐지하면서 체감 대출 이자는 치솟았다. 박리다매로 대출을 팔아줬으면 좋겠는데 후리소매로 영업방식이 돌아서다 보니 은행과 제2 금융권 간의 금리 역전 현상까지 초래했다. 시장 왜곡 현상이 발생하면 그 폐해는 금융소비자가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RECIPE_ 정권교체 

이러다 보니 차라리 신용점수를 인위적으로 낮춰서 정책금융을 이용하고자 하는 소상공인들까지 나타났다. 은행에서 대출은 못 받으니 정부가 제공하는 저신용 소상공인 대상 저금리 대출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고 카드론을 받는 등의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기류가 바뀌고 있다. 이유는 부동산에 있다. 지난해 말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개인이 은행을 찾아 돈을 빌릴 일 자체가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침공, 기준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영끌’해서 투자해야 할 시기도 아니다. 순식간에 은행에 빌려줄 돈이 남아돌고 있다. 전문직, 대기업 종사자 등 고신용자를 상대로 대출을 판매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 전세 대출 등의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가계대출총량제가 무의미해진 것이다. 게다가 새로 들어설 정부는 아예 총량 규제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추가로 주택담보대출 관련 규제도 완화할 방침이다. 현재 규제지역의 경우 집값의 40%까지만 대출이 가능하다. (LTV) 또, 대출의 총 원금과 이자를 소득의 40% 이내로 묶어두고 있다. (DSR) 윤 당선인의 공약이 그대로 이행된다면 생애 첫 주택을 구입할 경우 집값의 80%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DSR 관련해서는 공식적인 입장이 아직 나온 바 없지만, 대출 규제를 풀겠다는 기조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화가 불가피하다.
MONEY_ 1862조원 

새 정부가 들어서면 집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종부세나 양도세 등 부동산 관련 세제 정책도 풀리면서 주택거래량도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문제는 가계부채의 규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2조 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가계신용은 가계의 포괄적 가계부채를 말한다. 한 해 증가 규모는 134조 1000억 원으로 역대 최대 기록인 2016년 139조 4000억 원에 이어 두 번째를 기록했다. 집집마다 무섭게 빚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물론, 빚이 늘어났어도 감당 가능하다면 상관없다.
RISK_ 부동산  

그런데 금리가 오르고 있다. 만약 기준금리가 두 차례만 더 올라서 1.75%가 된다고 하면 가계 대출 이자는 현재 10조 8000억 원에서 13조 9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자금대출 이자의 경우에도 5조 3000억 원에서 6조 5000억 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자를 못 갚으면 가계 경제의 몰락이 시작된다. 끝까지 몰리면 개인들은 집을 팔아야 한다. 집이 없으면 전세에서 월세로, 월세에서 더 낮은 월세로 밀려나게 된다. 게다가 길어지는 오미크론 국면으로 자영업자 대출만기와 상환 유예 조치가 계속 연장되면서 잠재 부실도 쌓이고 있다. 부실이 터지면 침체가 된다. 아슬아슬하다.
KEYMAN_ 이창용 

윤석열 정부가 직면하게 된 아슬아슬한 ‘빚폭탄’의 뇌관을 자르고 관리해 나아가야 할 인물 중 한 명이 바로 23일 지명된 이창용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이다. 지명 과정을 두고 청와대와 인수위간 말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인수위측에서도 긍정적으로 검토했던 인물 중 하나로 알려져있다. 이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시장주의자’로 수렴된다. 씨티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이 후보자의 최근 발언을 고려할 때 임명이 현실화한다면 “올해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그렇다면 영끌해서 집을 산 개인들은 이자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재기하고자 하는 자영업자들도 대출 이자 부담을 무겁게 떠안아야 할 가능성이 크다.
REFERENCE_ 폭탄돌리기 

윤석열 정부가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받아들게 된 이유를 따라가 보면,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있다. 2014년 7월 취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라며 부동산 대출 규제를 대거 해제하거나 완화했다. 하지만 지도에 없는 길을 가면 열에 아홉은 길을 잃는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호황은 걷잡을 수 없는 가계부채 증가와  ‘미친 전셋값’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경제성장률도 초라했다. 2%대 저성장 국면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초대 경제수장이었던 김동연 전 부총리와 그다음을 이은 홍남기 부총리는 가계대출을 관리하는 시늉만 했다. 그리고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며 실책이 거듭되던 와중에 코로나19가 터졌다. 부동산 부양정책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정부가 있었고, 대출을 조였다가 민심이 돌아설까 두려워했던 정부가 있었던 것이다. 5년짜리 정부 입장에서는 자신의 임기 내에만 폭탄이 터지지 않으면 된다. Not In My Term of Office, NIMTO (님토) 현상이다.
CONFLICT_ 엔데믹? N데믹?! 

윤석열 정부는 새로운 금융 수장과 함께 대출 시장의 정상화와 가계부채 관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 코로나19가 끝나고 시장 질서도 일상을 찾게 되면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회복의 정책을 실행해 나아가면 될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있다. 곰곰이 지난 몇 년을 돌아보면 전염병 재난은 이제 거의 매 정권마다 찾아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는 다행히도 짧게 끝났다. 그러나 메르스의 사촌 격인 코로나19는 2년이 훨씬 넘게 전 세계를 뒤덮고 있다. 윤석열 정권이 이러한 재난을 마주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게 아니라도 대만 근처 해협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다. 이제 길고 긴 평화의 시대는 끝났다. 위기가 곧 일상인 시대이다. 그렇다면 언제까지나 비상시국을 운영하기 위한 경제 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다. 위험 요소는 줄이고 언제든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
INSIGHT_ 토스  

윤석열 당선인의 대표적인 금융 공약 중 하나가 바로 ‘예대금리차 공시’이다. 쉽게 말하면 은행들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은행이 예대마진을 과도하게 가져가는 것을 막아 대출로 인한 가계 부담을 줄여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인터넷은행들이다. 카카오뱅크나 케이뱅크, 토스 등 인터넷은행들은 시장에 신규 진입한 사업자들이다. 고객 유치를 위해 기존 은행들이 놓치고 있던 시장, 즉 중저신용자 대상 대출 비중이 높다. 애당초 인터넷은행의 설립을 허가해 준 명분 중 하나가 바로 신용점수가 낮은 사람들이 사채시장으로 빠지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었으니 당연한 현상이다. 중저신용자 대상의 대출금리는 상대적으로 높을 수 밖에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인터넷은행의 예대금리차가 높아 보이게 된다. 이로 인해 인터넷은행이 정치권의 도마 위에 오르지는 않을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찾고 있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바로 인터넷은행들이다.
FORESIGHT_ 손에 손잡고 

가계부채가 향후 5년간 줄어들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부채가 부실이 되어 뻥 하고 터지지 않으려면 완충장치가 필요하다. 시중 은행이 그런 리스크를 감당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정부가 나서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결국 금융시장에 새롭게 진입한 인터넷은행들이 완충장치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서민들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밀려나지 않도록 안전망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기 정부는 이들과 공고한 파트너쉽을 유지해야만 한다. 기존의 금융위나 금감원을 통한 제재 방식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자산·이익의 성장세를 예상은 해보지만 중요한 경영 목표는 아니다. 고객이 얼마나 자주 앱을 사용하는가가 첫 번째 목표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의 이 설명은 인터넷은행들이 ‘은행’이 아니라 ‘플랫폼 기업’임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이들과 손잡고 제대로 된 위기관리를 해 나아가려면 윤석열 정부에 젊은 전략이 필요하다.
OPINION_ 이창용 (3월 24일 오전 10시10분 업데이트)

현재 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청와대와 인수위 간의 불협화음에 이창용 후보자가 끼어버렸다. 복잡한 정치셈법을 둘러싸고 각 진영에 속한 개인들에게는 파워게임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중요한 문제일 수는 있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는 한국은행 총재라는 우리나라 금융 수장 자리를 한순간이라도 비워둘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다. 포캐스트에서 짚은 가계부채 상황뿐만 아니라 국내외 경제 상황이 매일같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 싸울 시간은 없다.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이주열 총재의 바람대로 4월 금통위 때엔 실력 있는 새 총재가 회의를 주재해야 한다. 현 청와대와 인수위, 모두의 책임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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